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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해야 할 사실은 배고픈 자가 빵을 훔치거나 착취당한 자가 파업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아니라, 왜 배가 고프면서도 훔치지 않고 왜 착취당하면서도 파업을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 빌헬름 라이히






인터넷이 진보적인 담론이 주로 오가는 젊은 세대들이 주가 된 공간이라는 생각은 이제 틀렸다. 


이제 이 공간은 보수를 넘어 극우적인 담론을 지배적으로 생산해내는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일베, 그리고 그 이전에 디씨 정사갤이 있다. 



이들은 산업화 역군;들을 통해 다수의 인터넷 여론을 주작;하며 흐름을 이끌고 있다. 


2000년경, 월드와이드웹이 막 활성화되던 시기, 보수세력들이 미처 내딛지 못한 곳을 선점한 


진보적인 성향의 유저들이 올린 여론들이 주가 되었던 이전의 인터넷 공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한편으로 좌빨들은 반성해야 한다. 그들이 쌍팔년도 열심히 외쳐대고 써먹던 선전선동론을 


이젠 이들 수꼴들이 그대로 변화한 환경속에서 그대로 써먹고 있으니 말이다. 



글을 시작하기 앞서 이렇게 바뀌어 버린 세상속에서 너희들은 도대체 뭐하고 있었니 하고 묻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황폐해진 공간이 되어버린 이 곳을 맴도는 나에게도 너에게도 묻고픈 말이기도 하다.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곳은 일베이기에 이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이 곳에서 주로 생산되는 것들은 일종의 자기비하와 반대세력에 대한 냉소와 분노들이다. 


그 대상은 주로 한국사회에서 '진보'라고 불리는 이들로 향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민주당, 친노를 결코 진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아아 통진당 개쐉년들 이젠 진보란 말도 함부로 못쓰게 만들어버렸어ㅜㅜ)


큰 틀에서 이들의 성향을 살펴보면 '친북좌파'정권 및 개혁-진보진영의 과오 지적 및 폄하, 


지역감정의 확대 재생산, 북한정권에 대한 적대시, 기타로는 여성성 비하 및 인종차별적 발언 등이 눈에 띈다.

 

이들은 타사이트에 대한 신속한 산업화;전략을 통해 인터넷 공간에서 여론의 흐름을 뒤트는 데 있어서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유머사이트라는 속성상 타 사이트로의 자연스러운 유입 및 확장이 쉽고, 


정확한 사실을 적시하지 않아도 믿게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주된 대상이 가벼움을 중시하는 10대부터 20대 젊은 층들이기 때문에 


이들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커지게 된 것이기도 하다. 




먼저 뜬금없지만 일베의 매력을 찾아보기로 하자. 


개인적으로도 이곳이 매력있는 사이트임은 분명하다고 보는데 


그 매력을 꼽아보자면, 먼저 일베유저들은 글을 작성함에 있어서 최소한의 자기검열이 없다는 것이다. 


우선 욕은 물론이고 사회적 통념에 반하는 성적인 이야기나 범죄에 관련된 생각들도 


자유롭게 올릴 수 있도록 사이트의 제도적인 제한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이들이 유머사이트의 갑으로 오를 수 있는 이유가 된 것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번 정부에서 밀어붙이던 사이버모욕죄 이딴 개소리를 뛰어넘는 


www의 근원적인 자유로움에 다가서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이러한 특징은 이들의 정서적 뿌리인 디씨에서 기반하는데, 


이러한 자유로움과 탈권위적인 요소들은 이 곳을 이용하는 젊은 유저들에게는 


억눌린 감정을 해소하는 카타르시스의 통로로서 작용하게 된다. 




이는 한편으로는 이러한 무제한의 자유는 이들에게 반하는 대상에게는 


극단적인 성향으로 돌변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두번째로는 안팎으로 적을 만들고 이들과 대치하는 방식이 극단적이라는 것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의 유저들을 하나로 묶을 수는 없지만 이들은 대체적으로 자유-진보진영을 경멸하고 보수진영을 지지하는 


정치적 성향을 통해 연대감을 지니고 있다. 곁가지이긴 하지만 남성들의 정서에 반하는 보슬아치들의 행위와 


외노자들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것도 이들의 주된 놀잇거리 중 하나가 된다.  



그런데 그 표현의 방법이 극단적이고 저열한 것에 특징이 있다. 


마치 학교에서 반 아이를 괴롭힐 때 정신적 육체적으로 집요하게 모멸감과 굴욕감을 주는 것처럼.


물론 '사이버 공간'이니까 가능한 것이겠지만;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이들이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이를 표현하고 집단공격을 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강렬한 카타르시스-'까는 재미'를 제공함과 더불어 


이전 디씨를 비롯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그랬던 것처럼 '일베인'이라는 소속감과 연대감을 


보다 강하게 가지게끔 하는 아교풀 역할을 수행한다. 


이런 것들은 향후 얘기해보겠지만 보다 확장된 파시즘적 요소를 잉태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세번째로는 즉각적인 실시간 반응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인터넷 세상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난 남들보다 다르게'라는 명제는 절대적이다. 



그런 면에서 자체필터링(근데 이 것 자체에 대한 믿음은 별로 없;)을 거쳐 일베에 올라가면 


그 것은 널리 퍼지게 되고 즉각적인 산업화와 민주화 시스템 속에서 


이들은 초기 디씨인들이 보이던 그런 귀여운 사이버테러를 넘어선 강력한 '실력행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사이버 세상에서 해당 집단이 선도적 존재로 자리잡고 있다는 존재감을 주는 일들이 아닌가 싶다.





어쨌거나 이러한 장점들로 미루어 보건대; 나는 일베에서 파쇼의 냄새를 맡는다. 


파시즘이 19세기 말 제국주의 광풍속의 불안정함과 반지성적인 이념적 상황에서 탄생했듯,

 

현재 우리사회에서 극단적으로 치달은 자본주의의 벼랑 끝에서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두려운 현실을 온 몸으로 느끼며, 사회적 안전망은 작동하지 않고 


진보를 외치는 기성세대는 보수들과 똑같은 꼰대짓을 하고 있고


그런 진보 역시 더이상의 대안이라 생각되지 않고 있는 이 세상에서


이들이 마음 속 울분을 토해내는 통로는 바로 이런 방법을 통해서가 아니었나 싶다.


우리가 무능보다 부패가 낫다며 가카를 뽑았던 그 정서가 결국 지금의 일베세대를 키워낸 것이 아닐까.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개신교와 진보진영을 싫어하는 이유중 하나가 '꼰대속성'인데, 


상대를 가르치려 드는 독선적인 언행에 반감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며, 


이는 일베에 서식하는 젊은 유저들이 '좌좀'들에게 느끼는 반감의 근원중 하나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간철수; 병문안;


인공기의 디테일함;



최지룡의 '어느 통일분자의 회상1'. 북괴;군이 신은 나이키가 인상적이다;



아무튼;;


이들은 기존 보수세력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했던 지역주의와 국가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고, 


이는 호남에 대한 차별과 반북 감정이라는 괴기스러운 결과물을 확대재생산하며 덩치를 불리게 된다. 


그런 배타성을 기반으로 그들은 반공주의적 노선을 견지하며 개혁-진보진영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데


이는 내부의 적을 잠재우기 위해 외부의 적을 까기 좋아하는 기존 보수세력들에게 이용당하기 쉬운 


전형적인 파쇼적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논리와 합리가 끼어들기 힘든 기이한 주장들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듯,  


상대를 적대시하고 공격하는 것으로 자신의 정당성과 존재이유를 찾고 있는데, 


이런 '존재를 위한 반대'는 우리가 분단이후 남측정부.. 아차차;; 


한국사회에서 반공주의를 체제대결을 기반으로 정권을 운영해 왔던 이들이 


구사하던 테크닉과 유난히 닮아있어 슬프다.



그런데 어쩌랴. 개쳑-진보진영에서도 이는 종종 사용해 오던 전술이었던 것을.


그래서 일베는 두 진영의 그런 과오를 먹이삼아 끝없이 불타오를 것이다.


박근혜는 물론이고 문재인이 되더라도 근원적인 이 사회의 울분이 없어지지 않는 한


이들의 거칠고 정제되지 않는 분노와 경멸의 말들은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일베는 한국사회가 앓고 있는 이념적 정치적 혼란에 대한 일종의 경고메세지로 해석해야 할 것 같다.


(다만 도를 넘어서는 범죄와 다름없는 과도한 표현들은 적절한 고소미 크리로 다스리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내 생각과 다르다고 분노하고 배제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 모두의 모습이라는 것을.


서로에 대한 관용도 포용도 존재하지 않기에 결국엔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살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생과 소통은 있을 수 없다.

 


문득 근 십년전 홍세화 아저씨의 유행어인 똘레랑스가 생각난다.


하지만 우리는 사면이 바다;;인 섬나라라는 좁은 틀안에서


게다가 지금껏 독재정권 아래에서 한쪽의 의견을 배제시키는 사회에서 반세기를 살아왔기에


이런 관용을 체화하는 것은 아직도 힘든 과정에 있다.



그와중에 지역감정이나 인격모독과 같은 앵똘레랑스에 대해서는 따스한 온정으로 감싸는 


보수언론이나 정치인들도 계시니,


우리가 간철수 말대로 '상식적'인, 상식이 통하는 국가에서 살기 위해선


앞으로도 아주 오랜 길을 가야 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앞서기도 한다.



뭐, 어쩌랴. 이런 일베의 짖궂은; 행동에는 발끈하여 먹이를 공급하지 말고


담담하게 대응하고 멀어도 한걸음씩 나아가는 우공이산의 마음을 가지고 가는 수 밖에.



어차피 1보후퇴 2보전진의 역사에서 


삼성 갤럭시 시리즈 나오듯 민주주의가 쑥쑥 발전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경기도 오산. 



일단 민주화라는 단어에서 풉;하고 뿜어버리는 어린이들도 많아진 요즘이라 말 꺼내기부터 겁이 나지만; 


두차례의 야당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도 오히려 더욱 민주주의가 무너져가는, 


그리고 가카치하에서 권위주의가 부활하고 제도적 민주주의마저 훼손당해버린 지금에 와서 


이 민주주의, 민주화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부터 곰곰이 생각해 봐야할 시기가 온 듯 하다. 



어디로 갈 것인가? 


이들은 좀더 오른쪽을 말하지만 나는 왼쪽이 옳다고 생각하는 좌좀 씹선비니까.


에휴. 일주일에 몇 번 쓰지도 않는 인터넷인데


여기서라도 좀 평화롭게 살자 시발;




마지막으로 평화의 짤 하나 구해서 올리고 긴 글 접자.



불펌입니다. 지적하시면 삭제할게요. 출처는 http://imda.pe.kr 입니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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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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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


왼쪽과 오른쪽에 대한 상세한 답변



요 앞전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듯이,
중고딩때 배우던 '암기과목'들은 결코 우스운 것들이 아니다.
 
나 역시도 별반 차이는 없었지만 대학은 자격증에 토익공부하기에 바쁜 취업학원일 뿐..
그런 문화 속에서 정치에 관심을 갖는 대학생들이 얼마나 될까.

이승만의 315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시위를 했던 창원의 젊은이들은 고등학생들이었다.
야자와 학원에 찌들어 입시만을 보고 달리는 요즘의 고등학생과의 차이점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나도 이제 정치얘기만 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이젠 아는것도 할 수 있는 용기도 없으니 말이다.




Shadowfax - Watercourse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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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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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고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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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해 온라인 검색어 인기순위 1위를 차지한 것이 바로 '된장녀'였다고 한다.

된장녀 논란으로 온오프라인이 후끈 달아올랐던 시기가 이미 올여름이었으니
이제 그 얘길 한다는건 좀 뒤늦은 썰인 것 같긴 하다.

초뒷북이긴 하지만 된장녀 관련 걸작 만화들을 낑궈놨으니 보실분은 보셈.







이런 만화로 살펴보았을때
대중들이 말하는 '된장녀'로 불리기 위해서 가져야 하는 품성이라 함은

1. 신분상승욕구
2. 허영
3. 속물근성
 
요정도로 요약될 것 같다.


뭐, 정신적으로 마초임을 부정할 수 없는 내 입장에서는
된장녀 이야기가 뭇 남성들에게 단결투쟁;할 수 있는 공통분모가 되어주었기에
그들을 대놓고 비난하면서 모종의 은밀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기자의 말처럼 이 된장녀 논란은
남성과 여성간의 성대결이라는 말로는 그 설명에 한계가 있으며
이는 계급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합당할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개개인이 가진 취향의 존중'이라는 측면에서
스타벅스, 아웃백, 명품 기타등등의 선호에 대해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21세기 한국사회에서 솔직히 우스운 일이라 생각한다.
쌍팔년도 대학가에서 영문이 들어간 옷을 입거나 양담배를 피우다가
미제국주의의 개;라고 삿대질 당하던 것과 이게 뭐가 다른 발상인가;

하지만 그 취향이라 함은
온전히 자신의 순수한 '기호'와 '선택'으로만 이루어진 것일까?


오늘 생각해 보려는 것은 된장녀에 대해서가 아니라
바로 그들, 혹은 우리들이 선택하는 취향이라는 것의 정체다.
나는 이랜드 오리털 잠바보다는 노스페이스 윈드브레이커가 좋고
프로스펙스 보다 나이키를 더욱 선호한다.
이건 무얼 의미하는가? 마케팅의 승리? 브랜드 파워의 차이? 혹은 그야말로 밴드왜건효과?
개개인이 이처럼 갖고 있는 취향이란 것은 정말 개인적인 차이에 불과할까?

이러한 어떤 취향에 대한 선호는 계급간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되었고
이 것이 다시 체제를 유지하는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주안점이다.

재즈를 예로 들어보자.
남북전쟁후 버려진 악기들을 줏어든 흑인과 크레올들이
그들의 애환을 자신들만의 밑바닥 정서로 풀어나간 음악이 바로 재즈의 시작이었다.

당시 백인들은 재즈를 저질음악으로 규정해 터부시 했었는데,
그들에게는 '클래식'이라는 자신들만의 성역을 상징하는 고급 문화가 있었다.
(지금도 오케스트라 등에서도 흑인 뮤지션들은 매우 소수라는 것을 생각해보자)
이처럼 음악은 두가지로 구분된다;
내 처지에서 '응당 들어줘야 할' 음악과 조낸 짜증나는 '놈들만을 위한' 음악..-_-;;

그러한 음악적 "취향"은 당시의 계급적 차이를 명확하게 "구별짓는" 단서가 되었고
어느덧 그들은 자신들의 계급에 걸맞는 음악이라 여기고 그것을 즐겨왔다.
이 것은 조폭마누라 보고 낄낄거리는 사람과
피가로의 결혼 보고 ㅋㅋ 거리는 사람을 보는 인식의 차이기도 하다.
머, 열거하자면 한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러한 취향은 사회적 통념으로 굳어지고 계급적인 특성으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한편 오늘날 한국에서의 재즈는 어떠한 위치를 갖고 있는가.
교양있고 세련되고 쿨한 20~30대에게 잘 어울리는 '세련된' 음악적 취향으로 여겨지고 있다.
아마도 소개팅 자리에서 브래드 멜다우나 빌 에반스에 대해 썰을 푸는 대신
"저는 이박사;를 좋아하는 음악적 취향을 가지고 있어요"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 본다.)

이처럼 취향은 내 스스로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주어지는 것이고 교육받는 것이고 강요받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취향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계급간 구별짓기된 차별화의 기제로 움직이게 된다.

다시말해 개개인의 취향이라 함은 계급에서 비롯된 후천적 요인이며
그 취향이라는 것을 통해 계급적인 차별을 은폐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섹스앤더시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등으로 대변되는
이른바 뉴요커의 삶과 문화라는 것이
어느덧 20대 30대 여성들의 준거가 되었다고 본다면
그들에게 그것은 상위계급의 문화이며 마땅히 지향해야 할 바가 된 것이리라.
그들은 그 것을 어떠한 거부감 없이 당연히 받아들인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신분상승에의 욕망은 노동자계급에 속하는 이들에게
의식-무의식적으로 상위계급의 문화로 여겨지는 것들을 따르게 만든다.
명품으로 여겨지는 브랜드를 통해 그들을 모방해가는 과정은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며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은 그리 큰 차이가 없기에 그것은 아주 효율적인 방안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한정된 자본을 선택적으로 집중하여 사용하게 된다.
점심은 굶어도 커피는 스타벅스에서 먹고
구두쇠처럼 돈을 아껴 수백만원짜리 명품 가방을 사는 소비행태는
그들에게는 어찌보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굳이 아도르노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소비가 미덕이 되어버렸고
소비가 바로 자아실현의 하나로 여겨질 수 밖에 없는 우리네 삶에서
과연 그 이상의 그 무엇이 있을까도 의문스럽다.


물론 상류계층의 이들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도
충분히 쉽게 자신들만의 성역을 만들 수 있기에
그렇게 구별지어진 우리들은 또다시 그리로 쫓아가는(혹은 뒤쳐지지 않기위해서) 바쁜 걸음을 옮길 것이다.
어차피 그들의 이데올로기 안에선 우리들에게 편할 날이란 오지 않을테니.

결국 이러한 일상의 소비행위나 문화에 대한 미적 취향이란 것은
결코 자신의 순수한 취향이 아닌 구별짓기를 통해 발현된 문화적 기득권의 차이다

라고 부르디외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다시 인용해보며;;
오늘의 썰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된장녀라 불리는 이들의 취향이라는 것은
현재의 계급구조의 유지(지배논리의 유지)에 매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분명 같은 계급임에도 다른 계급의 다른 문화적 취향을 보이는 저들을 향해
계급간의 갈등구도 와중에서 대립을 택하기 보다는
손쉽게 상위계층으로의 편입을 꾀하는 모습에서 발생한 반감은
'허영', '사치', '속물근성' 등의 수식어와 함께 '된장녀'의 부름으로 공식화 된다.


자본주의 체제가 공고화된 이 땅에서
소비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인 지금의 상황 속에서
이땅에서는 자본을 통하여 뭐든 다 할 수 있기에
우리는 그렇게 취향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배를 꾸준히 불려주고 있다.

그로 인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된장녀'라는
어찌보면 마녀사냥에 가까운 분노로 표출이 되어버렸다.

자본에서 소외된 이들의 분노가 이상하게도 자본가들을 향하지 않고
오히려 동류계급에 속하는 이들(변절자?;)에게 향하는 것은
정말 이 체제가 가진 괴력의 한 단면이라 하겠다.
그렇게 분열되어가는 계급의 균열사이로 자본의 위력은
절대적인 힘으로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좆도 살기 힘든 세상,
사회는 파편화되고 개개인은 도구가 되어
주말에 마트에서 소비하는 낙으로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
그까짓 취향이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하겠지만
그 취향마저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자본의 힘이고 지배계급의 힘이기에
언제나 자본이라는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살아야만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나와 당신들이 취향이란 이름으로 자행해 온 소비행위들은
'당신은 소중하니까요'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기만이었던 것인데
결국 그것을 통해서 '남들과 다르게' 지배계급으로 진입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과
혹은 대세의 흐름에 따르기 위해 어려운 형편에도 눈물나게 노력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결국 가슴아프다는 말로밖에 표현하지 못할 것 같다.

된장녀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우리 모두가 천천히 속물로 변해가고 있다는게 안타까울 뿐이지.
마땅한 대안은 여전히 알려진 바 없고
그렇게 우리는 슬프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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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

Banksy 作 제목은 모름.. 아마도 꽃병을 던지다 정도가 아닐까;




학생운동이라니...



아무래도 써놓고 보면 조낸 재미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무진장 재미없는 '학생운동'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문득 학교다닐적에 같이 지내던 한 선배가 생각났다.


그 선배는 다 좋은데 성격이 급하고 직선적인지라

자기가 싫어하는건 도저히 그냥 넘기지 못했다.


이 선배가 술먹다가 가끔 하던 표현 중 하나가

" 난 예수쟁이와 빨갱이가 싫다-_-" 라는 멘트였다.


이들이 싫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지금 진중권의 표현을 잠깐 빌리자면 "무식하고 촌스러워서" 가

바로 정답이겠지만;


이리저리 치고받다가 항상 그 형의 결론은

"씨발... 적어도 남한테 피해는 주지 말아야 될 것 아냐 !!" 이걸로 끝났고,

나도 여기선 별로 할 말이 없더라;




다시 얘기로 돌아가서...


기본적인 내 입장은 OO님과 별로 다를게 없다.


지금의 학생운동은 분명 시대착오적이다.

그래서 더이상 '민중'들의 지지를 얻지못하고 있다.


다만 OO님과 조금 차이가 있다면

학생운동에 대한 애정이 있고 없음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80년대 사회구성체논쟁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싸워온 좌파내부의 사상논쟁의 이유는


현대 한국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라는

대단히 중요한 물음에서 촉발되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메커니즘이 체화된 오늘날의 우리와는 달리

80년 광주를 겪은, '체'와 '호'의 혁명의 숨결을 느끼고 가슴설레던 그들은


당연히 한국사회를 '식민지 반자본주의론'이라는 틀로 보거나,

혹은 '신식민지 독점 자본주의론'이라는 틀로 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그렇게 그들은 싸웠고

나름대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여기까지가 그들이 공식적으로 박수를 받는 대목이다.





문득 하나의 질문이 떠오르게 된다.



6.29 선언과 함께 제도적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후

한국사회는 그보다 훨씬 민주적으로 변했을까?


붉은악마와 노사모의 물결로 대표된, 시민의 힘을 보여주었다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사회는 그만큼 시민들의 힘이 중심이 된 민주사회로 변했을까?


난 도무지 모르겠다-_-;;




다시 한번 그들이 욕먹기 시작한 시대를 돌아보자.

제도적 민주주의라는 성과를 이룩해낸 학생운동(민중운동 전체의 몫이겠지만)의 방향타는

일단 눈앞의 적이 사라진, 사회주의국가가 붕괴해버린 90년대 들어 어떻게 움직여갔던가.



여기엔 "관성적 투쟁"이라는 관용적 표현이

이렇게 잘 맞을 수는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개인적으로는 운동진영의 주도권을 잡고있는 민족해방계열에 내재된

'주사'라는 변형된 사회주의의 향기가

지금의 운동권의 몰락을 부채질한 하나의 원인이 되지 않았나 짐작해본다.


스탈린이 그랬듯, 모택동이 그랬듯,

변질된 사회주의는 인민대중의 가슴에 상처만을 남기게 된다.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운동권들의 파쇼적 행태는

한국사회가 내재한 고유의 문제점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품고 있는 사상이 가진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당시 한총련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두가지 투쟁노선은

반미자주화투쟁과 반파쇼민주화투쟁이었다.


개인적으론 분명 일리가 있다지만

그 방법론은 여전히 80년대에 머물러 있었고

정서 역시 열사의 정서 그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기저에 흐르는 사상이 60년대라면...




개인적인 생각인데,

2002년 광화문 거리에서 지도부 사람들은

아마도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확신해본다.


...그들은 90년대를 넘어서면서 공룡이 되어 있었다.





다시 돌아가서..

지금 그들의 새로운 적이 무엇인지 그들은 알고 있다.


형체도 불분명한 신자유주의라는 괴물과

이제 공기처럼 스며든 고도로 발달된 자본주의 메커니즘들이다.


이젠 전두환;보다 더욱 무서운 존재를 적으로 두어야 한다.



게다가 저들은 혼자가 아니다.


하이에크와 미제스의 성경을 한쪽에 두고

잭 웰치와 피터 드러커의 복음을 노래하며


국적도 모를 거대자본이라는 긴 창을 들고

그렇게 세계를 지배경영하려 오고 있다.


그건 미제국주의;도 아니고 매판자본;도 아닌

인간본성의 극대화라는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기에

더욱 자연스럽다.


여기에 그 누가 대적할 수 있을까?

나도 당신들도 자본가의 좆을 조낸 빨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지금의 현실에서..

이 와중에 민족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으려나?;




다시 질문해보자.


한국사회는 제도적 민주화 이후 민주적으로 변했을까?

한국사회는 시민들의 힘이 중심이 된 민주사회로 변했을까?



아마 좌파;라고 본인들이 생각한다면,

민주화의 개념이 경제적 발전을 위한 민주화라는 제도적 논의가 아니라

지극히 본질적인 의미의, 그러니까 정치사회적 개념의 민주화, 민주사회라고 본다면


위의 질문에 고개를 젓게 될 것이라고 본다.




나는 여전히 운동권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한국사회의 변혁을 주도한 세력은 학생운동이었고

그들은 여전히 변혁운동의 불씨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화로와도 같은 존재로 남아야 한다.



그렇게 욕을 먹고도 고치지 못하는 그들의 한계는 분명하다.

그들은 여전히 학습되어있지 않고 여전히 방향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

다만 그들 역시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만큼은 공감하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무서운;괴물을 때려잡으려면

그들을 보지 못하는 예전의 안경을 버리고 새로운 안경을 껴야 할 것인데..


이젠 시민운동이 주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지만

여전히 이러한 민중운동역시 가치가 있음은

요즘의 남미;가 증명해 주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과거의 영욕;의 역사를 뒤로 하고

두갈래 길을 선택해야만 할 듯 하다.


시민운동과도 같은 자유주의적 개혁운동이던지,

아니면 국제적 연대를 통한 사회주의적 변혁운동이던지.

(아니면 적군파처럼 진퉁 좌파질을 하던지;)



학생운동은 이 길 위에서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이미 취업학원이 되어버린 대학가에서


과연 어떻게 해야 화롯불의 열기를 그나마 이어갈 수 있을지,


혹은 또다른 대상에게 이 열기를 건네어 줄 것인지.







머.. 난 지금도 자본가의 좆을 빨며, 바디;를 타며

그 화대로 이전보다 훨씬 많은 것을 누리면서 살아가고는 있지만


언젠가는 바디;도 안타고 좆;도 안빨고

덜먹고 덜쓰더라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보며


그냥저냥 누군가 날 도와 대신 해주겠지 하며 눈치만 보는 비참한 3류 창녀의 입장에서

내가 지껄일 수 있는 말은 이정도 뿐일 것 같다.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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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
의류 브랜드 중에 바나나 리퍼블릭이라고 있다.

(홈페이지는 http://www.bananarepublic.com)



Gap사에서 출시되어 주로 여성층에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브랜드인데

중고등학교 시절에 아이들 사이에서도 퀵실버;나 마우이; 마냥

바나나 리퍼블릭 티셔츠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던 듯도 하다.



문득 곰곰히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브랜드를 버젓이 입고 다니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바나나 공화국은 뭐하는 공화국일까.

그건 대규모 농장에서 바나나 등의 작물을 통하여 국가를 꾸려나가는,

굳이 농산물이 아니라 국가자체가 강대국의 입맛에 맞게 재단되어버린

중남미 약소국들을 낮추어 통칭하는 말이다.








과거 UF(United Fruits)라는 초국적 거대자본에 철저히 종속되어

국가정체마저 뒤흔들린 과테말라의 어두운 현대사에서 유래된 이 단어는


그저 '그들'이 원하는대로 먹고 살 수 밖에 없는 기형적 경제체제를 가진

그야말로 찌질;한 중남미 소국을 일컬을 때

'그들'은 바나나 공화국이라고 부른다.


돌아보면 지독한 경멸의 의미가 숨어있는 단어인 거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들 국가는

국가의 경제상황이 강대국들에 대해 지극히 종속적이라

그들의 이해에 의해 국가의 정치사회경제가 움직일 수 밖에 없는,


그야말로 한때 한국사회를 규정하는 단어들 중 하나였던

'신 식민지 독점자본주의'의 개념으로 보아도 무방한 상황이었던 거다.


생각해보라. 초국적 기업 샘숭;이 자유시장경제질서를 교란;하는 노무현의 정책이 맘에 안든다고

박근혜를 부추겨 노정권을 무력으로 갈아치워 버렸다면..?


이 것은 국제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을 극명히 보여주는 단어이기도 하다.

바나나 리퍼블릭이 괜찮은 브랜드의 의류의 의미로 받아들여 지느냐,

혹은 조롱과 경멸의 의미로 받아들여 지느냐,

또는 지독한 수치의 단어로 각인되느냐는

그 처해진 입장에 따라 가치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우리 역시 이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역사를 가져왔기에

이러한 3세계의 종속성과 경제적 빈곤을 비웃는 단어에

난 절로 좆치않은 기분이 들었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에게 종속되어

일개 국가의 모든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구조가 그들에게 맞추어 짜여져 온 우리 또한

2만불 시대를 달려가며 스쳐가는 과거의 이야기일수만은 없다.


다만 우리는 경제적 보다는 군사적 종속이 더욱 주된 요인이었고

산업화의 개념보다는 공산권과 대치하는 전초기지의 개념이 컸던 것이 다른 점이랄까.  


여전히 그들의 한마디에 멀쩡한 아들들을 사지로 내보내야만 하는

그것을 국익이라 믿고 있는 우리들 역시

또다른 형태의 바나나 공화국이란걸..








더욱 꼴사나운 것은 사실 우리는 제 3세계 국가이면서도

'우리는 못사는 중남미나 동남아 국가들과는 다르다'라며 그들을 경멸하면서


'그들'에게 붙어 헤헤;;; 거리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그야말로 겉은 노랗고 속은 하얀 바나나 그 자체다.



근래 뉴올리언즈에 불어닥친 태풍으로 인한 엄청난 피해소식을 들으면서

그 와중에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문제가 화두가 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참상을 접하면서

"역시 깜둥이 새끼들은 안돼" 라는 말을 내뱉으며

고개를 내젓는 이들을 간혹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깜둥이'가 들어가는 자리에 '원숭이'를 대입시키면

그들이 생각하는 바로 우리의 모습이라는걸 잠시 망각하고 있는,

혹은 그것이 괴로워 오히려 잊으려 노력하는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서글프다.




무엇보다 이러한 종속에 대한 논란과는 별개로

그러한 브랜드네이밍을 한 의류가 날개돋친 듯 팔려나가는 오늘의 상황은


국가와 이념과 인종을 넘어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자본이란 것이 가진 그 끝을 알 수 없는 힘에 대한 두려움과


그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


그 끝에서 생계를 이어가려 발버둥 치는


혹은 성공이라는 꿈을 꾸며 몸부림치는


우리들 자신이 너무도 초라해 보인다는 것에 가슴이 아파온다.






뉴스란의 리플을 보다 그만 열이 받아서 써봤다;


결론은 "국제사회는 힘없으면 좆밥"이라는

현실주의의 대명제를 들이대면서; 대충 마무리 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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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

지금은 탈퇴했지만... 싸이에 가면
혈액형에 관련된 성격/연애 관련 글들이
무진장 많더라.

거긴 혈액형과 별점 등등의 이미지파일들로
똘똘뭉쳐진,
그리고 거기에 퍼가요~♡ 가 달리는 살벌함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어디라고 다를까..

뭐... 예전에 딴지일보 기사 로도 나왔었지만

이게 완벽한 개구라라는 건 이미 증명된 사실이기도 하다.


그래도 인간이란 것의 특성상 혈액형이라는
미신에 힘을 빌리고자 할 때가 많이 있다.

대체로 잘 알지 못하는 상대방의 성격을 유추해 보려 할 때 많이 쓰곤 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상대를 어림짐작하고
몇가지 행동을 보고 재단하고

그리고 단정을 짓는다.

"그는 A형이니까... 그는 역시 B형이라니까..." 하면서..


인간을 단순화시켜 분류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모순인가.

그래도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단정짓길 좋아하고 구별하기 좋아하는 이들이니..


나 역시도 그렇다.

맘속에 1번 유형, 2번 유형... 수많은 인간유형들을 정해놓고

만나는 사람마다 그 틀에 쑤셔넣기 바쁘다.


이놈의 혈액형별 분류법은

상대방을 혈액형별 특징에 맞춰 재단해서 그를 취사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상대를 점점 그런 유형화된 범주안에
집어넣으려고 스스로 노력하게 된다는거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짓이냐고..



글쎄.. 그냥 생각나서 하는 얘기고...


내 생각엔 혈액형을 통한 인간분류란건

기본적으로 오감과 육감이 약하고
진정한 인간관계란걸 맺기 정말 어려운

현대사회의 인간이라는 나약한 존재가

재미삼아 믿어보고자 하는 가벼운 미신정도로 생각하고 싶다.



발가락이라도 닮았다고 믿고픈..
우리들은 약해서 두렵고
혼자여서 외로운 사람들이니까 말이지.





아... 사족으로;

내가 남들에게 이런 얘기를 할라치면

ㅋㅋ 임마, 넌 B형이라서 그래^m^



요렇게 받아들이는 인간들도

상당수 있다는 사실이 참 슬프다;


지금 이 옆에 B형의 단점이 나오고 있다.

싸가지 없다
건방지다
질투가 너무 많다
변덕이 심하다
오바한다
게으르다
차별대우한다
속에도 없는 말을 잘한다
도끼병이 많다
말이 많다
잔머리 천재-_-
계산적이다
변태다
고집쟁이다
은근히 여자를 밝힌다
승부욕이 강하다
착각쟁이다
막되먹은 성격이다
공상에 자주 빠진다
한번 사람을 싫어하면 잔인;하게 싫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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