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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전 찍은 등산화 사진


Toki Asako - Play Our Love's Th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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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쨌거나 나는 다시 지리산으로 향했다.
지난 산행의 들을 거울삼아 차근차근 계획을 짜고 며칠간 짐을 꾸리고 향한 그곳, 지리산..
끝나고 하는 말이지만 과오는 또다시 생겨났고 또다시 우리는 힘들어 몸부림쳤다.


<첫날>


고된 하루일과를 마치고 22시50분 용산발 구례구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영등포에서 탑승한 친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시 눈을 붙였더니 어느새 시계의 알람이 울어댄다.
피곤한 몸을 일으켜 60리터짜리 배낭을 짊어지고 역을 나선다.

구례터미널에서 등산객들로 만원이던 성삼재 가는 버스에서 내려 두시간정도 터울이 있는
6시10분에 출발하는 쌍계사행 버스를 기다린다.
이번 코스는 쌍계사-삼신봉-세석-천왕봉-중봉-치밭목-대원사 코스로 잡았다.
나름대로 첫날에 산행비중을 높게 잡고 이틑날은 자유도를 높게 두어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코스를 설정해 보았다. 물론 첫날부터 그 것은 난관에 부딪치게 되었지만...

쌍계사로 가는 길은 섬진강변의 푸르른 녹음 사이로 새하얗게 파고드는 아침햇살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화개에서 내려 지난번 혼자 지리산에 갔을때 들렸던 화개의 ㅅㅅ식당에서 친구와 참게장정식을 맛나게 먹고
버스로 쌍계사로 이동하니 여덟시 반 정도가 좀 지났던 것 같다.
밤길을 달려온 터라 몸이 좀 피곤하긴 했지만 일단 시작은 항상 용감하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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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에서 올려다본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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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 설송식당. 아주머니 너무 친절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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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게장 백반.. 좀 가격이 쎄긴 했지만 매우 맛있었음. 맛깔나는 밑반찬이 최고였다능..





절의 경내부터 시작되는 경사가 그닥 쉽지 않았다.
그동안 제대로된 등산 한번 제대로 하지 않았던 몸이 금방 사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불일평전의 휴게소에서 잠시 쉬면서 커터칼로 발바닥의 굳은살을 잘라내고 다시 출발을 한다.

산행을 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의미없이 쉬는 것인데, 이번 산행에서는 그런 실수를 많이 저질렀다.
내 친구는 느린 속도로 꾸준히 걷는 스타일로, 스피드로 승부하려는 나와는 정반대 스타일이다.
일반적으로 내가 선두에서 내달리고 친구가 따라오면 내가 조금 더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진행하던 식이었는데
이번 산행에서는 상불재 오르막에서 무리하게 너덜길을 오르다 오른쪽 오금이 찢어질 듯 한 통증을 느끼게 되면서 그 스피드가 죽어버리게 되면서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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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군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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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폭포




다시 돌아가서, 불일폭포를 구경하고 돌아오니 이미 출발한지 한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상황이었고,
상불재로 가는 무지막지한 자갈언덕코스는 후덥지근한 계곡의 습기와 어울려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쉬는 것 자체가 시간을 지연시키는 고통일 뿐이던 그길을 그저 어거지로 오르다 급속한 허기를 느끼면서
쌍계사 입구에서 점심을 사온다는 것을 깜빡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나름대로 알차게 행동식들을 챙겨온 친구에 비해
나는 쌀, 삼겹살, 김치, 각종야채 등등 조리해서 먹어야 하는 음식만 잔뜩 있었기에 무게를 줄이려 갖은 노력을 했었고, (배낭 무게는 출발전 저울로 재보니 18kg 정도) 그러다보니 정작 산행중 허기를 해결할 수 있는 초코바와 사탕등은 그리 여유롭지 않은 분량이었다. 치명적인 실수였다.
게다가 이 코스는 식수도 거의 막바지에서나 만날 수 있고, 세석까지 8~10시간이 걸린다는 남부능선코스 아니던가. 이래저래 정신적으로 상당한 타격을 받았던 것 같다.



4시간이 넘게 걸려 상불재 고개마루에 올랐다. 시간이 엄청나게 지연되었다.
계획이 점점 틀어지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같이 점심밥을 먹자고 권하던 하산하던 이들의 청을 사양하고 우리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중간에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끝없이 이어진 능선을 바라보며 한숨을 짓다가
점심 대신 친구가 건네준 사과와 각종 초코바들을 뱃속에 때려넣고 휴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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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시간은 19시 30분 정도로 생각한다면, 적어도 다섯시간 정도 내로 세석까지 도착해야 하겠건만,
이미 쌍계사-상불재 코스에서 기력을 다 소진해버리고 밥도 제대로 먹지못한 우리는
그야말로 개막장 노숙자가 될 공산이 매우 컸다.

시작부터 이어진 산죽길은 능선 특유의 오르락 내리락 하는 길 내내 우리의 발길을 좁혀들어왔다.
왔던 길 만큼 힘들지는 않았지만 그 시야를 완전히 막아버려 산행 내내 답답함을 가중시켰고
쉽게 지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등허리가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한참을 걸어가다 이정표를 바라보는 순간
'아악! 겨우 700미터 왔어! 1킬로미터는 온줄 알았는데 ㅠㅠ' 하며 장탄식을 거듭하곤 했었다.

오금이 찢어질 듯 아파와 이를 악물고 걸어야 했다. 아래로 간간이 보이는 청학동과 거림쪽 길을 보면
'아놔 저기서 출발했으면 이 고생은 안했을텐데' 라는 뒤늦은 후회가 들었지만
이미 서쪽으로 한참이나 기운 햇살은 우리에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삼신봉에 닿는 길은 어찌나 멀기만 했는지...
처음 대나무숲 정글을 벗어나 올랐던 곳은 쇠통바위였고,
거기서 또다시 미친듯이 달려 올랐던 곳은 삼신산정(내삼신봉)이었다.

헉헉거리며 다음 봉우리에 다다랐을때, 슬리퍼를 신고 올라온 왠 괴인들이 우리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건네며 웃고 가던 그곳이 바로 외삼신봉이었다.
그들은 신선이었을까.. 아니면 시정잡배들이었을까..
골프웨어에 슬리퍼를 착용하고 삼신봉에 오른 40대 후반의 아저씨들의 포스에 우린 완전히 기가 죽고 말았다.

지도상으로 보면 그 곳은 우리 첫날 코스인 남부능선의 딱 절반지점이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남은 시간은 해지기 전까지 서너시간.. 아놔아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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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통바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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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학동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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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내 심정을 정확히 보여주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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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삼신봉에서





이후 나는 선두를 포기하고 아픈 다리를 스틱에 의지하며 친구의 걸음을 뒤따랐다.
스프레이 파스를 쉴 때마다 뿌려봐도 그 고통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기갈이 엄습할때면 함께 파김치가 된 몸이 '이제 그만 가라'며 속삭여왔다.
휴.. 등산한지 열흘이 지나 올리는 글이라지만 그때의 기억은 여전히 끔찍하기만 하다.

길에서 버려진 물병 하나를 줏어 가방에 챙겨넣고
갈림길에서 40m 거리에 있다던 한벗샘에서 물을 채워넣고 마실 때의 기분은 참...
그 때도 이미 퍼지기 일보직전이었던 것 같다.

해가 떨어지고 세석대피소까지의 거리가 3~4km 남짓 남았을 때부터
이미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계에 도달했던 것 같다.

야간산행은 국립공원에서는 불법행위로 적발시 처벌받게 되어있다.
그래도 무슨 깡이었던지 우리는 꾸역꾸역 비틀비틀 앞을 향해 내걸었고
한걸음 한걸음 오르막 내리막에서 비명에 가까운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감겨오는 눈을 억지로 부릅뜨면서 앞을 향했다.

간신히 걸어가는 내게 후레쉬를 비추어주는 친구가 너무도 고마웠고
그가 건네주는 물병의 물은 천국의 성수와도 같았다.
아이씨이.. 등산가서 이렇게 망가져 본 적도 없었는데 흑흑...

깊이 들이마신 담배연기가 몸의 긴장을 풀어주면서
이쯤에서 그냥 자빠져 잤으면 하는 욕구만을 불러왔다.
고파오는 배는 사탕 여러알을 으적으적 씹어먹으며 달래본다.

친구가 내 모습이 안타까웠던지 비박을 제안해왔다.
나는 친구에게 미안해 가는데 까지 가보자고 한다.

아홉시가 넘었다.
길은 고도가 높아질 수록 더욱 어려워지고
몸은 더더욱 말을 듣지 않았다.

조금 더 가면 음양수. 지도상에서는 세석에서 한시간 거리이니
그 곳에서 식수도 보충하고 비박을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야말로 어거지로 걷고 또 걸어 30분만에 갈림길을 만났다.
그 곳은 대성리(의신)코스와 만나는 삼거리였다.
그곳에 행여나 음양수가 있는지 살펴보았지만 물론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거기서 20분 정도 더 올라가서야 음양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몸상태가 영 아닌지라 도저히 더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친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며 그 곳에서 비박을 준비했다.
완전히 지쳐버린 몸을 겨우 달래 배낭을 열어 침구류들을 꺼냈다.
자기전 먹었던 용안(람부탄) 통조림,
어찌나 달고 맛있던지... 휴우...


오기 전 인터넷에서 질렀던 ㄷㄴ침낭커버.. 따뜻했다. 대만족이다.
담배를 한대 피우고 눈을 붙였다. 시간은 열시 십분..
지쳐버린 몸은 이미 정신줄을 놓아버린 지 오래...

이렇게 내 생애 최초의 비박을 하게 되었다.






새벽 한시쯤 몸이 따끔거릴 정도로 강력한 빗방울을 느꼈다.
그랬다. 미친듯 후둑거리며 비가 오고 있었다.
금방 그칠 비가 아니었다.
입에서 절로 욕이 나왔다.
그러나.. 지금 일어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뭐가 있을까...

배낭도 방수커버를 씌워놓은 상태였고 등산화도 비닐봉지에 넣어두었으니 큰 걱정은 없다.
조금 축축하긴 하지만 침낭에 비가 안새니 다시 잠을 청해야지.
괜히 웃음이 난다.
자자.








<둘쨋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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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곱시, 비는 여전히 오고 있었고 그래도 우리는 갈길을 가야만 했다.
침낭커버의 위력에 탄복했던 나와 달리 친구는 김장비니루와 판초우의에 의지해야 했기에
그 피해 정도가 상당한 듯 했다. 침낭은 상당히 많이 젖은 듯 했다.
어쨌거나 비를 맞아가며 짐을 챙겨보았다. 여전히 오금은 아프지만 별 방법은 없구나.
그대로 나아가는 수 밖에.

사진을 보면 내삼신봉부터 비박하던 삼거리까지의 사진은 없다는 것이 느껴진다.
당연하다. 걷기도 힘든데 사진 찍을 여유가 어디에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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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후 그리 오래지 않아 음양수에 도착했다. 물이끼가 잔뜩 낀 것이 그리 깨끗해 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친구는 그 물에 세수를 하면서 깔끔을 떨었다. 물이끼가 좀더 추가되겠군. 매너없는 놈..

비와 자욱한 안개가 우리의 앞길을 저주하는 듯 했다.
그 곳에서 잠시 체류하다가 다시 우리는 세석대피소로 발걸음을 옮긴다.
문득 든 생각은 어제 무리하게 올라갔더라면 정말 뭔 일이 났을지도 모르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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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림방향 갈림길을 만나면서 이제 등산객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세석평전의 풀숲길을 거쳐 산을 오르다 보니 출발한지 한시간이 한참 넘은 시각,
우리는 드디어 어제 잠을 잤어야 했던 세석대피소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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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살 것 같다.
마음같아선 여기서 한숨 푹 자고 바로 하산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있나..
식수를 보충하고 밥을 지어먹고 짐도 정리하고 했더니 어느새 11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친구와 우리의 미래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다.
친구는 원래 계획대로 천왕봉을 들러 치밭목에서 2박을 하자고 했고
나는 장터목에서 백무동으로 하산해서 민박에서 2박을 하자고 했다.

결국 절충안으로 천왕봉을 찍고야 말겠다는 친구의 주장을 수용하여
배낭을 장터목에 벗어놓고 천왕봉을 다녀온 뒤 백무동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식량위기에 처한 것과 최악의 몸상태 때문에 2박은 힘들것 같았기 때문에.

다시 우리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부터는 주능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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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모를 야생화들이 가득한 세석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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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봉쯤인듯

세석에서 장터목 가는 길은 전에도 그랬듯 그리 호락호락 하진 않았지만
느낌상엔 비포장도로에서 고속도로로 옮겨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도 다행스럽게도 오른쪽 오금의 고통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이
오늘의 산행이 무사히 끝날 수 있게 되리라는 믿음을 주었다.

그렇게 절뚝거리면서도 무사히 두시간 안쪽으로 장터목에 도착하였고
가방을 벗어던지고 배낭머리를 떼어 걸머지고 천왕봉으로 향했다.
친구는 자신이 주장했던 코스대로 가지 않음에 아쉬워 했지만
제석봉 가던 초입의 오르막을 만나면서 바로 그의 주장을 거둬들였다.

이슬비 가득한 하늘을 따라 우리는 어쨌거나 천왕봉에 올랐고
기념사진은 꼭 박아야겠다는 그에게 사진을 박아주었다.
앉아서 세석에서 만들었던 주먹밥을 먹고 있자니 몸이 떨려오는 통에
다시 하산길을 재촉했다. 사실 백무동 내려갈 시간도 빠듯했다.
어제처럼 해없는 산길을 걷고싶지는 않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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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 가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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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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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와 습하고 질척거리는 하산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가던 길 중간에 등산객들이 숲에 짱박아놓은 쓰레기봉지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난 덜렁덜렁 귀찮아도 배낭에 잘도 매달고 내려가는데 말이지..

하산길에 어젯밤 미친듯 내리던 비가 언제였냐는듯 반짝반짝 해가 떴다.
아... 좋다.
기념으로 사진을 박아보았다.
아유 예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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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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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적ㅅㅂ;


내려가는 길 역시 무지막지한 자갈밭길이었다. 특히 참샘까지 이어지는 돌계단길은 압권이었다.
산은 내려오는 것이 더 힘들다더니 그 말을 실감하게했다.
발바닥에서 불이나기 시작했다.
참샘에서 세수도 하고 물도 한잔 마시며 쉬는데 배낭멜빵에서는 땀이 쩔어서 쉬어버린 냄새가 난다.
작업 끝나고 내무실로 복귀한 이등병의 냄새에 잠시 머리가 아찔해져왔다.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여전히 경사는 심하고 자갈은 많고 친구는 발꿈치가 까져 절뚝거리고
하늘에선 다시 빗방울이 떨어지고 계곡의 공기는 후덥지근하니 습하고...

어서 문명세계로 도착하고 싶은 마음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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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무동 하산길.. 거의 다 내려왔구나


그렇게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해가 떨어지기 전에 무사히 하산할 수 있었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씩 웃으며 수고했다 하는데 그 기분이란...


하산하며 동아리 후배의 이모님이 운영하신다는 ㄴㅌㄴㅁ집에 가서 후배 이름을 댔더니
웃으시며 술값을 깎아주시더라. 인심도 좋고 맛도 좋고... 실은 이곳은 등산객들에게는 꽤 유명한 곳이었다능
닭백숙에 동동주를 한잔 걸치고 방에 들어가 씻고 나니 친구는 이미 정신줄을 놓기 직전이다.
아.. 문명세계가 이토록 좋을줄이야.

우린 술을 꺼내 걸치는둥 마는둥 하며 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어제는 열세시간, 오늘은 열한시간을 걸었다. 지칠대로 지친 몸은 잠을 너무도 원하고 있었다.
이제 내 몸에서도 이등병의 향기가 사라지고 보송보송한 느낌에 너무도 기분이 좋더라.
행복하다 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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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후의 신발 꼬라지



말이 등산이었지 이틀간의 지옥체험이었다.

글을 쓰는 지금은 벌써 보름이 훨씬 지났다.
일에 지쳐 이렇게 인터넷에 글을 올리기가 그닥 여유롭지가 않더라.

그때 그 순간의 감흥을 글로 사진으로 옮길수는 결코 없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언제나 그랬듯 좋았던 기억이 먼저 앞서게 된다.  

장쾌한 기상으로 뻗어나간 능선과 골짜기들
능선을 넘어서며 비를 흩뿌리던 회색 구름의 무리
노랗고 분홍빛의 꽃무리가 반기던 세석평전의 아름다움
그리고 무엇보다 장대비를 맞으며 눈을 붙여야 했던 첫 비박의 경험까지..

다음에는 체력과 물과 식량과 무엇보다 시간안배를 철저히 해서
언제가 될지 기약은 없지만 다시 한번 지리산을 찾으련다.
어쨌거나 이번에도 잡스런 우리들의 산행을 기꺼이 받아주어 감사했어요.


등반코스:
쌍계사-불일폭포-상불재-내삼신봉-외삼신봉-대성리갈림길(1박)
음양수-세석-장터목-천왕봉-장터목-참샘-백무동(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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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의 교훈:
1. 여름산행에서 식수는 충분히. 물통 1리터짜리만 달랑 갖고갔다가 개고생함. 과일이나 오이가 아주 좋았다능
2. 밥과 행동식도 항상 여유있게. 배고픈데 사탕먹어야 하는 상황오면 대략 난감함
3. 산행 코스는 합리적으로. 인터넷에서 10시간이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12시간 걷고 못도착해 비박했음;
    결론적으로 자신의 체력과 산행능력, 등산경험을 고려해서 무리하지 않게 짜는 것이 핵심
4. 장비에는 투자를 아끼지 말자. 비박할때 침낭커버 매우 유용했음. 김장비닐 덮고잔 친구 캐안습;
5. 의약품 및 응급처치할 약품은 항상 지참할 것. 오금 아플때 스프레이형 파스와 압박붕대덕을 좀 봤다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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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
 
 
이현의 농 - 하늘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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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은 여길 누르셈

4일째 아침...
 
 
 

실은 전날 저녁에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지리산에 갈 식량을 인근 하나로마트에서 사오면서
맥주를 두병 사온 것이 화근이었다.
 
 
 
 
 
아침에 모닝콜을 듣고도 피곤해서; 제대로 일어날 수 없었다.
여덟시가 넘어 간신히 일어나 멍하니 있다가 시계를 보고 한숨을 푹 쉬었다.
이시간이면 예약해둔 연하천 대피소까지는 죽었다 깨도 못가겠는데...
 
어쨌거나 일은 벌어진거니 느긋하게 생각하자며
온수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섰다.

 
버스정류장에서 화엄사행 버스를 탔다.
화엄사 입구에서 버스에서 내려서자 급한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요 근처에 대통밥 정식이 유명하다던데..
휴; 오늘은 형이 맘이 좀 급하거덩?
 

계곡길을 따라 화엄사까지 올라가는 2차선 도로는
긴긴세월 수많은 관광객들을 받아낸 포스를 보여주듯
화엄사 앞까지 깔끔하게 잘 정비되어 있었다.
 
화엄사를 급하게 한번 둘러보고
화엄사내 해우소에서 급하게 싼; 후
입에 대충 먹을 것을 쑤셔박고 출동준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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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대웅전


지리산 종주는 지난 여름 친구와 처음으로 도전했다가
몰아치던 폭우때문에 실패하고 애꿎은 남원으로 내려가
춘향 테마파크;에서 커플들을 쳐다보며 시간을 보낸 쓰라린; 경험이 있었다.
 
지금은 겨울, 그리고 혼자이기에 더욱 안전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
처먹을 식량도 넉넉히 샀고... 그런데 배낭이 좀 무겁긴 하다..
일단 최대한 빨리 노고단까지 올라가보자.
 
지도상으로 보면 화엄사에서 노고단 가는 길은 '코재'라 불리는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4시간 거리라고 표시되어 있구나. 일단 가보자고.
 
 
문제는 어젯밤에 한 캐막장짓 덕분인가,
느낌상인지 실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리에 힘이 제대로 안들어갔다;
 
게다가 지난 사흘을 메고다니던 배낭무게에 익숙해져서인지
쌀과 라면을 더 쳐넣은 이번 배낭이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실제로 서울 도착해서 사우나에서 무게를 달아보니 28kg이더라)
 

본격적으로 오른지 한시간도 안되어 속에서 불이 나듯 더워져
오리털 패딩은 가방속으로 바로 쳐넣어졌다.
(다음부터 이건 이틀밤 내내 베개로 사용되었다;)
 
 

다른 말은 필요없고... 존내 힘들었다.
그래도 주말마다 등산을 하면서 나름 수련을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마에서 연신 구슬땀이 흐르고
거친 숨소리가 하악거리며 쏟아져나왔다.
 
아놔... 뭐야 이거 장난이 아니잖아...
역시 민족의 영산은 시작부터 내게 시련을 안겨주는구나..
 
원래 계획은 50분 걷고 10분간 쉬는 정통 군바리 행군으로 잡았으나,
실제로는 30분 걷고 10분 쉬는, 체력 깎아먹기 딱 좋은 모습으로 바뀌고 말았다.
지난 사흘동안 잘먹고 잘논 대가를 오늘 치르는 건가... 하악하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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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히 넘어온 코재에서

 
결국 정말 지옥같았던 코재를 넘어 노고단 가는 도로로 올라선 것은
버스에서 내려 출발한 지 네시간 하고도 30분이 지난 상황이었다.
 
이 꼴을 자초한 내 자신에 대한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고 올라와
훨씬 걷기 편해진 길을 터덜터덜 숨을 고르며 따라 오르니
어느덧 노고단 대피소가 눈에 들어왔다.
 

다섯시간 걸렸다. 한시간을 더 까먹었구나.
시계를 보니 세시간 후면 해가 떨어질 것 같은데
초행길인 연하천 대피소까지 가는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일단 밥부터 해먹자. 먹는게 남는거다.
취사장에 들어가 밥을 하고 뒤이어 라면을 끓인다.
라면 면가락을 빨아들이며 버너에 올려놓은 밥에 뜸이 다 들기를 기다린다.

 
맛있다. 맛있어.
밥이 약간 설익긴 했지만
지난 사흘동안 먹었던 그 어떤 밥보다 맛있다.
눈물이 나려고 한다 시발...ㅠ

 
대피소 직원에게 얘기해서 1박을 하기로 하고 대피소에 짐을 풀었다.
배낭에서 침낭과 매트리스를 꺼내 자리에다 깔아놓고 낙조를 보러 노고단 정상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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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낀 구름에도 불구하고 싸이;에 간지나게 사진을 올려보려 똑딱이를 들고 몇 방 박고 있노라니
이놈의 산은 지지리도 스케일이 크구나.. 정말로 웅장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람들이 이 곳을 왜 어머니의 품속과 같다고 묘사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오늘은 비록 힘들었지만 내일은 적응이 되어서 좀 나을거야.. 그치??
맘이 좀 안정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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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에서 전후좌우로 찍은 사진들



 
어린 초등학생 아들래미를 데리고 산행중인 아저씨와 대피소에서 잠시 얘기를 나누다
'OO야, 우리 내일 내려가면 맛있는거 먹자' 하던 아저씨의 말에
나도 모르게 빙긋 미소를 짓게 되었다.
 
대피소내 숙소는 예상외로 따뜻했고 사람도 거의 없었다.
정말 피곤한 하루였다. 누우면 바로 잠이 올 것 같았다.
목포에서 산 책을 오늘밤 읽는다는건 무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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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째 아침

 
 
밤새 부시럭거리는 소리와 늦은 밤 도착한 산꾼들의 얘기소리에 잠이 깊이 들지 못하다가
문득 눈을 떠보니 새벽 네시가 채 안된 시간이었다. 정신이 번쩍 든다.
그래, 것보라구. 딸;안치니까 이렇게 일찍 일어날 수 있는 것을;;
갑자기 내 자신이 으쓱해진다-_-;;
오늘은 한번 새벽같이 출발해보자.

 
 
짐을 챙기고 취사장에서 밥을 한다.
벌써 성삼재쪽에서 넘어온 양반들이 라면을 분주히 끓여잡숫고 있다.
신라면인듯 한 칼칼한 라면냄새가 코를 찌르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밥이 좋다. 조선사람은 밥심이라는데..
 
즉석국에 두공기는 족히 될 것 같은 밥을 말아먹고
숭늉까지 끓여 보온병에 넣고 짐을 정리하고 나니 다섯시 반...
 
기온은 영하 15도 정도였는데 그닥 춥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가보자. 일찍이 가야 오늘중으로 장터목까지 갈 수 있지.

 
 
후레쉬를 켜고 밤길을 조심조심 내걸어본다.
연말에 눈이 많이와서 입산이 통제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눈이 꽁꽁 얼어붙어 빙판이로구나.
스패츠는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도로 집어넣고 아이젠만 끼고 앞으로 나간다.

 
기분좋다. 새벽산행은 이런 묘한 쾌감이 있다.
해뜨기 전의 어둑어둑한 길을 걷는 그 느낌은 청소부 김씨;가 아니더라도
새벽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 묘한 기분을 한번쯤씩은 느껴봤을 듯 하다.

 
노고단에서 연하천대피소로 가는 길은 지루하게 이어진 능선을 타는 코스였다.
남쪽사면에서는 눈이 좀 녹아있다가 북쪽사면에서는 다시 빙판을 만나는식의,
하지만 능선을 타는 것이라 어제에 비하면 애들 장난이었다.
 
 
내가 알고있는 산에서 빨리 움직이는 방법은 따로 없는 것 같다.
굳이 꼽자면 바로 페이스 조절 뿐.
 
허본좌처럼 축지법으로 산을 오르는 분도 물론 계실 수 있겠지만
산을 자주 타 온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두다리 달린 성인남녀의 속도에는 대부분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차이를 낼 수 있는 이유들을 꼽아보자면
남들이 쉴 때에도 지치지 않을 만한 선에서 계속 걸어가는 것,
쉴 때도 물 한모금 마시고 숨만 고를 정도로 시간을 짧게 두는 것,
그리고 오르막을 오를 때, 느리더라도 내 페이스에 맞춰 쉬지 않고 꾸준히 오르는 것 정도일까?
 
일단은 그렇게 마음먹고 걷다보니 동쪽이 점점 밝아져 왔다.
아마도 노루목쯤이 아니었나 싶다.
쪼꼬바를 입에 조낸 쳐넣고 숭늉을 벌컥벌컥 마시고 닥치고 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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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 맞이한 일출

 
연하천 산장에 도착하니 출발한지 네시간이 지났다.
담배도 한 대 피고 이것 저것 줏어먹고 나니 몸을 식히기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시동꺼지기 전에 다시 출발해보자.
 
 
가끔씩 산을 가다가 약간의 경쟁의식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앞사람을 따라잡게 되거나, 혹은 뒷사람에게 추월당할 때가 바로 그 때인 것 같다.
그럴때면 괜히 무리하게 속도를 내서 가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거 참 위험한 짓인데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아직 내가 많이 소인배인 관계로 자꾸 그짓을 자행하게 된다.
 
물론 돈많은 일부 아저씨들은 등산보다는 잿밥에,
곧 아이템; 맞추는 것에 경쟁의식을 느끼는 이상한 분들도 꽤 되는 듯 하긴 하다.
 
아이템 말이 나와서 말인데
그레고리 배낭, 마운틴하드웨어/아크테릭스 의류, 잠발란 등산화 등등으로
풀셋을 맞추면 200만원은 우습게 넘어가더라.
 
전문적으로 산을 타는 양반들이 아닌 다음에야 돈지랄일 뿐인데..
살 디룩디룩 쪄서 산은 더럽게 못타면서
장비는 조낸 비싼걸로 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때마다
나는 열폭한다; 흑ㅠ

 
여튼 그건 그렇고 연하천을 떠나면서 나보다 5분정도 먼저 출발한
내 또래로 보이는 젊은이;가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오던 페이스대로 최대한 빨리 벽소령으로 이동해야만
후딱 점심을 해먹고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었기에
아까 오던 속도대로 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참을 가다보니 그 젊은이가 무례하게도;
한손에는 스틱을, 한손에는 전화기를 들고 팔자걸음을 걸으며
도로교통법 위반을 하고 있던 것 아니겠는가.
 
나는 '먼저 지나가겠습니다' 하고 슥 하고 그를 스쳐지나갔다.
한참을 가고 있었을까.. 뒤에서 뽀득뽀득뽀득..
아이젠 눈씹어먹는 소리가 빠르게 들려왔다.
 
흘깃 뒤를 돌아보니 그 젊은이가 갑자기 폭주를 했는지
조낸 빠른 속도로 내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아놔 색히.. 내가 너보다 먼저 가서 기분나쁘냐 ㅋㅋ'
이런 찌질한 생각과 함께 나도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근데 그 젊은이는 예상외로 뒤쳐지지 않고 여전히 그 속도로 따라오는 것이었다.
좀 짜증이 나면서 앞서 말한 경쟁의식이 솟구쳤다.
2시간 후면 벽소령이니까 두시간만 달려보자 시바..
 
페이스 조절이고 나발이고 다 무시하고 난 그 젊은이와 거리를 벌리려고
오르막을 씩씩거리며 오르고 내리막은 거의 뛰다시피하며 미끄러져 내려갔다.
 
뽁뽁뽁ㄱ복뽁뽁뽀각뽀각....
두시간 내내 아이젠이 눈밭에 박히는 소리만 요란하게 들려왔고
나도 살짝 미쳤었는지 귓가에서 들려오는 아이젠 소리가 멀어질때까지
정신없이 미친듯이 내걸었다.
 
한계에 달해온다고 생각될 즈음.. 벽소령 대피소가 보였다.
배낭을 벗어던지고 거친 숨을 고르면서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두대 빨았다;
담배를 다 피울때까지 아직 그 젊은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이스...
 
 
어쨌거나 심호흡을 하면서 이 엄청난 찌질함을 가라앉히고
취사장에 가서 점심밥을 하기 시작했다.
귀찮아도 밥을, 그것도 햇반보다는 직접 내가 한 밥을 먹으련다.
 
쌀을 올려 놓고 밖으로 나와 뭉친 다리를 풀고 있을 무렵, 나는 문득 보았다.
그 청년은 벽소령대피소를 그대로 지나쳐
아까의 그 속도로 세석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던 것을.
 
휴.. 무섭다 저사람;;
계속 그짓거리 했으면 나 아마도 길바닥에서 퍼져있었을거야..
님 좀 짱인 듯;
 
 
노릇노릇 맛있게 눌은밥을 위장에 가득 채우고 다시 장비를 추스려 본다.
예순은 족히 넘어보이는 노부부가 조심해서 산행 잘하라고 인사를 건넨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어르신들도 즐거운 산행하십시오.
 
발걸음이 아까와 같이 가볍진 않지만
밥먹는다고 좀 쉬었더니 왠만큼은 회복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벽소령에서 세석 사이의 구간은 세시간 정도의 코스.
정신나간 짓거리로 체력을 까먹어버린 내게는 조금은 힘든 코스였다.
 
특히 선비샘부터 세석대피소 사이의 코스는 
아까 왜 그짓거리를 해서 힘을 뺐을까 하는 후회를 하게 만든 구간이었지만,
더불어 그만큼 충분한 시야가 확보되어 멋진 경관을 볼 수 있었던 아름다운 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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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샘에서


봉우리에서 내려본 지리산의 아름다움..
특히 파이처럼 겹겹이 둘러싸인 지리산 남쪽의 산자락 위로 흰 안개가 피어오르던 모습은
마치 환타지 소설속에서나 등장할 듯한 장면 이었다.
 
그랬다. 힘들고 고생하는 만큼 더 좋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산에서 배우는 정직함이 아닐까.
 
 
이제는 쉴 때 쉬면서 체력안배를 하면서 가자.
힘이 조금씩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차근차근 봉우리 세개를 힘겹게 오르락 내리락 넘어가다가
 
영신봉 하산길에서 눈아래로 들어온
새하얗게 눈으로 덮힌 세석대피소와 맞은편 촛대봉의 모습은
알프스 어딘가를 연상시킬 만큼의 예쁜 경관이었다.
 
너무 아름다운 경관에 반해 사진을 몇 장 박았다.
여기에 뽀샵질좀 하면 된장필좀 낼 수 있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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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석산장과 촛대봉


 
세석에서 두시간만 더 가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딱 열시간 걸었구나.
다리는 그리 아픈지 모르겠는데 오른쪽 어깨가 상당히 아파온다.
짐이 한쪽으로 쏠린건가... 모르겠다. 귀찮다. 좀만 참지 뭐. 가자고..

 
세석에서 장터목 구간 역시 앞서 벽소령-세석 구간 만큼이나
볼 것이 많고 점점 높아지는 고도만큼이나 힘도 많이 드는 길이었다.
 
그래도 능선타는게 골짜기 타는 것 보다는 백 배 낫지.
힘들때면 어제를 생각해... 어제...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구...'(양희은의 '봉우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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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30분, 정확히 12시간만에
출발지인 노고단에서 목적지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했다.
 
지리산 무박당일종주를 해내는 대인배들도 계시다지만
초행길인 내게는 나름 힘든 하루였다고 생각된다.
제대 이후로 12시간을 이렇게 내리 걸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아직까지는 쓸만하구나 ㅋㅋ 하며 흐뭇해 해본다.
 
예약을 확인하고 자리를 배정받고서 취사장으로 향했다.
시끌벅적하게 고기를 구워먹는 아저씨 아줌마들로 소란스럽던 취사장을 벗어나
매점에서 산 황도 통조림을 뜯어 소주와 함께 마시며 하루를 돌아본다.

 
오늘 수고했다 하윤아.
사실상 등산은 오늘로 끝난거야.
정말 수고 많았어. 정말로...
 
차가운 소주가 뱃속으로 들어오자
달군 바늘같은 취기가 번개처럼 등뼈를 타고 솟구쳐 오른다.
취한다...
내일이면 집에 갈 수 있으려나... 후후...
갑자기 집생각이 문득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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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6일째 아침.
 
 
 
 
장터목은 천왕봉 일출에 특화된 대피소다.
시간이 되니 알아서 불을 켜고 방송을 해준다.
나를 포함해서 개떼처럼 많은 인간들이 부시시 일어나
어제 먹고 떠들던 기운들은 다들 어디로 갔는지
지쳐보이는 모습으로 산에 오를 채비를 하기 시작한다.
 
 
몸이 영 좋지가 않다.
황도에다 쳐마셨던 소주 때문인지
밤에 속이 쓰려 잠을 제대로 자질 못했다.
다행히 챙겨왔던 겔포스 덕분에 대충 넘어갈 수 있었지만
오늘 하루가 또 걱정이구나.

 
천왕봉 가는 길은 마지막 코스라 그런지 숨이 많이 차온다.
아직은 깜깜한 시간이라 언덕으로 발을 내딛는 것이 쉽지가 않다.

 
한시간을 헐떡거리며 어렵게 정상에 올라
아직은 어슴푸레하기만한 일출을 기다려 본다.
바위 위로 떼지어 몰려 앉은 물개들처럼
꽤 많은 이들이 떠오르는 태양을 보려 동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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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마다 떠오르는 일출을 보면서
가슴속 저마다의 수많은 소원들을 이야기 하겠지?
 
나는 지금 다리도 속도 시원치 않으니
무사히 안뒈지고 내려갈 수 있게 해주세요 라고 빌어야겠다.
내려가다 뒈져서 불효할 필요는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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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보다 조금 일찍 내려섰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던 지리산 일출이었기에
역시 해가 안떠오를 것은 뻔했고
빙판에 급경사라는게 뻔히 보이는 하산길을 수월하게 내려가려면
남들보다 조금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휴...
정말 매력없다. 중산리 코스.
바위와 급경사의 반복...
볼 것도 전혀 없고...
 
내가 비록 내려가기에 망정이지
이렇게 재미없고 험한 길로는 절대 안올라올거야.
무슨 지리산 단기속성코스도 아니고
이러다 무릎 나가기 딱 좋겠다.

 
혼자서 시큰거리는 무릎에 투덜투덜거리며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인사도 하며
어느새 중산리 버스정류장에 내려와 보니 10시 45분. 세시간 정도 걸렸구나.
 
진주로 가는 버스가 11시에 있구나. 진주에서 서울로 가야겠다.
하여간에 요번 여행은 타이밍 하나는 기가 막혀요.
 
 
 
어쨌거나 2박3일간 나를 받아준 고맙고도 징했던 지리산과의 인연이구나.
다음 계절쯤에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화개의 벚꽃길을 걸어보고도 싶고
쌍계사로 해서 세석을 넘어 백무동으로 가보고도 싶은데...
내 처지에 조금은 무리한 바람이겠지? 안녕...
 
 

마지막 체류지 진주에서는
히딩크감독;이 다녀갔다는 비빔밥집에서 비빔밥을 먹었다.
국으로 선지국이, 비빔밥 고명으로 육회를 올렸다는게 특이했는데
나름대로 전주가 아니라 진주에서 요런 비빔밥을 먹게 되서 감회가 새로웠다. 
큰 맛은... 잘 모르겠다.
 
뭐, 엿새간의 여행에서 가장 맛있었던 밥은
넷째날 노고단 대피소에서 해먹었던 약간 설익은 그 고두밥이었으니까.
...
 
 
 
 
 

다녀온지 이제 나흘이 지났을 뿐인데
지난 일주일은 벌써 지난 과거의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역시 현실은 얄짤없다.
 
내가 정말 벌교에서 꼬막정식 2인분을 개돼지처럼 혼자 다 처먹고 비틀거렸었는지,
혹은 세석 가던 길에 그 끝없는 계단을 부여잡고 거친 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었는지
벌써 가물가물 한다는게 너무 아쉽고 속상하다.
 
약발이 오래갈 줄 알았는데
내겐 겨우 사흘짜리였다니 한심하다는 생각만 가득하지만
 
다만 머릿속은 많이 깨끗해졌고 체력은 한층 강화된 것 같아
그나마 이걸로 다행으로 생각해야겠다.
솔직히 아무 생각없이 간 여행이었으니 이정도라도 얻어온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지.

 
 
이제 다시 현실에서,
아니 사이버 공간에서 찌질거려 볼 시간이구나;

 
키보드에 힘을 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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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
그래
 
여친도 없는 내가 뭐 뾰족한 수가 있나..
 
벌써 한달 전이었구나.
 
친구와 휴가를 맞추어 지리산으로 떠나기로 했었던게..
 
 
 
 
친구와 구례로 떠난건 12일 밤..
 
원래는 2박3일 종주를 해볼까 했으나
 
처음부터 종주는 무리라는 생각과 이러저러한 사정탓에
 
1박 2일 코스로 하산키로 하고 구례구행 열차를 탔다.
 
 
천둥치며 빗방울이 쉴새없이 떨어지던 서울의 밤하늘을 우울하게 바라보면서
 
이거 스틱에 벼락 떨어져 뒈지는 건 아닌가 내심 심각하게 걱정을 했었다.
 
 
그래도 미련이란건 어쩔수가 없어서
 
끊어놓은 기차표가, 20마넌짜리 배낭 질러버린 돈이,
 
그리고 이틀이라는 휴가가 너무 아까워서
 
이대로 뒷걸음치긴 싫었다.
 



 
구례터미널에서 구불구불 올라간 성삼재행 버스에서 내려
 
몰아치는 비바람에 덜덜 떨면서 노고단을 올라보니 새벽 5시 40분..
 
노고단 대피소 직원이 폭우로 입산통제중이라며 등산객들을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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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보인다

 

비 더럽게 많이 내린다...
 
한 치 앞도 안보이는 운무와 비바람 앞에서
 
머 내가 할 수 있는건 코펠에 라면 끓여먹는 것 뿐...
 
조낸 맛있더라.
 
 
9시경에 입산통제가 해제될 수도 있으니 기다려 보란 직원의 말에
 
대피소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지도를 펼쳐보며 시간을 죽이고
 
친구놈은 매트리스를 깔고 코를 골며 졸고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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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쿨..

 



결국 민족의 영산은 우리 잡스러운 놈들의 출입을 허락치 않았고
 
우리는 다시 터덜터덜 성삼재로 하산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할까..
 
그 유명한 화개장터;라도 가서 술이나 푸다 서울로 갈까?
 
이런저런 고민을 해보다가
 
그래도 명색이 등산하러 왔는데 이대로 가긴 너무 아까워라
 
 
태극능선 종주코스의 일부인 만복대를 거쳐 정령치로 내려가서 남원으로 걸어보자고
 
이미 만사가 귀찮은 김대리; 모드의 표정을 짓는 친구를 살살 꼬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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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 산에 또 가자꼬?


 
씹스럽던 표정의 친구에게 남원 아가씨들이 물이 좋다더라고 했더니
 
친구의 무겁던 발걸음이 갑자기 가벼워진다.
 
이제 다시 산행을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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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재에서 내려본 산동면 방향.. 그새에 무지개가 떴었나 보다

 
 
이제 고작 3년차 개허접 등산객인 내가
 
60리터짜리 배낭을 매본건 사실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꾸역꾸역 우겨넣은
 
쌀과 햇반과 김치와 오이와 3분카레가
 
이렇게 무거울줄은 생각도 못했었다.
 
 
무식하게 짐을 싸들고 온 내 자신에게 씨발씨발 욕을 하면서
 
정령치행 쟝글;을 헤치며 걷는 길은 쉽지만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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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말복날을 하루 앞둔 지리산의 능선자락은
 
턱을 덜덜거리게 할 만큼 추웠다.

 
끝없이 퍼부어대는는 비는 온몸을 다 적셔버리고
 
등산화마저 물이 차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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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이 안보여..



 
비오는 날 등산은 참 좆같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아무짝에 도움이 안되는 우비는 고이 접어 배낭에 넣고
 
그냥 펑펑 비를 맞으며 길을 재촉하니 오히려 맘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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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구나


 
안개로 한치 앞이 안보이던 만복대에서
 
싸이;에 올릴 사진 한방 박고
 
추워서 버티질 못하겠으니 다시 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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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다 정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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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치쪽 방향


 
정령치에 도착하니 성삼재에서 다섯시간 조금 안되게 걸렸구나.
 
 
 
정령치 휴게소에서 그간 못피운 담배를 피우며
 
저 아래 뱀사골쪽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삼천리 화려강산에 캐감동하기 보다는
 
이 높이에서 내려갈 생각에 그만 앞이 캄캄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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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사골 방향


 
친구야, 비박 하지 말고 더 걷더라도 민박집에서 자자.
 
그런데 이번엔 친구가 당근을 던진다.
 
하지만 남원의 모텔에서 온수샤워를 한다면 어떨까?
 
온!수!샤!워!
 
 
발걸음이 빨라진다;
 
지금은 오후 세시가 얼추 되어가는 시간..
 
양말을 벗어 물을 대충 짜내고 정령치 하산로를 내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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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리 방향

 
인적없는 도로를 말없이 걷고 있자니
 
참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복잡하다.
 
 
그 와중에 재수없게 핸드폰이 터져서 회사에서 전화가 온다.
 
음.. KTF도 산악지형에서 잘터지는군 하는 생각도 잠시;
 
 
아 씨발 기분 더러워.. 진작에 꺼놓을걸 후회를 하며
 
전화를 받고 나서는 핸드폰을 급히 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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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씩 한걸음씩..

 
 
구불구불 급경사를 내려가는 2차선 도로는
 
묘한 즐거움을 준다.
 
비가 내렸다 그쳤다 하는 날씨속에서
 
조금씩 아래쪽 마을이 시야 안으로 다가오는 기분이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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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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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국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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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들렸던 선유폭포






다섯시가 좀 넘어 절름절름 절뚝절뚝거리며
 
처음으로 나타난 휴게소 파라솔에 앉았다.
 
촌이라 그런지 길에 다니는 차도 몇 안되는구나.
 
 
맥주를 사서 캔을 딴다.
 
퍼붓는 빗속에서 회색빛 하늘을 바라보며
 
들이키는 맥주의 맛은 남다른 운치로구나.
 
 
이젠 비고 뭐고 별로 상관 없으니까
 
다시 걸어보자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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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거릴 걸었어..

 
한참을 더 걸어보니 등장하는 민박집들..
 
여긴 도대체 한 마을에 집이 몇채나 있는걸까
 
썰렁한 폐광촌같은 마을을 그대로 지나치려는데
 
어느 민박집 아주머니가 손짓을 하며 우리를 부른다.
 
 
어디 가냐고 물어보시길래 남원 갈거라고 했더니
 
때마침 버스시간이 되었으니 좀만 기다리면 버스가 올거란다.
 
민박집 처마밑에 앉으라고 하시고는 커피를 타주신다.
 
눈물이 왈칵; 날뻔 했다.
 
아유;; 고맙습니다. 담에 지리산 오게되면 구룡계곡 xx민박 꼭 들릴께요 아주머니
 
 
잠시후 우리는 버스를 탔고
 
아주머니는 잘가라고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신다.
 
인심이 넘 좋으신 분인 듯...
 
 
 
 
버스기사 아저씨가 묻는다.
 
남원 어디로 가요?
 
여관이나 모텔 많은데 있어요?
 
모텔이요? ㅋㅋㅋ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있다 가르쳐 주겠댄다;
 

 
여튼; 그날 하루는 그렇게 끝이 났고
 
우리는 여관에서 군장정리;하고 밥해먹고;
 
다방레지나 여관바리는 부르지 않은채;
 
그토록 그리던 온수샤워와 함께 평화로운 1박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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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로코롬 댕겨왔어요. 30km조금 안되게 걸었나봐요.













 
그렇게 다음날 지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와
 
관광도시 남원을 그냥 스쳐지나긴 안타까워
 
 
춘향테마파크와 광한루를 들려 관광객 모드로 돌아보았는데
 
참... 커플이 오면 정말 괜찮을만큼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놓았더라.

 
특히 춘향;테마파크는 별 네개 반을 줄 만큼 잘 만들어놔서
 
다시 와도 좋을 만큼 깔끔한 곳이었다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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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테마파크내 박물관. 멀티미디어를 적절히 사용한 구성이 이채롭다. 틀면 구성진 창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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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한 춘향전 뱅갈어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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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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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년? 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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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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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기생점고 해보고 싶은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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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테마파크와 광한루원을 잇는 승월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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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한루 뒷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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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분 5000원짜리 백반인데 정말 푸짐했음..





머.. 잘 다녀왔다.

친구는 다시는 등산 안갈거라고 한다.

나 역시 발에 물집이 한두군데가 아니긴 한데


처음 가보는 미지의 길을 걷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경험하고...


어렸을 때 꿈꾸던 모험; 이란 것들이

혹시 이런 부류의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근래 가보았던 산행 중에서 가장 알차게 1박 2일을 보냈던 것 같아

괜시리 뿌듯해진다.


기회가 된다면 여기서부터 백두대간 종주;;를 해보고도 싶고;;

미련이 가득 남은 지리산 종주의 꿈 역시 버리지는 못할 것 같다.


슬슬 퇴근하고 싶어지는 저녁이 오니

몸은 알콜을 원하고

나는 이만 로그아웃을 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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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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