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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촌

일기는메모장에 2007. 3. 23. 07:50

탄광촌을 가 본적이 있었다.


광부로 일하시던 고모부 덕에 나는 일년에 한 두번씩은 강원도 사북이라는 동네로 놀러를 갔었고

한번은 고모부 품에 안긴채 그 갱도안에 들어가본 적도 있었다.


석탄산업 합리화로 인하여 그 곳은 이제 유령도시처럼 변해버렸지만

OO탄좌 사북광업소에서 일하시던 고모부의 사택으로 놀러갔을 때의 그 풍경들은

지금도 어설프게나마 내 뇌리에 남아있다.



멀미가 날 정도로 가파른 산 중턱을 한참을 구불구불 올라가면

강원도의 그 억세고 뾰족한 산허리를 무지막지하게 깎아내려 만든 땅 위에

갱도 안으로 연결되는 레일들과 당장이라도 스러져버릴 듯 한 사택들,

서부개척시대;를 연상케하는 허름한 목조건물들과 더불어

갱구 입구에 산더미처럼 쌓인 석탄들을 볼 수 있던 곳이 바로 그 곳이었다.



그 풍경이라는 것이 어찌나 삭막했던지

당시 어린 초딩의 뇌리 어딘가에도 그 음습한 이미지는 그대로 남겨뒀던 것 같다.


누리끼리한 검은 물들이 흘러가는 개천,

개천의 바위나 조약돌들에는 여지없이 탁한 가래색의 찌꺼기들이

마치 물풀처럼 달라붙어 하늘거리고 있었고

그렇게 물고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죽음의 냇가를

내 또래의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심하게 지나치고 있었다.


산처럼 쌓아올린 석탄과 버럭들,

요란한 종소리와 함께 탄을 가득 싣고 나오던 탄차,

검은색 대지와 검은 집들과 나무를 베어낸 민둥산의 살풍경함,

그리고 검은 얼굴의 광부들과 그들을 기다리는 잿빛 얼굴의 가족들..


우리집은 그 곳에서 불과 한시간 남짓한 거리였지만

조용한 시골촌락과는 너무도 다른,

그렇게 이질적인 생활공간을 느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탄광촌처럼 외부인들이 모이는 곳들은 일반적인 촌락과는 성격이 다르다.

광산의 생명에 따라 촌락의 생명 역시 좌우되기에

각지에서 모여든 다양한 사연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고

급조된 열악한 시설, 흉흉한 민심과 더불어

서로 융화될 수 없는 것들이 삶이라는 이유로 모여 소용돌이치는 그 곳은


그 어린시절에도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이 도시에 대한 상상을

얼핏 미루어 짐작케 했을런지도 모르겠다.





80년대 말쯤이었나..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 이후

우리 고모부 가족도 그 곳을 떠났고

나도 다시는 그 쪽으로는 갈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우연찮게 철암역에서 둘러본

천천히 죽어가는 도시를 지켜보는 내 마음은

조금은 서글프기도 하고

조금은 아프기도 하더라.


그 이유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네이버 포토앨범에서 불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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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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