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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초등학교 4학년때 쯤이었던가보다.
몹시 유치하게 사고하고 연비낮게 살아가는 지금과는 달리
당시 나름 똑똑하고 조숙했다고 스스로 생각해오던; 나는

'계획은 결국 어기게 되기 마련이다.
무리한 계획을 세워 어기면서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느니
아무 계획도 세우지 말고 한번 자유롭게 살아보자'라고 생각하고

아무런 방학계획도 세우지 않고 그해 여름을 보내기로 했었다;


그래서 탐구생활은 받아온 첫날과 둘째날에 걸쳐 다 풀고
관련숙제는 가장 쉬운걸로 골라 대충 해버렸다.

그 이후 나는

애들과 놀러다니고 임시 소집일에도 안나가고
그냥 집과 동네와 뒷산과 냇가를 연일 방황하면서
그렇게 한달을 소일했다.

그리고 결국 내게 돌아온 것은 한달치 일기라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숙제였다.


돌아보면
지금의 막 사는 내 인생의 출발점이 그때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현실에 만족하고 미래없이 사는 삶이 얼마나 즐거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얼마나 불안한지
조금은 느꼈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방학때부터는 다시 시간표도 그리고; 일기도 방학숙제도 열심히 했다;



계획이라는 말에 조금 거부감을 갖는 것은
내 스스로가 아닌 타율적으로 주어진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리라.

아직도 프랭클린 다이어리를 보면 기가 찬 이유도
내가 그렇게 시간을 쪼개쓸 이유도 할 능력도 의향도 없기때문에
굳이 그런것을 살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자기계발서적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자신을 갈고 닦아라 시장이 원하는 네 스펙을 만들어라 류의 구절에 충실하자면
프랭클린 할아버지 다이어리라도 모자랄 듯 하지만

난 그런 자기계발 서적 속의 이데올로기, 즉, 
'모든 것은 네 탓이다’  혹은 ‘사회에 절대로 반항하지 말라’ 같은 것들에 그렇게 동조하고 싶지는 않다.
(※이건 시사in 68호에서 우석훈박사가 쓴 글중 일부이며 내 머리에서 나온거 아님;;)


머; 나도 올해 나름 계획은 있긴 하다;

먼저 칼판 둘째로써 부끄럽지 않을만큼 자리매김할
거론하기 좀 부끄런; 여러 소소한 목표들을 세워놓고 있고;
신용카드 짤라버리고(시발 할부ㅠㅠ;;) 월급 꼬박꼬박 모아 목표 금액을 만들고
지난 겨울에 보지못한 실기시험 붙어서 자격증 따는 것도 있고
짬짬이 중국어 공부해서 책 두어권 떼 볼 계획도 있고... 


어쨌거나
나는 큰 꿈을 이뤄본 적이 없고 추구해본 적이 없고
게다가 현실에 만족하고 미래없이 사는 삶의 대가를 매우 잘 알고 있기에
난 그 타협안으로 이런 소소한 것들을 달성해가면서 소소한 정신승리;;를 맛보련다.

인생 뭐 있겠나.
살려고 발버둥치면 칠수록 나는 그 배로 힘들어 하고
원래 내가 하려던걸 잊어버리는 성격인걸.

그래서 살살 갈라고 나는.
정도 내에서 절대 무리하진 않을거야.
그게 내 식대로 행복과 미래를 조금씩 추구하는 것 아닐까.



내가 올해 제일 기쁘게 하고 싶은 계획은 

올 가을 OB합창단 무대에 서는 것이고(이건 계획이 아니라 '희망' 정도겠다;)
취미생활로 합창곡 편곡을 하는 것이고
찍어놓은 책들을 사고 독후감을 쓰는 것이고
적어도 매월 두번 이상 등산을 하는 것이고
분기별로 시골에 내려가 어머니께 요리를 배우는 것

이정도면 과하지 싶다.

이런 자산 및 커리어와 전혀 무관한 계획들에
나는 오히려 흥분이 되고 올 한해가 두근거림으로 다가온다.


여튼 횡설수설 그만하고
음력으론 아직 새해가 안되었다고 정신승리;하면서
서른 둘이라는 나이의 무거움을 느끼고
빨리 로그아웃 해야겠다.
피곤하다.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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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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