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은 요새 꽂혀서 듣고 있는
뷰티풀데이즈 2집의 동명 타이틀곡 '집시들의 시간'이란 곡.
같은 앨범의 Drive랑 불꽃놀이, Moon 요런 곡들도 귀에 잘 들어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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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친구와 야탑에 있는 모 샤브샤브 뷔페에 갔다.
친구는 이만오천원에 두시간동안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다며 니가 아주 좋아할 곳이라 말했다.
그 회사 홈피에서 퍼온 사진들. 사진은 그럴듯 하다만 물론 현실은 결코 이렇지 않지.
끓어오르는 가쓰오부시 냄새가 솔솔 나는 해물육수에다
갖은 야채와 쇠고기를 넣어 데쳐먹기 시작했다.
뉴질랜드산이라 적힌 대패 쇠고기(아마도 등심?)에서는 쇠고기 특유의 노린내가 좀 나긴 했지만
그래도 얼마만의 쇠고기냐 싶어 각종 소스에 찍어 꾸역꾸역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쇠고기를 둘이서 세접시; 정도 가져다 먹으니 슬슬 배가 차오기 시작했다.
그날의 스페셜은 참조개라길래 그것과 더불어 이것저것 해물을 가져다가
이제는 쇠기름이 둥둥뜨는 혼탁해진; 육수에 던져넣고 맥주를 한병 시켜 마셨다.
배가 불러옴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떡, 초밥, 롤 등등을 몇번이고 가져다 먹었고
친구는 고등학교때의 먹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날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마침내 두시간을 풀로 채운 대단원의 막을 팥빙수로 장엄하게 마무리 짓고 우린 그곳을 떠났다;;
그냥...
먹는 순간동안은 참 행복했었지만
주말에 남자 둘이서 그렇게도 미친듯이 먹고 나오던 길은
조금은 슬픔 비슷한 것이 아릿하게 내 가슴을 후벼팠던 것 같다;
머.. 슬픔이야 어쩔 수 없는거고;
내가 뷔페에 가서 이토록 과식을 하는 이유는 뭘까 하고 잠깐 고민을 해보았다.
실제로 과식증/폭식증의 경우는 심리적인 문제가 많이 작용한다고 하더라.
스트레스나 강박증 등으로 인한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나는 스스로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로서 그런 질병;을 갖고있다 생각치 않기 때문에;
그런 것들과는 무관하게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나의 이 습성의 답을 찾아보련다.
답은 이미 나와있다.
첫째는 부페와 전통적인 식생활 문화와의 이질성 때문이다.
둘째는 우리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소비문화의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뷔페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자리잡은 건 20년도 채 안된 것으로 기억한다.
아, 여기서 '자리잡다'는 말은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쳐먹는 식사의 한 형태로서 현대 서울 및 수도권지역의 중산층 이하 서민들에게 까지도 정착되었다는 의미로 받아줬음 좋겠다;
머.. 뷔페가 북유럽의 왜구;라 할 수 있는 바이킹들이
마을을 털고 나서, 약탈한 각종 음식들을 한데 모아놓고 먹던 풍습에서 비롯되었다고는 하나,
그게 뭐든간에 미국을 통해 한국에 들어오면 서양의 좆간지 문화로 숭상되기 때문에
간지나게 그것을 즐기는 자들과 비싼돈 냈으니 뽕뽑겠다는 캐서민들과의
아직도 확연한 정서의 갭은 여전히 존재한다.
고3때였나, 당시 유행하던 7천원짜리 고기부페를 친구들과 정ㅋ벅ㅋ하러 가서
그야말로 미친듯이 구워먹다가 먹성을 자랑하던 한 친구가 그만 토해버린; 사건도 있었는데,
나는 이 것을 당시 우리들이 수용할 수 있는 문화적 한계를 넘어선 섭식행태에서 발생한
슬픈 사태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1식3찬의 3첩반상; 문화에서 살아왔던 우리에게
수많은 음식들을 원하는대로 먹는 뷔페의 시스템은 무척이나 이질적인 문화였던 것임에 분명하고,
그런 문화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지금의 나나 그때의 토하던 친구같은 좆병신;들이 많이 양산되었을거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실제로 우리같은 무지막지한 놈들 때문에 한동안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던 고기부페가 다 망해버리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도 들긴 한다;
어릴적을 기억해보면 어른들은 먹는 것에 대해서 많은 금기와 제약들을 갖고 있었다.
어른들이 먼저 수저를 드신 다음에야 식사를 할 수 있었고
고기나 생선등의 빅반찬;의 경우 어른들이 먼저 드시거나 '먹어라'라는 말 이후에야 먹을 수 있었다.
그뿐인가. 남의 집에서 행여 밥이라도 얻어먹고 돌아오면 네가 거지새끼냐며 혼쭐이 났고
이웃이 음식을 해서 가져다 주면 꼭 그 그릇에 우리도 꼭 음식을 담아 보내주는 관습도 있었다.
머; 그냥 한마디로 미풍양속;인데,
이건 쉽게 말해 어려웠던 농경사회에서 생존및 공존을 위한 필수적 요건이었다 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력 없는 애새끼들이 가족들의 체력을 책임지는 인간성기사;; 아니, 어른들의 섭식에 해를 끼쳐서는 안될 것이고,
끼니를 잇기 힘든 처지임을 뻔히 아는 사이에서 남의 집에서 밥을 얻어먹는 행위는 그야말로 민폐였을테니 말이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보릿고개를 겪던 농민들에게 먹는 행위란 생존에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가치중 하나였으리라. 그랬기에 식사에 관한 까다로운 관습과 예절들이 존재했을 것이다.
'고양이 대학살'에서 중세 유럽 농촌의 상황을 마더구스 이야기들을 통하여 분석한 것을 보면 당시 유럽사회가 결코 행복하고 조화로운 공동사회가 아닌 생존경쟁의 연속이었던 멜서스적 경쟁사회로 해석하며 '먹느냐 못먹느냐'라는 문제가 당면과제이자 갈등의 핵심으로 지목하는 것 또한
이와 궤를 같이 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런 시각에서 보면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어령 교수가 '흙속에, 저 바람속에' 에서 잠시 언급했었던 구절,
'토끼야 토끼야 산속의 토끼야~ 겨울이 되면은 무얼먹고 사느냐~' 라는
동요(!)속에서 조차 먹을 일을 걱정해야만 했던,
우리들의 존내 낭만없고 배고프고 고통스러웠던 시기가
그리 멀지도 않은 바로 우리들 아버지 세대였으니까 말이다.
여튼, 이런 소소한 것들이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들이라 하면
이런 나의 뷔페 폭식증; 역시 일종의 과도기적 시대상을 반영할 수 있지 않나 맘대로 생각해본다;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삶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식사에서
즐기기 위한, 쾌락을 위한 식사로 하위계층의 구성원들이 의식을 전환하기까지는
나같은 놈들이 겪는 그런 부작용의 시기를 거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니까.
물론 그것이 허상이라는 것 역시 언제쯤 깨달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처럼 바로 얼마전까지도 식량난에 초근목피로 연명했던 경험을 가진 세대가
수십가지의 화려한 메뉴들을 자유롭게 선택하며 먹는 세대가 공존하는 경우에는 이런 뷔페 폭식증;은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어쨌거나 나는 그런 곳을 가면 내가 택하는 입장은
최대한 먹어 본전을 뽑는다라는 동물적인 본능인 것이고
그래서 매번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란 것이 뭔가를 절실히 느끼면서도;
또다시 내 위장의 한계를 향해 도전하곤 한다.
한편 이 곳의 특성은 지극히 자본주의적 시스템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지불한 돈만큼 본인이 원하는대로 최대한의 쾌락을 누릴 수 있는 곳,
그렇기 때문에 이 곳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인 식욕을 한껏 극대화시키고
극대화된 욕망을 최대치로 충족시켜줌으로서
이를 다시 소비로 연결시키는 시스템의 전형이라 할 수 있겠다.
내가 배가 아플때까지 입에 음식을 집어넣는 이유는
나역시도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자본주의의 제일명제 앞에서
도저히 벗어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뷔페에서 백화점에서 마트에서.. 우리는 잠시나마 소중한 존재로 칭송받고 존중받으며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무비판적으로 이끌려 소비하고 또 소비하면서
내 무의미한 삶의 의미를 그렇게 찾게 된지도 꽤 되었던 것 같다.
난 그렇게 주말, 가족단위 고객들의 욕망의 정글이 되어버린 뷔페에 가서
어떠한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으며 내 능력이 닿는 한껏 내 욕망을 충족시켜왔다.
돌아보면 내 위장이 이모양 이꼴이 난 것도 정도를 모르는 욕심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류 발전과 번영을 위한 원동력이라던 인간의 욕망은
내게 있어서는 그저 먹고 싸는것 위주로 주로 쓰이나 보다.
김성모 화백께서 하신 명언 중에
네놈은 그냥 하루하루 똥만드는 기계일 뿐이지 라는 명언이 있었는데
내게 딱 적절한 비유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