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터널을 지날때면 네비아가씨가 '클린 광주, 맑고 풍요로운 새광주'라 외쳐주는 이 너른고을 광주(빛고을 광주와는 다름)는 과거에 지금의 서울 강남구, 송파구, 강동구를 비롯하여 하남시, 성남시까지 그 나와바리에 두었던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하던 넓은 고을이었으나,
지금은 차떼주고 포떼주고 나니 경안천 유역을 제외하면 구릉지만 가득한 현재의 지역들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ㅁ;
철도교통이 없고 서울로 통하는 길은 중부고속도로를 제외하면 극심한 정체를 자랑;하는 3번국도가 거의 유일한(..) 교통이 불편한 지역으로
동으로는 이천-여주-양평, 서로는 하남-성남-서울, 남으로는 용인, 북으로는 남양주-양평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북쪽의 한강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구간이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라 할 수 있겠다.
결론적으로 광주시민으로서 아름다운 광주시의 산야를 걸어보고 싶은 마음에서 광주시계산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실은 작년부터 짬짬이 해오던 것이긴 한데 엊그제 백마-태화산 산행에 삘꽂혀서 이렇게 포스팅까지 이어지게 된거임ㅋ
도시의 양쪽으로 청계산-광교산 및 남한산성 산줄기로 둘러싸인 성남의 경우에는 순환형 시계산행코스가 잘 알려져 있건만 상대적으로 교통이 불편한 탓인지 광주의 경우에는 그런 코스가 발달하지 않은 듯 하여 이번 기회에 한바퀴 돌아보고 소감을 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산행을 위해 광주시의 지선버스 정보를 알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참고하시길 바람. 열악한 농어촌버스의 실상을 알고 나면 깜짝 놀랄 수도 있겠다. 참고로 광주 곳곳으로 가기 위한 대중교통의 두 축은 광주 축협과 곤지암 터미널 두 곳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2010년 9월 11일(토) 행복마라톤대회에서 10km코스, 하프코스 부문이 취소된 것과 취소 후 두 코스 신청자 여러분들의 심중을 헤아리는 적절한 방안을 신속히 마련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무국은 대회당일 전날 밤까지 시설물 설치 작업, 주로 점검 등 대회를 진행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으나 9월 10일(금) 오후 10시, 기상 악화로 인해 동작대교~영동대교 구간 코스가 침수되어 한강관리사업소로부터 한강 주로 진입 불가 통지를 받았습니다.
이에 10km코스와 하프코스를 부득이하게 취소하고, 한강 주로를 사용하지 않는 3km코스와 5km코스는 진행하였습니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주로 진입금지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발생된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사무국은 출발지점의 시설물 설치, 장소 사용 승인, 주로 사용 승인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대회 연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따라서 사무국은 현재 여러 상황을 종합분석하고 고심한 결과 2010년도 10km코스, 하프코스 부문에 참가신청 하신 분들에 한해 2011년도 대회에 참가비 없이(무료로) 참가하실 수 있도록 최종 결정하였습니다.(단, 기념품은 미지급)
다시 한번 이번 마라톤대회에 애정과 관심을 갖고 신청해 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어린 사과의 말씀을 전하며, 2011년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 날은 8월 17일, 화요일이었다.
오늘은 11월 11일..;;;
굳이 이렇게까지 포스팅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심히 의문이기도 하지만
일단은 하기로 한거니까 해보자;;
전날 성산 일출을 보기 위해 일찍 잤던 우리들은 이날 새벽 네시 반에 일어났다.
생각 외로 몸이 잘 반응했기에 그럭저럭 일어날 수 있었다.
중화인민공화국 관광객들로 우글거리는 새벽의 매표소를 지나
계단으로 잘 정비된 일출봉을 올라보니 그 모습이 아주 장관이더라.
푸른 풀들로 우거진 둥근 분화구의 한쪽 귀퉁이에서 사람들은 일출을 기다렸다.
하지만 기다리고 기다려도 구름에 가리워진 동쪽 하늘은 밝아오질 않았다.
구름이 잔뜩 낀 동쪽 바다는 해뜨는 모습을 쉽게 허락하지 않을 모양이더라.
결국 우리들은 아쉬움을 안고 하산해야만 했다.
사실 본다고 해서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까;
결론은 일출 못봄;
일출봉 내려와서 한 장~
전날 친구들에게 욕먹으며 사온 반찬거리들로 밥을해서 계란찜에 계란말이에 콩나물국을 해서 먹고는
이틑날 우리들의 목적지인 우도로 가기 위해 성산포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도는 여기서 배를 타면 15분 정도면 도착하는 아주 가까운 섬..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진 않겠지??
성산일출봉을 바라보다
날씨좋고~
우도는 올레길1-1코스가 있는, 섬자체가 도립공원인 자그마한 섬이다.
섬을 도는 올레코스가 있다지만 오늘 우리는 관광객모드로 움직이기로 했기에 올레코스는 무시;
선착장 근처에 있는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이동하기로 했다.
2시간에 5000원이었던가? 암튼 오토바이나 사발이, 기타등등보다 훨 인간적인 장비가 자전거이기에
선택의 여지는 없었던 것 같고, 실제로도 무척 만족했다.
왜인지 모르게 힘들어보이는 두사람;; 뒤로 보이는 언덕이 우도봉
좋다..
우도는 검푸른 바다, 검정색 돌담 그리고 초록빛 밭들이 조화를 이루는 원색의 향연이 인상적이던 곳이었다.
시계방향으로 돌기로 한 우리들은 엄청난 폭염과 자외선러쉬에 고생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꿋꿋이 나아갔다.
서쪽해안에서 만난 서빈백사 (홍조단괴해빈이라 써있음) 해수욕장은 백사장의 폭이 좁아 자칫 그냥 지나칠뻔도 했으나
먼저 가버린 친구들을 보내고 사진 몇 장을 구할 수 있었다.
홍조류가 굳어져 생겼다는 굵고 하얀 알갱이의 새하얀 해변과 짙푸른 바다빛은 그야말로 그림과도 같았다.
난 먼저 가버린 친구들의 뒷모습을 따라잡기 위해 다시 페달을 밟아 보았다.
여기가 서빈백사 해수욕장
요런 구도 괜찮은듯?
위치 바꿔서 다시 한장~
음...;;
해녀들이 불을 피우던 공간인 불턱
우도 최북단인 답다니 탑망대를 지나쳐 다시 섬의 동쪽면으로 돌아서 페달을 밟아본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검은 돌과 초록으로 뒤덮힌 들판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들이었던걸로 기억된다.
안구정화란 말은 이런 때 쓰는 단어가 아닐까..
한참을 달리다 보니 어느덧 하고수동 해수욕장이 있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우리들은 바다에 들어가자는데 의견을 모으고
백사장 초입에 자전거를 눕히고서 바다로 뛰어들었다.
물이 이렇게 맑은 해수욕장은 처음이었다.
제주에 와서 정말 간만에 보는 새하얀 모래와 투명한 물빛이 아름다웠다.
많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들은 폭염을 피해 몸을 식혔다.
나와 친구는 오후로 들어서면서 점점 늘어난 인파속에 숨어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으로 호피무늬 수영복을 입은 한 처자를 노려보며
나도 몰래 잠시 침을 흘린 것 같기도 했지만;
갈 길이 워낙에 멀었던 지라 더는 지체할 수 없어 씻고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아야 했다.
그 길에서 말로만 듣던 전설의 섬, 비양도도 다녀왔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힘들었다;
여기가 비양도. 뒤쪽이 우도봉
우도봉 아래의 검멀레 해수욕장을 스쳐 지나 오르막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나의 폭발적인 페달링에 어느새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 잠시 주변을 구경했다.
우도 특산물이 땅콩이라던데 못먹고 온 것이 못내 아쉽더라. 땅콩 아이스크림도 먹었어야 했는데..
저 위가 우도봉. 물론 가진 않았다.
힘겹게 페달을 밟고 있는 친구들
머.. 이후로 이어진 얘기는 별 것이 없는데..
일단 자전거를 반납하고 선착장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걍 그냥 그랬다.
다시 성산포로 건너와 민박집에 맡겼던 배낭을 찾아 메고서 동부일주버스를 타고 서귀포로 고고씽했다.
미친듯이 더운 날씨였다. 폭염주의보라고 했다.
우린 서귀포 동문로터리 근처 피씨방에서 숙박업소 연락처를 뒤져 전화질을 하다가
운좋게 서문로터리 부근의 대명 미시룸;;이라는 단란주점을 지하에서 운영하고 있는 대명모텔이란 곳과 연락이 되어
하루 3만원에 3일간 묵기로 결정했다. 시설이야 뻔했지만 남자 셋이 자기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는 곳이었다.
그렇게 숙소를 정하고 나니 맘이 안정이 되어 우리들은 외식을 하러 나갔다.
야임마님이 지난번 올레길에서 먹고서는 감동을 금치 못했다는 고기국수집을 찾아갔다.
동문로터리쪽에 있는 고향생각이라는 고기국수집인데 할머니께서 말아주시는 고기국수의 맛은 정말 놀라움 그 자체였다.
국물의 느낌은 돼지국밥의 육수 같은데 전혀 느끼하거나 기름지다거나 누린내가 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밑반찬으로 푸짐하게 갖다주신 파김치와 함께 먹으니
고명으로 올려주는 엄청난 양의 돼지고기에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나오며 주인할머니께 육수에 대해 여쭤보았는데
돼지고기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돼지뼈와 사골이 들어가서 그런 깊고 맑은 맛이 난다고 하시더라.
암튼 이날은 이렇게 끝났다.
앞으로 남은 일정은 9,10코스, 한라산 종주가 있는데 일찍 자면 잘 할 수 있겠지?
암튼 없는 시간 굳은 머리에 나오지도 않는 글로 포스팅을 어거지로 해본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좀 크게 들지만 머 안죽고 돌아가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
그래.. 머 이렇게 다녀왔었다고.. 다음 포스팅은 언제가 될 지는 나역시 장담못할듯;;
피곤타..
원래 여행기는 다녀온지 얼마 안되어 올려야 그때의 감동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법이나,
나는 그 이후 여건상 결코 여유롭게 포스팅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찌어찌하여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서야 무리해서 키보드를 잡아본다.
근데 사실 이 포스팅도 언제 마무리가 될지... 일단 걸어놓는다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하자.
일단 당시 상황이 가물가물하니 사진들의 exif정보들을 뒤져보며...
2010년 8월16일부터 20일까지 벌어진 일들을 간략하게 올려보려 한다.
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니 간략해질 수 밖에..;;
여튼.. 여름제주여행기. 닷새중 그 첫번째 날 편을 올려보련다.
첫번째 오름인 말미오름에서
초등학교5학년때부터 알고 지내던 절친들 세명이서 함께 여행을 떠났다.
아무래도 셋 다 젊은;시절 함께 갈 수 있는 마지막 여행이 될 것 같다는
뭔가 자못 비장하면서도 씁쓰레한 기분을 함께 느꼈기 때문이리라.
갠적으론 내게 닷새의 일정은 조금은 무리라는 생각도 들었으나
그런 비장한;감정에 압도되어 무조건 강행하기로 했다.
참고로 이 친구들은 그 다음주에 스페인으로 떠났고, 지금은 산티아고 순례길 중간쯤을 걷고 있다.
둘다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고 긴 준비끝에 그걸 실행에 옮기고 말았으니 참 대단한 놈들이라 할 수 밖에 없겠다.
그날 아침 10시 30분에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개인적으론 김포공항에서 탑승권을 내버리는 등 온갖 실수를 저지르고 망신을 당한 굴욕의 순간들이 먼저 떠오르고;;
여튼 제주공항에서 나오자마자 숨이 막힐 듯 뜨겁던 그 공기의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제주터미널에서 느릿느릿 달리다 서다 하던 버스로 한시간 반이 넘게 걸려 1코스 출발지점에 내릴 때,
우리 이외에는 그 누구도 버스에서 내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날씨에... 저런 미친놈들...'
다음날에야 알았지만 폭염주의보가 발효되어있었다고 하더라.
정말 상상을 초월할만큼 더웠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걸을 수 밖에.
게다가 그때 출발하던 시간은 오후 1시..
살갗을 홀라당 태워버리는 강력한 자외선 폭풍앞에 무모하게 뎀비다가
결국 첫날 다 태워먹고 말았는데,
내 얼굴이 원래 까무잡잡한지라 사람들은 다녀와서도 탄 것인지 잘 몰라보는 것 같더라.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번 올레길의 영도자, 야임마님. 실질적인 리더 및 회계 및 총무를 맡았다.
두개의 오름을 넘으면서 펼쳐지는 낯선 풍경에 입에선 '아.. 좋다' 하는 소리만 연신 나오더라.
정말 잊을 수 없는 풍경들이었다.
녹색으로 뒤덮힌 오름들과 검은 돌멩이들과 멀리 보이는 쪽빛 바다와 새하얀 구름, 맑은 빛깔의 하늘까지..
말 그대로 안구정화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싶더라.
이런 풍경들을 보고 나니 나의 오른쪽 안구에서 난초향이 나는 듯한 착각에 빠졌었으나 말이 그렇다는 거지 오바임;
그때 내가 메고 온 배낭이 많이 크고 무겁긴 했는데 뭐 별 수 있나. 여긴 서울가는 버스도 없는데. 그냥 참고 버텼다.
사실 그 65리터짜리 배낭은 첫날 외에는 코스 이동중에 맨 적이 없었으며
항상 숙소에 고이 모셔진채 배낭머리만 뜯겨져 작은 배낭으로만 활용되었다;
두개의 오름을 내려오고 나니 2시 50분 정도.. 2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린 듯 했다.
내려와 민박집에서 파는 쮸쮸바를 사먹었는데 그렇게 날아갈 듯 좋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기력을 보충하고 시흥초등학교를 지나 종달리 마을길을 지났다.
나지막한 검은 현무암 돌담길의 풍경은 어느새 익숙해진 것 같았다.
야자수와 잔디구장이 인상적이던 초등학교
그렇게 종달리를 벗어나 해안도로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뜨뜻미적지근한 바닷바람이 주는 기분이 그리 즐겁지는 않았던 것 같다.
멀리 보이는 성산 일출봉이 다가올 듯 다가올 듯 멀리 서있었다. 생각보단 멀었다.. 많이;;
먼발치로 내일의 목적지인 우도가 보인다
이거슨 우도
그렇게 걷다보니 성산 갑문을 4시가 좀 넘은 시각에 건너게 되었다.
민박은 야임마님이 작년에 다녀왔다가 예약을 해둔 쏠레민박이었는데, 담에 1코스 가실 분 계시면 살며시 권해본다.
주인 아주머님의 친절함에 감동.. 시설도 좋아서 정신없는 첫날, 여장을 정리하고 편히 쉬는데 아주 적절했다.
이 곳에 짐을 던져놓고 가벼운 몸으로 남은 코스를 마저 돌기 위해 다시 움직여 본다.
일출봉으로 가던 중
성산포항구를 돌아 일출봉을 지나 광치기해변 초입까지 가니 다섯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광치기 해변 끝까지 가고 싶었으나 눈으로만 만족하고 배가 고파서 얼른 뒤돌아 서서 식당으로 들어갔다.
갈치구이, 갈치조림, 해물뚝배기를 시켜놓고 게눈 감추듯 먹었는데
몸의 소금기가 빠져서였는지 짭조름한 간이 아주 예술이었다;;
성산포항에서 우도는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
갑자기 해질 무렵 안개러쉬
하루가 저문다..
어찌되었건 간에 첫날은 1코스를 무사히 정ㅋ벅ㅋ했다는 걸로 만족하며 우리들은 잠을 청했다.
돌아보면 개인적으론 첫날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일단 배낭이 너무 무거웠고;; 전날 잠을 제대로 못자서 피곤했던 이유가 컸겠지.
오히려 셋째날의 9코스+10코스 달리기나 넷째날의 한라산 종주보다도 힘들었던 것 같다.
여튼 푸르고 검고 흰 제주의 첫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것 같다.
태어나서 그런 풍경들은 본 적이 없었기에..
특히 내가 어릴적부터 수평선과 지평선을 본 적이 없어서 그런 풍경들에 몹시 약한데;;
이번 여행에서는 모두 볼 수 있었기에 아주 대만족이었다.
이게 아마 마지막일 것 같다.
몰래한 야간산행 시리즈 마지막편이라 생각하고 올린다.
앞으론 무리안하려고ㅋ
역시 젤 힘들었던 코스는 향로봉 우회하는 것과 승가봉 우회하는 코스였던 것 같다.
이쪽으로 몇번을 다녀봐도 승가봉 우회할때의 그 끝없는 오르막의 압박은 정말..ㅋㅋ
여튼 이렇게 4등분해서 불수사도북 전코스를 다녀왔으니
이제 남은건 2등분;;이다.
아직 기약은 없지만 다음에 갈 때는 불,수,사,도 1코스와 도,북 2코스로 나누어 다녀와야지.
머.. 일단은 다녀왔다고;; 사진도 몇장 없긴 한데 다녀왔다는 증거 차원에서;; exif정보를 보니 7월 13일쯤 다녀온 것 같긴 하다;;
지난주 수요일밤(23일)에 야간 산행을 했다.
도봉역에서 무수골로 들어가 우이암-만장봉-포대능선-사패산-안골로 하산하는 코스였고
걸린 시간은 대충 6시간 30분 정도 걸린듯 하다.
도봉산과 사패산은 북한산 국립공원의 나와바리.
국립공원에서 일몰이후 출입시엔 과태료가 50만원으로 알고 있는데
여길 야간에 올랐다고 뻔뻔하게 포스팅 하는 내가 나쁜놈이지만
그래도 나름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법으로 정한 출입금지구역의 출입이나 흡연, 쓰레기 투기, 방뇨 등의 또다른; 범법행위는 전혀 하지 않았음을 밝히고 싶다.
하아.. 나는 원래 찌질하니까 걍 무시하고 갈란다;
여튼 짤막한 소감을 적어보자.
1. 무수골에서 등산로로 올라가는 길목에서는 흐드러지게 핀 밤꽃의 향기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는데
우이암을 지나 주능선을 따라 신선대까지 가는 길에서는 알 수 없는 꽃향기에 또다른 아찔함을 느꼈다.
달짝지근한 내음과 더불어 섬유유연제;의 향기처럼 아주 친숙한 냄새의 그 꽃의 이름을 알 수가 없어 궁금할 따름.
여튼 적막한 밤길의 낭떠러지로 나를 이끄는 사이렌의 노래소리같은 향기더라.
2. Y계곡에서 캐삽질. 도봉산이 워낙에 험악한데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던듯.
신선대를 내려오다 중간지점에서 길도 잘 모르면서 우회로로 빠져나가려고 하다가 어이없는 아르방;을 하게 되어
시간을 많이 허비했음. 중간에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리면서 죽음의 공포를 느끼기도 했는데; 어쨌거나 무사 생환.
앞으로 불확실할때는 절대로 깝ㄴㄴ 명심해야겠음.
3. 포대능선을 지나 사패산으로 가는 길은 부드러운 흙을 밟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음. 일출 무렵의 안개낀 의정부 시내의 모습은 매우 장관. 하산길의 안골 약수터 물맛이 아주 좋음. 결론은 사패산을 자주 다니게 될 것 같다는 얘기.
여튼 이렇게 하고 나니 예전부터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었던 불수사도북 종주의 로망이 조금씩 꿈틀거리는 것 같더라.
산행의 즐거움을 알게 된지도 어느덧 5년차에 접어들었는데
이번 산행은 반성할 점들을 너무도 많이 남긴 좆막장 산행이었기에
기록을 남겨 두고두고 뒷날 산행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 같아
이렇게 나름 정성껏 포스팅 해본다.
들어가자. (아, 블로그스킨땜에 사진이 다 안보일 수 있는데 그때는 사진을 클릭하면 사진이 커*-_-*짐;;)
교훈1: 계획을 세웠으면 시간부터 철저히 지키삼
요즘 산행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너무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지도를 비롯하여 교통편과 숙박시설 등은 굳이 인터넷정보검색사2급;;이 아니라도 충분히 얻을 수 있다.
나처럼 매번 독고다이로 산행하는 사람들에게는(직무특성상 같이 갈 사람이 없다ㅠ) 얼마나 좋은 일인가.
여튼 그렇게 난 인터넷을 통해 시간대를 확인했고
정상적인; 화악산 산행을 위해서는 청량리발 7시 2분 무궁화호를 타고(내년에 경춘선이 전철화되면 이것도 옛날얘기가 되겠지만)
가평에 8시 22분에 도착한 다음 터미널에서 화악리 가는 8시 35분 시내버스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9시 정각에 출발하는 용수동행 첫차를 타서 관청리쪽으로 오르던가 하는 두가지 코스가 일반적이라고 들었다.
여튼 나는 관청리쪽 등반을 생각하고 잠을 청했고
다음날 아침 온수샤워를 여유롭게 즐긴 후 슬슬 출발하려다가...
문득 지도와 시간표를 출력하지 않은 것을 깨닫고는
컴퓨터를 켜고 프린터를 연결하고 인터넷을 뒤져 그림파일을 찾는 등의 난데없는 삽질을 하는 바람에 시간을 꽤나 많이 까먹었다.
전날 미리 해두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을..
결국 간발의 차이로 기차를 놓치고 말았다ㅠ
50분 후에 출발하는 다음 열차를 타게 되면서...
그렇게 나의 등산계획은 본격적으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9시 12분, 가평역에 내렸다.
역에서 버스터미널은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다.
머 레전드급인 태백역-태백터미널간의 걸어서 1분;;거리급은 아니지만 매우 가까워 시간을 지체할 문제는 전혀 없다.
기차안에서부터 내내 고민했다.(는 뻥이고 실은 잤다;) 난 어떻게 해야하지?
아침에 출력한; 지도와 시간표를 펼쳐들고 여러 생각들로 머리를 쥐어뜯어 보았다.
원래는 이렇게 다녀오려고 했는데;;;
생각1(나름 이성적인 생각):
-겨울산행의 특성을 감안하면 하산까지 적어도 7~8시간은 잡아야 함.
-요즘 해떨어지는 시각을 오후 6시로 잡는다면 니가 제아무리 날고 기어도 오전 11시에는 산행을 시작해야함
-그런데 다음 용수동행 버스는 11시 출발, 화악리행 버스는 12시30분 출발이잖아?;;; 들어가는데만 30~40분 걸린다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라. 이 상태로 화악산 산행은 무리데스요;
-때마침 백둔리행 버스가 9시 35분에 출발한다! 명지산으로 가자능!
-무리하게 화악산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구. 게다가 명지산쪽이 교통도 좋고 볼것도 많지. 명지산 ㄱㄱㅆ!!
생각2(상당히 비이성적인 생각):
-일단 백둔리행을 타자. 가면서 생각해보자고;;
-근데 백둔리행 버스를 타고 백둔리입구 삼거리에서 내리면 화악산 가는 능선을 탈 수 있겠다?
-이거 지도상엔 능선 중간중간 화악리쪽 하산로가 많은 것 같은데 일단 한번 가볼까?
-그래. 명지산은 전에 한번 대충 와봐서 새로운 곳을 가보고 싶어;
-에이... 화악리 막차가 20시20분이더만. 그때까지 못내려가겠나~
생각3(매우 비이성적인 생각):
-씨발 남자가 갑빠가 있지 가기로 했으면 가는거야
-늦은것도 억울한데 정상은 찍어야지 안그래?
-그래, 무조건 고고씽!!
-_-;;
내 생각은 정확하게 1→2→3의 순으로 진행되었다-_-;;
사람이 머리는 생각을 하고 살라고 달고 있는건데
이렇게 생각없이 행동하면 절대 안된다;
그 덕분에 이번 산행의 코스는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원래코스랑 비교해보라.
저기 관청리에서 들어갔어야 했는데..
대충 추정해보자.
총소요시간: 10:00(백둔리입구)~19:30(화악리종점) ▶약 9시간 30분
총이동거리: 백둔리입구-대촌(국도): 3.7km-약 1시간
대촌-중봉: 10.1km-약 6시간 30분
중봉-화악리종점: 6.3km-약 2시간
▶총 20.1km
다시 한번.. 산행에서 이성의 끈은 제발 꼭 붙잡고 있자.
다행히 다치거나 길을 잃지 않아 다행이지 앞으론 제발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자.
교훈3: 장비는 미리 체크하는 습관을 가지삼
출발지점인 백둔리입구 삼거리
사실은 알고 있었다.
랜턴에 불이 안들어 온다는 것을
사실은 알고 있었다.
아이젠 한짝의 고무가 끊어져 있다는 것을
사실은 알고 있었다.
스틱 한짝이 조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렇게 간다면 좆될거라는 것을;
뭐 그랬지만 이미 출발시점부터 이성의 끈을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난 그렇게 대책없이 출발했다.
어느 민박집 간이화장실에서 대소사;를 치르고 출발~
한시간 가까이를 걷다 보니 대촌마을 버스정류장이 나타난다.
저 괴이한 형상은 가평군의 마스코트;; '잣돌이';;라고 한다;;
여튼 이 좟돌이;; 마크를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아.. 이런 지역 심벌 만드는 분들이나 돈주고 쓰는 분들이나 미적감각이 남다르신 것 같아서 좀 가슴이 아프다ㅠ
여튼 마을을 벗어나 두릅나무밭이 펼쳐지는 곳에서 간지나게 브런치;를 즐긴다.
메뉴는 김밥과 삶은 계란;
자, 출발해 볼까?
역시 잣의 고장답게 잘 닦인 임도와 그 수를 알 수 없는 잣나무숲이 시야를 압도한다.
와우..
어느덧 땀을 흘려가며 한시간 반 가까이 오르고 나니 목표했던 주능선에 다다를 수 있었다.
화악산에서 애기봉을 거쳐 수덕산까지 흘러내린 이 능선(이하 편의상 애기봉능선이라고 하자)을 따라
난 위로 위로 올라갈 예정임ㅋ
참고로 이번 산행에서는 올라가서 내려갈 때 까지 9시간동안 그 누구도 마주치지 못했다;;
정말 뽀득거리는 발자욱 소리만이 나의 친구였달까;;
13시 50분, 오른지 근 세시간 만에 임도가 넘어가는 고개마루인 애기고개에 당도했다.
시야가 작살난다.
맞은편은 촉대봉
군시절 진지보수공사하던 기억이 마구 떠오르게 하는 주변의 호와 방벽에 몸을 기대고
연양갱과 여러 잡스러운 것들을 섭취하며 체력안배를 해보았다.
돌아보면 이번 산행의 일등공신은 연양갱인듯 하다;
자, 출발하자.
고사목 간ㅋ지ㅋ
멀~리 중봉과 그 옆의 안테나 세운 화악산 정상이 보인다
아래로는 화악리. 내가 하산할 곳임 저기 보이는 봉우리는 응봉 되겠음
애기고개에서 애기봉 가는 길은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경사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참고 오르니 결국 애기봉에 오를 수 있었다. 이때 시간이 15시15분 경..
흐릿한 날씨에 명지산쪽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남동쪽 사면은 진흙탕, 북서쪽 사면은 살짝 녹은 눈길이라 불안불안했고 두어번 자빠지기도 했다만
다행히 별 일은 없었고 한쪽 손의 스틱과 한쪽 발의 아이젠이 나름 큰 역할을 해주었다.
다음 등산가기 전에 꼭 사야지 ㅅㅂ ㅠㅠ
해가 뉘엿뉘엿 저무는 것 같아 그리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다시 떠나자.
역시 오르는 길은 눈이 확실히 많이 남아있었고
눈이 녹았다가 다시 얼은 서릿발같은 눈이 무척이나 미끄러웠다.
앞서서 올라올땐 혼자 새로운 길을 개척(이라 쓰고 알바라 읽는다;)하기도 했는데
이젠 길이 험해져서 바위사이를 낑낑거리며 오르는 것도 버겁다.
어찌어찌 가다보니 해는 서쪽으로 급격하게 저물어만 간다.
긴급히 짱구를 굴려본다.
하산로를 어디로 삼아야 할 것인가.
이 속도면 정상에는 다섯시 반쯤 도착할 것인데
왔던 길로 돌아와서 3.6km남았다는 건들내로 갈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군사도로-천도교수련원코스로 갈 것인지
일단 군사도로쪽이 안전할듯 하고
만일의 경우 택시를 부르더라도 도로를 따라 내려가는 것이 안전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일단 계획대로 진행해보기로 한다.
그래도 막차는 탈 수 있겠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능
중봉을 3km정도 남겨두고
하늘에서는 보슬보슬 눈발이 날린다.
그렇게 서쪽하늘이 흐리던 것이 끝내는 눈이 되어 내리는구나.
셔터를 눌러보았지만 싸구려 디카에 이런 광경이 찍힐리 없지. 쳇;;
그렇게 꾸역꾸역 오르다 보니 중봉에 거의 다 온 것 같다.
이제 길은 더이상 가파른 오르막이라기 보다는 평탄한 언덕길처럼 변했다.
초입에 진흙탕과 얼다녹은 눈밭의 반복이던 등산로는 이젠 한겨울로 되돌아 간 듯 눈으로 가득하다.
가만 서있으면 안될 것 같다. 움직이자.
정상에 거의 다와서는 이제 거의 막바지일지도 모를 상고대? 아니 눈덮힌 나무?를 찍어 보았다.
지겨울 수도 있으니 박스처리;;
그렇게 올라오길 어언 7시간 반.. 드디어 중봉에 도착했다.
오오.. 중봉.. 오오..
휴... 장하다 씨발...
어느덧 해는 서산인 명지산으로 넘어가고...
듣던대로 정상에는 공군부대가 있었고 무서운 철조망이 접근을 막고 있었다.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이 웅장한 풍경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정상에서의 풍경 역시 지겨울 수 있으니 박스처리 하련다;
저기가 애기봉임
화악리 전경
오른쪽이 내가 올라온 가칭 애기봉능선
아래에서 보았을 때, 응봉-화악산-석룡산으로 이어지는 높은 능선이
마치 거대한 성벽처럼 보였었는데 어느새 내가 그 위에 서있게 되었다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뭐.. 근데 군바리들은 차로 여기까지 오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좀 이상했다ㅋ
여튼 어서 내려가야지. 종종걸음으로 발길을 옮긴다.
여섯시까지 30분 남았다. 박명으로 길을 식별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잡아서 30분정도로 계산해도
그때까지는 적어도 조난의 확률이 적은 계곡까지는 내려가줘야 했다.
왜냐하면.. 기차안에서 내 랜턴의 건전지가 다 된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랜턴은 좀 별난 형태의 수은전지라서 구하기가 힘들다. 장비는 호환성이 높은 걸로 준비하자;;
다음부터 산에 올때는 꼭 여분의 랜턴, 아니 여분의 장비를 챙겨와야겠다.
이번에는 먹을 것 빼고는 제대로 준비한게 없구나.. 하아..
암사동 선사유적지에서 출발해서 영동대교 하단 즈음의 10km 반환점을 돌면서
문득 '아 씨발... 이젠 온 만큼 가야되는거야?' 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몸이 급속도로 늘어지면서 힘이 빠지더니
15km를 넘어서면서부터는 몸이 전혀 말을 듣지 않는 상황이 발생해서
머리는 '아놔 좀 걸어가자 나 미칠것 같어'라고 말하는데 다리는 아무 생각없이 설렁설렁 뛰고 있는,
더이상 속도를 높일 수도 줄일 수도 없는 고장난 상태로 결승점까지 가게 되었다.
막판에 2시간 풍선을 단 페이스메이커 아재들이 날 스쳐지나갈때의 안타까움은 말로 할 수 없었다.
결국 성적은 2시간 3분 3초라는 저조한 결과가 나왔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전날 동생 반찬해준다고 네시간 정도밖에 못잤고,
아침도 못먹고 뛴 것이 문제였다고 하고 싶은데
우선은 연습량이 부족했던 것-20km 풀로 뛴 연습경험이 단 한번 뿐이었던지라 페이스조절능력과 기초체력안배가 안되어 있었다는 것이 문제점 되겠으며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그간 매주 잠안자고 행군을 해댄 결과 피로가 누적되어 몸 여기저기에 고장신호가 들어왔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 같다.
머... 하고 나니 덧정이 없고 내인생에 다시 하프를 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었지만
좀 지나고 나니 다시 오기가 생기고 다시 하고싶어지고 그러고 있다.
이거 병날까 무섭다.
예전부터 나는 꼴리면; 내몸을 마구 혹사시키는 나쁜 버릇이 있었는데
이번 3/4분기에 한 짓거리들을 보니 그 극한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덜컥 겁이 난다.
이젠 나이도 있는데 그러진 말아야지.
현재 왼쪽 오금, 오른쪽 복숭아뼈, 오른쪽 무릎 바깥쪽 그리고 양쪽 허벅지가 아프다;;
이걸 하면서 다짐했던게 있는데, 그건 술을 끊겠다는 거.
그럼 오늘은 술 끊은지 이틀째.
좋아하지도 않는걸 왜 또 생각하니~♬
추가:
이짓거리 왜 하냐고 물어보면 이건 내 새로운 취미가 될 듯 해서임.
두번째 해보니 네이버 블로그 등에서 볼 수 있는 본격 철덕횽들처럼 좋은 취미가 될 것 같음.
일본에서는 수십년동안 일본의 모든 역과 간이역을 들리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거 나에게는 괜찮은 취미가 될 듯 하다.
등산과 마라톤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뭔가가 있다랄까.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여정
선로를 보면 모락모락 피어나는 어떤 뿌듯한 감정을 느끼고 싶다.
아, 내게 여자가 있다면 물론 당장 이짓거리 안하겠지. 끗.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그래도 메모리에서 썩고 있는 사진들이 아까워 올려본다.
아래글은 모 커뮤니티에 올린 글인데 블로그에 맞게 다시 쓰기가 몹시 귀찮아서 그냥 붙여넣기했음.
요새 사수가 휴가중이라 혼자 일하느라 심신이 몹시 피로한고로 양해해주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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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잘 다녀와서 후기;올립니다.
이틀동안 설악산 종주하고 내려와 강릉에서 하루를 보내자 라는 계획으로 떠났었는데요,
돌아보니 나름 저렴하고 빡세게 다녀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휴가 전날인 20일,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니 열한시가 넘은 시간;
전날 장봐둔 것을 챙겨서 배낭을 꾸리고 대충 씻고 나니 어느새 새벽 두시가 가까워 오더군요.
정말 등산은 짐꾸리고 정리하는데 시간이 넘 많이 걸려요.
무게를 최대한 줄인다고 줄였는데, 체중계에 올려보니 16~7kg정도.
제 몸무게가 58~9 정도 나가는데 이틀동안 이정도야 버틸 수 있겠지 싶더군요.
시간이 애매해서 컴을 켜고 노닥거리다가 갑자기 좋은 동영상;을 발견하게 되어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격하게 딸;을 한바탕 치고 나니 시계는 세시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내 나이 서른 둘... 하아... 조금 피곤하고; 쓸쓸했습니다;
배낭을 짊어매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백담사행 첫차가 여섯시 십오분에 있는데
참.. 자기도 애매한 시간인지라 일단 택시를 타고 동서울터미널로 갔습니다.
문이 잠겨있더군요;
어디로 갈까 하다가 잠실대교 밑으로 내려갔습니다.
일출이나 한번 볼까 하구요.
캔맥주를 까면서 해뜨기를 기다려 보았는데 더럽게 흐렸던 터라 결국 보지 못하고 터미널로 돌아갔습니다.
잠실대교 아래에서
버스를 타고 미친듯 자다 일어나니 벌써 버스는 인제의 꼬불꼬불한 길을 달리고 있더군요.
용대리에 내려서 밥집을 찾아 두리번거렸습니다.
황태덕장으로 유명한 동네라 대충 눈에 띄는 황태국집에 들어가서 황태찜백반을 시켰는데
서울에서 먹던것과는 달리 황태찜은 덜 자극적이고 들깨와 참기름을 많이 써서인지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었습니다만
황태국은 후추와 조미료가 많은듯 골이 지끈지끈 아픈 그런 맛이었습니다;
어쨌거나 배를 채우고 백담사행 셔틀버스를 타고 20분정도를 달려 백담사로 갔습니다.
도착한 백담사에선 사찰체험을 하는 듯한 중고딩들이 뭔가 종교의식을 마지못해 따라하고 있었는데
모두들 지겨워 죽겠다는 모습으로 몸을 배배 꼬고 있는 모습이 몹시 인상적이었습니다;
여길 건너면 백담사
오전 열시 이십분, 이제 설악산 본격 산행이 시작됩니다.
절간투어를 가는 듯한 아지매들을 뒤로 하고 힘찬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초록빛으로 반짝이는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이어진 등산로를 걸어가다보니
채 한시간이 안되어 영시암이라는 암자가 나타납니다.
여기서 갈림길이 나타나네요. 오세암으로 가는 길과 봉정암으로 가는 길.
저는 봉정암으로 가서 소청중청대청으로 갈 예정이예요. 초행인 이들에게는 이 길이 가장 무난한 코스라고 들었어요.
십여분을 더 가니 간지나는 계곡 사이에 통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오두막이 보입니다.
수렴동 대피소네요. 일단 시간은 안되었지만 밥을 먹어야겠죠.
시간을 줄여보려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꺼내고 코펠에 즉석국을 끓여 점심식사를 합니다.
비슷한 시간대 올라온 등산객들도 취사장에서 밥을 먹고 있네요.
갑자기 누군가 비명소리를 지릅니다. 아이고~ 살모사 새끼가 취사장안에서 돌아다니네요.
밥먹던 등산객들이 놀라서 시끌시끌 난리였습니다.
재밌었던건 취사장근처에서 먹고사는 다람쥐들이 뱀을 툭툭 치면서 시비를 걸더군요. 덩치가 비슷하니까 가능했던걸까요;
머 그렇게 식사를 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계곡물은 내리쬐는 햇살을 받아 연초록빛으로 빛났고요 흐르고 떨어지면서 수없이 많은 폭포와 소를 만들어내네요.
역전다방에 걸린 달력에서나 볼 수 있는 멋진 풍경이여요.
달리 얘기하자면 산행길은 점점 빡세진다는 이야기겠지요?
예쁘죠?
볼 것은 참으로 많은데 몸은 조금씩 힘들어지네요.
어쨌거나 공기는 너무도 맑고 햇살은 가볍고도 따가워 피부가 막 심호흡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매일처럼 랩이 한꺼풀 씌워진듯한 하늘과 공기를 맛보던 제게는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냥 좋더군요.
걷다가 마구 업되는 기분을 참을 수 없어 노무현 버전으로 크게 외쳐보았습니다.
"야~~~ 기분좋다~!!";;;;;
이정표를 보니 봉정골 입구라고 써있네요. 1050m정도였던듯
두시간을 내리 걸어온 터라 배가 고파와서
이미 녹아 떡이 되버린 초코바를 입안으로 꾸역꾸역 밀어넣습니다.
올라온 길을 돌아보다
잠깐 뒤를 돌아보니 이렇더라
물을 약간 마시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데.. 아아.. 경사가 예사롭지 않네요.
도대체 천미터가 넘는 산자락에 절을 지을 생각을 한 사람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과연 이 위에 절이 있기는 할까, 봉정암의 암이 암자암이 아니라 바위암자인가봐 하면서
미친듯 헐떡거리며 바윗길을 기어올랐습니다.
허벅지가 터질 듯한 고통을 억누르며 한참을 오르다 보니 사자바위라는 고개에 당도하게 되었습니다.
이정표를 보니 대청봉까지는 2.5km남았더군요. 백담사에서 벌써 10km를 넘게 온 셈입니다.
나름 양호한 성적이네요. 조금더 힘을 내보자고 자신을 타이르면서 다시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봉정암은 계곡 사이에 건설한 암자인데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보관한 사리탑이 있어
독실한 불교신도들에게는 백담사-오세암-봉정암 코스는 메카; 마냥 한번쯤은 꼭 가봐야 할 곳이라 불린다 하더군요.
해발고도가 무려 1244m.. 어휴 말도 안돼;;
하기사 지리산 중산리 코스로 오르다 보면 법계사라고 1400고지에 있는 절도 있었으니 이건 양반?;;
하늘이 맑아서 참 좋았음
머 종교가 없는 저에게 이곳은 물뜨는 곳 이외의 의미는 없었기에 잠시 물마시고 땀좀 식히다 다시 길을 걸어봅니다.
계속 경사가 장난아니었습니다만 머 아까 봉정암 초입에서 이미 단련된 터라
속도를 줄이고 숨을 고르면서 차근차근 타박타박 걸어봅니다.
아.. 너무 좋아요. 고도가 높아지면서 거치른 암벽과 봉우리들이 미친듯이 나타나면서 눈을 어지럽힙니다.
힘든데 너무 기분이 좋아요. 초록 숲과 하얀 암벽의 조화, 따갑고 맑은 햇발속에 걷는 이 기분
등산을 하는 즐거움중 하나가 바로 이런것이예요.
아니.. 이건 혹시 자신을 괴롭히면서 얻는 쾌감이란걸까요?;;
헉헉대고 오르다보니 어느새 소청대피소에 도달합니다.
아~ 정말 전망이 개작살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가슴이 열리는 그런 기분이라 해야 할까요?
아래 지나왔던 구곡담계곡과 바로 옆 연필 깎아놓은 듯 솟구친 용아능선, 뒤쪽의 공룡능선과 저멀리 보이는 울산바위까지
그야말로 한눈에 들어오네요.
이건 마치 남산타워에 처음 올라 서울시내를 바라본 초딩의 감동과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사실 설악산을 두어번 오긴 했었는데, 한번은 울산바위로 가는 관광코스;였고
한번은 외설악 천불동으로 대청에 올랐다 돌아가는 코스였던터라 이번 산행만큼은 볼것도 감동도 크지 않았었지요. 오늘이 제대로인듯 하네요 히히.
아, 용아장성능선은 대충 보더라도 바늘처럼 솟구친 암봉들의 연속이라 도저히 탈 수 없게 생겼는데요
실제로 이 코스를 도전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고 추락해서 목숨을 잃은 분들도 숱한 죽음의 릿지코스라 하더군요.
물론 통제구역이고 무서워서 갈 생각도 없었습니다ㄳ;
내일 가야할 공룡능선
구곡담계곡쪽으로
이게 바로 용아능선
앞에는 신선봉과 범봉, 뒤에는 울산바위
날씨가 너무 좋다능.. 하악하악;
사진발 쩌네효 대단한 분이신듯
그렇게 숨을 고르고 다시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아까 오르던 기세로 계속 오르다보면 레이더기지같은 것이 설치된 중청봉을 지나
대망의 대청봉을 함께 바라보게 됩니다.
아아.. 그렇게 중청을 넘어서면 드디어 중청봉과 대청봉 사이에 아담하게 지어진 중청대피소가 눈에 들어옵니다.
목적지에 도착했네요 히히;
도착시간은 네시 사십분 정도.. 여섯시간 반정도 걸린 듯 합니다.
예상외로 시간이 적게 걸려서 다행입니다.
왼쪽이 대청, 오른쪽이 중청. 산사태흔적이 보인다
이쪽은 화채능선쪽인듯?
오늘의 목적지가 보인닼ㅋㅋ
이제 짐을 풀고 밥을 먹으러 취사장으로 갑니다.
산에서는 고단백 고칼로리 음식이 최고인지라 끓는물에 3분짜장;을 데우고 그 물을 거름망에 버렸습니다.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리네요.
하수구 아래에서 물에 젖은 다람쥐가 튀어나옵니다.
탄천변을 달리다보면 이런 플랭카드가 눈에 띕니다.
'오리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_-;;;
등산객들이 다람쥐에게 먹이를 주다보니 얘들은 어느새 먹이를 찾는 일에 귀차니즘에 빠져
이곳 대피소에 터를 잡고 음식찌꺼기를 먹고 사는 쥐새끼가 되어버린거겠죠.
징그럽다는 기분과 동시에 자연에게 인간은 정말 이명박과도 같은 존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이 강과 산을 살리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걍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안하는게 자연을 위해 도와주는 거예요.
이게 정답인 것 같아요. 저도 다람쥐를 이지경으로 만든 인간인지라 일단 반성.
일몰시간이 되어 대청봉에 슬슬 올라가 낙조를 보려 했지만 서쪽에서 미친듯 넘어오는 검은 구름 탓에
결국 지는 해를 보지 못하고 터덜터덜 내려왔습니다.
산에서 해떨어지면 할게 없죠. 자야죠.
자리를 깔고 누웠습니다. 평일이라 등산객들이 얼마 없어 다행입니다.
열두시 반쯤 되었나요. 뭔가 쪼아대는 소리에 잠을 깨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쥐새끼;; 아니 다람쥐 새끼가
내 밥통 냄새를 맡고 뭔가 먹을게 있나 싶어 열심히 이빨로 갉아대고 있더군요.
아까 취사장에서의 기억이 떠오르며 입에서 절로 욕이 나오더군요.
결국 잠만 깨고 쫓아내지도 못하고 해서 나와서 담배를 한대 피웠습니다.
많이 추웠습니다. 온도계는 영상 14도.. 그순간에는 바람막이가 정말 절실했습니다.
산위에서의 일들이 대개 이렇지요. 상상하기가 힘든 일들이 참 많이 벌어지니까요.
여기서 한번 접을께요.
그만 읽으실 분들은 여기까지. 안녕히 계세요. 꾸벅.
어쨌거나 잠을 깨어보니 네시 반. 다시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몸은 허리가 좀 아프긴 한데 이정도야 뭐.. 이제 일출을 보러 가야겠죠.
일출시간이 다섯시 반이니 대충 밥먹고 대청봉은 어제 다녀왔으니
대피소 앞에 나가 싸이에 올릴 사진이나 찍어봐야지 하며 밥을 해먹습니다.
오늘의 메뉴는 햇반과 스낵면. 이번 산에 와서는 첨으로 먹는 라면인데 이거 맛이 끝내주네요. 쩝쩝.
대피소를 나서니 바로 발 아래까지 차올라온 존내 장엄한 운해에 깜짝 놀랐어요.
어느새 동쪽의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지점이 주황빛으로 변하고 있더군요.
이렇게 멋진 일출은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다행히 날씨가 도와주어 일출 장면을 이렇게 또렷이 볼 수 있었던 적은 몇 번 없었는데 말이예요.
아놔... 저는 똑딱이로 본격 좆간지 일출사진들을 신나게 찍어대었어요.
인증짤들을 확보한 다음 아침 여섯시가 될 즈음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오늘의 목표는 공룡능선을 통과해서 비선대 소공원으로 하산하는 코스로 잡았네요.
설악산 종주코스의 전진무의탁; 코스라던 공룡능선을 넘을 생각을 하니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그냥 기가 쵸큼 죽는건 어쩔 수가 없더라구요.
가는 길은 중청 소청을 내려와 소청에서 희운각대피소로 하산을 해야 하지요.
미칠듯한 경사로 한시간여를 내려가니 대피소가 보입니다.
소청에서 희운각 가는 길
1050m..
담배를 한대 피우며 이정표를 보니 여긴 천미터대 높이네요.
한시간만에 700미터를 내려오다니.. 도대체 몇번이나 오르락내리락 할건가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숨은그림찾기ㅎㅎ
조금 쉬고 다시 발걸음을 옮깁니다.
어제보다 사람이 적어 능선에는 사람자체가 뵈이질 않네요.
역시 시작부터 압도적인 경사가 기를 죽입니다ㅎㅎ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한시간 정도를 걷다보니 이제서야 몸이 적응을 하네요.
혼자하는 산행의 장점을 꼽자면 저처럼 배려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참 좋다는 거예요.
산행할때 다른사람들 챙길 필요도 없고, 뒤에서 따라가느라 힘들일 필요도 없고...
아.. 얘기하다 보니 좀 무책임한 놈으로 보이는데 사실 좀 그런면이 없지않아 있어요ㅋ
여튼 편하고 자유로운 산행입니다. 쉬고싶을 때 쉬고 걷고싶을 때 걷고..
여튼.. 대여섯개의 암봉들을 허우적거리며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니
정신이 없어 일식도 놓쳤어요. 아, 그때는 그냥 어둡고 시원하더군요.
초딩때 먹칠한 유리대고 일식을 본 기억이 있으니 나중에 노인되서 다시 보죠 뭐ㅋ
중간에 어찌나 힘들었는지 꽁치캔을 먹지도 않고 길바닥에 내버리고 간 분들도 계시길래
그건 제가 주워서 가방에 넣고 하산했습니다ㅋ
산행의 속도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것 중 하나가 무게와의 싸움인데.. 그런면에서 꽁치캔은 좀;;ㅋㅋ
1275봉 정상에서는 주인이 어찌나 힘들었을지 짐작할수 있는 아직 따끈한 똥무더기;도 발견했어요.
아.. 존내 막장ㅅㅂ... 좀 가련하다는 생각이 들데요. 똥쌀만큼 힘들었다고 그 똥의 주인은 훗날 회상하겠죠?
체력과 정신력을 올려주는 깊은바다꽁치 득템
[#M_이거슨 혐짤|접기|
검은 것은 파리 되겠음;
여튼 희운각에서 언제쯤이나 갈 수 있을까 싶던 마등령까지 네시간 조금 더 걸려 도착했습니다.
전문 산악인이 아니라면 그냥 닥치고 묵묵히 걷는게 산행의 진리인가봐요.
이번 산행에서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눈앞에 보이던 미칠듯한 능선을 직접 타고 왔다고 생각하니 우왕ㅋ굳ㅋ
이제 마지막 문제가 남았습니다. 하산이지요.
제가 산을 타는 스타일상 하산길에서 급속하게 지친다는게 약점이거든요.
역시나... 급경사를 내려가면서 무릎과 발바닥에 조금씩 과부하가 걸리는 느낌이 듭니다.
왼쪽 넷째발가락쪽이 조금씩 욱신거리네요. 아놔 혹시 물집?
아니겠지 하며 내려오는데 여전히 아프네요. 물집 맞구나.
아이 부끄럽게 왠 물집이 잡혀서..ㅋ
여하간에 어찌할 도리가 없으므로 그냥 살살 가봅니다.
제게는 내려가는게 참 힘듭니다. 시간도 많이 걸리구요. 하아..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금강굴 가는 급경사 돌길이 작살이었어요. 실제로 그 바위에서 클라이밍하던 한 무리들과도 만났어요. 조낸 간지나더군요.
비선대 도착~~
결국 막판에는 천천히 걸어도 발이 아프고 빨리 걸어도 발이 아프더군요.
하지만 구보로 이동한다면 어떨까?
구!
보!
이!
동!
-_-;;
신흥사를 2km 정도 남겨놓고 구보를 실시했습니다.
정말 발에 오는 고통에는 별반 차이가 없더군요;
결국 소공원을 지나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세시가 조금 안된 시각.. 이렇게 설악산과는 안녕을 고합니다.
하산길은 9시간정도 걸렸군요. 날씨가 좋아 설악의 좆간지를 일출부터 꾸준히 볼 수 있었던 것을
무척이나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구름이 무럭무럭 자라나던 미칠듯한 구름바다와 내설악의 간지비경을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마구마구 부풀어 올라 85 D컵이 되버리는 듯 했던 1박2일이었어요. 하악하악;
그래요. 머지 않아 또 올 기회가 있겠죠. 고마워요 설악산~~~
넵. 산행얘기는 여기까지구요, 나머지는 밥먹은얘긴데 보시려면 클릭하시면 됩니다.
속초시외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강릉으로 이동했어요.
어느분께서 추천한 사천항으로 가보고 싶더라구요.
먼저 그 유명한 교동반점 짬뽕을 먹어보려고 시내로 이동했습니다.
큰길가에 있어서 어렵지 않게 찾았어요. 애매한 시간대인데도 사람이 많더라구요.
짬뽕을 시켰더니 오래지 않아 나오네요.
색깔이 거무죽죽한게 그닥 땡기진 않았어요. 면발을 휘휘 저어 빨아들이니
강렬하게 코를 압도하는.. 아아... 이거슨 바로 산초의 향기..
짬뽕나오기전에 뿌려주는 것이 후추인줄 알았는데 산초가루더군요.(이쪽용어로는 화조분)
저야 이 맵싸한 향을 좋아라 하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좀 있을것인데.. 의외의 선택이더군요.
면발은 보통, 국물도 그렇게 진하다고는 할 수 없었어요. 맵긴 확실히 맵네요.
해물이 적게 든 것은 여름이라 이해는 합니다만 왜 이 짬뽕이 지존의 반열에 거론되는지는
도저히 모르겠더군요ㅜ (돼지유슬이 들어간 것은 플러스를 주고 싶네요ㅎㅎ)
여튼 취향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냥 그랬습니다ㅋㅋ
그래서 사천항으로 가는 두시간에 한번 있다는 버스를 타려다 대충 사천이라 쓰인 버스를 탔는데
이건 사천면사무소앞에 내려주고 주문진으로 가버리더군요;
아.. 여긴 특이하게 버스방송이 지금 내릴 정거장만 말해주고 다음 정거장은 말을 안해주네요.
좀 과묵한; 방송이었던지라 내릴 타이밍 잡는데 애좀 먹었습니다;
여튼 내려서 주민분한테 사천항 어떻게 가냐고 여쭤보니 4킬로; 정도 걸어가라고 해서
논과 강둑 사이로 난 길을 터덜터덜 걸어 해질무렵에 간신히 사천항에 도착했네요.
머.. 민박을 잡고 씻고 갈아입고 추천받은 ㅈㅂ;횟집을 찾아갔어요.
우와.. 물회 마넌에 무한리필ㅋㅋㅋㅋㅋㅋㅋ
제가 가자미 세꼬시를 무지 좋아하거든요. 무한리필 해줄테다 하고 마구마구 먹었어요.
일단 회가 신선하고 쫄깃하고 맛있었어요. 해삼과 소라에서 아주 감동했네요.
제 취향에서 굳이 단점을 지적하자면 국물이 너무 시고 달았던 것 같아요. 제가 신걸 별로 안좋아해서요.. 한참을 먹다보니 신맛이 목구멍에 턱턱 걸리는게 초밥초를 마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답니다;
청하 한병을 시켜놓고 먹다보니 의외로 배가 무척 불러와서
결국엔 리필을 하지 못하고 그곳을 떠야 했습니다ㅜㅜ
머.. 그렇게 돌아와서 바닷가에서 소맥폭탄주를 말아 혼자 마시다보니
어느새 웅크리고 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다시 민박집으로 돌아와 혼절;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설사;를 하고 나서 다시 사천항으로 가서 물곰탕집을 찾았으나
우럭미역국이 눈에 들어와 그걸로 아침을 해결했어요. 의외로 살도 많고 국물이 부드럽고 좋네요.
조미료 냄새가 좀 난게 안타까웠지만 해장으로는 더할 나위가 없더군요.
만원이라는 가격이 좀 안타깝긴 했지만 서울에서 찾아먹기 힘든거니까 하고 자위행위를 합니다;
여기까지 사천해수욕장
여기까지 경포해수욕장
민박집에서 다시 짐을 꾸리고 두시간에 한번 있는 그 버스를 타고 경포로 이동합니다.
아놔.. 요즘 고딩들이 정말 과감한 노출을 하는 것 같아 눈이 참 즐거웠네요.
뭘 할까 하다 배낭을 물품보관소에 맡기고 자전거를 빌려 달려봅니다.
경포대도 가보고 선교장에도 들려봅니다.
선교장은 정말 처음에 나오는 정자와 연꽃이 가득한 호수에서 깜짝 놀랐어요.
여긴 그야말로 조선시대의 저택이더군요. 뒤로는 아름드리 노송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고
연병장처럼 드넓은 앞마당과 짜임새있는 가옥의 구조가 신기할 따름입니다.
여튼 그렇게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다시 돌아와 시내로 이동합니다.
중앙시장으로 가서 지하 어시장에서 생선들을 구경해봅니다.
제 고향이 영동선을 타고 강릉서 세시간정도 가면 있어요. 이제 그리로 갈 계획이니
뭘 살까 고민하다가 가자미가 일곱마리에 오천원, 도루묵이 거진 스무마리에 오천원이길래
그걸 사서 얼음에 재워 들고 나옵니다.
강릉역으로 이동하던 길에 메밀전병이 있길래 기차안에서 먹으려고 두줄을 싸가지고 탔어요.
메밀전병은 처음 먹어보았는데 정말 특이하네요. 얇게 부친 메밀피 속에 다진 김치와 두부를 무친것 속을 넣어 말은 것인데 무척이나 담백하고 맛있었어요. 뒤에 태백출신인 제 사수한테 물어보니 이 메밀전병은 제사때도 올라가는 음식이라고 하네요. (제사때 탕국으로 황태국이 올라간다고 하네요. 신기신기) 보통 돈없을때 막걸리와 함께 먹는 음식이 이 전병이라고 설명해주더라구요ㅎㅎ
지난번에 시골가서 담근 오디주. 벌써 맛이 들었더라ㅎㅎ
머.. 그렇게해서 시골에 갔고
어머니는 가자미 조림을 하시고 저는 도루묵 매운탕을 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말씀하셨죠. 매운탕에서는 약간의 설탕을 넣어야 맛있단다. 그리고 고추장은 넣지말거라. 국물맛이 좆구려진단다.
말씀대로 하니 담백한 국물맛의 매운탕이 탄생~ㅋㅋ
여튼 그렇게 사흘째 휴가를 보냈습니다.
6월7일 파주 통일동산에 열린 파주런마라톤대회에 다녀왔다.
누군가가 내게 간만에 용주골; 가려는 거냐며 의혹의 눈길을 주었지만 난 무시하고 떠났다;
참가종목은 10km. 첫 마라톤인데 하프뛸 수는 없잖아ㅋ
지난 봄부터 나름 열심히 준비해왔던지라 그리 겁나거나 하진 않았다.
특히 지난주 경기가 있기 며칠 전에는
차마 말로 거론할 수 없는 지옥훈련;;까지 실시했기 때문에
나름 퍼지거나 중도포기하거나 하지는 않을거라는 믿음은 있었다.
참가인원이 7천명이 넘어버려서 코스가 갑자기 변경된 탓도 있었겠지만
초반 코스가 나에게는 상당히 난코스였다. 언덕을 두어개 넘어줘야 하는 길이라서..
어쨌거나 잘 참고 페이스 조절 하면서 달렸더니
염통이 터지기 직전쯤에 무사히 골인을 했고 기록은 48분31초가 나왔더라.
로젠택배 티를 입은 분과 인천사랑마라톤 티를 입은 분과
중반이후 사실상 러닝메이트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했는데 이 결과는 다 그분들 덕분이다;
연습할때 최고기록이 54분 정도라 50분대 안으로 들어오리라고는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데
결과에 왠지 으쓱해졌음ㅋ
처음 해본 마라톤이었는데 등산이나 마라톤이나 철저히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두 운동은 유사한 점이 많은 것 같다.
하반기에도 기회될때 수도권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에 참석해보아야 겠다.
아.. 어찌되었든 상반기의 운동결과는 이걸로 만족하고
이제는 유산소운동은 좀 줄이고 근력운동에 집중해야겠다;
덧. 대회가 전반적으로 조잡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좀 시장바닥 분위기랄까;
4만원이라는 참가비에 주는건 고작 빵/우유와 팔토시와 메달이었는데 좀 부실했던듯.
아직 오지않은 경품인 츄리닝이 어떨진 모르겠지만 큰 기대는 안한다;
먹진 않았지만 경기 끝나고 주최측에서 제공한 막걸리와 두부김치는 센스작렬이었던 듯.
친구가 휴양림을 예매한 관계로 기록적인 한파 및 대설에도 불구하고 나름 수월하게 다녀온 듯 하다.
24일 밤 11시 25분, 고속버스로 대전으로 이동. 귀향길이었으나 두시간만에 수월하게 도착.
대전 고속터미널에서 걸어서 10분정도 거리에 있는 동부 시외터미널로 이동.
무주 구천동행 첫차가 7시10분임을 확인하고 근처에 있는 모 찜질방에서 대충 씻고 눈을 붙임.
찜질방에는 학생 및 가족단위의 이용객들이 많아 잠드는데 애를 먹었음.
아침에 일어나 첫차를 타고 눈을 다시 붙였다가 뜨니 이미 구천동 도착.
시간은 오전 8시 40분 정도. 밖에는 미친듯이 눈이 내리고 있었음.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인근 식당에 들어가 아침을 먹으면서 여장을 정리함.
9시 30분에 길을 나서다.
황량한 임시터미널. 매표소는 굳게 잠겨있음
좀 따뜻해 보임?
백련사에서 향적봉으로 오를 예정임
길을 떠나자!
구천동 입구에서 백련사까지 이르는 길은 잘 닦여져 있는 산책로라 할 만큼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계곡이 꽁꽁 얼어 눈에 덮힌 관계로 구천동 33경이라 불리는 많은 것들은 볼 수가 없었던 것이 참 아쉬웠지만 눈으로 뒤덮힌 계곡과 나무와 숲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되더라.
쉬지않고 슬슬 걷다보니 11시쯤 되어 어느덧 백련사에 도착했다.
백련사 오르는 계단
백련사에서 구천동을 내려다보다
냉기폭풍 작렬
대가리가 좀 크게 나온듯?;
얼굴이 빨개서 귀여움;
여하간 샘물도 뜨고 사진도 박고 하다가 정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상당히 경사가 있는 절 뒷길은 흰 눈에 덮힌 산죽들을 가르며 이어져 있었다.
계단길도 많이 나타났지만 내심 걱정했던 발의 굳은살로 인한 고통은 폭신한 눈 덕분에 거의 느낄 수가 없었다. 참 다행이었다.
달력에 보면 12월, 1월, 2월에 붙어있던 그런 풍경사진들 있잖는가,
그런 눈에 뒤덮힌 예쁜 풍경들을 내가 직접 보게 되니 감회가 남다르더라.
게다가 이런 눈보라 속에서 등산을 한다는 것 자체가 참 운치있고 좋았다.
아.. 예뻐요..
친구는 눈길에 버벅대느라 한참 뒤로 처쳐버렸고, 나역시 아이젠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미끄러운 오르막을 꾸역꾸역 비틀비틀 올라갔다.
놀라운 광경도 목격했다. 중학교 고학년이나 고등학교 1학년쯤으로 보이는 학생들 한무리가 산을 오르고 있었는데, 아무런 장비도 갖추지 않은채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서 눈길을 기다시피 하며 오르고 있었던 거다. 일부는 쇼핑백에 목도리까지 하고 올라가고 있었다;;
이미 눈길에 많이 구른 듯 온 몸은 눈투성이에... 사고라도 안난 것이 천만다행이더라.
거의 기듯이 산을 오르고 있던 한 친구에 내 스틱을 주겠다고 했는데 싫다고 하더라; 산은 언제나 준비를 철저히 하고 가야함을 이 친구들도 이젠 깨닫게 되겠지? 좋은 경험일수도 있을 거다.
여튼 향적봉 정상과 대피소로 갈라지는 막바지의 갈림길에 도착하니 한시쯤 된 듯 했다.
뒤쳐진 친구를 기다리는데 몸이 식어버려 참 춥더라;
정상에서 하산하던 한 중년의 커플은 미리 준비한 비료포대를 가방에서 꺼내어
내리막길을 타고 내려가는 액션을 보여주어 주위의 환호성을 듣기도 했다.
그리고 근 삼십분만에 친구는 지친 모습을 드러냈다.
아놔 헉헉;;
대피소로 가서 밥부터 먹자는 내 제안에 친구는 체한것 같다며 밥을 안먹겠다고 거부했다. 그래서 정상으로 고고씽~
여기서 정상, 그리고 설천봉으로 이어지던 구간은 이번 산행 중에서 가장 풍경이 아름다웠던 것 같다.
미친듯한 눈.. 눈.. 눈......
정상에 거의 다와서..
좋냐?
설천봉 가던 길
링클케어라도 받아야겠음;;
정상에 오르니 미칠듯한 바람에 손발가락이 싸그리 댕강댕강 절단될 것만 같아
채 5분도 버티지 못하고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결국 우리는 그냥 쉽게쉽게 가자고 타협을 보고 설천봉으로 이동해서 곤돌라를 타기로 합의를 보았다;
곤돌라 탑승지로 가니 직원들이 빨리 타라고 재촉을 하길래 잽싸게 탔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곤돌라는 원래 9시부터 오후 4시반까지 운행하지만 기상악화로 운행을 우리 이후로 중단했다고 했다. 돌아보면 이번 여행에서는 운이 좀 따랐던 것 같다.
곤돌라는 편도 7000원에 정상까지 오르는 시간을 무려 세시간 반 단축시켜주니 참 과학기술이란 대단;
물이 몹시 좋던 무주리조트;
여튼 팔자에 없는 곤돌라도 타보고 물좋은 무주리조트 구경도 하고 간지나는 보드솜씨도 구경하면서
핫초코로 몸을 녹이며 세시에 있다는 셔틀버스를 기다렸다.
여기서 좀 문제가 생겼는데, 무주까지 나가서 장보고 들어오자고 생각해서 한시간동안 오후 세시에 있다는 무주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렸는데, 그만 사람이 너무 많은 관계로 타지를 못하게 되어버렸다.
차라리 구천동행 셔틀을 탔으면 좋았을 것을... 무주가는 오후 여섯시 셔틀버스를 기다릴 수도 없고 해서 무작정 터덜터덜 걸어 내려왔다.
한시간여를 걸어 구천동 삼거리에 도착했다. 친구가 휴양림 가서 치킨을 먹자며 닭집에 가서 닭을 시켰더니 거기 사장님이 휴양림에 마침 배달이 있다며 태워다주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걸었더라면 족히 한시간은 걸렸을 길을 차로 이동.. 에구 사장님 감사합니다~~~
덕유산 휴양림 같은 경우는 성수기 예약 자체가 하늘의 별따기인 곳으로, 친구가 지난달 1일 오전 9시에 회사에서 잽싸게 클릭을 했었으나 계속 대기순위에 있다가 지난주에 간신히 예약이 되었다고 하니 참으로 운이 좋은 경우 되겠다.
4인실이 5만원인데, 방도 생각보다 넓고 깔끔한데다, 뜨거운 방바닥과 온수, 주방도구들이 완비되어 있으니 종일 눈밭에서 헤매다 온 우리들에게는 정말 천국과도 같은 곳이더라.
여기서 우리는 삼겹살에 술 한잔을 한 후 잠을 청했다.
두런 두런 나누는 이야기 속에 창밖으로 밤새 내리는 눈이 주는 정취는 정말 예술이라고 할 수 밖에.
아침 풍경이 참 예뻤다능
어쨌거나 눈이 그치고 밝게 해가 떠오른 아침에 이곳을 떠났고, 구천동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던 우리는 또다시 운좋게 어떤 분의 호의로 구천동까지 차량을 얻어탈 수 있었다. 에구 너무너무 감사했습니다ㅜㅜ
구천동에서 의견 차이로 친구는 대전행 버스를 타기로 했고 나는 거기서 헤어져 무주행 완행버스를 타러 갔다. 걸어가던 길에 찍은 눈꼴시린 커플의 디카질도 한번 찍어보았다.
아놔 슈ㅣ발;
머.. 가는 과정에서도 이런 저런 사연은 있었는데 생략하고..
완행버스를 타고 눈덮힌 구천동 계곡을 구불구불 내려가던 길은 정말 운치있었다.
가는 길에 나제통문이라는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의 경계였다는 터널(?)도 흘깃 볼 수 있었고,
터미널에 내려서는 읍내에 들려 ㄱㄱ식당이라는 곳에서 어죽이라는 것을 먹어보기도 했다.
여튼.. 두시 반에 남부터미널행 버스를 타고 두시간 반만에 수월하게 서울에 입성... 이번 여행은 나름 편하게 많이 보고 많이 즐기고 온 듯 하다.
반쪽짜리 산행이었다는게 좀 아쉽긴 했지만
지금도 오른쪽 무릎이 욱신거리는 걸 보니 어쩌면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
여튼 이제는 시간이 생기면 혼자라도 이렇게 산에 다녀와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해보며
여튼 알찬 설연휴 여행기는 여기까지.
Toki Asako - Play Our Love's Theme -------------------------------------------------------
뭐.. 어쨌거나 나는 다시 지리산으로 향했다. 지난 산행의 과오들을 거울삼아 차근차근 계획을 짜고 며칠간 짐을 꾸리고 향한 그곳, 지리산.. 끝나고 하는 말이지만 과오는 또다시 생겨났고 또다시 우리는 힘들어 몸부림쳤다.
<첫날>
고된 하루일과를 마치고 22시50분 용산발 구례구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영등포에서 탑승한 친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시 눈을 붙였더니 어느새 시계의 알람이 울어댄다. 피곤한 몸을 일으켜 60리터짜리 배낭을 짊어지고 역을 나선다.
구례터미널에서 등산객들로 만원이던 성삼재 가는 버스에서 내려 두시간정도 터울이 있는 6시10분에 출발하는 쌍계사행 버스를 기다린다. 이번 코스는 쌍계사-삼신봉-세석-천왕봉-중봉-치밭목-대원사 코스로 잡았다. 나름대로 첫날에 산행비중을 높게 잡고 이틑날은 자유도를 높게 두어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코스를 설정해 보았다. 물론 첫날부터 그 것은 난관에 부딪치게 되었지만...
쌍계사로 가는 길은 섬진강변의 푸르른 녹음 사이로 새하얗게 파고드는 아침햇살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화개에서 내려 지난번 혼자 지리산에 갔을때 들렸던 화개의 ㅅㅅ식당에서 친구와 참게장정식을 맛나게 먹고 버스로 쌍계사로 이동하니 여덟시 반 정도가 좀 지났던 것 같다. 밤길을 달려온 터라 몸이 좀 피곤하긴 했지만 일단 시작은 항상 용감하게 시작한다.
화개에서 올려다본 지리산
화개 설송식당. 아주머니 너무 친절하심
참게장 백반.. 좀 가격이 쎄긴 했지만 매우 맛있었음. 맛깔나는 밑반찬이 최고였다능..
절의 경내부터 시작되는 경사가 그닥 쉽지 않았다. 그동안 제대로된 등산 한번 제대로 하지 않았던 몸이 금방 사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불일평전의 휴게소에서 잠시 쉬면서 커터칼로 발바닥의 굳은살을 잘라내고 다시 출발을 한다.
산행을 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의미없이 쉬는 것인데, 이번 산행에서는 그런 실수를 많이 저질렀다. 내 친구는 느린 속도로 꾸준히 걷는 스타일로, 스피드로 승부하려는 나와는 정반대 스타일이다. 일반적으로 내가 선두에서 내달리고 친구가 따라오면 내가 조금 더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진행하던 식이었는데 이번 산행에서는 상불재 오르막에서 무리하게 너덜길을 오르다 오른쪽 오금이 찢어질 듯 한 통증을 느끼게 되면서 그 스피드가 죽어버리게 되면서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농군의 아들
불일폭포
다시 돌아가서, 불일폭포를 구경하고 돌아오니 이미 출발한지 한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상황이었고, 상불재로 가는 무지막지한 자갈언덕코스는 후덥지근한 계곡의 습기와 어울려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쉬는 것 자체가 시간을 지연시키는 고통일 뿐이던 그길을 그저 어거지로 오르다 급속한 허기를 느끼면서 쌍계사 입구에서 점심을 사온다는 것을 깜빡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나름대로 알차게 행동식들을 챙겨온 친구에 비해 나는 쌀, 삼겹살, 김치, 각종야채 등등 조리해서 먹어야 하는 음식만 잔뜩 있었기에 무게를 줄이려 갖은 노력을 했었고, (배낭 무게는 출발전 저울로 재보니 18kg 정도) 그러다보니 정작 산행중 허기를 해결할 수 있는 초코바와 사탕등은 그리 여유롭지 않은 분량이었다. 치명적인 실수였다. 게다가 이 코스는 식수도 거의 막바지에서나 만날 수 있고, 세석까지 8~10시간이 걸린다는 남부능선코스 아니던가. 이래저래 정신적으로 상당한 타격을 받았던 것 같다.
4시간이 넘게 걸려 상불재 고개마루에 올랐다. 시간이 엄청나게 지연되었다. 계획이 점점 틀어지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같이 점심밥을 먹자고 권하던 하산하던 이들의 청을 사양하고 우리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중간에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끝없이 이어진 능선을 바라보며 한숨을 짓다가 점심 대신 친구가 건네준 사과와 각종 초코바들을 뱃속에 때려넣고 휴식을 취했다.
일몰시간은 19시 30분 정도로 생각한다면, 적어도 다섯시간 정도 내로 세석까지 도착해야 하겠건만, 이미 쌍계사-상불재 코스에서 기력을 다 소진해버리고 밥도 제대로 먹지못한 우리는 그야말로 개막장 노숙자가 될 공산이 매우 컸다.
시작부터 이어진 산죽길은 능선 특유의 오르락 내리락 하는 길 내내 우리의 발길을 좁혀들어왔다. 왔던 길 만큼 힘들지는 않았지만 그 시야를 완전히 막아버려 산행 내내 답답함을 가중시켰고 쉽게 지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등허리가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한참을 걸어가다 이정표를 바라보는 순간 '아악! 겨우 700미터 왔어! 1킬로미터는 온줄 알았는데 ㅠㅠ' 하며 장탄식을 거듭하곤 했었다.
오금이 찢어질 듯 아파와 이를 악물고 걸어야 했다. 아래로 간간이 보이는 청학동과 거림쪽 길을 보면 '아놔 저기서 출발했으면 이 고생은 안했을텐데' 라는 뒤늦은 후회가 들었지만 이미 서쪽으로 한참이나 기운 햇살은 우리에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삼신봉에 닿는 길은 어찌나 멀기만 했는지... 처음 대나무숲 정글을 벗어나 올랐던 곳은 쇠통바위였고, 거기서 또다시 미친듯이 달려 올랐던 곳은 삼신산정(내삼신봉)이었다.
헉헉거리며 다음 봉우리에 다다랐을때, 슬리퍼를 신고 올라온 왠 괴인들이 우리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건네며 웃고 가던 그곳이 바로 외삼신봉이었다. 그들은 신선이었을까.. 아니면 시정잡배들이었을까.. 골프웨어에 슬리퍼를 착용하고 삼신봉에 오른 40대 후반의 아저씨들의 포스에 우린 완전히 기가 죽고 말았다.
지도상으로 보면 그 곳은 우리 첫날 코스인 남부능선의 딱 절반지점이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남은 시간은 해지기 전까지 서너시간.. 아놔아놔..
쇠통바위에서
청학동 방향
당시 내 심정을 정확히 보여주는 사진
내삼신봉에서
이후 나는 선두를 포기하고 아픈 다리를 스틱에 의지하며 친구의 걸음을 뒤따랐다. 스프레이 파스를 쉴 때마다 뿌려봐도 그 고통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기갈이 엄습할때면 함께 파김치가 된 몸이 '이제 그만 가라'며 속삭여왔다. 휴.. 등산한지 열흘이 지나 올리는 글이라지만 그때의 기억은 여전히 끔찍하기만 하다.
길에서 버려진 물병 하나를 줏어 가방에 챙겨넣고 갈림길에서 40m 거리에 있다던 한벗샘에서 물을 채워넣고 마실 때의 기분은 참... 그 때도 이미 퍼지기 일보직전이었던 것 같다.
해가 떨어지고 세석대피소까지의 거리가 3~4km 남짓 남았을 때부터 이미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계에 도달했던 것 같다.
야간산행은 국립공원에서는 불법행위로 적발시 처벌받게 되어있다. 그래도 무슨 깡이었던지 우리는 꾸역꾸역 비틀비틀 앞을 향해 내걸었고 한걸음 한걸음 오르막 내리막에서 비명에 가까운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감겨오는 눈을 억지로 부릅뜨면서 앞을 향했다.
간신히 걸어가는 내게 후레쉬를 비추어주는 친구가 너무도 고마웠고 그가 건네주는 물병의 물은 천국의 성수와도 같았다. 아이씨이.. 등산가서 이렇게 망가져 본 적도 없었는데 흑흑...
깊이 들이마신 담배연기가 몸의 긴장을 풀어주면서 이쯤에서 그냥 자빠져 잤으면 하는 욕구만을 불러왔다. 고파오는 배는 사탕 여러알을 으적으적 씹어먹으며 달래본다.
친구가 내 모습이 안타까웠던지 비박을 제안해왔다. 나는 친구에게 미안해 가는데 까지 가보자고 한다.
아홉시가 넘었다. 길은 고도가 높아질 수록 더욱 어려워지고 몸은 더더욱 말을 듣지 않았다.
조금 더 가면 음양수. 지도상에서는 세석에서 한시간 거리이니 그 곳에서 식수도 보충하고 비박을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야말로 어거지로 걷고 또 걸어 30분만에 갈림길을 만났다. 그 곳은 대성리(의신)코스와 만나는 삼거리였다. 그곳에 행여나 음양수가 있는지 살펴보았지만 물론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거기서 20분 정도 더 올라가서야 음양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몸상태가 영 아닌지라 도저히 더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친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며 그 곳에서 비박을 준비했다. 완전히 지쳐버린 몸을 겨우 달래 배낭을 열어 침구류들을 꺼냈다. 자기전 먹었던 용안(람부탄) 통조림, 어찌나 달고 맛있던지... 휴우...
오기 전 인터넷에서 질렀던 ㄷㄴ침낭커버.. 따뜻했다. 대만족이다. 담배를 한대 피우고 눈을 붙였다. 시간은 열시 십분.. 지쳐버린 몸은 이미 정신줄을 놓아버린 지 오래...
이렇게 내 생애 최초의 비박을 하게 되었다.
새벽 한시쯤 몸이 따끔거릴 정도로 강력한 빗방울을 느꼈다. 그랬다. 미친듯 후둑거리며 비가 오고 있었다. 금방 그칠 비가 아니었다. 입에서 절로 욕이 나왔다. 그러나.. 지금 일어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뭐가 있을까...
배낭도 방수커버를 씌워놓은 상태였고 등산화도 비닐봉지에 넣어두었으니 큰 걱정은 없다. 조금 축축하긴 하지만 침낭에 비가 안새니 다시 잠을 청해야지. 괜히 웃음이 난다. 자자.
<둘쨋날>
아침 일곱시, 비는 여전히 오고 있었고 그래도 우리는 갈길을 가야만 했다. 침낭커버의 위력에 탄복했던 나와 달리 친구는 김장비니루와 판초우의에 의지해야 했기에 그 피해 정도가 상당한 듯 했다. 침낭은 상당히 많이 젖은 듯 했다. 어쨌거나 비를 맞아가며 짐을 챙겨보았다. 여전히 오금은 아프지만 별 방법은 없구나. 그대로 나아가는 수 밖에.
사진을 보면 내삼신봉부터 비박하던 삼거리까지의 사진은 없다는 것이 느껴진다. 당연하다. 걷기도 힘든데 사진 찍을 여유가 어디에 있었을까.
출발후 그리 오래지 않아 음양수에 도착했다. 물이끼가 잔뜩 낀 것이 그리 깨끗해 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친구는 그 물에 세수를 하면서 깔끔을 떨었다. 물이끼가 좀더 추가되겠군. 매너없는 놈..
비와 자욱한 안개가 우리의 앞길을 저주하는 듯 했다. 그 곳에서 잠시 체류하다가 다시 우리는 세석대피소로 발걸음을 옮긴다. 문득 든 생각은 어제 무리하게 올라갔더라면 정말 뭔 일이 났을지도 모르겠다는 것..
거림방향 갈림길을 만나면서 이제 등산객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세석평전의 풀숲길을 거쳐 산을 오르다 보니 출발한지 한시간이 한참 넘은 시각, 우리는 드디어 어제 잠을 잤어야 했던 세석대피소에 도착했다.
정말 살 것 같다. 마음같아선 여기서 한숨 푹 자고 바로 하산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있나.. 식수를 보충하고 밥을 지어먹고 짐도 정리하고 했더니 어느새 11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친구와 우리의 미래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다. 친구는 원래 계획대로 천왕봉을 들러 치밭목에서 2박을 하자고 했고 나는 장터목에서 백무동으로 하산해서 민박에서 2박을 하자고 했다.
결국 절충안으로 천왕봉을 찍고야 말겠다는 친구의 주장을 수용하여 배낭을 장터목에 벗어놓고 천왕봉을 다녀온 뒤 백무동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식량위기에 처한 것과 최악의 몸상태 때문에 2박은 힘들것 같았기 때문에.
다시 우리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부터는 주능선이다.
이름모를 야생화들이 가득한 세석평전
연하봉쯤인듯
세석에서 장터목 가는 길은 전에도 그랬듯 그리 호락호락 하진 않았지만 느낌상엔 비포장도로에서 고속도로로 옮겨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도 다행스럽게도 오른쪽 오금의 고통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이 오늘의 산행이 무사히 끝날 수 있게 되리라는 믿음을 주었다.
그렇게 절뚝거리면서도 무사히 두시간 안쪽으로 장터목에 도착하였고 가방을 벗어던지고 배낭머리를 떼어 걸머지고 천왕봉으로 향했다. 친구는 자신이 주장했던 코스대로 가지 않음에 아쉬워 했지만 제석봉 가던 초입의 오르막을 만나면서 바로 그의 주장을 거둬들였다.
이슬비 가득한 하늘을 따라 우리는 어쨌거나 천왕봉에 올랐고 기념사진은 꼭 박아야겠다는 그에게 사진을 박아주었다. 앉아서 세석에서 만들었던 주먹밥을 먹고 있자니 몸이 떨려오는 통에 다시 하산길을 재촉했다. 사실 백무동 내려갈 시간도 빠듯했다. 어제처럼 해없는 산길을 걷고싶지는 않았기에.
천왕봉 가던 길
정상에서
내려와 습하고 질척거리는 하산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가던 길 중간에 등산객들이 숲에 짱박아놓은 쓰레기봉지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난 덜렁덜렁 귀찮아도 배낭에 잘도 매달고 내려가는데 말이지..
하산길에 어젯밤 미친듯 내리던 비가 언제였냐는듯 반짝반짝 해가 떴다. 아... 좋다. 기념으로 사진을 박아보았다. 아유 예뻐요~
잘 나왔다;
산적ㅅㅂ;
내려가는 길 역시 무지막지한 자갈밭길이었다. 특히 참샘까지 이어지는 돌계단길은 압권이었다. 산은 내려오는 것이 더 힘들다더니 그 말을 실감하게했다. 발바닥에서 불이나기 시작했다. 참샘에서 세수도 하고 물도 한잔 마시며 쉬는데 배낭멜빵에서는 땀이 쩔어서 쉬어버린 냄새가 난다. 작업 끝나고 내무실로 복귀한 이등병의 냄새에 잠시 머리가 아찔해져왔다.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여전히 경사는 심하고 자갈은 많고 친구는 발꿈치가 까져 절뚝거리고 하늘에선 다시 빗방울이 떨어지고 계곡의 공기는 후덥지근하니 습하고...
어서 문명세계로 도착하고 싶은 마음 뿐...
백무동 하산길.. 거의 다 내려왔구나
그렇게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해가 떨어지기 전에 무사히 하산할 수 있었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씩 웃으며 수고했다 하는데 그 기분이란...
하산하며 동아리 후배의 이모님이 운영하신다는 ㄴㅌㄴㅁ집에 가서 후배 이름을 댔더니 웃으시며 술값을 깎아주시더라. 인심도 좋고 맛도 좋고... 실은 이곳은 등산객들에게는 꽤 유명한 곳이었다능 닭백숙에 동동주를 한잔 걸치고 방에 들어가 씻고 나니 친구는 이미 정신줄을 놓기 직전이다. 아.. 문명세계가 이토록 좋을줄이야.
우린 술을 꺼내 걸치는둥 마는둥 하며 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어제는 열세시간, 오늘은 열한시간을 걸었다. 지칠대로 지친 몸은 잠을 너무도 원하고 있었다. 이제 내 몸에서도 이등병의 향기가 사라지고 보송보송한 느낌에 너무도 기분이 좋더라. 행복하다 썅.
하산후의 신발 꼬라지
말이 등산이었지 이틀간의 지옥체험이었다.
글을 쓰는 지금은 벌써 보름이 훨씬 지났다. 일에 지쳐 이렇게 인터넷에 글을 올리기가 그닥 여유롭지가 않더라.
그때 그 순간의 감흥을 글로 사진으로 옮길수는 결코 없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언제나 그랬듯 좋았던 기억이 먼저 앞서게 된다.
장쾌한 기상으로 뻗어나간 능선과 골짜기들 능선을 넘어서며 비를 흩뿌리던 회색 구름의 무리 노랗고 분홍빛의 꽃무리가 반기던 세석평전의 아름다움 그리고 무엇보다 장대비를 맞으며 눈을 붙여야 했던 첫 비박의 경험까지..
다음에는 체력과 물과 식량과 무엇보다 시간안배를 철저히 해서 언제가 될지 기약은 없지만 다시 한번 지리산을 찾으련다. 어쨌거나 이번에도 잡스런 우리들의 산행을 기꺼이 받아주어 감사했어요.
이번의 교훈: 1. 여름산행에서 식수는 충분히. 물통 1리터짜리만 달랑 갖고갔다가 개고생함. 과일이나 오이가 아주 좋았다능 2. 밥과 행동식도 항상 여유있게. 배고픈데 사탕먹어야 하는 상황오면 대략 난감함 3. 산행 코스는 합리적으로. 인터넷에서 10시간이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12시간 걷고 못도착해 비박했음; 결론적으로 자신의 체력과 산행능력, 등산경험을 고려해서 무리하지 않게 짜는 것이 핵심 4. 장비에는 투자를 아끼지 말자. 비박할때 침낭커버 매우 유용했음. 김장비닐 덮고잔 친구 캐안습; 5. 의약품 및 응급처치할 약품은 항상 지참할 것. 오금 아플때 스프레이형 파스와 압박붕대덕을 좀 봤다능.
아침에 모닝콜을 듣고도 피곤해서; 제대로 일어날 수 없었다.
여덟시가 넘어 간신히 일어나 멍하니 있다가 시계를 보고 한숨을 푹 쉬었다.
이시간이면 예약해둔 연하천 대피소까지는 죽었다 깨도 못가겠는데...
어쨌거나 일은 벌어진거니 느긋하게 생각하자며
온수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섰다.
버스정류장에서 화엄사행 버스를 탔다.
화엄사 입구에서 버스에서 내려서자 급한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요 근처에 대통밥 정식이 유명하다던데..
휴; 오늘은 형이 맘이 좀 급하거덩?
계곡길을 따라 화엄사까지 올라가는 2차선 도로는
긴긴세월 수많은 관광객들을 받아낸 포스를 보여주듯
화엄사 앞까지 깔끔하게 잘 정비되어 있었다.
화엄사를 급하게 한번 둘러보고
화엄사내 해우소에서 급하게 싼; 후
입에 대충 먹을 것을 쑤셔박고 출동준비 완료.
화엄사 대웅전
지리산 종주는 지난 여름 친구와 처음으로 도전했다가
몰아치던 폭우때문에 실패하고 애꿎은 남원으로 내려가
춘향 테마파크;에서 커플들을 쳐다보며 시간을 보낸 쓰라린; 경험이 있었다.
지금은 겨울, 그리고 혼자이기에 더욱 안전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
처먹을 식량도 넉넉히 샀고... 그런데 배낭이 좀 무겁긴 하다..
일단 최대한 빨리 노고단까지 올라가보자.
지도상으로 보면 화엄사에서 노고단 가는 길은 '코재'라 불리는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4시간 거리라고 표시되어 있구나. 일단 가보자고.
문제는 어젯밤에 한 캐막장짓 덕분인가,
느낌상인지 실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리에 힘이 제대로 안들어갔다;
게다가 지난 사흘을 메고다니던 배낭무게에 익숙해져서인지
쌀과 라면을 더 쳐넣은 이번 배낭이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실제로 서울 도착해서 사우나에서 무게를 달아보니 28kg이더라)
본격적으로 오른지 한시간도 안되어 속에서 불이 나듯 더워져
오리털 패딩은 가방속으로 바로 쳐넣어졌다.
(다음부터 이건 이틀밤 내내 베개로 사용되었다;)
다른 말은 필요없고... 존내 힘들었다.
그래도 주말마다 등산을 하면서 나름 수련을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마에서 연신 구슬땀이 흐르고
거친 숨소리가 하악거리며 쏟아져나왔다.
아놔... 뭐야 이거 장난이 아니잖아...
역시 민족의 영산은 시작부터 내게 시련을 안겨주는구나..
원래 계획은 50분 걷고 10분간 쉬는 정통 군바리 행군으로 잡았으나,
실제로는 30분 걷고 10분 쉬는, 체력 깎아먹기 딱 좋은 모습으로 바뀌고 말았다.
지난 사흘동안 잘먹고 잘논 대가를 오늘 치르는 건가... 하악하악;;
간신히 넘어온 코재에서
결국 정말 지옥같았던 코재를 넘어 노고단 가는 도로로 올라선 것은
버스에서 내려 출발한 지 네시간 하고도 30분이 지난 상황이었다.
이 꼴을 자초한 내 자신에 대한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고 올라와
훨씬 걷기 편해진 길을 터덜터덜 숨을 고르며 따라 오르니
어느덧 노고단 대피소가 눈에 들어왔다.
다섯시간 걸렸다. 한시간을 더 까먹었구나.
시계를 보니 세시간 후면 해가 떨어질 것 같은데
초행길인 연하천 대피소까지 가는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일단 밥부터 해먹자. 먹는게 남는거다.
취사장에 들어가 밥을 하고 뒤이어 라면을 끓인다.
라면 면가락을 빨아들이며 버너에 올려놓은 밥에 뜸이 다 들기를 기다린다.
맛있다. 맛있어.
밥이 약간 설익긴 했지만
지난 사흘동안 먹었던 그 어떤 밥보다 맛있다.
눈물이 나려고 한다 시발...ㅠ
대피소 직원에게 얘기해서 1박을 하기로 하고 대피소에 짐을 풀었다.
배낭에서 침낭과 매트리스를 꺼내 자리에다 깔아놓고 낙조를 보러 노고단 정상으로 향한다.
잔뜩 낀 구름에도 불구하고 싸이;에 간지나게 사진을 올려보려 똑딱이를 들고 몇 방 박고 있노라니
이놈의 산은 지지리도 스케일이 크구나.. 정말로 웅장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람들이 이 곳을 왜 어머니의 품속과 같다고 묘사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오늘은 비록 힘들었지만 내일은 적응이 되어서 좀 나을거야.. 그치??
맘이 좀 안정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노고단에서 전후좌우로 찍은 사진들
어린 초등학생 아들래미를 데리고 산행중인 아저씨와 대피소에서 잠시 얘기를 나누다
'OO야, 우리 내일 내려가면 맛있는거 먹자' 하던 아저씨의 말에
나도 모르게 빙긋 미소를 짓게 되었다.
대피소내 숙소는 예상외로 따뜻했고 사람도 거의 없었다.
정말 피곤한 하루였다. 누우면 바로 잠이 올 것 같았다.
목포에서 산 책을 오늘밤 읽는다는건 무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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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째 아침
밤새 부시럭거리는 소리와 늦은 밤 도착한 산꾼들의 얘기소리에 잠이 깊이 들지 못하다가
문득 눈을 떠보니 새벽 네시가 채 안된 시간이었다. 정신이 번쩍 든다.
그래, 것보라구. 딸;안치니까 이렇게 일찍 일어날 수 있는 것을;;
갑자기 내 자신이 으쓱해진다-_-;;
오늘은 한번 새벽같이 출발해보자.
짐을 챙기고 취사장에서 밥을 한다.
벌써 성삼재쪽에서 넘어온 양반들이 라면을 분주히 끓여잡숫고 있다.
신라면인듯 한 칼칼한 라면냄새가 코를 찌르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밥이 좋다. 조선사람은 밥심이라는데..
즉석국에 두공기는 족히 될 것 같은 밥을 말아먹고
숭늉까지 끓여 보온병에 넣고 짐을 정리하고 나니 다섯시 반...
기온은 영하 15도 정도였는데 그닥 춥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가보자. 일찍이 가야 오늘중으로 장터목까지 갈 수 있지.
후레쉬를 켜고 밤길을 조심조심 내걸어본다.
연말에 눈이 많이와서 입산이 통제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눈이 꽁꽁 얼어붙어 빙판이로구나.
스패츠는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도로 집어넣고 아이젠만 끼고 앞으로 나간다.
기분좋다. 새벽산행은 이런 묘한 쾌감이 있다.
해뜨기 전의 어둑어둑한 길을 걷는 그 느낌은 청소부 김씨;가 아니더라도
새벽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 묘한 기분을 한번쯤씩은 느껴봤을 듯 하다.
노고단에서 연하천대피소로 가는 길은 지루하게 이어진 능선을 타는 코스였다.
남쪽사면에서는 눈이 좀 녹아있다가 북쪽사면에서는 다시 빙판을 만나는식의,
하지만 능선을 타는 것이라 어제에 비하면 애들 장난이었다.
내가 알고있는 산에서 빨리 움직이는 방법은 따로 없는 것 같다.
굳이 꼽자면 바로 페이스 조절 뿐.
허본좌처럼 축지법으로 산을 오르는 분도 물론 계실 수 있겠지만
산을 자주 타 온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두다리 달린 성인남녀의 속도에는 대부분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차이를 낼 수 있는 이유들을 꼽아보자면
남들이 쉴 때에도 지치지 않을 만한 선에서 계속 걸어가는 것,
쉴 때도 물 한모금 마시고 숨만 고를 정도로 시간을 짧게 두는 것,
그리고 오르막을 오를 때, 느리더라도 내 페이스에 맞춰 쉬지 않고 꾸준히 오르는 것 정도일까?
일단은 그렇게 마음먹고 걷다보니 동쪽이 점점 밝아져 왔다.
아마도 노루목쯤이 아니었나 싶다.
쪼꼬바를 입에 조낸 쳐넣고 숭늉을 벌컥벌컥 마시고 닥치고 전진..
둘째날 맞이한 일출
연하천 산장에 도착하니 출발한지 네시간이 지났다.
담배도 한 대 피고 이것 저것 줏어먹고 나니 몸을 식히기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시동꺼지기 전에 다시 출발해보자.
가끔씩 산을 가다가 약간의 경쟁의식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앞사람을 따라잡게 되거나, 혹은 뒷사람에게 추월당할 때가 바로 그 때인 것 같다.
그럴때면 괜히 무리하게 속도를 내서 가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거 참 위험한 짓인데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아직 내가 많이 소인배인 관계로 자꾸 그짓을 자행하게 된다.
물론 돈많은 일부 아저씨들은 등산보다는 잿밥에,
곧 아이템; 맞추는 것에 경쟁의식을 느끼는 이상한 분들도 꽤 되는 듯 하긴 하다.
아이템 말이 나와서 말인데
그레고리 배낭, 마운틴하드웨어/아크테릭스 의류, 잠발란 등산화 등등으로
풀셋을 맞추면 200만원은 우습게 넘어가더라.
전문적으로 산을 타는 양반들이 아닌 다음에야 돈지랄일 뿐인데..
살 디룩디룩 쪄서 산은 더럽게 못타면서
장비는 조낸 비싼걸로 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때마다
나는 열폭한다; 흑ㅠ
여튼 그건 그렇고 연하천을 떠나면서 나보다 5분정도 먼저 출발한
내 또래로 보이는 젊은이;가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오던 페이스대로 최대한 빨리 벽소령으로 이동해야만
후딱 점심을 해먹고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었기에
아까 오던 속도대로 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참을 가다보니 그 젊은이가 무례하게도;
한손에는 스틱을, 한손에는 전화기를 들고 팔자걸음을 걸으며
도로교통법 위반을 하고 있던 것 아니겠는가.
나는 '먼저 지나가겠습니다' 하고 슥 하고 그를 스쳐지나갔다.
한참을 가고 있었을까.. 뒤에서 뽀득뽀득뽀득..
아이젠 눈씹어먹는 소리가 빠르게 들려왔다.
흘깃 뒤를 돌아보니 그 젊은이가 갑자기 폭주를 했는지
조낸 빠른 속도로 내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아놔 색히.. 내가 너보다 먼저 가서 기분나쁘냐 ㅋㅋ'
이런 찌질한 생각과 함께 나도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근데 그 젊은이는 예상외로 뒤쳐지지 않고 여전히 그 속도로 따라오는 것이었다.
좀 짜증이 나면서 앞서 말한 경쟁의식이 솟구쳤다.
2시간 후면 벽소령이니까 두시간만 달려보자 시바..
페이스 조절이고 나발이고 다 무시하고 난 그 젊은이와 거리를 벌리려고
오르막을 씩씩거리며 오르고 내리막은 거의 뛰다시피하며 미끄러져 내려갔다.
뽁뽁뽁ㄱ복뽁뽁뽀각뽀각....
두시간 내내 아이젠이 눈밭에 박히는 소리만 요란하게 들려왔고
나도 살짝 미쳤었는지 귓가에서 들려오는 아이젠 소리가 멀어질때까지
정신없이 미친듯이 내걸었다.
한계에 달해온다고 생각될 즈음.. 벽소령 대피소가 보였다.
배낭을 벗어던지고 거친 숨을 고르면서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두대 빨았다;
담배를 다 피울때까지 아직 그 젊은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이스...
어쨌거나 심호흡을 하면서 이 엄청난 찌질함을 가라앉히고
취사장에 가서 점심밥을 하기 시작했다.
귀찮아도 밥을, 그것도 햇반보다는 직접 내가 한 밥을 먹으련다.
쌀을 올려 놓고 밖으로 나와 뭉친 다리를 풀고 있을 무렵, 나는 문득 보았다.
그 청년은 벽소령대피소를 그대로 지나쳐
아까의 그 속도로 세석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던 것을.
휴.. 무섭다 저사람;;
계속 그짓거리 했으면 나 아마도 길바닥에서 퍼져있었을거야..
님 좀 짱인 듯;
노릇노릇 맛있게 눌은밥을 위장에 가득 채우고 다시 장비를 추스려 본다.
예순은 족히 넘어보이는 노부부가 조심해서 산행 잘하라고 인사를 건넨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어르신들도 즐거운 산행하십시오.
발걸음이 아까와 같이 가볍진 않지만
밥먹는다고 좀 쉬었더니 왠만큼은 회복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벽소령에서 세석 사이의 구간은 세시간 정도의 코스.
정신나간 짓거리로 체력을 까먹어버린 내게는 조금은 힘든 코스였다.
특히 선비샘부터 세석대피소 사이의 코스는
아까 왜 그짓거리를 해서 힘을 뺐을까 하는 후회를 하게 만든 구간이었지만,
더불어 그만큼 충분한 시야가 확보되어 멋진 경관을 볼 수 있었던 아름다운 길이기도 했다.
선비샘에서
봉우리에서 내려본 지리산의 아름다움..
특히 파이처럼 겹겹이 둘러싸인 지리산 남쪽의 산자락 위로 흰 안개가 피어오르던 모습은
마치 환타지 소설속에서나 등장할 듯한 장면 이었다.
그랬다. 힘들고 고생하는 만큼 더 좋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산에서 배우는 정직함이 아닐까.
이제는 쉴 때 쉬면서 체력안배를 하면서 가자.
힘이 조금씩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차근차근 봉우리 세개를 힘겹게 오르락 내리락 넘어가다가
영신봉 하산길에서 눈아래로 들어온
새하얗게 눈으로 덮힌 세석대피소와 맞은편 촛대봉의 모습은
알프스 어딘가를 연상시킬 만큼의 예쁜 경관이었다.
너무 아름다운 경관에 반해 사진을 몇 장 박았다.
여기에 뽀샵질좀 하면 된장필좀 낼 수 있을까나?
세석산장과 촛대봉
세석에서 두시간만 더 가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딱 열시간 걸었구나.
다리는 그리 아픈지 모르겠는데 오른쪽 어깨가 상당히 아파온다.
짐이 한쪽으로 쏠린건가... 모르겠다. 귀찮다. 좀만 참지 뭐. 가자고..
세석에서 장터목 구간 역시 앞서 벽소령-세석 구간 만큼이나
볼 것이 많고 점점 높아지는 고도만큼이나 힘도 많이 드는 길이었다.
그래도 능선타는게 골짜기 타는 것 보다는 백 배 낫지.
힘들때면 어제를 생각해... 어제...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구...'(양희은의 '봉우리' 중에서)
오후 5시 30분, 정확히 12시간만에
출발지인 노고단에서 목적지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했다.
지리산 무박당일종주를 해내는 대인배들도 계시다지만
초행길인 내게는 나름 힘든 하루였다고 생각된다.
제대 이후로 12시간을 이렇게 내리 걸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아직까지는 쓸만하구나 ㅋㅋ 하며 흐뭇해 해본다.
예약을 확인하고 자리를 배정받고서 취사장으로 향했다.
시끌벅적하게 고기를 구워먹는 아저씨 아줌마들로 소란스럽던 취사장을 벗어나
매점에서 산 황도 통조림을 뜯어 소주와 함께 마시며 하루를 돌아본다.
오늘 수고했다 하윤아.
사실상 등산은 오늘로 끝난거야.
정말 수고 많았어. 정말로...
차가운 소주가 뱃속으로 들어오자
달군 바늘같은 취기가 번개처럼 등뼈를 타고 솟구쳐 오른다.
취한다...
내일이면 집에 갈 수 있으려나... 후후...
갑자기 집생각이 문득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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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6일째 아침.
장터목은 천왕봉 일출에 특화된 대피소다.
시간이 되니 알아서 불을 켜고 방송을 해준다.
나를 포함해서 개떼처럼 많은 인간들이 부시시 일어나
어제 먹고 떠들던 기운들은 다들 어디로 갔는지
지쳐보이는 모습으로 산에 오를 채비를 하기 시작한다.
몸이 영 좋지가 않다.
황도에다 쳐마셨던 소주 때문인지
밤에 속이 쓰려 잠을 제대로 자질 못했다.
다행히 챙겨왔던 겔포스 덕분에 대충 넘어갈 수 있었지만
오늘 하루가 또 걱정이구나.
천왕봉 가는 길은 마지막 코스라 그런지 숨이 많이 차온다.
아직은 깜깜한 시간이라 언덕으로 발을 내딛는 것이 쉽지가 않다.
한시간을 헐떡거리며 어렵게 정상에 올라
아직은 어슴푸레하기만한 일출을 기다려 본다.
바위 위로 떼지어 몰려 앉은 물개들처럼
꽤 많은 이들이 떠오르는 태양을 보려 동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사람들마다 떠오르는 일출을 보면서
가슴속 저마다의 수많은 소원들을 이야기 하겠지?
나는 지금 다리도 속도 시원치 않으니
무사히 안뒈지고 내려갈 수 있게 해주세요 라고 빌어야겠다.
내려가다 뒈져서 불효할 필요는 없잖아.
남들보다 조금 일찍 내려섰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던 지리산 일출이었기에
역시 해가 안떠오를 것은 뻔했고
빙판에 급경사라는게 뻔히 보이는 하산길을 수월하게 내려가려면
남들보다 조금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휴...
정말 매력없다. 중산리 코스.
바위와 급경사의 반복...
볼 것도 전혀 없고...
내가 비록 내려가기에 망정이지
이렇게 재미없고 험한 길로는 절대 안올라올거야.
무슨 지리산 단기속성코스도 아니고
이러다 무릎 나가기 딱 좋겠다.
혼자서 시큰거리는 무릎에 투덜투덜거리며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인사도 하며
어느새 중산리 버스정류장에 내려와 보니 10시 45분. 세시간 정도 걸렸구나.
진주로 가는 버스가 11시에 있구나. 진주에서 서울로 가야겠다.
하여간에 요번 여행은 타이밍 하나는 기가 막혀요.
어쨌거나 2박3일간 나를 받아준 고맙고도 징했던 지리산과의 인연이구나.
다음 계절쯤에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화개의 벚꽃길을 걸어보고도 싶고
쌍계사로 해서 세석을 넘어 백무동으로 가보고도 싶은데...
내 처지에 조금은 무리한 바람이겠지? 안녕...
마지막 체류지 진주에서는
히딩크감독;이 다녀갔다는 비빔밥집에서 비빔밥을 먹었다.
국으로 선지국이, 비빔밥 고명으로 육회를 올렸다는게 특이했는데
나름대로 전주가 아니라 진주에서 요런 비빔밥을 먹게 되서 감회가 새로웠다.
큰 맛은... 잘 모르겠다.
뭐, 엿새간의 여행에서 가장 맛있었던 밥은
넷째날 노고단 대피소에서 해먹었던 약간 설익은 그 고두밥이었으니까.
...
다녀온지 이제 나흘이 지났을 뿐인데
지난 일주일은 벌써 지난 과거의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역시 현실은 얄짤없다.
내가 정말 벌교에서 꼬막정식 2인분을 개돼지처럼 혼자 다 처먹고 비틀거렸었는지,
혹은 세석 가던 길에 그 끝없는 계단을 부여잡고 거친 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었는지
벌써 가물가물 한다는게 너무 아쉽고 속상하다.
약발이 오래갈 줄 알았는데
내겐 겨우 사흘짜리였다니 한심하다는 생각만 가득하지만
다만 머릿속은 많이 깨끗해졌고 체력은 한층 강화된 것 같아
그나마 이걸로 다행으로 생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