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 내려가던 길에서 바라본 화악리 전경


2월의 첫날, 쉬는날이었던지라 가평의 화악산에 다녀왔다.

산행의 즐거움을 알게 된지도 어느덧 5년차에 접어들었는데
이번 산행은 반성할 점들을 너무도 많이 남긴 좆막장 산행이었기에
기록을 남겨 두고두고 뒷날 산행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 같아
이렇게 나름 정성껏 포스팅 해본다.

들어가자.
(아, 블로그스킨땜에 사진이 다 안보일 수 있는데 그때는 사진을 클릭하면 사진이 커*-_-*짐;;)




교훈1: 계획을 세웠으면 시간부터 철저히 지키삼

요즘 산행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너무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지도를 비롯하여 교통편과 숙박시설 등은 굳이 인터넷정보검색사2급;;이 아니라도 충분히 얻을 수 있다. 
나처럼 매번 독고다이로 산행하는 사람들에게는(직무특성상 같이 갈 사람이 없다ㅠ) 얼마나 좋은 일인가.

여튼 그렇게 난 인터넷을 통해 시간대를 확인했고
정상적인; 화악산 산행을 위해서는 청량리발 7시 2분 무궁화호를 타고(내년에 경춘선이 전철화되면 이것도 옛날얘기가 되겠지만)
가평에 8시 22분에 도착한 다음 터미널에서 화악리 가는 8시 35분 시내버스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9시 정각에 출발하는 용수동행 첫차를 타서 관청리쪽으로 오르던가 하는 두가지 코스가 일반적이라고 들었다.

여튼 나는 관청리쪽 등반을 생각하고 잠을 청했고
다음날 아침 온수샤워를 여유롭게 즐긴 후 슬슬 출발하려다가...

문득 지도와 시간표를 출력하지 않은 것을 깨닫고는
컴퓨터를 켜고 프린터를 연결하고 인터넷을 뒤져 그림파일을 찾는 등의 난데없는 삽질을 하는 바람에 시간을 꽤나 많이 까먹었다.
전날 미리 해두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을..
결국 간발의 차이로 기차를 놓치고 말았다ㅠ 

50분 후에 출발하는 다음 열차를 타게 되면서...
그렇게 나의 등산계획은 본격적으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결론... 시간을 못지키면 모든게 좆됨;  
자, 가평으로 산행가실 분들은 아래를 눈여겨 보시라.

경춘선 열차시간표
http://gp114.com/traffic/train_schedule.html
가평군 시내/시외버스 시간표
http://www.gptour.go.kr/site/tour/sub07/07_01_02_01_01.jsp





교훈2: 계획을 바꿀 생각이면 좀 상식적으로 바꾸삼


9시 12분, 가평역에 내렸다.
역에서 버스터미널은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다.
머 레전드급인 태백역-태백터미널간의 걸어서 1분;;거리급은 아니지만 매우 가까워 시간을 지체할 문제는 전혀 없다.

기차안에서부터 내내 고민했다.(는 뻥이고 실은 잤다;) 난 어떻게 해야하지?
아침에 출력한; 지도와 시간표를 펼쳐들고 여러 생각들로 머리를 쥐어뜯어 보았다.


원래는 이렇게 다녀오려고 했는데;;;



생각1(나름 이성적인 생각):
-겨울산행의 특성을 감안하면 하산까지 적어도 7~8시간은 잡아야 함.
-요즘 해떨어지는 시각을 오후 6시로 잡는다면 니가 제아무리 날고 기어도 오전 11시에는 산행을 시작해야함
-그런데 다음 용수동행 버스는 11시 출발, 화악리행 버스는 12시30분 출발이잖아?;;; 들어가는데만 30~40분 걸린다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라. 이 상태로 화악산 산행은 무리데스요;
-때마침 백둔리행 버스가 9시 35분에 출발한다! 명지산으로 가자능!
-무리하게 화악산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구. 게다가 명지산쪽이 교통도 좋고 볼것도 많지. 명지산 ㄱㄱㅆ!!


생각2(상당히 비이성적인 생각):
-일단 백둔리행을 타자. 가면서 생각해보자고;;
-근데 백둔리행 버스를 타고 백둔리입구 삼거리에서 내리면 화악산 가는 능선을 탈 수 있겠다?
-이거 지도상엔 능선 중간중간 화악리쪽 하산로가 많은 것 같은데 일단 한번 가볼까?
-그래. 명지산은 전에 한번 대충 와봐서 새로운 곳을 가보고 싶어;
-에이... 화악리 막차가 20시20분이더만. 그때까지 못내려가겠나~


생각3(매우 비이성적인 생각):
-씨발 남자가 갑빠가 있지 가기로 했으면 가는거야
-늦은것도 억울한데 정상은 찍어야지 안그래?
-그래, 무조건 고고씽!!


-_-;;



내 생각은 정확하게 1→2→3의 순으로 진행되었다-_-;;

사람이 머리는 생각을 하고 살라고 달고 있는건데
이렇게 생각없이 행동하면 절대 안된다;

그 덕분에 이번 산행의 코스는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원래코스랑 비교해보라. 저기 관청리에서 들어갔어야 했는데..


대충 추정해보자.
총소요시간: 10:00(백둔리입구)~19:30(화악리종점) ▶약 9시간 30분
총이동거리: 백둔리입구-대촌(국도): 3.7km-약 1시간 
                대촌-중봉: 10.1km-약 6시간 30분 
                중봉-화악리종점: 6.3km-약 2시간
                ▶총 20.1km



다시 한번.. 산행에서 이성의 끈은 제발 꼭 붙잡고 있자.
다행히 다치거나 길을 잃지 않아 다행이지 앞으론 제발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자.




교훈3: 장비는 미리 체크하는 습관을 가지삼

출발지점인 백둔리입구 삼거리


사실은 알고 있었다.
랜턴에 불이 안들어 온다는 것을

사실은 알고 있었다.
아이젠 한짝의 고무가 끊어져 있다는 것을

사실은 알고 있었다.
스틱 한짝이 조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렇게 간다면 좆될거라는 것을;



뭐 그랬지만 이미 출발시점부터 이성의 끈을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난 그렇게 대책없이 출발했다.

어느 민박집 간이화장실에서 대소사;를 치르고 출발~
한시간 가까이를 걷다 보니 대촌마을 버스정류장이 나타난다.


저 괴이한 형상은 가평군의 마스코트;; '잣돌이';;라고 한다;;


여튼 이 좟돌이;; 마크를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아.. 이런 지역 심벌 만드는 분들이나 돈주고 쓰는 분들이나 미적감각이 남다르신 것 같아서 좀 가슴이 아프다ㅠ

여튼 마을을 벗어나 두릅나무밭이 펼쳐지는 곳에서 간지나게 브런치;를 즐긴다.
메뉴는 김밥과 삶은 계란;
자, 출발해 볼까?




역시 잣의 고장답게 잘 닦인 임도와 그 수를 알 수 없는 잣나무숲이 시야를 압도한다.
와우..

생각보다는 수월한 오름이고 도토리나무 낙엽이 가득한 부드러운 언덕을 오르자니
땅에 발이 닫는 기분이 참 편안하고 기분좋았다. 시야만 좋았어도 더할 나위 없었을 것을..

어느덧 땀을 흘려가며 한시간 반 가까이 오르고 나니 목표했던 주능선에 다다를 수 있었다.
화악산에서 애기봉을 거쳐 수덕산까지 흘러내린 이 능선(이하 편의상 애기봉능선이라고 하자)을 따라
난 위로 위로 올라갈 예정임ㅋ


참고로 이번 산행에서는 올라가서 내려갈 때 까지 9시간동안 그 누구도 마주치지 못했다;;
정말 뽀득거리는 발자욱 소리만이 나의 친구였달까;;
13시 50분, 오른지 근 세시간 만에 임도가 넘어가는 고개마루인 애기고개에 당도했다.
시야가 작살난다.


맞은편은 촉대봉

군시절 진지보수공사하던 기억이 마구 떠오르게 하는 주변의 호와 방벽에 몸을 기대고
연양갱과 여러 잡스러운 것들을 섭취하며 체력안배를 해보았다.
돌아보면 이번 산행의 일등공신은 연양갱인듯 하다;
자, 출발하자.


고사목 간ㅋ지ㅋ

멀~리 중봉과 그 옆의 안테나 세운 화악산 정상이 보인다

아래로는 화악리. 내가 하산할 곳임 저기 보이는 봉우리는 응봉 되겠음


애기고개에서 애기봉 가는 길은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경사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참고 오르니 결국 애기봉에 오를 수 있었다. 이때 시간이 15시15분 경..

흐릿한 날씨에 명지산쪽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남동쪽 사면은 진흙탕, 북서쪽 사면은 살짝 녹은 눈길이라 불안불안했고 두어번 자빠지기도 했다만
다행히 별 일은 없었고 한쪽 손의 스틱과 한쪽 발의 아이젠이 나름 큰 역할을 해주었다.
다음 등산가기 전에 꼭 사야지 ㅅㅂ ㅠㅠ
 
해가 뉘엿뉘엿 저무는 것 같아 그리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다시 떠나자.

역시 오르는 길은 눈이 확실히 많이 남아있었고
눈이 녹았다가 다시 얼은 서릿발같은 눈이 무척이나 미끄러웠다.
앞서서 올라올땐 혼자 새로운 길을 개척(이라 쓰고 알바라 읽는다;)하기도 했는데
이젠 길이 험해져서 바위사이를 낑낑거리며 오르는 것도 버겁다.

어찌어찌 가다보니 해는 서쪽으로 급격하게 저물어만 간다.
긴급히 짱구를 굴려본다.
하산로를 어디로 삼아야 할 것인가.

이 속도면 정상에는 다섯시 반쯤 도착할 것인데
왔던 길로 돌아와서 3.6km남았다는 건들내로 갈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군사도로-천도교수련원코스로 갈 것인지

일단 군사도로쪽이 안전할듯 하고
만일의 경우 택시를 부르더라도 도로를 따라 내려가는 것이 안전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일단 계획대로 진행해보기로 한다.
그래도 막차는 탈 수 있겠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능

중봉을 3km정도 남겨두고


하늘에서는 보슬보슬 눈발이 날린다.
그렇게 서쪽하늘이 흐리던 것이 끝내는 눈이 되어 내리는구나.
셔터를 눌러보았지만 싸구려 디카에 이런 광경이 찍힐리 없지. 쳇;;



그렇게 꾸역꾸역 오르다 보니 중봉에 거의 다 온 것 같다.
이제 길은 더이상 가파른 오르막이라기 보다는 평탄한 언덕길처럼 변했다.
초입에 진흙탕과 얼다녹은 눈밭의 반복이던 등산로는 이젠 한겨울로 되돌아 간 듯 눈으로 가득하다.
가만 서있으면 안될 것 같다. 움직이자.
정상에 거의 다와서는 이제 거의 막바지일지도 모를 상고대? 아니 눈덮힌 나무?를 찍어 보았다.
지겨울 수도 있으니 박스처리;;



그렇게 올라오길 어언 7시간 반.. 드디어 중봉에 도착했다.
오오.. 중봉.. 오오..




휴... 장하다 씨발...

어느덧 해는 서산인 명지산으로 넘어가고...




듣던대로 정상에는 공군부대가 있었고 무서운 철조망이 접근을 막고 있었다.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이 웅장한 풍경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정상에서의 풍경 역시 지겨울 수 있으니 박스처리 하련다;


아래에서 보았을 때, 응봉-화악산-석룡산으로 이어지는 높은 능선이
마치 거대한 성벽처럼 보였었는데 어느새 내가 그 위에 서있게 되었다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뭐.. 근데 군바리들은 차로 여기까지 오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좀 이상했다ㅋ
여튼 어서 내려가야지. 종종걸음으로 발길을 옮긴다.

여섯시까지 30분 남았다. 박명으로 길을 식별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잡아서 30분정도로 계산해도
그때까지는 적어도 조난의 확률이 적은 계곡까지는 내려가줘야 했다.
왜냐하면.. 기차안에서 내 랜턴의 건전지가 다 된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랜턴은 좀 별난 형태의 수은전지라서 구하기가 힘들다. 장비는 호환성이 높은 걸로 준비하자;;

다음부터 산에 올때는 꼭 여분의 랜턴, 아니 여분의 장비를 챙겨와야겠다.
이번에는 먹을 것 빼고는 제대로 준비한게 없구나.. 하아..

아, 그리고 일출/일몰시각을 확인하려면 아래의 사이트를 클릭하시라.

천문우주지식정보
http://astro.kasi.re.kr 



 

아름다운 군사도로

맞은편이 응봉 산자락. 오른쪽 전봇대 아래로가 하산로

볼록거울에다 셀카. 초상권 보호를 위해 광폭뽀샤시 시전;;



사실 정상에서부터 하산길은 뛰어내려간 것이 맞다.
급경사의 눈길을 미칠듯 뛰어내려갔더니 목도 마르고 숨도 차더라.
그래도 해떨어지기 전에 안전한 곳까지 가야한다는 일념하에 뛰고 또 뛰어내려갔다.
눈이 쿠션이 되어주었기에 망정이지 여름이면 불가능했을 얘기.


그렇게 해서 중봉정상에서 40여분만에 2.2km아래에 있는 계곡의 초입에 도달했다.
전봇대 하산길에서는 12분만에 내려온 것이다.
정말 하도 뛰어서 염통이 터질 정도였다. 그래도 안심이 되니 다행이지.

여기서 쓰러진 나무등걸에 앉아 초코바를 섭취한 다음 다시 종종걸음으로 하산길을 청했다.
정말 오랜만에 아무도 없는 산길을 혼자 걸어본다.
갑자기 무섬증이 나며 등뒤로 소름이 돋아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재촉한다.

결국 존내 무서워져서;; mp3안에 들어있던 아치에네미를 골라 조낸 볼륨을 올려 들으며 가는데
이게 장르가 멜데스;인지라 기분은 더 스산해지더라;;

이제 깜깜해진 길을 실눈을 뜨고 찾아내려가다 문득 비포장도로를 만난 것은 18시 40분경,
그리고 곧바로 천도교 수련원이 보인다.
다 온거야? 응?
아니.. 아니 거의..ㅋㅋ

이곳은 조선말기 동학교도들이 관군의 탄압을 피해 은거하여 화전을 일구며 살던 곳이라고 함


수련원에서 설치한 듯한 밧줄에 의지하여 10분을 조심조심 내려가니 다시 비포장도로가 나를 맞는다.
이제 살 것 같다.

아무도 없는 길을 내 발자욱 소리만 벗하여 걷는다.
그러기를 한참.. 19시 10분경.. 341번 지방도와 만난다.
드디어 문명세계에 발을 딛는구나. 문득 눈물이 날 것 같다ㅠㅠ

문명세계 도착 기념

이후는.. 무사히 하산했고 무사히 오는 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가서 때마침 들어오는 상봉행 버스를 타고 무사귀가하였다는 얘기.

이걸로 이번 산행기의 내용은 끝이다.


여튼 다시한번 반복하지만 장비를 미리 점검하고 예비분을 챙기는 것은 결코 잊어서도 귀찮아해서도 안될 일이다.
감정에 충실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준비는 해뒀야지 내가 무슨 질풍노도의 폭주고딩도 아니고 원;;


여튼 이번 산행은 반성할 점을 산더미처럼 안겨준 값진 경험이라 생각한다.
아마 이번달 산행은 이게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다.

다음부터는 철저한 준비와 자기관리를 통해
이런 목숨건 무식한 개삽질을 절대 하지않으련다.

아.. 졸린다... 자자...

 

 

화악리 종점 슈퍼에서.. 고생했어요;;



어쨌거나 썩쎼쓰.. 다음에는 제발 정신차리고 준비 철저히 해서 가자. 응?



블로그 이미지

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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