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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친구랑 술 한잔 했었는데 요즘 직장생활이 많이 힘들다 하더라.
경제난에 영업은 커녕 현상유지자체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자
친구 회사에서는 구조조정이 시작되어 살생부가 돌고 있다고 하면서
아직 사원 나부랭이인 자신도 본사에서 지방의 지사로 방출당할 가능성도 있다며 한탄하고 있었다.








뭐, 내가 있는 이쪽 업계도 요즘들어 장사 안되어 가게 망하고 월급못받고 짤리는 것은 같다지만
어찌 이들과 같다고 할 것인가요.. 처지가 다른데..
올 겨울은 유독 이들 넥타이 부대들에게 추운 겨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성과급은 커녕 잘리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분위기라니 말 다했다.
에구.. 내가 퇴직하던 작년말에는 그래도 보너스는 받고 퇴직했었는데..ㅋ


어쨌거나 이게 다 누구탓? 모두 다 우리탓이다.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 하고
우리모두 좆잡고 반성하는 한 해가 되어야 할 듯 싶다.

여튼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지금껏 나온 아저씨들에게 위로를 해주는 내용을 가진 곡들을 한번씩 들어보는 기회를 가져보자.
날씨도 춥고 경기도 춥고 마음도 추운 요즘엔 따스한 위로가 필요하다.








1. Bravo, My Life(김종진/김종진/봄여름가을겨울. 2002)


현대 한국사회에서 돈벌어오는 기계와 동의어인 '아버지', 혹은 '직장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그렇게 힘들게 돈벌면서 개고생하는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인식하게 하는
그래서 푸념이라도 할 수 있게끔 해주는, 막말로 대딸을 쳐주는 노래들이 마구마구 쏟아지게 한 시초가 된 곡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IMF라는 찬바람을 경험했던 이들이 공감할만한 가사를 실으면서 그야말로 대히트를 쳤던 곡이기도 하다.
한번 살펴 볼까나? CM송으로도 나왔고, 모 카드사에서도 비스무레하게 이 제목을 써먹었었고, 동명제목의 영화도 나왔고, 젖준기 주연의 영화 ost로도 등장했고, 티비에서 직장인의 비애 뭐 이런 주제로 방영되는 프로그램의 단골 배경음악으로 쓰였던 대박 히트곡이다. 노래방 가면 회식중인 인간들이 술꼴아서 한번씩은 부르는 단골 레퍼토리였으니.. 모르긴 몰라도 김종진 전태관 아저씨 두분, 요 노래 통해서 돈 좀 짭짤하게 만지셨을 듯 하다.

솔직히 봄여름가을겨울을 꾸준히 들어온 팬들에게는 조금은 생경스러운 곡일 수도 있겠다.
그들이 걸어왔던 초중기 음악적 방향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에 낯선 느낌이 들었었고, 구매력 있는 중년들에게 어필하려고 한 혐의가 느껴진다만.. 그들의 오랜 짬밥이 느껴지는 편안한 연주와 보이스는 거부할 수 없더라. 가사는 요 아래 곡에서 상당히 많은 영향을 받은 듯 하다;





2. 아빠의 청춘(반야월/손목인/오기택, 1966)


상당히 저음이신 울 아버지의 목소리에 잘 맞아 좋아하시고 자주 부르시던 오기택씨의 곡인데,
'구름도 울고 넘는~'으로 시작하는 '고향무정'과 더불어 즐겨 부르시던 곡이기도 하다.
 
IMF 이후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하는 동요까지 나온 것을 본다면
이런 '아빠 계속 돈 많이 벌어오셈' 류의 노래의 사실상의 원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가장으로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청춘을 노래하는 희망을 보여준,
당시 가부장제 중심의 근대화 한국사회 속의 가장의 모습을 1인칭 시점에서 보여준 개걸작이라 본다.
뭐, 아님 말고.
후일 99년 경쯤인가 리얼쌍놈스가 하드코어로 리메이크를 한 버전을 듣고서 개충격을 받기도 했음;





3. 힘을 내요, 미스터 김(조원선/지누/롤러코스터, 2000)
 

조원선이 쓴 가사가 상당히 와닿는데, 여기서 미스터김은 내 느낌상 직급은 3~4년차 정도 되어.. 이젠 알만큼 알고 싫지만 찌들어갈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고민하고 있는 주임이나 대리급 정도 되어보인다;
여튼 시점으로 따지자면 2000년에 나온 이들의 걸작앨범이기도 한 두번째 앨범 '일상다반사'의 수록곡인데, 당시에 이런 류의 가사를 쓰는 가수라곤 넥스트(혹은 신해철) 정도밖에 있지 않았기에 우와 우리나라에서 이런 연주가, 이런 가사가, 이런 멜로디가 나올 수 있다니 하면서 감격했었는데...
세월이 지나 이 곡이 브랜뉴헤비즈의 곡과 토씨하나 정도 틀린 개표절인 것을 알고 급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일단 이 곡을 제끼고서라도 요 시기 앨범들이 롤코의 최전성기였던 것 같다.





4. 위하여!(안치환/안치환/안치환, 2001 )


개인적으로 안치환을 무척 존경하기도 했었고 지금도 민중스피릿이 남아 있는 몇 안되는 가수이기에
여전히 좋아한다마는, 이 곡을 듣고서는 좀 실망을 했더란다.
먼저 그에게만은 '아빠짱, 직딩짱' 요런 가사가 싫었고, 그가 가진 반골 정신이 '넥타이 풀고서 소주잔 기울이면서' 그동안 고생 많았지? '우리도 청춘의 꽃이 시드네' 어쩌구 하는 술타령으로 사그라드는 것 같이 느껴져 참 안타까웠다. '소금인형'이나 '내가만일' 같은 사랑노래와는 또다른 아쉬움이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보컬의 포스는 아직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 시청앞에서 들은 '내가 광우병에 걸려 죽거덜랑 화장해서 대운하에 뿌려달라'던 그의 모습에서 난 아직도 여전히 그를 믿고 긍정한다.





 5. 친구여(feat.인순이)(조pd,박근태/박근태/조pd, 2004)


약발이 다되가던 조피디가 천하제일의 히트송메이커 박근태와 손을 잡고 만들어낸 곡이 바로 이 곡이다. 덕분에 인순이와도 윈윈할 수 있었던 것 같고 이 곡 역시 엄청난 대히트를 치기도 했다.
근데 가사가 이제는 좀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좆pd나 박근태나 이제 이런 '직딩생활 힘들어요. 낙이 없네 친구랑 소주나 한잔 까야지' 하는 가사가 일종의 트렌드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니 그 것이 진부함으로 다가오는 곡 되겠다. 한가지 더 큰 약점은 이 곡보다 먼저 발표된 김진표의 '아직 못다한 이야기'와 너무도 유사한 곡의 전개형식을 갖추었다는 것인데, 머.. 그 답은 둘다 작곡이 박근태라는 거다; BMK가 인순이로 대체되고, 템포가 조금 더 빨라졌다는 것을 제외하면 구성이 거의 빼다박은 듯 똑같아서.. 그래도 노래방 가면 종종 부름;





6. Friends(신해철/신해철/비트겐슈타인, 2000)


신해철이 넥스트 때려치고 편하게 음악해보겠다고 만든 것이 바로 이 비트겐슈타인인데, 물론 망하긴 했지만 나름대로 그가 하고자 하는 음악의 본령을 엿볼 수 있는 앨범이었다. 여기에 낑겨있던 곡으로 나름대로 대중적인 넘버가 바로 이 곡인데, 연말연시에 친구들 만나서 노가리 까면서 '너네 옛날같지 않게 걍 열심히 사는게 보기 좋다야 오늘 술이나 쳐먹어' 이런 느낌을 주는, 참 편안한 넘버 되겠다.
아저씨들을 위한 노래라는 포스팅 주제와 잘 걸맞는 것 같아서 골라보았는데, 실은 신해철은 넥스트 1집에서 '도시인'과 '아버지와 나'로 직장인, 그리고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신랄하게 까볼 만큼 까보았던 인물인지라 오히려 이런 편안한 모습이 어색한듯 잘 어울린다.
언급한 이 두 곡은 여기에 링크를 걸어야 할 것 같지만 '대딸'이라는 이 포스팅의 취지에 역행하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글쎄.. 사회와 가정을 위태롭게 지탱해나가고 있는 안쓰럽고 힘든 존재로 묘사되는 직장인들에 대한 언론의 연민속에서는 왜 그들이 그러한 처지에 처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그들은 직딩들에게 '요즘 너네 힘들지? 힘내고 알아서 잘 버텨다오'로만 일관할 뿐이다.
배울만큼 배우고 노력할 만큼 노력하고 닳을만큼 닳아버려야 했던 그들이 왜 하루하루를 생존을 위해 발버둥을 쳐야 하는지에 대해 언론과 사회와 정부는 어떤 설명도 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솔직히 이러한 노래들은 진통제에 불과하고 우리가 현재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소주와 이러한 진통제들 뿐이다.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너희 생계에 바쁜 직딩들은 신경끄시고 현업에 충실하시라. 신경써봐야 해결되지도 않고 해결할 수도 없다라는 것을 잘 알지 않느냐'라는 식으로 답한다. 이 것이 그들의 한결같은 논리였다.
현실은 냉정하기만 하고 사람들은 공황에 빠진 채 우왕좌왕한다. 서로를 잡아먹어야만 하는 아비규환의 늪에서 이런식으로 친구를 노래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것은 어쩌면 사치일 수도 있지 않을까?




출처는 www.gamzadori.com






마지막으로...
한국사회에서의 직딩이란 무얼까?

요 앞에 포스팅 했던 '눈뜬 자들의 도시'의 유명한 구절을 인용해 보면서
그 답을 찾아보기로 하자.

그냥... 슬프긴 한데 우리들은 그 슬픔의 근원을 모르고 있다는 것, 혹은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 더욱 슬프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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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서, 맹목적으로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 시대에, 나이가 들면서 젊었을 때 꿈꾸던 것과는 달리 돈도 많이 벌며 편안하게 살아가는 남자와 여자를 만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그들도 열여덟 살 때는 단지 유행의 빛나는 횃불이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신의 부모가 지탱하는 체제를 타도하고 그것을 끝내 우애에 기초한 낙원으로 바꾸어놓겠다고 결심한 대담한 혁명가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온건한 보수주의 가운데 어느 것 하나로 몸을 덥히고 근육을 풀었다. 따라서 그들이 과거 혁명에 애착을 갖던 것처럼 지금 애착을 갖고 있는 그 신념과 관행들은 시간이 흐르면 가장 외설적이고 반동적인 종류의 순수한 자기중심주의로 변해갈 것이다.

예의를 약간 걷어내고 말을 하자면, 이런 남자와 이런 여자들은 자신의 인생이라는 거울 앞에 서서 매일 현재의 자신의 모습이라는 가래로 과거의 자기 모습이라는 얼굴에 침을 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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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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