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를 위하여 (1~2 세트) - 세계문학전집 51~52

저자
이문열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3-10-01 출간
카테고리
황제를 위하여 (1~2 세트) - 세계문학전집 51~52
책소개
“이문열의 가장 중요한, 그리고 가장 좋은 소설이며, 한국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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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친구 김모군의 오랜 추천에 힘입어 이틀만에 후다닥 읽어버린 책.

 

사실 작가 이문열에 대한 나의 시선은 많이 변해왔다고 생각된다.

중고교시절 처음으로 읽었던 그의 소설 '사람의 아들'이 준 강렬한 임팩트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의 지적이고 나아가 현학적인 필력에 어느새 빠져들어버렸었고 종교의 근원적 의미에 대해 고찰하려는 소설의 깊이에 반했었던 기억이 난다. 고딩시절 일종의 냉소주의로 지적인 허세를 부리려던 나의 부끄러웠던 취향과 아주 잘 맞는 그의 글에 대한 애착은 이후 그의 소설중 허세킹;이랄 수 있는 '젊은날의 초상'을 비롯하여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나 '금시조' 등의 일련의 소설을 읽으면서 여전히 유지되었다.

 

그가 가진 동양적 전통에 대한 애착과 진보이념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조금씩 느끼게 되면서도 여전히 그에 대한 지지를 거두지 않던 와중, 대학교 1학년때 '선택'이라는 책을 읽게 되면서 '아.. 이건 좀 상식적이지 못한데?'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시점에서 그게 자신의 선택이었다며 페미니즘을 나불거리며 나대는; 요즘 일부 여성들을 따끔하게 혼내는 조선시대의 한 부인의 모습은 그 자체가 넌센스로 다가왔고 그의 글에 대해 근원적인 의심을 품게 만들었다. 오늘 '황제를 위하여'를 읽고 나서 혹시 '선택'도 실제로는 반어법을 사용한 블랙코메디였던가 하는 의문마저 들게 된다; 

돌아보면 강의시간에 유일하게 이문열을 옹호하던 용감했던 나의 친구 김모군은 꿋꿋이 토론에서 수많은 여학우들의 비난의 화살을 견뎌내며 자신의 논리를 펼치다 장렬히 스러져가던 눈물겹던 기억도 난다;;

 

아무튼 이문열 삼국지 이후; 나는 그의 저서를 멀리해왔고, 어느날 인터넷에서 '이문열과 젖소부인'사건으로 진중권에게 탈탈 털리던 그를 보면서 다시는 그의 글을 볼 일이 없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정치평론가인양 행세하던 그에 대한 기억들을 지웠더랬었다.

 

어느덧 시간은 흐르고 '이념이 뭐 대수냐'라는 생각과 더불어 그래도 천하의 필력을 가진 당대 최고의 소설가의 글인데 한 번쯤은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아서 헌책방;에서 두 권을 구입하여 보게 되었다.

 

결론은 만족하고 있다. 격동의 세월을 거친 한민족의 역사에 대한 일종의 우화이자 심도 깊은 블랙코메디를 본 것 같아서 유쾌했다.

여기저기서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그의 보수적 시각이 유감없이 드러나고 있는데, 그 것은 나중에 생각하기로하고 운율을 즐겨보면 시종일관 이어지는 유장하고 고풍스러운 문체와 유교와 도교를 비롯한 여러 동양사상에 기반을 둔 세계관이 독자를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조선시대로 여행시키는 듯 친숙하면서도 낯설다. 아마도 우리들 핏속 어딘가에 흐르고 있을 조상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그 것에 조응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그 것만으로도 이 책은 읽은 보람이 있었다.

 

내용은 구한말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에 태어나 정감록에 따라 자신을 황제라 여기며 평생을 살아간 한 남자의 일대기이다. 이 조선판 돈키호테는 한학과 유교사상 그리고 정감록등 도참사상을 비롯한 여타 동양사상에 기반한 가치관을 평생 지키며 스스로를 하늘이 내려준 황제라 믿으며 살아가는데 그 것이 일제강점기와 해방 분단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여타 다른 사상과 가치관과 충돌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독자에게 큰 웃음과 더불어 여러 시사하는 바를 안겨준다.

 

작중 화자는 마치 삼국지를 읽는 듯 능란한 연의체를 구사하며 남조선 황제의 실록과 실제로 그가 처한 현실을 비교하면서 황제의 초라한 모습과 시대착오적인 황당함을 부각시키며 독자에게 웃음을 주다가도 한편으로는 좌익청년과의 설전에서 공산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민주주의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논파하고 야소교 전도사를 논리로 내쫓는 등 서구에서 유래된 가치들의 무비판적인 수용에 대한 일침에도 어느새 귀를 기울이다가 마지막으로는 황제의 착하고 올바르고 논리적으로 미친;; 모습에 오히려 빠져드는 듯한 화법으로 변해가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후반부에서 작중 화자가 황제에게 보여주는 감정은 연민을 넘어선 존경의 빛까지 느껴지는데, 이 황제를 민족의 지난했던 시기의 한가운데를 관통해가며 수많은 가치관들이 들어서고 무너지고 또다시 솟아오르는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우직하게 과거의 전통을 지켜나간 그를 보는 작가의 시각이 드러나고 있다고 본다. 무너져버린 역사와 가치를 이어가려는 그의 모습, 광인이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던 그런 모습을 통해 우리가 이어가야 할 가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되짚어보는 듯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사상은 유불선도 기독교도 아니다. 공산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유민주주의라는 이제는 정치적으로 변질된 이름을 붙이기에는 턱없이 우스운 상황에서 현재 이 땅의 민중들을 지배하고 있는 가치는 딱 두가지일 듯 하다. 배금주의와 기회주의.

 

천하의 상놈들이 주머니에 돈푼깨나 쥐었다고 거들먹거리고 혹은 총칼로 권세를 잡았던 자들이 옷을 바꿔입어가며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그리고 백성들은 그들을 부러워하며 그들처럼 되기를 원하는 참람된 꼴을 황제께서 보셨다면 과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급속한 산업화로 유교적 가치관은 거추장스러운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린지 오래이고 90년대 동구권 붕괴와 함께 밀려온 현실사회주의 이념의 몰락은 길고 긴 자유주의/자본주의 진영의 승리를 말해주는 듯 했으나 IMF금융위기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세계금융위기는 더이상 시장을 신뢰할 수 없음을 보여주며 사람들을 나락으로 밀어넣었다.

 

그러는 우리를 이끌어줄 사상적인 끈은 지극히도 얕고 상스러운 것들 뿐이었다. 정글속에 내던져진 우리들은 생존본능 속에서 강자에게 굽히고 약자를 밟고 오르며 돈을 향해 달리고 달렸다. 그것은 끝을 알 수 없는 불안감에 근원한 것으로 오르고 올라도 달리고 달려도 그 두려움과 목마름은 그칠 줄을 모르는 것이었다. 사상과 철학의 부재. 그 자리를 돈과 이기심이 대체하여도 우리는 오히려 그 것을 찬양하고 부러워 시기한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오늘 읽은 이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감회는 남다르다.

우직하게 자신의 가치를 지켜나가는 그는 남들이 보았을 때 미쳐있었지만 어찌보면 세상이 미쳐있었던 그 엄혹했던 시기에 오히려 그만이 순수했었고 인간을 아끼고 사랑했었고 지고의 가치를 추구하려했던 것은 아닐까.

 

이문열식 허무주의- 수많은 이들이 높은 뜻을 가지고 일어서고 다시 몰락하던 역사의 기록들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인간을 물질이라는 토대에서 판단하려하던 공산주의나 민주라는 허울아래 자본가 독재를 행하던 자본주의나 그에게는 모두 역성혁명에 지나지 않았고 피지배자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으며 그들은 그것이 어떤형태의 것이든 지배자만 바뀔 뿐 반복되는 것이고 무의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래서 혁명이나 민주주의보다 엘리티즘:통치자를 위한 학문을 더 중한 가치로 치는 이문열식 정치관-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이문열은 짐짓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황제의 뒷모습에 자신이 배우고 익힌 선대의 가치들을 투영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지금에사 돌아보면 그 늙어버린 황제의 모습은 현대에서도 조선시대 시퍼런 유생의 가치를 받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 보수주의 작가의 모습이었다. 스스로가 그 황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구시대의 유물을 미련할 정도로 소중히 받들고 평생을 지키게 만드는 그 '이념'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생존해나가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가 지켜야한다고 믿는 그 것에는 분명히 그만한 가치가 있고 타당함이 있다. 하지만 혼자 돈키호테가 되어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것은 조금 서글프지 않는가. 유교적 엘리트주의가 가진 한계는 헌법에 기반한 대중민주주의와 공존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유교를 정치의 영역에 무턱대고 가져다 맞추려는 것은 무척이나 무모하고 위험한 돌진이 아닌가 싶다. 그의 지난 돌진의 역사 속에서 민주화 운동도 쿠데타도 모두 하나의 스쳐지나는 바람이라 보는 듯 세상과의 불화를 스스로 만들어 왔다. 좋다. 이제는 우리가 대답할 때인 것 같다. 그것은 그의 오래된 신념에 금을 내줄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 뿐일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아.. 선거철이 되어서 그런가 독후감에서 왠지 선동;의 내음이 난다. 그래도 몇달만에 써보는 글이라 무척 긴장된다. 암튼 잘 읽었다. 이문열 특유의 보수적 냉소주의;;만 제외하고 본다면 정말 깊이있고 유려한 문장의 바다에 헤엄치는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좋은 소설 중 하나라고 본다. 술술 잘 읽히니 한번쯤 가볍게 읽어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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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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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atch-22

캐치-22. 1 상세보기

자세한 내용설명은 생략. 읽은지 조금 되긴 했지만 어쨌거나 새해들어 쓸 것이 없어서; 이렇게 포스팅한다.

2차대전 이태리 피아노사 섬이라는 곳에 위치한 어느 양키 공군부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소설로
일단 미친듯이 재미있다.

전쟁 관련된 소설이나 영화는 참 무겁고 슬프고 비극적이거나 암울한 것이 절대 다수이건만
이 소설은 반대로 빵빵 터지는 해학과 역설을 그 기반으로 한다.

제목 자체가 의미하듯, 그리고 이 제목이 영한사전에 등재될 정도로 (궁금하면 검색해보삼ㅋ)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조항이 말도 안되게 개개인의 삶을 억압하는 비이성적이고 비인간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현장을
무척이나 독설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묘사해나간 책이다.

아.. 조만간 군대간다는 08학번 모 후배에게 선물해주고픈 책 되겠다.
모순과 부조리에 어느새 익숙해져버린 삼십대 초중반;;;;;;의 아저씨의 입장에서는
그저 과거의 씁쓰레한 추억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타임머신 같은 책에 불과할지는 몰라도
본격 부조리의 세상으로 진입할 그 친구에겐 약간의 맛보기 정도가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 소설의 압권은 2부 후반부터 펼쳐지는 주인공 요사리안의 동료들의 죽음 속에서 느끼는 주인공의 감정 묘사인데
한번 즐겨보시길 바란다. 1권부터 꾸준히 읽어온 분들이라면 울컥하는 마음이 절로 들 것 같다. 






#2. 독서취향테스트

자주가는 김작가님 블로그에 독서취향테스트 링크가 되어있더라니
작년인가 제작년인가쯤에 했던 이드솔루션이라는 곳에서 했던 동일한 취향테스트의 '책버전'이더라.

역시 그때와 같은 성향이 나타났다.
나의 취향은 타이가...


"타이가"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북방침엽수림 지대는 시베리아, 알래스카, 캐나다 등지에 가장 넓게 분포한다. 길고 혹독한 겨울과, 짧고 온화한 여름이 특징. 가혹한 기후 조건이지만 년중 고른 강수량을 유지해 북방 동식물들을 위한 최상의 환경을 제공. 전체 지구 식물군의 15%를 차지하는 타이가 수풀림은 워낙 많은 양의 기체를 생산해 지구 대기의 상태를 좌지우지함.

혹독한 추위, 거대한 영향력, 치밀한 생명력. 이런 환경은 당신의 책 취향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 완벽주의 침엽수림:
    잘 짜여진, 정확한, 완벽한 내용의 책을 선호. 기술적으로 깊은 내공을 지닌 작가의 글을 선호.

  • 거만한 알래스카 동절기:
    책의 인기도, 판매량 순위 등에 거의 관심이 없음. 뻔한, 똑같은, 평범한 내용을 경멸함. 진실된, 심오한, 정교한 내용을 선호.

  • 이중적 순록떼:
    의외로 극단적이고 무례한 내용에 너그러운 편. 나름 감정적이고 열정적이며 자유로운 '여성적' 콘텐트에도 관심을 보이기도 함. 

당신 취향은 출판 업계에서 영향력이 상당한 소비계층입니다. 책을 많이 소비하는 취향 그룹이기도 하거니와, 실제로 책을 비평하는 평론가들은 대부분 이 취향에 속하기 때문이죠.

당신의 취향을 만족시킬만한 작가에는 다음과 같은 이들이 있습니다.

알랭 드 보통
프루스트의 작품에 어떤 장점이 있든지 간에, 열정적인 팬들조차도 그의 작품이 끔찍하게 길다는 난처한 특징을 부인하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프루스트의 남동생인 로베르가 썼듯이, "슬픈 일은, 사람들이 매우 아프거나 다리가 부러지지 않고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을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지 중 하나에 새롭게 깁스를 하거나 결핵균이 발견되어 침대에 눕게 된다 하더라도, 그들은 프루스트의 끔찍하게 긴 문장의 도전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다음에 인용된 문장 하나는 표준적인 크기의 글자 한줄로 배열한다면 4미터가 조금 안되며 포도주병 바닥을 17번 감을 수 있다...
-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中

보르헤스
취팽은 운남성의 성주였는데 [홍루몽]보다 더 많은 등장 인물들이 나오는 소설을 쓰기 위해,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길을 잃게 될 그런 미로를 만들기 위해 덧없는 성주의 권력을 포기했다. 그는 이 기이한 노작을 위해 13년이란 세월을 바쳤다. 그러나 한 이방인이 그를 죽였고, 그의 소설은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그 미로를 발견하지 못했다.
-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中

페터 회
나는 완벽하지 않다. 나는 눈이나 얼음을 사랑보다 더 중하게 여긴다. 동족 인류에게 애정을 갖기보다는 수학에 흥미를 가지는 편이 내게는 더 쉽다. 그렇지만 나는 삶에서 일정한 무언가를 닻처럼 내리고 있다. 그걸 방향 감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여자의 직관이라고 해도 된다. 뭐라고 불러도 좋다.
-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中



알랭 드 보통은 절~대 아닌 것 같은데.. 이번엔 좀 의심이 간다만;
요 아래 도표를 보니 지난번 취향테스트와 일치하는 것이 그럴듯 하기도 하고;;
난 제일 오른쪽 위의 '장인' 취향이라능..

 

이전에 했던 것을 살펴보니 여덟가지로 나누는 취향의 분류방식은 유사한 것 같다.
http://kingdiamond.tistory.com/119


여튼 내 취향은 그렇더라고.. 존중해 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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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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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및 크리스마스주간을 맞아
극심한 외로움에 치를 떠는 어떤 친구와 함께
별나게 생긴 3D안경을 끼고서 그 말많은 아바타를 보았다.


와... 초반 판도라 숲속을 묘사하는 그래픽의 향연에 입이 안다물어 지더라. (친구는 침도 흘렸다;;)
왜 사람들이 아이맥스에서 보려고 난리를 치는 지 알 것 같다.
이렇게 상업성을 완벽하게 갖추면서 영상과 음향, 그리고 상대적으로 뻔하지만 빈틈없는 스토리 전개까지
당분간 규모와 내용면에서 대적할 상대가 없을 듯 하다.

접근 방법도 보는 시각에 따라서 여러가지일듯 한데,
머리를 비우고 스펙타클한 액션을 즐기며 눈과 귀를 만족시키는데 집중해도 좋을 영화이고
인간의 본질이나 생태주의의 측면에서 접근하며 고민을 던져봐도 흥미로운 영화인 듯 하다.

다들 지적하셨듯이 유사한 영화로는 늑대와 춤을, 천공의 성 라퓨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등등이 떠오르는데..
모르겠다.

친구와 영화보고 나와서 얘기한게..
참 아이러니한 것이 발달한 과학기술문명이 있었기에 아바타를 통해 외계인과 소통을 할 수 있었고 그들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결국 그러한 문명은 자신의 체제유지를 위해 더욱 큰 에너지원과 자본을 요구한다는 것,
그러니까 본질적으로 거대화한 문명은 약탈적인 모습을 띨 수 밖에 없다란 거다.

이건 자본주의라는 체제의 속성을 떠올리기 이전 고래의 인류역사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어온 예이기도 하다.
반론의 여지는 많겠지만 이 것은 태초부터 인간이 자연에게, 강한 민족이 약한 민족에게
그리고 패권국가가 약소국들에게 자행해온 인류 역사의 뒷모습인 것이다.
머, 베블렌식으로 말하자면 인류 문명 자체가 사적 소유권 위에 성립된 야만문화일 것이고
결국 그 구성원들은 결국에는 '먹고 살기위해서 어쩔 수 없다'라는 마법의 단어를 구사하며
파병에 찬성하고 약탈과 학살을 묵인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되겠지.

그런면에서는 단순히 적 그리고 아군이라는 이분법으로 판단하며 식민지 강점에 앞장서는 용감무쌍한; 퀴리치 대령이 인간본성에 가장 충실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인간은 그런 한쪽 측면만 있지 않기에 제이크가 존재하고 그로인해 감동 역시 선사해 줄 수 있는 것이겠지만..
여튼 인간은 참 재미있어;

머.. 자꾸 그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하다보면 답이 없을 것 같아 일단 줄인다;
그래.. 그런 자본의 힘으로 난 이렇게까지 생각을 이끌어낼 수 있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카메룬 감독에게 감사해야 되려나..ㅋ

아마도 저탄소 녹색성장을 부르짖는 가카께서 이 영화를 보신다면
환경친화적인 내용을 강조한 한국의 아바타를 만들라고 지시하시겠지만;(이건 허지웅씨 글 패러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하루하루를 그냥저냥 별일없이 살아가는 불쌍한 우리네 중생들에게 이 영화는
파괴와 조화라는 상반된 두 측면 모두에서 크게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걸작이었고
가카재임 2년이 막 지난 지금, 항상 화두로 던져져 있는 '소통', 그리고 '공존'이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 또한 마련해 준 좋은 선물또한 된 것 같다.

여튼 개인적으론 지금은 끊은지 2년된 와우 속의 나엘(나이트엘프)이 자꾸 생각나서 슬퍼졌;;

이브에 이 친구와 또다시 만나ㅠㅠ 보기로한 전우치 역시 기대가 된다.
여튼 강추를 거듭할 만한 영화 되겠다.




 

영화속 나비족의 모습을 보면 역시 아메리카인디언들을 모델로 삼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마구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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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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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작성일 09.12.11/ 최종 수정일 09.12.15)


연말 릴레이 독서 첫빠였던 <프로파간다> 이후 자신있게 잡아 든 이 책..

펼쳐들자마자 입에서 터져나오던 단어는 바로...

 

저.. 저거!!



느낌이 예사롭지 않다;; 
내용은 무척 흥미롭지만 이 방대한 분량앞에 주눅이 든다.
과연 올해 안에는 읽을 수 있을지-_-;

뭐.. 내년;까진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올 만큼의 날들이 남아있으니 
한번 힘내보자.

한큐에 이 책을 완독하는 건 불가능하므로;
이 포스트는 이 책의 각 부들을 완독한 다음 계속 수정하여 업데이트하는 걸로 하련다.


일단은 총 9부의 구성 중 
오늘은 <제 1부 대중의 과학> 에 대해 요약하고 짤막한 감상을 써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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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의 시대(L'Age des foules) /Serge Moscovici



▶군중의 시대(1981), 세르주 모스코비치, 이상률 옮김
   1996. 문예출판사 622p







문득 떠오르는 음악이 이것 밖에 없어서;;



제1부 대중의 과학


제1장 개인과 대중



▷인간은 집단속에서 본래의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비논리적이고 충동적으로 움직이게 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장 되겠다. 사회속에서 예로부터 언급되어온 군중의 특성을 본격적으로 과학화하여 증명하고자 하는 시도를 읽을 수 있다.




제2장 대중의 반란



  
▷2장을 읽으며 이 책은 홉스봄의 '시대'연작 3권과 함께 비교하며 읽으면 재미있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업혁명이후 발생한 근대화의 노도 속에서 탄생한 두가지 사회학의 흐름, 정치경제학과 대중심리학의 끝없는 투쟁이 학문적 흥미를 부추긴다.
지금껏 사회분석의 기본틀이라 생각했던 정치경제학적 분석을 거부하고 심리학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분명 신선하고 충격적이다. 인간은 이성적으로 사유하는 존재라는 명제를 부정하며 등장한 대중심리학, 그 두가지 사조의 충돌과 변용의 길이 궁금해진다. 
 



제3장 대중이 거기에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3장에서는 새로운 시대의 정치학이라는 측면에서 대중심리학을 바라보고 있다. 고전정치학으로 짚어내지 못한 대중의 비이성적인 측면, 그리고 그 사례들을 통해 새로운 대중통제이론으로서의 대중심리학의 위상을 바라볼 수 있다. 대중의 속성을 이렇게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은 기존 분석틀로는 찾을 수 없었던 것이었기에 무척 신선하다. 뭐, 정치행위 자체의 속성을 비합리적인 것으로 보는 이 시각이 현실을 정당화하려는 지배계급의 요구에 부응하는 논리로 느껴져 그리 탐탁치 않긴 하지만..


 





제4장 동양적 전제주의와 서구적 전제주의



▷4장에서는 전제주의로 향할 수 밖에 없는 대중사회의 흐름을 이야기하고 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대중의 지도자는 항상 대중에 의해서 인정된 찬탈자'라는 구절은 우리네 현실과 맞물리며 몹시 인상적이다. 대중의 속성을 분석, 계량화하여 지배계급에게 대중을 통제하고 활용할 수 있는 도구로서 기능하는 것이 대중심리학이라면, 4장에서 말미에 미리 말하고 있듯, 인간의성과 지성을 통해 극복해나갈 수 있는 것 또한 이러한 군중의 심리가 아닌가 싶다. 맑스주의 정치학이 간과한 인간의 비이성적 측면에 대한 학문적 성과가 이 대중심리학이기에, 더욱더 이성과 실천의 문제가 화두가 되는 것이 지금의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아.. 겨우 1장 읽고 이렇게 독후감을 쓰는데도 며칠이 걸렸는지 모르겠다. 내 머리가 썩어가고 있다능ㅠㅠ

일단 간략하게나마 결론을 내보자.
아무래도 이런 주제에서는 촛불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수순이 아닐까 싶다. 어느쪽에서는 거리에 나선 군중의 속성을 단정짓고 폄훼하는데 이러한 이론들을 적절히 논거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고, 집단지성의 시대에서 자발적이고 이성에 기반한 존재로서의 개개인의 총합인 군중을 단순히 군중심리의 측면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오류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개개인의 취향이나 호불호를 떠나 이러한 군중심리학은 인류의 정치사를 조망하는데 있어서 분명히 빛나는 분석틀 중 하나다. 그리고 과거부터 이론적으로 설명해내지 못했던 대중이라는 집합체의 불가사의한 속성을 과학적으로 조망해낼 수 있었다는 것도 큰 성과라고 생각이 된다. 하지만 지배계급의 체제유지에 복무하기 위한 논리라는 태생적 한계는 버릴 수 없는 굴레가 아닐까.
정치경제학이나 대중심리학이나 출발선상의 베이스는 자본주의체제의 공고화와 그 것이 이루어낸 도구화 파편화된 개인의 탄생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면 이 대중심리학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경제학적인 틀을 의도적으로 간과하고 있는 단점 또한 명백하다. 어떤 거대담론에도 휩쓸리고 싶어하지 않는 현대의 냉소적인 개인들 역시 미시적인 권력구조 안에서 순응하고 움직이고 현 체제를 당연시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돌아본다면, 결국 이념의 종말이라 불리는 이 시대에 더욱 필요한 것은 이념의 자리를 차지해버린 자본의 논리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라 본다. 개인의 의지와 실천이라는 요소가 배제된 군중심리를 무비판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결국 그 논리에 굴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앞서 읽었던 프로파간다에서도 언급되었듯, 민주주의 사회의 대중들을 움직이는 것은 선전이며 이러한 대중심리이론에 기초한 수많은 전략과 전술은 오늘날 정치경제문화의 전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 지도자의 위치에서는 이 것이 대중을 도구로 삼기에 적합한 이론이 되겠지만, 그들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에 저항할 수 있는 이론이 될 수 있는 근거 또한 바로 이 대중심리학이 가진 양면성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이러한 책을 읽는 이유도 더욱 명백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대중심리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여러 집단적인 사회현상들을 100% 이해할 수 없다. 이러한 선전선동의 시대에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진실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 또한 이러한 대중심리를 배우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을 거라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아오씨박 힘들어;; 일단은 여기까지. 업뎃은 다음에..;;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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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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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미친듯 사놓은 책들을 파다가
그냥 대충 읽고 넘어가선 안되겠다 싶어 이제 짤막하게나마 독후감을 올리려 한다.



올 연말 및 연초까지는 한가지 주제로 책들을 읽어보려 하는데..
그 시작은 바로 이 책부터다.



여성의 흡연률을 높이기 위해 찍은 담배피는 간지녀광고입니다;


▶프로파간다, 대중심리를 조종하는 선전 전략
▶에드워드 버네이스 지음, 강미경 옮김, 공존 2009


음악도 추가해보자.
음악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선전선동의 대가; RATM의 Bulls On Parade 되겠음






거두절미하고 말하자. 
이 책에는 대중심리를 조종하는 선전전략에 대해서는 별로 안나와있다;
PR의 원조인 버네이스의 '나의 성공담' 같은 구성으로 되어 있고
대중에 대한 기본적 인식이 오늘날과는 확연히 달라 읽는 와중에 성질이 뻗치는 책 되겠다.

구매전 결코 이 책을 대중심리나 PR에 대한 '학술서적'으로 착각해서는 안될 것이며,
이 책에 관련된 내용들은 굳이 본문을 읽지 않아도 권두에 있는 머릿말만 읽어도 100% 이해할 수 있다.

다만 푸짐한 당시의 사진들(버네이스의 홍보전략의 성공사례들이 다수)이 있어 
읽는 동안의 지루함을 다소나마 피할 수 있었다.


   

윌슨의 반전공약에 동조해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미국국민들이 
1차세계대전에 자발적으로 참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미연방에서 조직한 연방공보위원회의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국민선동 및 호전적 애국주의의 고양 덕분이었다. 
이는 바로 프로파간다(Propaganda), 곧 선전의 위력을 보여준 최초의 사건이었고 이러한 선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이들은 선전을 정치의 영역을 넘어 기업과 시민사회로 널리 퍼져나가게 했고 한편으로는 시민들에게 선전이 가진 음험한 이미지와 더불어 히틀러로 하여금 영감을 얻게 해준 계기가 되기도 했다.


버네이스는 선전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찾아 16세기 교황청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선전이라는 말에 씌워진 부정적인 의미를 지우고 그 가치를 재정립하려 노력한다. 

그는 '대중의 관행과 의견을 의식과 지성을 발휘해 조작하는 것(선전)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요소'라는 천명을 통해 선전의 필요성과 방법론, 그리고 윤리적 규범을 제시하려 한다.

자신의 선전성공사례들을 예시로 삼고 있어 지루하지 않으며, 이를 통해 1920년대 당시 미국사회의 정황을
대략적으로 미루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머.. 사실상 이 책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 사람은 히틀러와 괴벨스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그가 설파한 선전이 가진 강력한 위력은 오늘날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옛날에 포스팅도 한번 하긴 했지만 그가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패니 재직시절 CIA를 통해 과테말라 정부를 전복시킨 일은 선전이 가진 무시무시한 위력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아닐까 싶다.



그는 선전은 목표달성과 질서유지를 위한 최고의 도구라는 것을 확신하며 그 도구를 적절히 사용하기 위한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까지 한다.

수많은 대중적인 관점에서 열거하는 선전에 대한 상세하고도 친근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가 생각한 대중은 몽매하고 쉽게 설득가능한 소비자들에 불과하지 그의 고객은 아니었다고 본다.

PR의 지존인 그의 고객은 그러한 대중들을 조작할 수 있는 최상위 그룹의 보이지 않는 리더들이었고
그는 그러한 그들의 요구에 나름 가치중립적(???)으로 최선을 다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선전과 홍보의 홍수속에서 나름 편리하고 즐겁고 안전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선전들 속에서 무비판적으로 스스로 꼭두각시가 되는 것을 묵인하고 있구나라는 불편함을 지우기 힘들다. 


여튼 구매를 추천하고 싶지는 않지만;
신방과/광고홍보학과 학생들이 선전관련 역사를 훑을 때,
혹은 기업의 PR부서 신입인력들이 업무의 개념을 잡는데 봐둘만한 책일듯 하다.

끗.



▶구절들

추천사/머릿말:

전체주의는 폭력을 휘두르고 민주주의는 선전을 휘두른다 - 에이브럼 노엄 촘스키

선전을 가장 끔찍히 여기는 사람들조차 선전에 쉽게 넘어간다. 버네이스는 그러한 역설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다. 다른 누구보다도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우리를 위해 만든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면 우리 또한 그 역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 마크 크리스핀 밀러, 뉴욕대 미디어학교수, 머릿말


본문:

대중의 관행과 의견을 의식과 지성을 발휘해 조작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사회의 이 보이지 않는 메커니즘을 조작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국가의 권력을 진정으로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정부(invisible government)'를 이룬다.
p.61

우리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통치를 받으며 우리의 생각을 주조하고, 취향을 형성하고,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우리의 민주주의 사회가 어떻게 조직되는지를 고려할때 이는 논리적으로 당연한 결과다. 원활하게 기능하는 사회로서 함께 살아가려면 인간은 이런 식으로 협력해야 한다.
p.61

여론을 조직하고 이끄는 도구가 잘못 사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여론을 조직하고 이끄는 것은 질서정연한 삶에 반드시 필요하다.
p.65

일상의 어느 부분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거대한 권력을 행사하는 독재자들의 지배를 받는다. 
p.99 (패션업계의 유행을 예로 들며)

인간은 대개 스스로 감추고 있는 동기에 영향을 받아 행동한다는 이러한 일반원리는 개인심리뿐만이 아니라 대중심리에도 적용된다. 따라서 유능한 선전가가 되려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당사자들이 제시하는 동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러한 행동 이면에 숨어있는 진짜 동기를 파악해야 한다... 
선전가는 인간의 욕망을 이해해야만 현대사회라는 거대하면서 짜임새가 느슨한 기계를 비로소 조종할 수 있다.
p.123

대중이 광고 방법에 대해 아무리 까다롭고 냉소적으로 나온다 할지라도 결국에는 반응하게 되어있다. 대중은 늘 음식을 필요로 하고, 오락을 갈구하고, 아름다움을 동경하고, 지도자를 따르기 때문이다.
p.261

선전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현명한 사람일수록 선전은 생산적인 목표를 달성하고 무질서를 바로잡는 데 필요한 현대적 도구라는 점을 직시한다.
p.261






※다음 바톤은 버네이스가 이론적으로 영향받은 구스타브 르 봉, (버네이스의 삼촌인) 프로이트 등이 주장했던 군중심리이론에 관련된 서적인 '군중의 시대'를 읽을 예정인데 언제까지 읽고 또 언제 포스팅까지 할진 미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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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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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는 아니지만 아무런 주제도 없이
닥치는대로 책을 읽으며 하루종일 뒹굴거리고 싶을 때가 있다.

물론 지금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게 아쉽기만 하다.



어찌되었거나 요즘들어 메모를 종종 하는 편이다.
나는 현재 기억력이 엄청나게 감퇴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대학생활 내내 주6일을 술을 푸고 그중 필름이 한두번씩 끊기는 좆막장 생활을 하다가
회사에 들어가서 4시간 동안 술퍼먹고 4시간 자고 출근하는 생활을 3년을 했더니
이젠 머리 자체가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기분이다. 

요즘은 기억하기 위해 적고나서는 적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시간이 지나 그것을 우연히 다시보고서는 아, 그랬구나 하며 손뼉을 치는 경우가 간혹 있을 정도로
내 뇌세포는 막장을 향하고 있는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난 정말 자기관리를 더럽게 못한다. 반성좀 하자. 하아...


노래는 역시 책과 관련된 노래로..ㅋ;;







돌아보면 어릴적에는 책읽기를 참 좋아했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후에 새마을 농촌지도자?;; 뭐 이런 수상한 직함을 달고 있던 막내삼촌 덕분에
난 집 한구석에 놓여있던 새마을문고;의 책들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될 수 있었다.

머.. 그때 마을문고에서 읽은 책들은 농업기술에 대한 책이 절대 다수였으나
어린 나에게 신기하고 놀라운 세계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은 언제나 감동이었기에
나는 읽은 책을 또 읽고 다시 읽었으며, 모르는 것은 국어사전을 펴놓고 찾아보는 열성도 갖고 있었다.

송아지 부랄까는 법이나 레그혼이니 요크셔니 하는 여러 가축들의 품종명이 아직도 기억이 나는 걸 보면
그때는 그래도 나름 똘똘했었던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아..;; 작사작곡자분들은 이 노래를 만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초등학교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참 많은 동화책들을 읽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유산'이라는 무시무시한 현상을 알게 해준 장화홍련이라는 공포스러운 동화였고,

그 잔혹함에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한동안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동화들은 모두 내치고
잔인함과 복수를 다루고 있는 동화들만 내리 읽던 기억도 난다.


집에는 책이 의외로 많았다.
마을문고에서 남아있던 계몽사의 열두권짜리 청소년용 백과사전과
아버지가 후배의 간청으로 월부로 사셨다던 문학전질과
어머니가 처녀시절 사읽으셨다던 월간 현대문학같은 잡지들까지.. 정말 읽고자 하면 한도 끝도 없었다.

어른들의 성행위가 묘사된 장면에서는 알수는 없지만 뭔가 몸 어딘가에서 전율이 오는 듯한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될 것 같은 비밀스러운 감정을 느끼기도 했었고 

강경애의 지하촌이나 전상국의 아베의 가족과 같이
동화책에서는 찾아 볼 수 없던 파멸과 죽음과 몰락으로 이어지는 비참한 결말의 이야기들에
내가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한숨도 몰래 내쉬기도 했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 어머니께서 선물해 주신 70권짜리 과학앨범 시리즈 전질은
지금도 시골에 내려가게 되면 꺼내어 읽곤 하는 내게 고향과도 같은 책이었다.

짜증나고 힘든 일이 있을때 그 중에서 서너권을 골라 정독을 하다보면
어느새 나는 행복한 감정으로 변해있었던 듯 하다.

물론 12년 내내 백일장 등에서 상을 탄 적은 단 한번도 없었지만;
나의 생각을 글로 풀어내보려는 노력은 그때부터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추억의 과학앨범ㅋ




중고교 시절에 들어서면서 오히려 독서는 뜸해졌다.
주말마다 구립도서관에 가긴 했지만 라면 사먹고 자다 오는게 전부였었고
기껏 책이래봐야 스티븐 킹이나 시드니 셀던, 로빈 쿡 등의 상업소설들만 줄창 읽으며 시간을 때우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을 읽게 되었는데 좀 감동이었다.
글에서 느껴지는 간지가 A급 태풍을 연상케 했고 나도 대학가면 소설속 주인공의 저런 포스가 나올까 하는 생각에
갑자기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겠다는 초딩스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간지 쩌는 이문열의 여러 소설들을 미친 듯 읽었고
급기야는 논술에 도움된다는 이문열 삼국지까지도 독파하게 되었다;
그러나 고등학교때 제일 많이 본 것은 독서실에서 아이들과 돌려본
이나중 탁구부나 베르세르크 류의 시리즈물 만화책이었던 것 같다.




출처: dokoissyo.egloos.com/1319659

내인생 최고의 만화, 이나중 탁구부..





그렇게 찌질거리다가 어쨌거나 대학에 왔다.
선배들이 추천해주는 다현사 시리즈를 아무 생각없이 읽었다.
그동안 세상에 속고 살아온 것에 분노하게 되었다.


그래서 과방에 널려있는 붉은 색 책들을 관심있게 보았다.
수용과 거부로 충돌하는 내 마음에 놀라며 혼란을 느끼기 시작했다.

술퍼먹고 동아리 선배네 집에서 자고 일어났을 때였다.
'난 태백산맥을 안읽은 사람은 대학생이 아니라고 생각해'라고 말하는 선배의 말에 화들짝 놀라 태백산맥을 읽기 시작했다.
아 씨바... 이건 역사를 문학으로 승화시킨 한떨기 예술이었다.
난 결국 알바한 돈으로 태백산맥을, 훗날 아리랑과 한강까지 장만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공서적 살 돈으로 술퍼먹고 친구 책을 빌려 제본하는 막장테크를 타기 시작하면서 
독서는 그렇게 나와 너무도 멀어지기 시작했다.


겨울꼬막처럼 읽히는;; 내겐 최고의 대하소설입니다




그렇게 술퍼먹고 놀다가 군대에 갔다.
책이라고는 까치병장이나 핑클도 아는 국군의 주적 따위의 막장만화밖에 못보다가

어느덧 책읽을 짬밥이 되어 책장을 뒤지다 발견한 것이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었다.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이렇게 괴로울 줄이야.
이주만에 간신히 완독했다. 내용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저 읽어냈다는 자신이 너무도 뿌듯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도 읽었다. 
나의 사고의 틀이 작살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국민교육의 도장이라던 군대에서 배울 것은 그닥 없었지만 
그 시기에 접했던 책들만큼은 참 소중했던 것 같다.



레전드 중의 레전드..





그렇게 어영부영 삐대다가 제대하고 복학을 했다.
바깥세상은 인터넷의 시대로 바뀌어 있었다. 이른바 논객들이 키배를 뜨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월장사태와 안티조선의 파도 속에서 활약하던 원조 키워 진중권의 글을 보고 한순간에 그의 빠돌이가 되었다.

그의 책을 미친듯 읽기 시작했고, 웹에서 이른바 논객이라 불리는 이들의 책을 미친듯이 읽기 시작했다.


그러던 도중 어느순간 느꼈다. 난 이들의 생각을 이해하기에는 기본 지식과 사고의 깊이가 너무도 부족하구나.

그러나 나는 사고의 깊이를 갈고 닦는 지적 수련은 전혀 하지 않았고

대신 대균쌤과 토마토의 토익책을 갈고 닦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좋지 않았고 취업의 벽은 높았다고 전해진다.

이문열과 젖소부인에서의 그 통쾌함은 지금도 여전하다.

끔찍해..




어찌어찌하여 운좋게 취업을 했다.
대세는 경제/경영서적 및 자기계발서라길래 
나 역시 흐름에 편승하여 그런 부류의 책들을 사읽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다. 분노가 일었다.
살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상식을 가진 사람이 되기 위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 시점이었던 것 같다.

회사를 그만둘 작정을 한 마지막 해에는 업무비용 일부를 유용하여
다달이 소설과 사회과학서적을 사보는 깡을 부렸다.
회사를 더욱 다니기 싫어졌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요리관련 서적들을 샀다. 사진이 예뻤다.
하지만 그렇게 못 만드는 자신이 미워졌다.

한편으론 예전처럼 소설과 사회과학 서적들을 샀다.
하지만 예전엔 시간이 없어 못읽었다지만 지금은 몸이 피곤해 못읽었다.

예나 지금이나 변명은 하면 할 수록 느는게 맞다;









올해들어 책을 안읽는 자신에 대해 몹시 반성하게 되었다.
사는 것은 줄이고 대신 그동안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을 파기 시작했다.
버거웠다.

아직도 읽을 책이 산처럼 쌓여 있건만 
일반수학의 정석과 성문기본영어처럼 앞의 몇 페이지만 읽고 내팽겨쳤던 책을 다시 꺼내 차근차근 읽어가는 일은 
군대시절 독서의 추억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더라.   



아, 여기가 오늘 이 글을 쓴 결론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난 오늘 다시 일을 저질렀다.
인터x크에서 책 10권 주문-_-;;;

각종 할인권과 포인트로 대충 9만원 정도로 맞추긴 했으나
이것들을 과연 언제 다 읽을 수 있을지는 몹시 의문이다.


실은 최근 모씨의 악마의 유혹에 매우 시달리고 있는 관계로 
차라리 긍정적인 일에 돈을 써버려 만일의 사태를 미연에 방지해야 할 것 같다는
급박한 생각에서 저지른 일 되겠다;


요즘 추워서 운동도 제대로 안하고 있는데 가열차게 독서에 불을 지펴보아야 겠구나.
이제 연말이라 바쁘겠지만 틈틈이 읽으면서 짧게라도 여기 메모장에 감상을 올려야겠다.
한번 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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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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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쉬는 날, 마포에서 실기시험을 보고나서 시간이 애매하여 중앙시네마에서 '파주'를 보았다.

인터넷에서 대충 스토리는 보았기에 설마 용1주골이나 모종의 야1설스런 내용을 기대하진 않았고
어느정도 예상한대로 몹시 우울한 영화였다.



지금부터 스포일러 시작.




잘 만든 영화다.


이 영화를 보면서 맨 처음 느낀 점은 '아, 이건 여성감독의 작품이구나' 하는 것이었는데,
남자가 느끼기엔 생소하고 조금은 이질적이기까지 한 섬세한 감정묘사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날더러 이상하다 너 마초아니냐 라고 한다면 머 할 말은 없다만.. 뭐 개인적인 느낌은 그랬다고.

난 이렇게 구체적인 설명이 적고 세밀하게 감정의 흐름과 변화를 읽어내야 하는 영화를 보면
정신적 피로도가 급격하게 올라가버리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나면 몹시나 피곤해지는 경향이 있다.
내가 뭐 영화를 자주 보는 것도 아니기에 다음엔 좀 쉽게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보려고 한다;

그리고.. 영화포스터의 카피 뽑은 양반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야1설 스러운 문구를 썼을까?
그러면 관객이 좀 더 들 것이라 생각했던건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론 제발 좀 안그랬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쨌거나 끝없이 바뀌는 시점과 그리 친절하지 않은 설명속에서
극중 인물들이 보여주는 감정의 흐름을 끊이지 않고 따라가려 하다 보면
어느새 이 영화의 희뿌연 매력속에 빠져버리게 된다.
몹시 우울한 영화지만 다시 보라고 하면 다시 볼 의향도 있는, 여운이 많이 남는 영화 되겠다ㅋ

그럼 이제 세부적으로 들어가보면..



1. 이선균(중식)

그의 끝없는 부채의식에 답답함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공감한다.

무엇보다 예수쟁이+운동권이라는 그의 배경설정에서 근거하듯
한국사회에서 이런 옵션을 내보이고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야말로 착하고 성실하고 거짓없이 살아야 한다.
사회적으로 그런 이들에게 도덕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많고 그가 욕심껏 가질 수 있는 것은 극히 적기 때문에
그가 연기하는 답답하고 무기력하고 죄의식에 짓눌리고 본능을 억눌러야만 하는 모습은
어쩌면 당연한 업보일 수도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 그 역시 수컷의 본능을 억누르지 못한다.
그가 파주로 도망치게 된 이유자체가 애딸린 유부녀에게 욕정을 느끼고 관계를 가졌다는 것에서 비롯되며
그는 그것에 대한 죄를 씻으려 노력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내가 아닌 처제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되고
후반부에서는 그녀에게 처음으로 고백을 하고 그녀와 관계를 가지려 한다.

아씨발.. 이건 남자라는 존재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고등교육을 받고 사회변혁과 어려운 이들을 위한 봉사와 약자들을 위한 헌신을 통해 평생을 바쳐온 그도
결국에는 발정나 눈이 벌개진 개와 다를 바 없었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그의 그러한 일련의 삶들은
그의 진심이라기 보다는 죄의식을 씻어내기 위해 택한 고행이 아니었나 싶다.

중식은 자신의 감정에 한번도 솔직해 본 적이 없었고
그것은 타인들에 대한 봉사와 이타심으로 왜곡되어 드러난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칭송했겠지만
본인 스스로는 자신이 택한 길이야말로 자신을 속이고 왜곡하는 끝없는 갈등의 길이었을 것이다.

그가 유치장에서 언급한 '길잃은 한마리 양'의 비유는 
결과적으로는 타락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 구원자로 은모를 염두에 두고 있던 것이라 생각하면 좀 오바일까?

그는 그 사랑의 감정때문에 그 안개 자욱하고 음침한 그 도시를 떠나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 자신을 구원해 줄 그녀를 기다리며
감옥에서, 그리고 철거현장에서 자신을 괴롭히며 힘든 고행을 하고 있었고
그녀에게 상처가 될 사실을 끝까지 숨기며 그것을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끝내는 자신을 다시 한번 망가뜨리게 하는 부메랑이 되어버렸다.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 묵묵히 자신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향해 일하는 사람
그리고 서툰 단 한번의 표현, '너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어'라는 표현이
다시 한번 그를 파멸로 내몰게 되는 아이러니는 참 슬프다.

그 후... 중식은 이제 다시 어디로 가야 할까?
모든 것은 다 그를 떠났고 그가 마지막까지 사랑하고 지키고자 했던 존재 역시 그를 저버렸다.
혹시 파주라는 도시 자체가 그가 존재해야 할 자리가 아니었던 걸까?
어쩌면 파주라는 그 도시는 그의 모든 것들을 야금야금 깎아먹는 지옥과도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 
하기야.. 도망자에게 안식처란 있을 수 없을 테니, 파주가 아니더라도 그가 있을 수 있는 곳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그저 이방인이었고, 은모를 통해 머무르고 싶어했을 뿐이다.
에효.. 써놓은걸 보니 그냥 한숨만 나온다;




2. 서우

'미쓰홍당무' 이후 그녀를 영화에서 두번째로 보는데 그녀의 연기력에 깜짝 놀랐다. 
무엇보다 중의적이고 다중적이고 복합적인(정확한 단어를 못찾겠어서 그냥 주욱 나열해봤다;)감정연기가 극강이었다.
형부 중식을 차지하고 싶은 욕망과 더불어 언니에 대한 죄의식이,
중식이 자신에게 가진 진실한 감정을 알고싶지만 언니의 죽음의 이유를 직시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그와 함께 있고 싶지만 도피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온갖 복합적인 감정의 덩어리들을
몇 안되는 대사와 그렁거리는 눈동자로 다 표현해내었다는 것이 놀랍다. 연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듯.

그녀 역시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다.
사랑의 감정은 죄의식이 되기도 하고 증오가 되기도 하고 도피로 이어지기도 한다.
알고 있지만 해선 안되고 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가 될 것임을 알기에
그녀는 항상 불안해하고 그 진실에 다가가려 하다가 결국 도망치고 만다.

그녀 역시 중식의 등장으로 인해 파주라는 도시는
더이상 자신이 존재하지만 존재해서는 안될 도시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녀 역시 이 짙은 안개속의 도시를 도망쳐나가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이곳을 잊을 수 있을까.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인간의 감정 역시 그런 뿌옇고 흐릿해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일텐데.




결국 이 영화는 인물의 감정흐름을 봐야 하는 영화인가 보다.
이 지독하게 꼬아놓은 변덕스런 감정의 흐름에 몸을 싣다 보면
순간순간 두 주인공의 마음 속에 들어가버린 듯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심한 우울함에 빠지게 된다;

머물고 있되 머물 수 없는 처지의 사람들은
철거현장에도 수배자의 은신처에도 교회 공부방에도 존재한다.
서로에게 감정이 머물지만 머물러선 안될 사람들 역시 그 곳에서 함께 살아간다.
진실은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지만, 알아서는 안될 진실도 있다.
감정은 솔직한 것이 좋지만 때로는 숨겨야 할 때도 있다.
이런 모순되고 복잡한 얘기들을 더 복잡하게 풀어낸 감독에게 찬사를 보내면서
졸린 관계로 대충 정리하고 자야겠다.

안보신 분들은 한번 보세요. 
특히 좀 우울해지고 싶으신 분께는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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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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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자본론;의 핵심을 찌르는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임승수 저, 시대의 창 2008.12.23



잉여


이 책을 사놓고 붙잡고 있던 기간은 거의 넉달 정도?;; 일종의 독후감이라고 생각하고 쓴다.


돌아보면 사회과학부에서 4년간 등록금을 쳐발랐다는 놈이 
자본론은 물론이고 맨큐의 경제학; 한번 안읽고 졸업한 것이 마냥 부끄럽기만 하다.
내게 있어 지금껏 맑스의 이론들이란 그저 뜬구름 같은 조각지식으로만 존재했었기에
이제서야 자본의 메커니즘에 대해 몹시 개략적으로나마 눈을 뜬 것이 참 겸연쩍기도 하고 한편으론 다행스럽기도 하다.

요즘 한동안 잉여질의 극을 달리던 내게 이 책은 또다른 의미의 잉여에 대해 눈을 뜨게 해주었다.
위의 사진에서 보듯, 자본의 이윤창출에 도움이 안되는 인간이 바로 이 사회의 잉여;라 할 수 있겠는데
이렇게 쓰이는 용법으로는 폐인, 백수, 키워, 산업예비군;; 등의 유의어로 조금은 뜻을 풀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여튼; 왜 이렇게 우리 사회에는 잉여;들이 넘칠까.
일하고 싶은데 일자리는 그렇게 없고 그나마 일해보다보면 왜그리 조건이 개좆같을까.
그리고 그렇게 꾸역꾸역 돈을 벌면 난 과연 집은 마련할 수 있고 결혼은 할 수 있을까.
걱정없이 자녀를 낳을 수 있고 그 낳은 자녀를 무사히 키워 남들처럼 교육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그동안 난 마음 편하게 아플 수 있고 쉴 수 있고 일할 수 있고 늙어갈 수 있을까..

얼마전 읽었던 한겨레 21의 기획기사 노동 OTL시리즈를 보며 공감의 경탄과 끝없는 한숨을 함께 내쉬게 된 것도 
아마 그와 같은 고민의 맥락에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돌아보면 나역시도 대학시절 중 1/4정도를 학비와 생활비를 위해 저 라인에서 일하며 노동력의 대가를 받았더랬다. 



개인적으로는 제 6강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욱 착취당한다고?'를 읽으며 '아 씨바'하는 감탄사를 내질렀는데,
'상대적 잉여가치의 창출'이라는 개념을 접하면서 지금 우리 경제현실의 어두운 면을 바로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기술의 발달에 따른 생산력의 증가는 자본가에게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상대적 잉여가치의 창출로 이어지지만,
반대로 생산력의 증가로 생필품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노동자들은 '절대적' 삶의 질은 높아졌으나 
'상대적' 삶의 질은 더욱 하락하는 결과가 주어진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오늘 이 땅에서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으나 쉽게 간과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전율했다.

우리는 예전에 비해 쉽고 저렴하게 다양한 제품들을 구입할 수 있고 그걸로 삶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해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그 원인모를 불안함의 이유를 풀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를 난 이 책에서 찾은 셈이다.


나같이 게으르고 머리 나쁜 놈에게도 각성의 계기를 준 이 책을 살짝 추천해본다.
일단은 나처럼 초반에 몰려드는 수식들에 경기를 일으키면 안읽히니 초딩 산수라 생각하고 접근해야 나을 듯 하다;
다 읽고 나니 필자가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쓰려고 엄청나게 노력한 책이구나 라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일단 읽다보면 고민거리와 의문점들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이 정상일텐데
그 즈음에서 시사잡지를 펴놓고 요즘 돌아가는 상황과 맞추어 본다면
이 나라는 맑스가 분석한 자본의 어두운 속성에 너무도 충실히 복무하고 있음을 어느덧 깨닫게 된다.
어찌보면 가카는 맑스가 우려한 막장 자본주의를 지금 이 곳에서 재현하기 위해 두세기를 건너 나타난 사절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며 떠올랐던 수많은 고민거리와 의문들은 관련한 다른 서적들로 풀어가기로 하며 
오늘은 이 책의 목차를 훑으며 머릿속으로 다시한번 내용들을 생각하며 잠들어야겠다.

어쨌거나 막막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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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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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는 여기
http://www.bravebrothers.co.kr/
관련기사는 여기
ttp://www.newshankuk.com/news/news_view.asp?articleno=c20080506092853e8170






엊그제 쉬는날 고시충 친구랑 만나기로 했었다.
이미 지난주에 해뜰 때 까지 미친듯 퍼마셨던 터라
만나봐야 또다시 술만 진탕 퍼마실 것 같아서
 
뭐 발전적인 일이 없을까 하고 검색창에서 공연정보를 뒤지다가
이 뮤지컬이 눈에 들어오더라.

코엑스 아티움에서의 굿바이 공연이라 30% 할인이라길래
잽싸게 예매하고 인근에서 근무하는 야임마님과 함께 셋이서 삼성역에서 만났다.




머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좋았다-_-)=b




유튜브에서 하나 따왔다.
이 장면은 지엄한 문중 어르신들이 힙합전사;로 돌변하는 그 곡, '축시 춘배' 되겠음







머.. 줄거리나 출연진 수상내역 등등은 다른데서 찾아봐도 충분하니 생략.
장유정 연출 장소영 음악에 당일 석봉/주봉 역은 이석준/김동욱 캐스팅이었다.
특히 김동욱의 경우는 여성팬들의 비명소리;가 꽤 자주 들려오더라;
의외로 발성도 좋고 연기도 멋지게 하고.. 간지좀 나더라고.



난 지금껏 살아오면서 뮤지컬이란 걸 딱 세 편 보았는데
그날은 우리 창작 뮤지컬이 얼마나 뛰어난 수준인가를 느낄 수 있었던 것 자리였던 것 같다.


먼저 전통 장례의식이나 유림의 문화, 유교적 가치관, 세대간 갈등 이런 조금은 무겁고 진부한 주제를 이렇게 재미있고 감동적인 뮤지컬로 풀어나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인상적이었고
두번째로 작곡가분이 곡을 참 다양하고 센스있게 잘 만드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고
세번째로는 무대구성과 의상등 시각적인 도구들이 참 화려하고 짜임새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동행한 고시생 친구는
실제로 OO정씨 몇대 종손 집안의 장손으로서;;
극중 주봉이와 마찬가지로 서른 한살 고시생의 신분에, 요즘 촛불시위를 비롯하여 데모에 여념이 없는 좌빨;인데다 보수적인 아버지와 여전히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마디로 극중 인물과 싱크로율이 99%였던 놈이었다.
 

그녀석은 1부 보고 나서 밖에 나와 담배 피우며 한숨을 쉬더라.
'아 씨발 왜 이런걸 보자고 했어' 하면서..
-_-;;








머.. 전체적인 내용과 결말은 모르고 갔더라도 어느정도 예상된 길로 가는 내용이긴 했지만
중간중간 나오는 여러 장치들이 그런 진부함을 감동과 흥미로움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론 정수라의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이 곡을 패러디한
형제의 듀엣곡 '난 니가 싫었어.. 난 형이 싫었어' (원곡명은 '난 니가 싫어Ver.1)에서 미칠듯이 웃었고
간지가 좔좔 흐르는 오로라(이주원)씨의 자태와 '로라의 사연'에서 들려주는 음성에 웃음과 더불어 감탄사를 연발할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오로라씨가 어머니 순례역할까지 맡아 했으니 그녀의 공력을 한층 더 느낄 수 있었고
포스는 역시 춘배 역할의 안세호님이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머, 지난번 똥파리 포스팅 할때도 잠깐 언급하긴 했지만
나 역시 아버지를 무척이나 싫어하고 닮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극중 아들들이 외치는 '꼰대', '용서못할 인간', '당신처럼 살고 싶진 않았어' 등의 대사에 자연스럽게 감정이입하게 되었고, 
2부에서 춘배가 순례와 함께 부르는 '순례의 기억' 에서 춘배 파트에서 그가 부르는 노래에서 조금은 연민의 감정과 슬픔 비스무레 한 것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이 곡은 이 뮤지컬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이 담겨있는, 구성측면에서도 최고의 완성도를 보여주는넘버가 아닐까 싶다) 

가사가 아마도 이렇던가...

'세상을 바꾸기엔 난 힘이 없었어... 무거운 종손의 의무는 나혼자서도 충분해...
아들들아... 너희에겐 이런 인생 물려주고 싶지 않구나... 차라리 날 원망하고 발을 끊어라...'

후... 어쨌거나 이제는 그 사람을 이해하려 해 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이 뮤지컬 보고 절로 집에 안부전화를 하게 되었으니
참 내겐 여러모로 긍정적인 역할을 한 듯 하다.


유월, 시청 앞에서 그 고시생 친구의 동생이 내게 해준 말이 생각난다.
'우리 형, 아버지 무지 싫어하잖아요. 근데 요새 보면 둘 다 똑같아요.
형이 아버지보고 욕하던 그런 모습들이 이제 형한테 그대로 있는거 보면
참 미워하면서 닮는다는 말이 딱 맞다니까요. 저한테 하는거 보세요ㅋ;;'
요런 내용이었던 듯...



----------------------------

추가)
이제와서 들으면 모두에게 아주 인상적일 이야기가 하나 있다.

우리 시골가는 길에 36번 국도를 타고 봉화읍을 막 빠져나와 영동선 철교 아래를 빠져나오면
봉화에서 보기 드문; 나름대로 너른 들판과 야트막한 산자락, 그리고 앞의 내성천 지류가 흐르는
이른바 금계포란;의 형세를 자랑하는 명당터가 있는데, 이 곳은 바로
'닭실마을'이라 불리는 이제는 전국적으로도 꽤나 알려진 안동권씨 집성촌이다.
(울 외할머니께서도 닭실 권씨;)

충재 권벌선생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유서깊은 양반 동네로
요즘은 전통방식으로 제작하는 한과로 유명하고
이름값에 걸맞게 중고딩들및 성인들의 문화유산 답사코스가 되어버린 양반 마을 되겠다.


한편 지역주민들 사이에 떠도는 이곳에 얽힌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는데,

과거... 여기서 오뚜기부대 훈련날짜 돌아오듯; 제사를 지내던
시집온지 얼마 안된 종갓집 맏며느리가
어느 제삿날, 떡을 찌다가 그만 급한 맘에 떡시루를 살짝 열어보았다고 한다.
근데 아시다시피 떡은 한번 김이 빠지면 돌이킬 수 없다.

시간은 흐르고, 떡은 그대로 쪄지지 않은 상태인데
방에서는 제사 주관하는 아재 할배들이 '야야, 떡이 안왔니라~ 아직 안됐나?' 하고 보채니

이 며느리, 두렵고 당황스러운 마음에 그만 처마에 목매달고 자살을 했다고 하는
정말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가 있다.
(에필로그로 그 마을에서는 그 이후 제사때 떡을 '직접'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이야기는 이문열 아저씨가 '선택'이라는 좆같은 소설에서 그 내용을 차용한 바 있는데,
봉화와 맞먹는 캐깡촌 영양 출신인 이문열 아저씨가 알 정도였다면
이 이야기는 이 유교문화의 마지막 보루, 스톰윈드;인 경북 북부지역의 전설과도 같은
유교문화 가치의 엄중함, 지엄함에 대한 한 예로 자리하고 있나보다.


참... 한숨이 나오고 좆같은 감정이 들지 않나?


근데 이걸 연세있는 분들은
어떤 향수의 감정으로,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것으로 여기는 분들이 아직도 많으시다.


극중에서 순례의 시어머니가 종갓집 종부가 남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며
치질을 숨기고 치료를 받지 않다가 숨진 것처럼
순례 역시 종갓집 종부의 자존을 지키려 자신의 치매를 자녀들에게까지 알리지 않고
숨을 거둔 것 역시 이 떡시루;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정말 가슴을 치고 통탄을 해야 마땅한 일이다.
그리고 그 유산은 그렇게 흐르고 흘러
어느덧 나에게까지 건너왔다..


그자리에서 같이 공연을 보던 친구들...
너희들도 나도 다 가부장제의 피해자들이잖아.
그러면서도 우리도 천천히 우리 아버지들과 같은 꼰대+마초가 되어가는걸까?
우린 아니었음 좋겠는데..






머 어쨌거나 나름 교훈적인 내용에
재미있고 다양하고 아름다운 음악들에
아기자기하고 흡입력있는 연출이 좋았던 공연이었다.

담에 돈생기면 뮤지컬 다시 한번 봐야겠다.

남자들끼리 봐도 재밌었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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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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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에 낮술이 1년간 본 한국영화중 최고라고 했었는데 아무래도 정정해야겠다;
이 영화는 지난 1년 반동안 본 한국영화중 최고였다-_-;;


지지난주 월요일에 시네시티에서 친구와 팝콘을 아구아구 집어먹으며 보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가슴이 먹먹하고 터질 것 같은 기분을 주는 영화더라고.







내용은 다른 블로그 찾아보면 다 나오니까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하고..
이 영화는 아시다시피 가정폭력이 어떤 것인지 경험을 해본 사람은 누구나 공감할 영화다.



나 어릴적엔 저녁 9시 이후는 너무 두려운 시간이었다.
그 시간까지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술이 떡이 되어 들어올 것이 분명하기에... 

늦은 밤, 술먹고 들어와 밤새 어머니, 할머니에게 행패를 부리고 집요하게 괴롭히고 모욕하다가
아침이면 아무일 없었다는 듯 안면 싹 바꿔 근엄하게 아침밥 먹고 출근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그걸 매일같이 받아내야 하는 어머니가 너무나도 불쌍하고 바보처럼 여겨졌었고.
그의 행동이 도무지 사람같지 않아 두려웠고, 나아가 그를 죽이고 싶다는 충동까지 느꼈었다.

자신의 울분을 술을 먹고 남에게 풀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더러운 버릇은
지금이야 환갑 진갑 다 지나 많이 수그러들긴 했다지만
여전히 그의 얼굴을 보노라면 지금도 가슴 한켠에선 치유되지 않은 그때의 분노가 치솟는다.
 
이 영화에서 상훈이 '아버지'라는 단어만 들으면 아버지를 찾아가 미친듯이 두들겨 패는데,
나는 그 장면에서 눈물이 쏟아질듯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가 나를 대신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이 영화는 결코 해피엔딩으로 끝나선 안된다고 난 영화내내 계속 바래왔고
감독은 다행히 끝까지 스필버그식 해피엔딩을 꺼내지 않더라.
다만 화해의 가능성만을 제시한 채.

가정폭력은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비빌 언덕이라 말하는
인간의 최하부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가장 비윤리적이고 잔혹한 행위다.

게다가 이 것은 남에게 드러낼 수도 없는 부끄러운 일로 여겨지고
그저 개인이 감내해야 할 짐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기에 더욱 그 심각성은 크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슴 한 곳에 가라앉아 있던 어떤 앙금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영화 내내 울컥울컥 할 정도로 감정의 동요를 느끼게 되었는데
어찌보면 내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이처럼 더러운 현실에 대한 차갑고 정제되지 않은  반영이 아니었나 싶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도 없고 말하고 싶지도 않은 그런 일을
감독은 너무도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건 나의 일이기도, 우리 이웃의 일이기도 하다.
다만 모두 서로에게 눈감고 모른척 하고 있을 뿐..

그게 바로 가족의 사랑이 최고의 가치라는 헐리우드 영화의 교훈적 엔딩이
사람들에겐 항상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였겠지.
(얼마전 보았던 '그랜토리노'에서 현대 미국 가족에 대한 씁쓰레한 묘사가 참 신선하더라)

영화처럼 폭력의 재생산이라는 측면을 배제하고서라도
그 가정의 구성원들은 인간에 대한 혐오와 분노,  증오와 냉소라는 감정에
모두가 피해자가 되고 마는 이러한 현실의 고리를 감독 역시 끊어야 함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과연 어떻게?

먼저 필요한 것은 상처의 치유다.
가슴 곳곳에 멍이 들어버린 수많은 상훈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결국 그 상처는 평생을 가게 될 것이니까.


이 영화를 보며 문득 어릴적에 우리 뒷집 아저씨가 아주머니를 개패듯 패다가
그냥 죽어버리라며 낫을 들고와 손목을 찍던 모습이 생각났다.

더욱 충격은 그들의 자녀 5남매중 그 누구도 그 모습에 반응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미 큰형은 집을 나간 상태였으니까 4자매라고 해야겠지)
내 또래의 그들은 그러한 폭력에 이젠 무감각해져서인지
주된 피해자인 어머니를 옹호하다 자신에게 올 피해가 두려워서였는지
그들은 그 모습을 외면하고 있었다.

가정폭력은 결코 답이 없는 문제다.
영화속 대사처럼 '집에 와서는 김일성처럼 구는' 이들에게
법적인 강경한 조치 빼고는 과연 무슨 해답이 있을까.

어찌되었거나 그 김일성의 자녀들의 가슴에는 깊고 깊은 상처와 분노만이 남아있는데.





P.S)영화중 유일하게 미친듯 웃게 만들었던 씬이 있다면
포장마차에서 상훈이 연희의 별명을 생각하는 장면이었다.
'일년이, 이년이(이연희;;), 삼년이, 사년이, 오년이... 썅년이... 야이 썅년아'

상훈식 언어유희;;에 난 미친듯이 웃었는데 주위의 관객들은 모두 조용해서 조금 부끄러웠다;;
그래서 이 영화는 커플들이 보면 안좋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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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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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영상에 뻑이 가서 오늘  Bully The Hell님과 영화를 보고 왔다.



영화를 보기전 우연한 전화통화에서 야임마님이 말하기를,
이 영화를 찍은 곳이 바로 내 고향인 봉화라는 것과
(내 고향은 춘양면이고 여긴 상운면이니 거진 한시간 정도 거리 되겠다)
동영상에 영화의 모든 것이 담겨있으니 빅기대는 갖지 말라는 것이었다.

여튼 둘이서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
그냥 여러 종잡을 수 없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정리가 잘 안되긴 하는데 대충 요약해보자.






1. 귀농이 꿈이라 부르짖는 당신은 결코 귀농하지 못할 것입니다.


인간미 없는 좆같은 도시생활, 사무실에 갖혀 톱니바퀴처럼 혹사당하는 삶은 이제 그만!
그래, 나도 이제 돈 모이면 훌훌 떠서 시골에서 농사지으면서 살아야지.

비디오 티비도 없고 신문 잡지도 없고 전화 한통 걸려오지 않는 아주 한적한 곳에서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님과 한백년 살고 싶다고 하는 건
조영남이나 남진의 소망만이 아닌 도시생활에 지친 이들의 어떤 로망이기도 할 것이지요.

하지만 이 것은 농촌의 현실을 몰라도 한참을 모르는 말임은 이제 많은 분들은 아실거예요.
아직도 농촌을 상록수에서 나오는 곳 정도로 생각한다면 경기도 오산.

대한민국의 농촌이라는 곳은
아름다운 풍경과 따스한 정이 넘치는 목가적인 곳이 아니고
최악의 환경속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삭막한 곳이랍니다.

젊은이들이 사라져 60대가 동네에서 청년취급을 받고
마을에서 아기 울음소리와 어린아이들 노는 소리는 이미 십수년전부터 들리지 않으며
몇 남지 않은 초등학교에서는 베트남-필리핀 혼혈아들이 왕따를 당하고
고등학교에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 탈선의 길을 걷곤 하지요.

무엇보다 지역경제에서 돈이 생산되고 순환되지 않으니
사람들은 점점 인근 도시로 빠져나가게 되고 농촌경제는 메말라만 가는 겁니다.

이런 농촌에서 자리잡고 살자면 아마 연고가 없는 사람은
처음에 심한 우울증에 시달릴 수도 있을겁니다.
우리들이 원한 것은 '농촌의 이미지'를 원한 것이지 '농촌의 현실'을 원한건 아닐테였으니까요.

그런 분들에게는 워낭소리에 나오는 그런 아름다운 사계절의 농촌풍경을 권해드립니다.
우리들은 이미지를 먹고사는 존재.
우리들 추억속에 있는, 혹은 각종 매체들을 통해 정형화된 농촌에 대한 관념들은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감동할 수 있게 우릴 만들어주지요.

그래요. 이 영화는 그것만으로 찌든 우리들에게 충분한 듯 합니다. 
당신이나 나나 말로만 그렇지 어차피 귀농할 것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그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이미지를 원했던 것이지
그 이상은 어떤 관심도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알게 된다면 무척 피곤하고 불쾌해질지도 몰라요.
저도 그걸 굳이 깨고 싶지 않구요.




2.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동물입니다.


저는 원래 동물을 좋아하지 않아요. (이 포스팅 참조)
그래서 사람과 동물이 함께 나와 서로 삶과 감정을 공유하는 동반자로 나오는 설정의 
영화나 소설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답니다.

주인공 할아버지는 40년간 소에 의지해 불편한 몸을 의지하여 농사일을 해왔습니다.
이제 죽음을 앞둔 소는 비쩍 마르고 걸음도 굼뜨고 눈빛마저 퀭하지요.
그래도 할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위해 소를 죽는 그날까지 써먹습니다.

야임마님은 그것을 보고 일종의 동물학대라고까지 비난하기까지 했는데요,
저는 그건 아닌 듯 합니다. 그건 인간의 본성이니까요.
본디 약자는 사육되고 착취되다가 효용가치가 없어지면 버려지고 마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사람이 불타죽었어도 가십거리로 치부해버리려는 우리네 현실도 분명 그렇지 않은가요?

소는 노인의 삶의 동반자이기에 앞서 삶의 수단이자 도구였습니다.
노인과 소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함께 늙어가는 자로서의 동질감, 자신의 존재의 이유의 확인, 고마움과 미안함 등의 감정은 개인적으로는 부차적인 감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영화 식객에서 성찬이 자신이 키우던 소를 도살장에 보내면서 눈물을 흘리며
'너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을께'  이러면서 발골칼을 드는 개막장 후까시는 없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동물-인간간의 유대감이라는 주제는 무척이나 닭살스럽게 느껴져요.
Mr.Hell형도 포스팅에서 언급했듯, 노인은 소가 죽기 전날까지 골골거리는 그놈의 등짝에
산처럼 나무를 실어다가 집에 쌓아야만 했어요.
그는 소가 아들보다 낫다고 말은 했었지만... 
노인 역시 인간이었으니까요.




3. 노친네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차라리... 이 영화를 이런 주제로 풀어나갔더라면 또다른 매력이 있지 않았을까요.
농촌 노인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는 갈라지고 부르튼 노인의 손가락을 잡는 화면 정도였을까..  몸이 아픈 와중에서도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농사일에서 찾을 수 밖에 없는 고집센 노인에게서 보는 것은 연민이 아닌 일종의 분노와 좌절이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가게가 어느정도 사는 사람들이 많은 동네에 있어요.
그래서인지 주말이면 노인네들이 가족과 함께 와서
7~8만원짜리 송이해삼전복이니 이런걸 시켜놓고 드시곤 해요.
그런 현실에서 봉화송이축제; 조끼를 입고 자바라; 농약모자를 쓰고서
손발이 부르트도록 일하는 노인들의 모습을 직시하려고 하니 가슴 한곳이 먹먹해지더군요.

저들을 그토록 스스로 고생하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른 길을 보지 못하도록, 그 길만을 가도록 만들어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은 왜일까요?


여튼... 어디서 감동을 느껴야 할 지, 혹은 어디서 슬프거나 아파해야 할지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던 영화였습니다.
내 아버지의, 내 친척들의 삶이 누군가에게는 아름답고 슬프고 감동적인 영상이 되겠지만
현실에서는 그 것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을 보는 사람은 쉽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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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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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리즈물들이 주는 한가지 교훈, 속편들은 오리지날만 못하다. 아.. 터미네이터2 정도는 예외로 두기로 하자; 여튼 이번에 읽은 이 소설도 그런 우리들의 선입견을 까부수지는 못할 것 같다.

전편인 눈먼자들의 도시에서 받은 감동의 여파가 너무 컸던 탓일까, 아니면 너무도 상반된 분위기가 주는 이질감 때문이었을까. 어찌되었거나 전편에서는 모든 이들의 눈이 멀어버린 아비규환의 '무정부상태'에서 한 여인과 그의 동료들이 찾아가는 인간이 가진 순수, 신뢰, 사랑, 공동체의식 등의 아름다운 면모들에서 개감동하며 눈시울을 적실뻔 했던 것과는 달리, 후편에서는 그것과 정반대의 감정, '관료제 국가의 권위주의적 체계'속에서 정치논리로 인해 인간이 가진 권리와 자유를 억압하고 나아가 음해와 모략, 살인까지 이르는 추악한 모습들 속에서 마냥 울적한 기분에 잠기게 한다.

읽으면서 과연 전편과 무슨 관련이 있는거야 라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되다가 후반부로 들어서면서 전편 등장인물들과 접점을 찾게 되었는데..
사실 속편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점이 있다. 다만 연관성을 찾아보자면 전편에서 눈뜬 여인이 말했던 구절, '우리는 애초부터 눈먼 사람들이었다.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다라는 말을 정치권력의 장으로 확대시켜 그걸 현실화 시킨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편에서는 개인이 '실명'했을 경우 집단 속에서의 혼란과 공포를 보았다면, 이번에는 '(권력에)눈이 먼 자'들이 통치하는 국가에서 살아가야 하는 (눈뜬)민중들이 겪는 참담함과 두려움을 보여주려는 듯 했다.

80%의 무효표가 나오는 정치상황도 참 재미있지만, 그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계엄령을 선포하는 정부 역시 참 재미있다. 이 것이 바로 권력을 소유한 자들의 속성인가보다.
우리들은 권력은 상호간의 관계속에서 이루어진다-혹은 이루어져야 한다고 배웠건만, 실제로 권력은 실체이고 소유물과도 같아서 그 것을 소유해야만 하는 제로섬게임과도 같은가 보다. (이건 아~주 옛날에 권력실체론-권력관계론 뭐 이런 식으로 배웠었던 듯;)

아오.. 서두부터 계속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현실과 연관시키고 마는 자신을 억누르려 무지 애먹었다.   
이 책을 올해 읽은 이들 대부분은 한번쯤 올해의 촛불정국과 연관지어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실제로 계엄선포후 수도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대통령궁 앞에서 침묵시위를 하는 대목에서는 오싹함까지 들었다.
소설 속에서는 결국 정권의 유지를 위해 무고한 시민을 희생양으로 삼아 언론을 통해 집중포화를 가하다가 끝내는 그 시민을 살해하고야 마는데, 심한 블랙유머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현실적이고 너무도 가슴이 아파와 견딜 수가 없었다.
올 한해 최대의 유행어가 된 이른바 '배후세력'을 이 소설속 눈 먼 권력자들 역시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출처는 hani.co.kr 입니다



전편에서 성모 마리아처럼 성스러운 존재로 묘사된 '눈뜬 여인'이 여기에서는 백색투표의 선동자이자 반정부 음모의 수괴로 지목되어 살해당하는 대목에서는 우리가 절망속에서 바라는 구원에 대한 작은 소망과 신뢰마저도 짓밟아버리는 작가의 잔혹함마저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우리들이 바라는 성모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기에 그렇게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 느껴졌다.
아아... 지금 글을 쓰면서도 너무 우울하다 휴ㅠㅠ


아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조낸 찝찝하고 불편한 소설이었으며 전편만큼의 포스는 없지만 읽고 싶으면 읽으셔도 좋은 책 되겠음.  
갠적으론 마지막으로 나온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는 왠지 읽고 싶지가 않다; 도시 시리즈는 요정도에서 마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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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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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하다고 해서 뒤늦게 1권을 사서 읽어보았는데, 재미있어서 다음날 일 끝나고 롯데마트;;에 가서 2권을 사서 다 읽어버렸다. 1권만큼의 박진감은 없었지만 그래도 간만에 사본 소설 중에서는 만족스러웠다.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은 첫 페이지를 펼치면서 떡하니 떠오르는 소설이 있을 것이다. 바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다. 장미의 이름의 한국판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그 구성을 철저히 활용하였다.

국내 팩션의 원조라면 아마도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이 그 시작일 것 같다. 이산 '정조'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낸 시초가 바로 이 소설이 아니었을까. 이 뿌리 깊은 나무 역시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궁궐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이어지는 의문의 살인, 그리고 그 것을 추적하는 주인공을 통해 밝혀지는 당대의  철학 사조간의 충돌 양상, 그리고 그러한 보수와 진보세력간의 치열한 대립구도 속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사건과 갈등, 그리고 마치 그 시공간에 있는듯 표현되는 당시 시대상황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들이 읽는 이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이른바 '팩션'이라는 장르적 특성에 철저히 부합하는 소설이다.

'다빈치 코드' 이후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 팩션이라는 장르의 매력이라면 철저한 흥미본위의 틀안에서 나름대로 독자들에게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깊이는 그리 깊지 않겠지만 당대의 철학사조와 정치상황, 문화적 흐름을 읽는 이에게 나름 소상하게 알려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니 잘 쓰여진 팩션은 흥미본위의 역사왜곡이라는 단점보다는 지적 호기심의 충족이라는 장점이 더 크리라 생각된다.



일단..  훈민정음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인 의미, 그리고 언어가 가진 의미-정치적, 철학적인 위력에 대한 이해는 소설에 더욱 집중하게 하는데,
음... 뭐랄까.. 뒤로 갈수록 쳐지고 인물과 사건들간의 개연성이 느슨해진다는 단점이 눈에 많이 띈다. 장미의 이름에서처럼 하나하나의 작은 이야기들이 모두 의미를 가지고 돌아오는 개감동의 깊이는 물론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점들이 많이 안타깝긴 하지만 '야이 씨발놈아 그럼 니가 한번 써봐라' 하면 난 당연히 못쓰기 때문에 그냥 감사히 보련다;


소설 속에서 세종을 따르는 경세실용파가 원조보수 경학파와 대립하는 구도를 보고 있자니 요즘 '실용정부'라고 이름 붙이고 난리 깝치고 있는 어떤 설치류와 그의 똘마니들의 개 울트라 아마추어 정치놀음집단들이 생각나는데, 그들은 이 소설안에서 일컬어지는 경세실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저들의 실용이라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실용인지 무엇을 위한 실용인지 잠시만 돌아보면 참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뜨거운 것이 울컥 하고 올라오려고 한다.

실용을 외치며 한글을 창제하는 세종과 실용을 외치며 영어몰입교육을 하는 이명박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 같아 비교하지 않겠음;

여하튼 최소한의 깊이도 철학도 없는 시정잡배들과도 같은 자들이 왕 행세, 대신 행세를 하고 있는 꼴을 보고 있으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런 자들에게 두손모아 경제를 살려주세요 하며 뽑아준 나와 우리 국민들이 그저 개병신이 될 뿐인지라 그야말로 좆같은 세상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될 뿐이다.

아놔 시작은 젠틀하게 쓰기 시작했는데 결말이 왜이러니?;  여튼 볼만하니 시간되면 한번 읽어보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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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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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das Priest - Between The Hammer & The Anvil


(관련 기사는 링크를 참조하셈)

http://news.empas.com/show.tsp/cp_yt/20080921n09361/?kw=%C1%D6%B4%D9%BD%BA%20%3Cb%3E%26%3C%2Fb%3E 




아오 시발 후허러아ㅓㅇ널ㄴ얼ㄴ어런ㅇ러ㅏㅇㄴ러ㅏㄴㅇㄹ

지금도 좆감동으로 가슴이 진정이 안되지만; 일단 공연후기를 올려봐야겠다.




내 인생에서 최초로 구입한 '외국'앨범은 중3때 샀던 주다스프리스트 앨범이었다.

머.. 어떤 수식어도 필요없을 만큼 좋아하는,
그야말로 나의 영웅인 그들이 한국에 온다는 소식에
두말할 것도 없이 나와 친구는 즉시 R석으로 예매했고
공연이 있을 오늘만을 애타게 기다리며 올 한해를 설렘과 기대로 보내왔다.

그리고 오늘이 왔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듯 오늘을 위해 이틀의 휴가를 내고 체력을 비축해왔다.
그러나.. 어제 술을 많이 쳐마셔서 띵한 머리를 종일 싸매고 있다가
친구와 약속을 잡은 천호동으로 간신히 이동했다.

개씹덕후 친구놈은 어두운 피씨방 구석에서 존내 리니지를 하고 있었다.
사냥;이 끝나기를 기다려 반주를 간단히 하고 올림픽공원역에서 내렸다.


오오.. 역시 달랐다.
열차에서 쏟아져내리는 사람들의 포스가 달랐다.
평균연령은 삼십대 초중반 정도? 청바지에 검정색 메탈티를 입은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벌써부터 긴장과 흥분으로 가슴이 콩닥콩닥..ㅋㅋ

맥주 하나를 편의점에서 사서 마시면서 걸어갔다.
공연장 입구에서 주다스 투어 티셔츠를 사려고 했으나 이미 거덜 ㅠㅠ 아오 아쉬워라ㅠㅠㅠ
일단 남은 맥주를 비우고 공연장 안으로 진입했다.
긴장된다 ㄷㄷㄷㄷㄷㄷㄷ


공연장 안에서 친구는 긴장된다며 화장실을 몇번을 들락거렸고;;
근래 감수성이 존내 풍부해진 나는 시발 울지도 모르니까; 뭐라고 하지 말라고 친구한테 얘길 했다;;

예상외로 나의 영웅을 보러온 이들이 적어 좀 아쉽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자리에 있는 이들 모두가 일당백일테니 괜찮을거라고 위로해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로 증명되었다!!)

7시가 좀 넘어 스피커로 들려온 워피그로 사람들이 존내 낚인 후 사람들이 킥킥거리고 있을 즈음,

무대가 어두워지며 노스트라다무스 앨범의 장엄한 신디사이저음이 깔려나왔다. 바로 Dawn of Creation...
관중들 캐열광.. 바로 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어지는 Prophecy에서 멤버들 속속 등장!!
올해 예순이 넘었지만 간지넘치는 미노년; 글렌할배, 간지 해머기타를 든 케이케이옹,
묵묵히 삽질베이스를 선보이는 이안 영감, 그리고 젊은; 40대의 스캇 트래비스..

그리고 프리스트 지팡이를 들고 번쩍이는 사제복을 뒤집어 쓴 롭 옹이 등장하자
관중들은 개열광의 도가니탕@@

고개를 숙이고 열창을 하는 롭 핼포드의 모습을 보자
정말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우리의 영원한 메탈송가
"M E T A L  G O D S "!!!!!!!!!!!!!!!!!!!!!!!!!!

존내 해드뱅잉을 해대고 지랄 옆차기를 했다.
정말 눈물이 펑펑 흘러나오는데 내 입은 웃으며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너무 행복했다.
내 앞에서 나의 영웅들이 이렇게 연주를 하고 있다니...

노인네들은 '이번 공연은 환갑잔치;'라는 악플러들의 글을 한방에 날려버리려는 듯,
전성기에 필적하는 강력한 연주와 보컬로 관중들을 압도해왔다.

특히 롭핼포드는 예전 부도깡에서 보여준 노인정 안습 라이브를 잊게 해주려는듯
공연 내내 최고의 컨디션으로 자신들이 왜 메틀갓이라 불리는지를 직접 보여주었다.


이어지는 곡은 Eat Me Alive.. 약간 의외의 선곡이었지만 나름대로 스피디하고 힘차게 진행되었다.
이쯤서 눈물이 말랐던 것 같다;ㅋㅋ

그리고 이어진 곡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Between the Hammer and the Anvil !!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곡인데 공연에서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기에 그 기쁨은 두배 세배였다.
인트로의 지잉!~지잉!~ 하는 기타소리를 들으며 캐열광했고
질주하는 기타리프에 맞춰 미친듯 방방 뛰어댔다.

그러고 좀 쉬려나 싶었는데 다시 시작되는 인트로..
이게 뭐지? 오오!! 강철독수리 앨범에 있는 Devil's Child!!!@@!!!
이 캐고음 노래를 선택하다니.. 대단하다 롭옹!!
I believe you're the devil!! I believe you're the devil's child!! 이 구절을 관중들이 존내 떼창!!
캐고음의 브릿지 부분.. 물론 전성기의 샤우팅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동안의 우려를 완전히 떨치고 부활했다는 느낌을 받았을 정도로 개발악을 해대시더라.

그리고 롭옹이 멘트를 날리신다.

"뷁킹더 왓?!!!"

순간 얼어붙었다.
이거 내가 프리스트 라이브를 다시 듣는거 아니지?ㅠㅠ

"뷁킹더 왓?!!!"


"로우!!!"

관중들이 캐 열광하며 화답한다.

헤비메탈의 성문기본영어, 일반수학의 정석인 ㅅㅂ Breaking The Law!!!!
아놔 노인네들... 쉬게 하지를 않네 ㅠㅠ
그래도 앞에서 할배들이 저렇게까지 존내 달리시는데 내가 쉴 수는 없지!! 하며 계속 발광에 발광!!

관중들에게 돌린 마이크에서 사비부분이 우렁차게 울려퍼진다.
"뷁킹더로!! 뷁킹더로!!"
아악!!ㅇㅇ;ㄴ미ㅏ험;ㄴ헌;ㄴㅁ험ㄶㅇ;ㅣㅓㅠㅠㅠㅠㅠ
나 미치는 줄 알았심 ㅠㅠ


그리고 쉬어가는 타이밍의 Death 와 Angel...
노스트라다무스 앨범의 Death는 롭옹이 의자에 앉아 출연하는 간지 퍼포먼스를 보여주었고,
설마설마 했는데 아르페지오 위에 '에인줘얼~♬;;' 하면서 울려퍼지는 목소리는
친구와 내가 듣고 '꺼벙이 보컬'이라 비웃던; 노래였었던지라 현장에서 들으며 존내 놀라웠다.
ㅅㅂ 누가 Before The Dawn 부를거라고 구라친거야?;

그리고 순서는 정확하게 기억하진 잘 모르겠는데 Hell Patrol과 Dissident Aggressor가 
이 곡들의 앞뒤로 해서 나왔던 것 같다.
헬패츄롤은 매우 유치한 가사내용으로 인해 친구와 함께 패러디를 일삼던 곡이었는
설마 나올줄은 몰랐기에, 음도 좀 낮춰졌고 박자도 보다 느리게 연주되었건더욱 반가웠었고
디씨던트 어그레써는 원래 박자가 좀 까다로운 관계로 몸을 흔들기가 좀 빡셌다;


곡과 곡 사이마다 프리스트!!프리스트!!를 외쳐대던 우리 열성신도들..
멤버들이 무대에서 자리를 비우자 또다시 프리스트!!프리스트!!를 외치고 있는데
조명이 내리쬐면서 좆간지 인트로가 들어온다.
오오... 바로 강철독수리 The Hellion!!!!!!

'오오오오오!!! 오오오오오!!' 관중들은 하나가 되어 열광하며 인트로를 따라부른다.
ㅅㅂ 캐감동 캐전율 ㅠㅠㅠ
이어지는 곡은 당연히 전자눈깔 Electric Eye!!
완벽한 보컬과 완벽한 쌍기타 연주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곡이다.

팔이 떨어질 것 같고 목이 빠질 것 같았지만
저 노인네들은 쉬지도 않고 저렇게 연주하는데 우리가 가만있을 수 있냐!
동방예의지국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신조로 개발광을 해댔다.

Rock Hard Ride Free로 이어지면서 공연은 더욱 불타올랐다.
'Rock Hard!!!' 'Ride Free!!'의 떼창을 유도하며
존내 흡족한 표정을 짓는 롭옹의 얼굴을 보니 내가 더 행복해졌다.

그리고 한숨을 돌릴까 싶은데 터져나오는 곡은 '더 씨너!!!'
아놔 ㅅㅂㅠㅠ
영감님이 제대로 미치셨나보다ㅠㅠ

이곡 자체가 반음씩 올라가는 멜로디의 존나게 높은 곡인데
영감님은 좀 키를 낮춘듯 했지만 무난하게 소화하셨다.
물론 그냥 악을 쓰는 모습이 좀 안타깝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감동이었습니다요 ㅠㅠ 

그리고 좀 쉬어볼까 하는데...
후다다다다... 하는 소나기같은 스캇의 투베이스 드럼소리!!
관중들 전례없이 캐열광!!! 이건 바로 Painkiller!!!!

인트로 드러밍을 딱딱 끊어줘서 관중들의 애를 달게 하는 스캇 트래비스삼춘 ㅋㅋ
'야이 씨발놈들아 존내 감질나지? 꼴리냐?ㅋㅋ' 이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폭풍처럼 몰아치는 투베이스 드러밍, 그리고 이어지는 기타리프와 절규하는 보컬!!
아 ㅅㅂ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제 부도깡의 악몽은 잊어도 된다 ㅠㅠ
하도 발광을 해대서 이 곡이 언제 끝난지도 모르겠더라 ㅠㅠ 

이 곡을 2층무대에서 마무리하며 그들은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러나 가만히 있을 관중들인가.. 더러운 우리 메탈덕후들은
노인네들을 불러내기 위해 프리스트를 외치며 발을 굴러댔다.

그리고 시간이 잠시 흐른 다음...
어디선가 부릉부릉!!! 하는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아아암ㄴ;ㅣㅇ하ㅓ;ㅁ닝라ㅓㄴ밍;러ㅏㄴㅁㅇ;ㅣㅏ런ㅁㅇ;ㅣ라ㅓㄴㅁㅇ;리ㅓㅏㅁㄴㅇㄹ
씨바 쑝카 등장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무대 중앙이 열리며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모자를 쓴 롭옹이 들어오시고 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난 다시 한번 울었다ㅠㅠ;;;
더 이상의 소원은 없다능.. 지금 난 몹시 행복하다능..

그리고 숑카 하면 이어지는 바로 그 곡, Hell Bent for Leather!!

떼창으로 외치는 후렴구에 롭옹과 글렌옹은 무척이나 만족한 표정을 짓곤 했다.

(추가: 동영상 퍼왔어요. 출처는 http://blog.daum.net/rain863/17951977 입니다)





이어서 리퍼가 자주 부르던 의외의 곡 The Green Manalishi가 터져나왔다.
우리 많은 메탈돼지들은'오~ 오오오 오오오~' 하는 후렴구를 반복하며 롭옹을 기쁘게 해드렸다;


곡이 끝나고.. 한참 후 롭옹이 홀로 무대앞에 나와 우리에게 보컬 트레이닝을 시킨다.

'오우오우오예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내가 정말 이걸 따라하게 될 줄은 몰랐다.

존내 다양한 멜로디들을 롭의 보컬을 따라 떼창을 했다.
그럼 이 다음곡은 당근..
그렇다. You've Got Another Thing Comin'!!!!

개열광의 도가니탕에서 허우적대다 정신을 차리니 곡은 벌써 끝나 있다.
멤버들이 한자리에서 인사를 한다.
그들의 표정이 너무도 밝았다.
그들도 자신들의 연주에, 그리고 우리의 열광적인 호응에 만족스러웠나보다.
아... 너무도 아쉽다. 행복하다. 뿌듯하다. 오만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벌써 끝이라니 아쉽잖아...

우리들은 다시 프리스트를 외치며, 발을 구르며 그들의 모습을 더 보고자 했건만
어느새 객석의 불이 켜지고 로디들이 장비를 정리하고
스피커에서는 공연에서 부르지 않은 '노스트라다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악 아쉬워 ㅠㅠ







같이간 친구와 함께~





목은 다 쉬었고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내인생 최고의 휴가였다.

나의 영웅을 이렇게 알현할 수 있게 되어서,

그리고 그들이 전성기에 필적할만한 가공할 포스를 보여줘서,

그리고 그들 역시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가는 것을 보게 되어서

너무 행복했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번만 울어야 된다고 했는데
오늘 존내 울었다-_-;;;;
그래도.. 락덕이라 행복해요ㅠㅠ



추가로... 친구와 셋리스트 제목 맞추기 내기에서 내가 이겨버린 관계로
가락시장에서 회까지 얻어먹게 되었다. ㅋㅋㅋ 
고맙다 친구야^_^





한두가지 정도는 확실히 미칠 거리가 필요하다.
요즘처럼 시간도 돈도 여자도 없는 내게 이런 하늘이 내린 계기가 생긴 것에 대해 너무도 감사한다.
공연 끝에 롭옹이 다음에 또 보자고 하던데 그게 정말로 현실이 되길 다시 한번 기대해본다.

예순이 가까운 노인들이 헤비메탈만 근 40년 가까이 파올 수 있다는 것이
존경을 넘어 성스럽다는 생각까지 갖게된 오늘이었다.
나의 영웅들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에 대해 안도감과 끝없는 행복을 느낀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이제 오늘의 기억은 차츰 희미하게 사라져가겠지만
그래도 오늘의 기억은 삶에 찌들어 허우적거릴 때 작은 구원의 손길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진정으로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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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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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원작자인 코맥 맥카시의 로드를 읽었음.

이 참혹한 대재앙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는 작가의 방침인지
왜 이렇게까지 된 건지는 알 도리가 없었고 그 세상은 살아남은 인간이 가장 두려운 존재였던거임.

더이상 인간이라 부를 수도 없을 생존자들의 무리를 피해(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남으로 남으로 힘겨운 삶의 여정을 옮기는(이것 역시 뚜렷한 이유는 없음) 두 부자의 걸음걸이를 지켜보는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야말로 한숨이 조낸 나옴.

결국 인간에 대한 절망속의 한가닥 희망이라는 메세지를 읽을 것인지,
혹은 산자가 죽은자를 부러워하는 세상을 불러온, 인류가 끝내 달려가고야 말 절망에 대한 경고의 메세지를 읽을 것인지는 읽는 이의 판단에 달린 것 같음.

갠적으론 인육을 먹는 사람들(먹는 장면은 안나오지만)에 대한 묘사와 재앙 이후 가족을 버리고 목숨을 끊는 아내에 대한 기억에 대한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던 것 같음.

요런 대재앙 관련 소설 중에서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같은 경우는 작가가 보여준 인간에 대한 믿음과 휴머니즘에 대한 신뢰를 엿볼 수 있었고
스티븐 킹의 미래의 묵시록(근래 무삭제판인 스탠드(The Stand)로 나오는 듯)같은 경우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저 절대적인 존재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성찰이 조금은 있었던 것 같은데,
이 로드라는 소설은 그리 친절하지 않은 작가의 전개방식과 그저 나타나는 암울함 그자체인 설정 덕분에 더욱 더 절망적으로 다가왔음.

바다를 보았을 때 더 큰 절망을 느낀 것은 나 뿐일까.
그 곳 역시 다른 곳과 다름없는 죽음의 공간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면서
언젠가 더 넓고 거치른 세상끝 바다로 갈거라던 마지막 희망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지
그냥 걷기 위한 길을 걸어가기 위한, 힘겨운 세상을 견뎌내기 위한 자신만의 진통제인지는
나도 모르겠음. 그저 우울함.

마지막에서 주인공 남자의 아들이 또다른 생존자에게 인계(?)되어 삶을 이어가는 대목은 이 소설의 백미인 듯 한데, 사실 희망이라기 보다는 슬픔이 가슴에 번져왔음.
자녀가 있는 부모의 입장이라면 부정이라는 자식을 지키려는 사랑의 감정에 대한 소회가 먼저 다가왔을 수도 있겠지만 총각이 뭐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겠나. 뭐 그냥 그랬다고.
혹시 기회되시면 한번 읽어보셈.

지리산 올라가기 전에 차 기다리느라 피씨방와서 대충 적고감. 여기는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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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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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년 탈퇴 프로젝트 아홉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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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문제작으로 이름높던 이 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를 보고서 간만에 포스트를 올려본다.

(내가 올리는 영화 감상들은 99.9% 뒷북이다)





1. 비위 거슬리는 영화



마초의 관점에서 보았을때, 이 영화는 다분히 기분나쁜 영화다.



영화의 첫장면에서 등장하는 "소년"의 거울보는 장면에서 나는 뭔가 이상야릇한 불쾌감을 느꼈다.

내가 보아온 영화에서는 '그따위로 생긴' 소년이 절대 주인공일리 없기 때문이었다.


어리고 느끼한 얼굴에다 목소리도 얇은, 왠지 "호모 냄새"가 나는 주인공.

성장기 소년물이나 가족물 아니고서 영화에서 이러한 자가 주인공일리 없는 상황에서

이런 주인공 얼굴을 두시간동안 봐야한다는 것에 순간 짜증이 솟았다는게 내 솔직한 답변이겠지.


나같은 정신적인 마초(이젠 인정하련다-_-)에게는 상당히 꼴불견일 수 밖에 없는 캐스팅.

남자라면 극중에 친구;로 나오는 존&톰(남성인칭대명사;) 정도는 되어야 남자답다고 할 수 있겠지.

그러니까 나의 심리적 마지노선은 '남주인공은 여성적인 외모의 소유자여서는 안된다' 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겠다.


그리고,, 그가 레즈비언이란걸 관객에게 알려준 후 그(녀)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은 또한번 바뀌는데,

여자란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역시 꾸준히; 불쾌감이 든다 랄까...


수많은 포르노에서 비춰진 레즈비언의 모습은

내게 레즈비언들에 대한 어떤 판타지를 심어줬을 수도 있겠다만은

그 것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이 것,


"남자도 아닌 여자가" 여자와 연애를 한다는 사실이었다.


남자답지 않은 그를 왜 여자들이 좋아하는지 우리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러한 몰이해는 분노로 연결되기 마련인 거다.


라나의 전 남친인 존(맞나 모르겠다)의 끝없는 분노를 보며

분명 잘못된 행동이지만 '나름대로 이해가 간다'고 느꼈다면

나도 앞으로 좀 조심을 할 필요가 있겠다 -_-



나같은 경우는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라는 명제에

무의식적으로 지배당하고 있고

그리고 내 스스로도 그러려 '노력하는 입장'이란걸 돌아본다면


이 영화의 설정자체는 내가 가진 외모지상주의와 마초근성을 툭툭 건드리는

기분나쁜 주제, 그리고 혐오스런 캐스팅임에 분명하다.





2. "넌 남자야, 여자야?"



이 영화의 주제를 가장 직설적으로 말해주는 대사는

존이 주인공 브랜든의 멱살을 잡고 위 제목의 질문을 할 때,

그리고 법정에서 브랜든이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나도 모르겠다'라고 답변할 때가 아닐까 싶다.


세상이 반지의 제왕네 처럼 그렇게 둘로 명확히 나뉠 수 있다면 참 편하겠지만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또 우리네 세상 아닌가.


이런 성역할의 측면에 있어서야 뚜렷이 보수적인 관점을 갖고 있는 나라지만

세상을 보는 여러 시각에 있어서 어설프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어중간한 인물또한

바로 나라는걸 생각해 본다면, 나 역시 이 질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걸 안다.



다시 돌아가보자.

그 질문을 내 자신에게 되뇌어본다.

난 남자인가, 여자인가?


내가 초등학교 1학년쯤이었던가,

난 무척 여자애들을 동경했었던 것 같다.


여자애들을 좋아했다는게 아니라

그들처럼 되고싶어 했다는 거다.


화장실에서 두 다리 사이에 조그만 고추를 감추고

이것만 없으면 여잔데 난 왜 이게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고

가족들 몰래 동생의 인형을 갖고 놀면서 즐거워 하던 기억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그런 추억을 돌아본다면 비정상적!인 자신을 억누르기 위해

내 스스로가 그 반대의 길인 "정신적 마초"가 되려 노력한 것일 수도 있겠다.


게다가 난 외모로 봐서도 그리 남자답진 않다.

어려보이는; 얼굴과 작은 키, 비리비리한 몸..

그래서 중고등학교 시절 더욱 마초화;의 길로 들어선 것일 수 있을테고.


아, 내 목소리가 좀 낮은 편인데, 이것도 어쩌면 부단한 연습의 결과;라 할 수 있을거다.

변성기때 항상 톤을 낮춰 말하려 했었거든.


또 뭐가 있을까...

아, 어릴적 눈물이 상당히 많았던 내가

군대 들어가서부터 지금까지 눈물 한방울 흘려보지 않은 것 역시

이런 부류에 속한다고 해석할 수 있는 걸까..?



뭐... 이게 전부 성 정체성;의 확립을 위해 노력한 무의식의 공로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사회가 주는 이런저러한 압박에서 비껴나가고자 한 행위들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누구든 정신의 일부는 아니마/아니무스가 지배하고 있을테고

우리들은 지극히 사회적인 존재이며, 성역할 역시 지극히 사회적 개념이기 때문이니 말이다.


이놈의 사회가 구성원들의 공존을 위해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상대의 역할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사회가 되어야 함은 분명한 것이겠지.

난 일단 그렇게 원론적인 선에서 이 질문을 이해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3. 어쨌거나 불쾌한 영화



결론적으로는 나의 아니마가 어찌되었건 간에

지금의 내가 보는 이 영화는 불쾌함을 가져다 주는 영화였음은 분명하다.


주인공 브랜든의 좆꼴린대로 사는 생활방식이 분쟁의 원인이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며

그걸 굳이 동성애자에 대한 억압과 혐오 등과 연관지으려는건 한계가 있어 보인다.


물론 그가 여자임이 밝혀지면서 지극히 악마적으로 변하는 존&톰의 모습은

소수자에 대한 배제와 편견이 폭력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게 극 전체의 개연성을 만들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소수자들에 대한 인권문제라는 담론을 들이대기에는

이 영화는 별로 걸맞지는 않아 보인다.


결국 상대를 이해할 수는 있어도 용납할 수는 없다는 것이

이러한 이슈들에 대해 취할 수 있는 태도의 한계라고나 할까.


나 역시 이해는 할 수 있으나 그러한 사건이 내 주위에서 일어났다면

나 역시 쉽게 용납하진 못할 것 같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러한 차이를 이해하는 것도

내게는 참 긴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해 본다.


수용에 대한 준비가 되지 않은 내겐 영화내내 힘든 질문이었고,

내 주위에선 그럴리 없다고 여기기에 내겐 불쾌한 영화였다.


다시 말하자면 '미처 대비하지 못한 불쾌감'이랄까...

전혀 생각없이 살아가던 곳에 깊은 훅을 맞은 것 같아서

불편하고 불쾌했다면..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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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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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년 탈퇴 프로젝트 네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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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본 영화 중에서
 
지금껏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아있던 영화중 하나가 바로 이 영화였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파일을 찾아 다운을 받아 보게 되었는데..
 
 
다들 알다시피 이 영화는 공포소설계의 대인배, 스티븐 킹의 'the body' 가 원작이다.
 
'4계' 라는 연작소설 중 '가을' 부분에 속하는 것이 영화화 되어 이 stand by me 가 되었고
 
'봄'에 속하는 영화는 바로 그 유명한 '쇼생크 탈출' 이더라.
 
 
정통파 성장영화 + 로드무비의 전형을 보여주는 설정이 왠지 뻔해보여도 더없이 매력있음은
 
영화를 통해서 끊임없이 이끌어가는
 
자신의 성장기를 되돌아 보게 하는 흡입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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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락이라는 깡촌마을의 조금은 빗나간 12살 꼬마들 네명이


시체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리고 있는 이 영화는 그야말로 로드무비의 전형을 보여준다.



저 강과 철교, 그리고 끝없이 이어진 철로로 이루어진 화면 구도와 풍경을 보라.


참 아련한 풍경이다.


과거 어디선가 본 듯 한 왠지 모를 그리움이 들 정도로...



여기가 바로 아이에서 어른으로 진행해야 하는 과정에서 거쳐야할


첫번째 난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 나도 어렸을때 이런 다리를 친구들과 건넜었던 기억이 난다.


조낸 무서웠지만 어찌어찌 겨우 건넜었고


며칠동안 다리에서 떨어지는 악몽에 시달렸었던 꽤나 살벌했던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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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 되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지만


그 길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은 법..



여행의 의미는 그네들의 인생여정을 뜻하기도 하겠지만


좀더 구체적으로는 이제 사춘기로 접어드는 네 아이들의 정신적인 성인식을 의미한다.



성인이 되기위한 순례의 길에서


미지의 세계로 발을 내딛는 그들에게 앞으로 닥쳐올 고난은


단지 큼직한 거머리 정도로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껏 경험해왔던 것들 보다 크고 두려워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그들 앞에 나타나


그들을 시험에 들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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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이 이 소설을 사계절 중에서 가을부분에 둔 것은


성숙이라는 주제를 그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변해간다는 것의 의미를 그들은 이 여정으로 깨닫게 되었다.


또한 지금처럼 죽을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맞서며 그들의 믿음을 잃지 않는다.



이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영화 시작부분과 비교해 너무도 달라진 주인공 고디의 모습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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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 믿음.. 이런 단어들을


이렇게 보여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찌보면 무척이나 남성적인 판타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과정은 이처럼 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힘들고 어렵기에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성숙.. 이라는 단어가


아직 정신적으로 어린이와 다를 바 없는 내게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그래서 이 영화를 그렇게 다시 보고 싶어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힘들고 지칠때 곁에 기대어 함께 나아갈 친구가 내게도 당신에게도 있었겠지만


그런 소중한 경험은 아마도 이 시기가 인생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 이후 친구라는 것을 만들어 가기란 참 어려운 일이기에.



그 무엇에 기대고 싶어도 기대지 못하는 커버린 자들의 두려움과 외로움을


아마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이전만큼의 감흥은 덜했지만


가끔 힘들때 만나는 친구처럼 다가올 영화가 바로 이 영화가 아닐까 싶다.



이젠 모두 각자의 길을 가고 있지만


언젠가 그들의 이름을 듣게 된다면


예전의 그 추억들을 서로 떠올리며 미소지을 수 있는


그런 친구가 문득 보고파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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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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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년 탈퇴 프로젝트 3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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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기간동안 한 번 읽어보리라 다짐하고 샀던 민음사판의 '백년의 고독',

닷새의 휴가 중 짬짬이 시간을 내어 다 읽게 되었다.


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일단 족보부터 틈틈이 확인하면서 보는 센스가 필요하다는거..



내용을 짧게 요약해본다면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가 사촌이자 부인인 우르술라와 함께 늪지대에 마꼰도라는 마을을 건설하면서 일어나는 6대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의 흥망성쇠를 그린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소설은 소설 초반 등장하는 집시 멜키아데스의 양피지에 적힌 예언대로 "가문 최초의 인간은 나무에 묶여 있고, 최후의 인간은 개미밥이 되고 만다" 라는 말과 같이 6대째에 이르러 돼지꼬리를 단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가 죽고 마을은 회오리바람에 날리며 멸망의 길로 이르게 된다. 이러한 근원적인 불행의 단초는 근친상간이라는 인류가 가진 배덕의 본능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러한 근친상간은 부엔디아 집안이 가지고 있는 방탕함과 탐닉, 그리고 무정함과 자신으로의 침잠, 혹은 무모한 열정과 방탕함-아우렐리아노와 호세 아르까디오라는 이름이 가진 두가지 성향-들이 가진 각각의 단점(열성인자)들을 확대재생산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보여진다.

결혼전부터 근친혼이 가져오는 '돼지꼬리'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힌 우르술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들 대에서 이미 근친상간과 창녀를 통한 욕망의 분출이 이루어지고 고모와 조카간의 사랑(아마란따-아우렐리아노 호세), 아들의 어머니에 대한 욕망(아르까디오-삘라르 떼르네라) 그리고 부엔디아 가문에 돼지꼬리를 단 아이를 탄생시키게 되는 원인인 고모와 조카간의 관계(아우렐리아노-아마란따 우르술라)에 이르기 까지 숱한 근친상간에 대한 묘사는 라틴아메리카 전반에 당시 횡행했던 역사적 사실의 풍자이기도 하겠지만 인간이 태고적부터 가지고 있던 근원적인 금기이자 한편으로는 인류가 가진 욕망의 본모습을 작가가 부엔디아 집안에 투영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 이유로 이 소설은 어찌보면 마꼰도로 국한되는 내용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조소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성적코드가 많이 드러나 있는 소설이기도 하지만 작가가 뿜어내는 위트와 과장된 표현은 상상을 초월한다. 열 일곱명의 여자를 만나 열 일곱의 아들을 가지고 모두 자손을 잇지 못하고 살해당한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자손들에 대한 설명, 마꼰도를 황폐화시킨 미국인 바나나 농장주들과 결탁한 군대가 들이닥쳐 파업을 하던 마꼰도 주민 삼천명을 총살하는 장면, 그리고 그 후 삼년간 끊임없이 비가 와 집안에 물고기와 도마뱀이 돌아다니는 장면 등은 가히 압권이라 할 수 있다.  

'마술적 사실주의'라 불리우는 마르케스의 이러한 표현양식은 신비롭고 허황되면서도 그 안에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면서 그러한 현실을 조롱하고 비판하고 있기에 더욱 그 힘이 크게 다가온다. 외부와 고립되어있던 콜롬비아 밀림속 마을이 문명화와 근대화라는 거센 바람을 맞게되면서  과거의 신비로운 자연의 섭리와 생명력, 인간 본연의 조화로움이 자리를 잃고 프랑스 창녀로 들어찬 매음굴과 투전판, 자유파와 공화파로 나뉘어 마을을 피바다로 만드는 지리한 내전, 마꼰도 주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데 여념없는 미국인 바나나 농장주들의 등장과 이들의 잔혹한 학살현장들로 채워졌고, 끝내 그들에게 남은건 세월속에서 떠나버린 사람들과 생기를 잃고 폐허가 되어버린 마을의 잔상, 그리고 부엔디아 가문의 종말을 알리는 돼지꼬리를 단 아기의 탄생으로 종결되어버렸다.

문명, 그리고 그것을 안고 찾아든 자본주의라는 불청객이 인류역사를 어떤 식으로 피폐화 시키는지, 그리고 그러한 소용돌이 가운데서 그 모든 것을 지켜본 우르술라처럼 죽음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류가 가진 도덕과 그 보편적인 원칙들을 지켜가고자 했던 이들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라틴아메리카만의 토속성과 서양의 고대신화, 인류가 가진 집단무의식, 그리고 식민지 체제의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이 두루 섞여 읽는 이로 하여금 수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는 소설이 바로 이 '백년동안의 고독'이다. 여기서의 고독은 단순히 '인간은 고독한 존재입니다' 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만들어내는 사회와 제도속에서 결국 인간은 본연의 모습을 잃고 끝없이 금물고기를 만드는 아우렐리아노 대령처럼 자신만의 세계속에서 방황하게 되지만, 결국 그 것은 길고 긴 인류 역사에서 끊임없이 되풀이 될 수 밖에 없는 모두의 숙명인 것으로 작가는 묘사하고 있다.


문체가 상당히 유쾌하고 풍자적이지만 그 내부를 가로지르는 숙명적인 비감은 이 책을 쉽게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큰 이유가 되었다. 게다가 근래 한미FTA로 논란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제3세계의 현실을 유추하게 하는 이 소설은 많은 울림을 가져다 주었다. 끝없는 욕망의 팽창과 인간성 파괴를 가져오는 약탈적 자본주의가 오늘날 '바나나 리퍼블릭'으로 불리우는 중남미의 현실을 만들어 주었다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무엇일지도 한번 다시 되물어볼 필요를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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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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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enacious D

이 영화는 보기 시작하면서부터 미친듯이 웃었다. 도대체 몇번을 봤는지 모르겠다.
디오에게 기도하는 씬에서부터 이 영화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My voice is fucking powerful!!! ㅠ_ㅠ)b 잭블랙의 표정연기는 이제 더이상 따라올 자가 없을듯..
게다가 저속한 단어들이 시도때도 없이 난무하여 락심을 표현하기에 아주 적절했다.
뭐니뭐니해도 마지막의 악마와의 대결씬은 이 영화의 백미. 말이 필요없다. Let's 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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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Once

진행과 촬영기법이 일반 메이저 영화들이랑은 너무 달랐다.
처음의 느린 진행에 숨이 막힐 것 같았는데 그 숨을 틔워주고 영화에 집중하게 만든 것은
악기사에서 둘이 앉아 화음을 맞추는 바로 이 대목에서부터였다.
너무도 아름답지 않은가.
연주하며 서로를 바라보지만 계속 서로 엇갈리는 모습이 인상적인 대목이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화음. 피아노와 기타라는 이질적인 악기가
풋풋한 혼성보컬의 화음속에서 어울려가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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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Swing Girls

이 영화도 도대체 몇번을 보았는지 모르겠다. 풋풋하고 상큼한 영화다.
근데 자꾸 보면 씹덕후소리 들을까봐 이제는 안본다; (우에노 쥬리 하악;)
여고생+빅밴드스윙이라는 얄궂은 조합을 이렇게 어울릴 수 있게 만든 감독의 역량이 대단할 뿐.
극중에서 최초로 정상적인 진영을 갖춰 연주한 Make Her Mine은 살짝 감동이었다.
가장 극적인 구성은 Maxican Flyer + Sing Sing Sing 에서 드러난다.
실제로 연기를 한 이들 모두가 합숙훈련을 하면서 전 곡을 다 직접 연주했다고 하는데,
이들 밴드가 자리잡기까지 미친듯 고생하는 험난한 과정들은
악기를 배우고 공연을 준비해보신 분들이라면 한번쯤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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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SisterAct I, II

합창단 출신이라면 이 시스터액트1,2에 들어있는 노래들 중 한 곡쯤은 꼭 불러봤을거라 생각한다.
1편의 영화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그야말로 합창의 정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성이 강한 개인의 목소리들을 다듬어 전체의 하나로 조화시켜가는 과정이란
참으로 어렵고도 지루하기도 하지만 그 변해가는 과정 자체가 즐거움으로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편곡과 지휘에 의해 성가도 충분히 흥겹고 즐거워 질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Hail Holy Queen에서 보여주는 짜임새 있는 구조와 성가의 경건함과 발랄한 재기가 한데 어울린 모습은
'아 정말 합창하고 싶다' 라는 생각을 자꾸만 들게 한다.
2편은 로린 힐 라이언 토비 등의 개인기가 중심이 된 내용인지라 전편만의 감동은 덜하지만
Oh, Happy Day 의 경우는 그야말로 합창곡으로서 보여주는 극적인 반전의 전형이라 생각한다.
솔직히 Joyful, Joyful 은 과연 저게 현실에서 가능할까 라는 생각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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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School of Rock

이 역시 잭블랙의 독무대.
극중에서 어린 꼬마들을 데리고 자신의 욕망의 도구;로 사용한 잭블랙이지만
끝이 좋으면 모든게 좋은 법인 모양이다. 도대체 이런 똘똘한 애들을 어디서 찾아냈을까.
무엇보다 수업시간에 벌이는 난장들이 너무도 즐거운 영화였다.
타이틀곡을 제외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교장이 불시에 들어왔을 때 즉흥적으로 생각해낸
Math is a Wonderful Thing..  보면서 데굴데굴 굴렀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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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8 Miles

간지폭발 에미넴의 자전적 영화.
이런 랩배틀 장면은 정말 보는 이의 아드레날린을 콸콸 쏟게 만드는 명장면이다.
후반부에서 이어지는 랩배틀은 그의 센스와 위트가 어느정도인지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힙합이 뭔지는 여전히 잘 모르지만, 단순히 음악만이 아닌 생활에서 뼛속까지 막장정신으로 충만해야만
이런 멋진 래핑이 나올 수 있나 보다. 이 영화를 보고 에미넴에게 급호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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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당분간은 포스팅을 할 기회가 많이 줄어들 것 같다. 슬슬 나가봐야지;
골드웨이브의 크로스페이드 기능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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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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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지만

kbs에서 방영된 '3일' 이던가? 펜타포트 관련한 내용이 나오는 tv프로그램을 보고서는

아무래도 참을 수 없어 뒤늦게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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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엔 두번의 휴가를 다녀왔다.

7월 말에는 송도에서 펜타포트를,
8월 중순에는 지리산과 남원에서 보냈다.

참... 돌아보면 원없이 놀았던 것 같아 여한이 없구나.


특히 정적이고 자기와의 싸움이었던 지리산 등산과 달리

펜타포트에서의 들썩이는 젊음의 향연의 느낌은

일상에 매몰되어만 가던 내 자신의 숨겨진 그 무엇을 폭발시킨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생활에 치여 락;이 무엇인지 조금씩 잊어가던 지난 7월 중순,

친구의 펜타포트 이야기에 바로 티켓을 예약하고 흥분과 기대속에서 보낸 지난 7월 한달은

그야말로 펜타포트 하나만을 바라보며 지냈던 것 같다.


친구와 함께 2일차 관람권을 끊은 나는 펜타포트라 불리우는 영역에 처음으로 발을 내디디면서

놀이공원처럼 구성되어 내부에서 모든 일을 해결해야 하는 구조에 신기해 하며

의외로 허술한;, 맘만 먹으면 충분히 넘어갈 수도 있을 얕은 담장도

내년이면 한번 담장넘어 ㄱㄱㅅ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하게 했다.


개인적으로 카페테리아들의 경우에는 '생각보다는' 그리 비싸지 않은 음식과

광란;후 즐길 수 있는 차가운 맥주한잔이 준비된 매력적인 곳이 아니었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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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진을 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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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닉유스티 예쁘다 규삼아..





흐리고 서늘한 날씨가 공연을 보는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된 날이었다.

어쨌거나 시작은 바닐라 유니티라는 정체불명의 밴드부터..

노래는 전혀 스타일이 아니었지만 슬슬 움직이며 몸을 풀다가

쟈니로얄-크래쉬-테스타먼트 이렇게 지내오면서 미친 척 하고 놀아댔다.


무엇보다 펜타포트 스테이지에서 보았던 자니로얄의 공연의 경우,

하드코어라 기대를 안하고 들어갔다가 바로 기차놀이 및 슬램의 광란;속에 휘말리면서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놀게된 무시무시한 그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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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니로얄.. 처음 접해보았지만 대단한 포스의 그룹임에 분명했다..


정말 난장 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멋진 무대였고

어느새 나와 친구 역시 턱까지 차온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연신 싱글거리며 어깨를 부딪치고 공연장 여기저길 뛰어다니고 했던 거 같다.


무엇보다 격렬한 슬램도중 자빠지면 바로 주위를 자제시키고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주는 배려는 참 보기 좋았다.

(내가 참 많이 넘어졌거든 -_ㅜ)




공연 사이사이에 사진도 찍고 잡담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바쁜 현실 속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할 새로운 경험들이었다.


10대부터 30 40대까지.. 모두 상기되고 웃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너무도 자유분방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들,

젊음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를 몸으로 체험하게 하는 공간이 바로 이곳이었다.


처음엔 조금 놀라워하고 낯설어 했지만

우리 역시 그 중의 일부로 동화되어 가는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만 안타까웠던 것은

이 공연을 위해 인터넷에서 32000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구입한

킹다이아 티셔츠가 불량품이라;; 오래 입지 못했다는게 가장 아쉬웠다...

Made in Mexico ㅅㅂㄹ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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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불량품 티셔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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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공연에서 비와 지겨운 딜레이로 사람들을 지치게 했다는 것도

올해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흐린 날씨가, 그리고 비교적 매끄러운 진행이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우리가 기다렸던건 크래쉬와 테스타먼트의 양대 거포의 공연..

나름 스래쉬메탈 매냐라 한때 자부했던 우리들이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날은

오늘, 2일차 뿐이라는 것을 느끼고 이 날 이 곳에 오게 된 것도

이들 둘의 공연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들의 공연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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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게 사악한 표정의 흥찬횽



아놔;

흥찬형 간지;;


마지막곡 My Worst Enemy 할때는 거의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심장이 터질 정도로 놀다가 막판 슬램할때 양키의 파워에 날아가서

발목을 좀 접지른게 안타까웠지만.. 별로 개의치 않고 꾸준히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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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빌리 아저씨의 포스, 알렉스 스콜닉 아저씨의 간지 기타..



하악하악; 테스타먼트는 나의 영웅이라는..

락에 대한 열정이 스고이하게 표현된 공연이라는..

알렉스쨩;은 역시 본좌라는.. 하악하악;;;;



아... 뭔 말이 필요할까나...



공연 시작하자 마자 시작된 미친듯한 슬램과 기차놀이, 피플써핑에

그 자리에 선 관객들은 귀염둥이;보컬 척 빌리의 표정이 바로 변하는걸 눈치챘을 거다.

 관객들을 가리키며 "야, 이 씹쌔끼들좀 봐라?? 장난 아니게 노네?" 하는 듯한

우리들의 기대 이상의 반응에 놀라워하면서 흡족해 하는 표정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결국 갠적으로 좋아하던 The New Order 앨범 곡들에다가

예정에도 없던 앵콜까지 하고 관객들과 하이파이브까지 해주는 센스를 보여준 테스타먼트..

역시 큰형님들은 다르십니다요 ㅠㅠ


질펀한 개감동의 무대였다.





이후 이어진 오션컬러씬, 레이니썬, 라르크 등의 무대는 껌;으로 대충 즐겨주시고...


그렇게 밤늦게 돌아오는 길은 이미 맛이 가버린 다리를 질질 끌며 돌아오긴 했지만

너무 행복했고 즐거웠고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에너지를 온 몸 가득히 받아들이고 오는 길이었기에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다음 기회가 돌아온다면

반드시 또 가리라.



그 젊음이라는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해준

송도에서의 짧은 하루를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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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우린 아직 젊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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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

아... 정말 말이 필요없다.
간만에 본 정말 기분나쁜 영화였다;;
못보신 분들은 꼭 한번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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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을 보고온 여제자를 어찌어찌 한입; 하려는 성악과 교수(이병준)는
찌질함의 극한을 보여주는 캐릭터다.

그는 무시무시한 폭력의 현장에서 나약하고 비굴한 인간본성의 한 단면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가진자들의 탐욕과 위선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역할을 너무도 잘 소화해낸 그는
실제로 모대학에서 뮤지컬을 가르치는 교수라고 한다 -_-;)=b
임시번호판을 단 벤츠가 아작나는 고통;을 감내해야했던 그는
극중에서 한석규, 이문식과 버금가는 지존의 연기실력을 보여준다.


여기서 드는 약간의 의문은 극 초반 (교수에게 오디션 합격을 바라는 마음에서) 자동차에 동승한 여제자 역시
어느정도는 성상납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노래방; 수준의 발성과 연기력을 가지고도 오디션에 합격하려고 하려는 마음가짐 자체가 상당히 불순하지 않나.

아마도 그녀는 교수에게 줄말련;짓을 해서 그걸 얻고자 하는
어설프게 교활한 된장캐릭터;로 자리매김했었어야 어울렸겠지만

차예련의 연기력 부족때문인가 시나리오상의 문제 때문일까
그저 폭력의 희생양으로밖에 표현되지 않는, 그 무엇도 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역할로만 표현되는
존재감 없는 캐릭터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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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얼굴은 예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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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달수는 군대폭력에 의해 희생된 캐릭터를 보여준다.
군대에서 구타를 당해 정신이상은 물론 한쪽 귀의 청력까지 잃은 그는
돼지를 잡는 일을 하며 사는 약간 모자란 인물로 나온다.

이 사회가 만들어낸 폭력의 피해자의 전형으로 자리매김하는 역할로서
자신의 트라우마로 인해 미친 듯 폭력을 행사하는 그는
극중의 감초로서 맛깔나게 연기하고 있다.





뭐니뭐니 해도 이 영화에서 스토리나 연기면에서나 가장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은 바로 이문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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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로서 영화속 줄거리의 핵심을 담당하고 있는 그의 무게감은 정말 대단했다.
선량한 농촌총각의 모습에서 한 인간을 인격적으로 모독하고 폭력으로 무너뜨리고
나아가 그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려는 악마적인 캐릭터로 변해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소름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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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역시 어린시절 한석규가 주도한 학교폭력의 희생양이었으며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폭력의 대상을 찾아 다시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피해자이자 가해자로서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역할이었는데
결국 그 폭력의 사슬은 어떤식으로도 결코 해결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시집살이 심하게 한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면 며느리한테 더 심하게 시집살이를 시킨다던 우리네 옛말은
결국 이러한 구조화된 폭력의 순환 고리를 끊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함을 의미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동생의 참혹한 몰골을 목격하고 상황을 파악한 한석규(운재)가 던진
'진짜로 미안하다'라는 말에 그는
'이대로 못끝내겠는데.. 받은 것 돌려주려면 아직 멀었어요'라고 답한다.

이문식(봉연)이 약자였기에 당해왔던 만큼 그는 자신보다 더 약한 자를 찾아
자신이 당한 것 보다 더욱 강한 강도로 복수하는 것을 택했다.
폭력은 이렇게 한 인간의 정신을 육신을 인생을 처참하게 붕괴시켜버렸다.

그는 이미 그 것의 반복 속에서 이미 폭력에 대해 무감각해져 버린 상태..
폭력은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 역시 인간과 사회의 무리에서 탈락시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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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백미는 1시간 40분쯤에 나오는 한석규(운재)의 광기어린 폭력씬이다.
웃으면서 잔혹하게 봉연(이문식)을 구타하는 그의 모습은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살벌한 연기였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가장 불편한 장면 중의 하나였다.


불편하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영화속에서 지금까지의 일방적인 피해자였던 현재(김시후)의 모습에 동정하던 내가
그 폭력의 가해자인 봉연(이문식)이 단순한 폭력의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원인의 시발점인 운재(한석규)가 경찰이라는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자의 입장에서
다시 그 폭력의 정점에 서서 행하는, 보는 이의 예상을 넘어서버린 그 잔혹함의 향연 때문이었다.
한석규는 어찌보면 국가적인 차원에서 행사되는 폭력을 대변하는 캐릭터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서 선악의 구분은 더이상 필요치 않았고
단지 모두의 가슴속에 남은 상처와 고통에 의해
상대를 증오하고 저주하면서 살의를 키워가는 그 과정은
거의 하드고어 수준에 가까운, 섬뜩한 공포를 느낄만한 장면이었다.

봉연은 자신이 이미 설득할 수 없는 존재였고
봉연이 현재에게 행사한 폭력의 근본적 원인이 자신이었음을 깨닫게 된 그는
봉연에게 수갑을 채우며 웃으며 뇌까린다. "흐흐.. 이새끼는 이거 맞아야 깨갱을 하지"

폭력은 또다시 폭력을 부르고, 그 강도는 이제 상식선을 넘어서게 된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복수는 또다시 복수를 낳고 피는 또다시 피를 부른다.

가학의 쾌감에 심취한 듯 연신 웃으며 구타를 자행하는
광기어린 한석규의 연기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요즘 하는 영화마다 개죽을 쓰는 석규횽이 참 안타까워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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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에서 합법적 비합법적으로 자행되는 폭력들에 우리들은 무감각해져 있고
심지어 그러한 폭력을 묵인하고 심지어 조장하는 환경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네 삶은 항상 부조리와 굴종, 억압속에서 허우적댄다.
사실 이러한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내가 폭력의 피해자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미시적인 폭력까지 더한다면 그 것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느와르도 슬래셔도 하드고어 영화도 아닌데도
이렇게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추악하고 부조리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지 않나 싶다.
마무리가 너무 어설펐고 조금더 잔인했으면 하는 바램도 있지만
굳이 별을 주자면 네개는 줄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한가지 의문점..
약먹은 쥐를 먹은 양아치들과 자신의 용각산을 가져간 교수는 왜 안죽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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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

[영화]300

보고듣고읽었다 2007. 3. 30.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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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세르크세스,신탁녀,레오니다스




얼마전 남친ㅠㅠ;;과 함께 본 영화 300...

왜 봤나 싶다 ㅅㅂ...


액션신은 과도할 정도로 느려서
그 과도한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학살의 쾌감은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고

만화가 원작이라고 했다지만
괴물이나 기형으로 묘사되는 페르시안들과
양키냄새가 나는 스파르탄들
페르샤 대왕 크세르크세스는 무슨 개변태로 나오는데다
이모탈 부대란 것들은 이건 뭐 닌자들도 아니고;;

서양인들이 가진 동양에 대한 막연한 신비감 혹은 혐오감이 뒤섞여 있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뭐 어떤가.
예식장건물에서 바로크시대 건축양식을 느낄 수 있고,
동네 교회에서 고딕풍의 건축양식을 느낄 수 있는
우리나라의 서구에 대한 인식과 별반 다를 바가 없긴 했지만 말이다.
(음.. 이구절은 호모 코레아니쿠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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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탈 부대의 핵심인 이름모를 괴물. 이 불멸의 괴물을 레오니다스가 쳐죽인다




초강대국 겸 악의 축인 페르시아 색히과
시민들의 자유와 명예를 위해 옷도 안입고 싸우는; 우리의 스파르타 전사들과의 선악구도가
넘 노골적으로 빤히 드러나서 영 맘이 불편했다.

군사적으로나 외교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는 약소국의 지도자의 입장에서
혼자서는 결코 이겨낼 수 없는 초강대국과 대적을 해야 하는 그 상황은
김정일이 미국을, 부시를 보면서 느끼는 심정이랑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소국의 입장에서 강대국의 불합리한 요구에 대면하면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그리 많지 않다.
FTA처럼 우리의 이익을 위해 어쩌구 하는 것도 요식행위에 불과할 뿐
결국은 그들의 뜻에 따르던가 굴복당하던가 하는 결과로 치닫게 된다.

그래서 한편으로 극중 레오디나스의 그런 무모한 도전은
알 카에다나 후세인, 김정일을 연상케 해서 가슴이 찡해져온 것도 있긴 했다;




anyway...
이제는 영화에서 외치는 'freedom~~!!' 머 이따위 대사는
'사랑과 정열을 그대에게' 라는 광고문구마냥 식상해져서
별로 와닿지 않는 것 같다.

시발.. 언제부터 스파르타에 시민의 자유와 신념이란게 자신있게 외칠거리가 되었더냐?
과연 그런 개념이 있기나 했는지 의문이다.


이제 대충 요약해볼 시간..




관람포인트:
1. 300명 전사들의 엄청난 갑빠와 창격술(팔랑크스) 장면
2. 신탁녀 신탁신*-_-*
3. 페르샤군의 기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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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녀*-_-*





별을 준다면 한개 정도 주고프다.

게다가 남자와 봐서 더욱 씁쓸했던 영화였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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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
Old And Wise 들으려고 다운받은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버린 것 같은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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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보고 재밌어서 퍼왔는데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땡벌씬..


후루룩 훑어보고서 기억나는거라곤
땡벌과 Old And Wise 정도..

어쨌거나 영화를 지지리도 안보는 나마저도
조폭영화의 결말 정도는 이제 대충 예상을 할 수 있게 된 듯 하다;


뒷부분만 잘라내봤는데,
갠적으론 말미에서 흘러나오는 간지넘치는 나발소리가 넘 맘에 든다.




철거민촌에 살면서도 철거민들을 개발살; 내야 하는 조폭일을 하는 조인성(극중 병두)
그는 그 일로 보다 나은 세계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걍 돈벌기 위해 좆같아도 일이라서 책임감에 의해 한 것일까.

그러고 보면 누구나 벌어먹기 위해 하는 일들은 참 좆같기 이를데 없나보다;


어쨌거나 조인성 연기 많이 늘어보이긴 하는데
그 불안한 눈빛과 얇고 어눌한 보이스는 여전히 어색하게 다가오더라.

아.. 남궁민(극중 영화감독)을 보면 그 건들거리면서 입꼬리 올려 썩소 날리는 표정이
내 친한 친구 모모씨를 너무 닮아있어 볼 때 마다 섬뜩섬뜩하더라.


이 영화가 조폭영화중 근래들어 가장 수작이란 평가도 받았는데
개인적으로는 처절하기까지 한 굴다리 전쟁;씬이 개중 가장 인상적이었고
나머지는 다른 영화에 비해 그리 빼어난 영상은 잘 안보였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이 영화에서 의미를 찾자면
이 영화의 스토리가 의미하는 것은 단지 조폭들 뿐이 아니라
우리네 인생이 조폭의 세계처럼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 하다.

성공하려면 내게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사람이 뭘 원하는지를 알면 된다던
천호진(극중 회장님;)의 말이 그것을 잘 대변해 준다.

그 말을 가슴에 새기고 회사의 구조조정 및 영업현장의 선두에서
온 몸을 던져 경영주의 뜻을 실현하는데 불철주야 견마지로를 마다하지 않던 병두가
엔터테인먼트 사업쪽에 잠시 외도를 하다가 그만 경영주에게 밉보이게 되면서
자신도 구조조정대상이 되어 비참하게 회사를 짤리고 만다는 영화 내용의 설정은

의리를 가장한 배신과 기만이 난무하는
우리네 기업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수작이라 할 수 있겠다-_-;;


어찌되었간에 음악은 참 좋았고
앨런파슨스 횽아들 노래를 다시 한번 듣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 주어 참 기뻤다.


두서없지만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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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

2005년 초에 썼던 글. 링크만 추가했어요.
--------------------------------------



2005년의 첫날은 지킬 앤 하이드와 함께했다. 푸하하!!!
아... 얼마나 보고싶어했던 공연이었던가..ㅠ_ㅠ



캐스팅은 지킬&하이드에 조승우, 루시에 김선영, 엠마에 김소현의 캐스팅이었다.



일단 코엑스 오디토리움이라는 공연장이 원래 회의하는 곳인지라
왠만한 영화관만도 못한, 공연에 지지리도 안어울리는 공간 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배우들 표정 읽기도 벅차 눈깔이 튀어나오려고 하더라-_-


그리고 공연중에 디카질 폰카질 하던 양반들은 정말... -_-
암전된 무대에서 졸라 심각하게 연기하고 있는 배우에 집중하기도 힘든데
그와중에 환한 불빛 밝히며 디카질 하는 인간들은 도대체...
제발 에티켓좀 지키면서 살자.

곡은 이전에 미리 몇 곡을 들어봐서인지 귀에 많이 익은 곡들을 접할 수 있었다.


지금 들려오는 곡은 Bring On The Men 이라는 곡으로

루시가 단란; 에서 의사(조지킬)선생과 변호사양반들을 접대하기 위해 부르는 곡인데,


"업소에 오는 남자들은 대개가 쓰레기고, 그에 응하고 있는 여자들도 똑같다" 라는 내용의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된 이유를 말해주는 노래라 할 수 있는 곡이다-_-


씨디에 있는 음원은 좀 약소하지만 실제로 가서 보면 비주얼-_-로도 만족;을 주는 곡이다.

1부 공연에서 가장 만족했던, 뮤지컬 스러운 곡이라고 해야겠다.

믿거나 말거나;;


어쨌거나 이날의 주인공은 단연 착한이 닥터지킬인간백정 하이드상.
조승우... 마~~이 큿네..-_-)b

그야말로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조승우의 모습에 남자인 나도 소름이 돋더라.


하단의 동영상(클릭하시길)은 스스로 개발한 약물을 자신에게 투약하기 전에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으로 부르는 그 유명한 곡인
This is the Moment...





새해들어 디스값이 2000원으로 오를 것을 예언하며
가격이 오르기 전에 지금 이순간 구입하라 는 내용의 곡은 아니고;;

 
여튼... 이 장면이 마치는 순간, 여성팬들의 7옥타브의 함성이 귓가를 찢어놓는 줄 알았다...
하긴 남자인 내가 봐도 온 몸이 오싹해지더라.


인류보완계획;에 기여하겠다는 황우석 박사의 신념에 찬 모습을 보는 것 처럼
그의 모습은 남자답고 멋지고 순수하고 또한 카리스마 넘치더군.
질투심이 살짝-_-

 



그리고 무엇보다 진정한 압권은 ALIVE!Confrontation...


1부 마지막 곡인 Alive! 는 그야말로 살인마 하이드의 카리스마를
그대로 보여주는 벼락불과 같은 곡이었으며

 
또한 공연 후반부의 Confrontation은 약발이 다되어
하이드님께서 자주 강림하시고 지킬님은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버티는
두개의 자아가 처절하게 다투는 장면 - 골룸 대 스미골과 같은 극명한 양자의 대립을
헤어스타일과 음색만으로 둘 모두를 현실감있게 표현해내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야말로 박수-_-)b

 

또한 루시와의 듀엣인 Dangerous Game은
하이드로서의 사악함과 음탕함;을 잘 표현해낸 멋진 곡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음향시설이 좋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승우의 목소리는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성량이 나름대로 풍부했고 그의 굵직한 바이브레이션은 상당히 듣기가 편안했다.
음은 약간 불안한 면이 있었지만서도..

과거 세바스찬 바하가 지킬역을 했다는데 난 조승우가 그 인간;보다 훨씬 나았을거라 본다-_-b  
일단 조승우씨 칭찬은 여기까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극 자체가 지킬의 독무대 형식이기 때문에 다른 배우들의 연기가
사실상 많이 비중이 약해지는 경향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을 듯 하다.

 
갠적으론 루시역할의 김선영씨의 목소리에 반해버렸다+_+


약간 부담;스러운 클래시컬한 발성의 김소현씨와는 달리 시원스러운 목소리와
업소;에서 일하면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은 그모습을 보여준 그녀의 연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또한 그녀가 새디스트-_- 하이드에게 죽음을 당하기 이전 지킬을 생각하며 부르는
A New Life...
캬... 사나이 가슴에 비가 내리더라 ToT
 

 
루시&엠마의 죽음의 듀엣 In His Eyes 역시 최고의 넘버 중 하나로 꼽겠다.
갠적으론 Once Upon A Dream 이나 Take me as I am 과 같은 곡 보다는
이 여성 듀엣이 더욱 마음에 들더라.
앞서 말한 것처럼 김소현씨의 부담스러운 진폭이 넓은 발성은 약간 아쉽;;


 
그리고 여타 배우들을 보자면 중후한 목소리의 엠마 아버님도 멋졌고
조연들의 강력한 포스를 느끼게 해준 Murder, Murder 역시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고 할까.

 

어찌되었건 간에...
찌질이들의 합창;이자 위선과 가식의 도가니탕을 보여준 Facade의 멋진 서두부터
예식장에서 자결할때의 The Final Transformation까지..


온몸에 소름을, 그리고 혈관속으로 개드레날린을 왕창 분출하게 만든,
그야말로 개감동의 무대였다고 생각된다.
 

 
아차차...

커튼콜때의 기립박수...
루시와 엠마의 그 만족스러운 미소...

 
그리고 조승우가 지킬로 등장해서 박수를 받은 후
퇴장하다가 갑자기 머리를 풀고 하이드로 변신하는 액션에서는...


그야말로 코엑스 오디토리움이 무너져 내릴 듯한-_- 여성팬들의 괴성이 들려왔다.

꺄악... 어떻게해... 너무멋져... 아아 조승우 등등...;;


결론은 남자랑 둘이 봐서 매우 우울했다는 것-_-;;
 

 
하여간;;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이런 아티스트들이 만드는 개감동의 무대에
첨벙~ 자주 빠져봤음 한다.



2004년을 아름답게 마무리 하였으니

2005년 새해는 아름다운 일들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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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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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보는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여친-_-이 있던 2002년;; 경에나 자주 보았을 뿐, 매년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건 2~3차례,

비디오는 더더욱 보지 않는다. 어쩌다 시간날때 인터넷에서 영화를 다운받아 보는 정도?

그래서 나의 영화평은 허접하고 좆같을 수 밖에 없다만
간만에 다운받아 본 영화라 짤막하게 감상평이라도 적어야
빡세게 영화를 만들어내신 분들에 대한 도리가 아닐까 싶다;



알포인트는 2004년 여름에 나왔던 영화...

일단 한국 공포영화로서는 근작 중에서 '장화홍련'과 함께 수작이라고 할만한 영화라 생각된다.


장화홍련이 여성적 감수성과 미소녀 페티쉬;와 성적인 코드들에 기반해 만들어진

콩가루 집안의 비참한 가족사를 그린 비극영화였다면,


알포인트는 월남전이라는 시대적 특수성을 기반하여

남성들이 전쟁터에서 겪는 공포심을 극대화한 남성적 감수성과

전쟁속에서의 인간성의 분열, 극한상황이 가져오는 인간말살의 현장을 그린 비극이다 라고 생각한다.



베트남은 1000년이 넘도록 타국에 지배당해왔다.

중국에게 1세기라는 시간동안 직접통치를 당하고(그 시작은 제갈량이 아니었을까-_-?)

제국의 시대에서는 프랑스와 일본이라는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그리고 2차대전 이후에는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에 의해 점령을 당하고 수많은 피를 흘려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독립하여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난 절로 베트남이라는 국가의 구성원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베트남에 외화벌이 용병으로 달려간 따이한들의 용맹함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조매실의 아시나요 뮤비-_-)


무엇보다 전쟁이라는 상황은 인간 스스로에게 인간이기를 포기하게 만든다.

극 서두에서 주인공 최중위(감우성)가 사창가에서 여자를 쏴죽이는 상황에서 보듯,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전시라는 극한상황에서 살아남는 것, 곧 죽기전에 죽이는 것이 먼저였다.

인간, 혹은 인간성이란건 전시에서는 그저 감정의 사치일 뿐이었을테니.


그들이 도착한 알포인트에서 그들은 자신만의 유령에 시달리며 공포에 휩쓸린다.

병영이라는 남성적인 공간에서 귀신이야기가 그렇게 많은 이유는 믿을 것은 결국 자신 뿐이라는 외로움과

항시 적을 대해야 한다는 긴장감이 큰 덕분이리라. (아... 군대생각 난다-_-;)


살상무기를 든 두려울 것 없을 그들이 왜 그렇게 공포에 떨어야 했을까.

그것은 그들이 희생자이자 또한 가해자로서 그 땅에 발딛고 있기 때문이다.

돈 때문이든 무엇 때문이든 원치않게 타국땅에 와서 이유없이 베트콩(혹은 양민)들을 학살해야하는 임무 자체가
 
그 무한한 공포와 죄책감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전쟁공포증이라고 해야 할까?

누군가를 죽여야만,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그러한 땅에서

조금씩 마음 한켠에 쌓아두어야 하는 죽어가는 자신의 인간성과

나로 인해 죽어간 타인들의 원한이 언젠가는 자신의 그림자에서 자신을 잡아 흔드는 괴물로 발전할 것을 예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은

그들을 불귀의 객으로 만드는 요인이 된다.


혼란에 빠진 인간은 지극히 나약한 존재다. 그리고 더할 나위없이 위험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들은 착란속에서 서로를 죽고 죽이며 삶의 종지부를 찍어나간다.


주인공인 최중위는 극 후반에서 미쳐버린 진중사를 사살한 후 정신을 잃어버린 소대원들에게 외친다.

"관등성명! 관등성명 대라!!"


그 상황에서 유일하게 이성을 지킬 수 있었고 공포에서 대원들을 구할 수 있는 존재였던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관등성명'이라는 현실의 목소리로

군대라는, 작전이라는 위계체계속의 현실속으로 대원들을 끌어오려 애쓴다.

(감우성의 째지는 목소리는 좀 짜증난다;)


그러나 그 역시 눈을 잃은 마병장을 제외한 소대원 전원이 죽어가고

자신의 정신 속으로 여자귀신;이 덮쳐오는 순간 마병장에게 총을 쏠 것을 요구하며 숨을 거둔다.


최중위에게 나타난 그 귀신은 누구였을까?

언젠가 프랑스 식민시절 점령군들의 위안부 구실을 하던 사진 속 여자였을 수도 있고,

그가 다니던 사창가의 한 여인이었을 수도 있고

혹은 그가 쏘아죽인 창녀일 수도 있는 것이고

알포인트에 상륙하기 전 죽이지 않고 스쳐간 피흘리던 베트남 소녀일 수도 있는 것이다.


또는 죄의식의 근원에 있는 한국적인 공포의 상징물일수도 있고

혹은 자신의 땅을 짓밟는 자들에 대한 베트남 민중의 분노일 수도 있었을 테지.


이것은 뒤틀린 인류역사에 대한 죄의식의 결과일 수도,

혹은 인간으로서 자행해선 안될 행위에 대한 대가일수도 있다.


그들이 극복할 수 없는 것은 분명히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돌아가서는 안될 존재였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도 우리의 형제들을 그러한 불귀의 객을 만들기 위해 보내고 있다.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들의 가슴속에 어떤 그림자가 드리울 것인지,

그 땅에 머무른 자들의 가슴속에는 어떠한 피얼룩이 드리울 것인지는 외면한 채.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났고 자막을 바라보는 내 심정은 조금은 우울했다.

헐리우드식 전쟁영화보다, 일본식 공포영화보다도

더욱 많은 감정의 흔들림을 안겨준 영화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가 피로 얼룩진 인류가 벌인 침략의 역사에 대해

공포라는 장르를 통해 접근한 것이었다면

나는 90점을 흔쾌히 주고 싶다.



여튼 좋은 영화였음... 집구석에서 노니까 별 짓거릴 다하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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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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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든 생각은..

이 영화로 인해 인간이란 존재가 가진 이기적이고 사악한 본성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는 거였어.


우리들에게 물질과 탐욕은 이미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이상이 되버린지 오래 되었지.

아마도.. 인간은 원래부터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겠지?


사자처럼 강한 발톱을 가진 것도, 뱀처럼 무서운 독을 가진 것도 아닌

나약한 존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것을 대신할 무언가가 있어야 하지.

사람들이 돈과 권력에 열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다른게 아닌 것 같아.


영화 도그빌에서 보면 인간들이 개만도 못한 존재로 변해가는 과정이 잘 나오고 있어.

가난하지만 평화로운 한 마을... 그리고 외부에서 쫓겨온 한 여인,

그리고 마을의 '안정'을 위협하는 권력을 가진 이들의 잦은 방문.....



인간은 자신의 안녕, 이해를 위해서는 지극히 냉철하고 이성적이지.

물론 비인간적이긴 해도 말이야.



하나의 집단은 그렇게 광기에 술렁이고... 그렇게 본성에 충실해져 가지.

파시즘이라는 건 그리 먼 단어가 아니지.

집단속의 군중은 지극히 우둔하면서도 감정적이고 또한 보수적이니까.


현상유지를 위한 단결, 그리고 적 혹은 약자를 향한 적대와 공격..

현상유지를 위해 인간들이란 전혀 평화롭지 않은 행동을 하거든.

얼핏 보아 '민주적'으로 보이는 교회모임이

결국 한명의 이방인을 유린하고 착취하는 어두운 담합을 하는 곳으로 변모하는건 시간문제였겠지.



그렇게... 감독은 우리가 만만하게 생각해오던 '인간'이라는 말캉말캉한 단어가 숨기고 있는

검은 이빨을 보여주고 있더군.


감독은 그러한 인간의 모습들을 사랑하고 아끼고 믿으려는 주인공의 마음을

그는 주인공의 아버지의 입을 빌어 '오만' 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어.


주인공이 마지막에서 (사랑했다고 믿었던) 남자에게 총알을 날릴 때..

이미 그녀는 동물과 다름없는 자들은 존재가치가 없다는 아버지의 논리에 승복했던 거겠지.


마을사람들을 몰살하는 것은 그들이 응당 치루어야 할 대가였던 거야.

그래... 인간이길 포기한 인간에게는...



음...

그런 관점에서 보면 모든 인간들은 그렇게 대가를 치루어 마땅한 존재들인거지.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이 것을 벗어날 수 있는 존재는 과연 몇이나 있을까?

대신 권력을 가진 이들은 그 힘이 곧 구원이겠지만..



그렇게 바라보면 이 영화는 더욱 쓸쓸해지지.





고난속에서도 지극히 선한 존재였던 그녀,

그녀가 개목걸이를 달고 장애인의 침대시트를 갈면서

'누구도 이렇게 더러운 침대에선 자지 못할거야'라고 중얼거리던 대목이 기억나.

그녀 역시 인간이었던 거지.



힘이 곧 진리요 생명일 수는 없겠지만...

힘이 없이는 그 마을을 변화시킬 수 없었겠지.

또한 그 힘이 없이는 인간사회에서 인간답게 산다는건 불가능한 것이고.




인간들...

그들이 모여 인간답게 산다는 건 과연 어떤 것일까?

공동체라는 것은... 우리가 바라는 이상향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p.s)도그빌 영화평 중에서 영화를 성경에 비유한 것이 있었는데 무척 인상적이더라.

     그레이스를 예수로, 그의 아버지를 하나님으로 비유한 것은 상당히 멋지던데..

     또, 영화를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해석하고 신랄하게 비판한 것도 멋지더라.

     개인마다의 지평이란건 정말 무한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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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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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내가 왠만하면 안 읽으려고 했었는데

전에 소개팅한 국문학과;출신의 모 여성이

근래 읽은 책 중에 가장 맘에 드는 문체라고 하도 강조를 하길래

8000원이라는 거금을 들이고 산 책이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


-_-ㅗ << 이모티콘으로 보자면 이 것과 같다.



전반적인 줄거리는

가슴속에 상처를 안은 미카게라는 젊은 여성의 만남과 성장,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문체는 무척 재치있고 신선하다.

감각적이고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특별한데

전체적으로 젊은 취향의 구미에 딱 맞겠더라.



그냥... 휴...;;;;



모르겠다.

내가 감정이 메말라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혹은 이런류의 글 자체를 싫어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읽어가면서 책을 덮고 싶은 충동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그 걸 참아내며 가볍고 말랑말랑한 문체들과 버거운 싸움을 하는게

너무 힘들었달까.



이 책을 열어보면 두어줄 발췌해서 싸이에 사진들과 함께 올리기에 딱인

그러한 스타일의 글들로 꽉꽉 들어차 있으니

싸이도 꾸미고 자신의 독서취향도 강조하길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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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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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의 소설로, 특히 유럽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소설이라고 한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제목처럼 허삼관이라는 주인공이 일생에 걸쳐 매혈을 하는 이야기인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이 정말 신선하고 해학적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웃음속에 숨겨진 눈물과 그들의 고단하고 비참한 현실이 더욱 와닿을 수 밖에 없었지만.



가지지 못한 자들이 생존을 위해 치는 발버둥을 그 누가 우습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피를 팔아 돈을 마련하고 돼지간볶음과 황주 두냥을 마시며 자신을 재충전하던 허삼관의 인생은


우리들의 모습과도 무척 닮아있다.



결국 우리들의 인생도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신을 소진시켜가며


그 누군가를 혹은 그 무엇인가를 위해 살아가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그 것이 가족이건 자신을 위해서건, 혹은 그 것이 아닌 또다른 무엇이 되었던 간에


누군가를 배려하고 지켜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피를 빼내어 팔아야만 할 정도의 고통과 상처를 감수해야만 한다.



작은 아들의 병원비를 대기 위해 아들에게로 향해가며 며칠 연속으로 피를 팔다가


결국 쓰러지고 마는 무모할 정도로 열정적인 주인공의 모습에서


눈물이 약간 핑 돌았던 것도 같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살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자신의 육신일진대


그 것마저 팔아 몇 푼 돈으로 바꾸어


그것으로 누군가를 살려내려 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못배우고 못사는 가난한 자의 몸부림인지,


아니면 어떤 의미의 '성인'인지조차 난 가늠하기 힘들었다.



문화대혁명과 대약진운동의 파고 속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창녀라고 손가락질 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의 무자비함 속에서도


해학스럽게 가족이라는 마지막 공동체를 지켜나가는 허삼관의 뒷모습또한


인간으로서 마지막까지 지니고 있는 믿음이랄까.. 그런걸 느끼게 했었고..



나 역시 그와 다를 바 없는 부질없이 스러져갈 미미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내게는 그처럼 무엇을 위해 지켜갈 것이 있었던가


혹은 자신의 피를 태워가면서까지 감싸안아야 할 것이 있었던가


문득 소설의 흐름속에서 울고 웃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더욱더 초라해져가는 자신을 돌아보다


언젠가는 문득 그처럼 돌아보며 웃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언젠가는 내게도 그렇게 헌신하고픈 그 무엇을


이젠 만들어야만 하겠다는 생각을 어설프게나마 해보았던 하루다.









일기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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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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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썼던 것으로 생각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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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훔치기  
-고종석, 마음산책, 2000



모색은 부분적으로 전망이다.

모색이 일반적 전망과 다른 것은

그 속에 의지나 욕망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서문에서-







한 해 전쯤에 읽었던 코드 훔치기를 빌려 다시 한번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고종석씨의 문체를 무척이나 흠모하는데,
진지하면서도 차분한 분위기가 설득력있고 독자를 끌어들이는 매력이 느껴진다.


다시 읽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 이 책이 21세기에 대한 전망(모색)이기에
그리 밝지는 않아 보이는 내 미래에 대해 살펴보기 위한 것도 있었고

그 때 이해하지 못하던 여러 이야기들을 지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지도 궁금해졌고
무엇보다 그 매력적인 문체를 다시 한번 접해보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다.



필자는 40여가지의 다양한 이슈를 통하여 21세기를 모색하여 본다.
특히 동유럽의 붕괴 이후 자본주의라는 이념이
전지구적으로 유일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돌아보며
그것이 미치고 있는 영향과 그로 인한 변화의 방향들에 대해 차분하게 살펴내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진 부분은 미래를 위해 필요한 지표에 관한 부문이었다.
무엇보다 그가 언급한 한스 요나스의 "책임의 원리" 의 대목은 단연 의미심장하다.

"희망의 원리"에서 블로흐가 유토피아적인 사회주의에 대한 갈망은 인간 본래의 것이라고 갈파한 것에 대해 "책임의 원리"에서는 그러한 유토피아적 세계관 자체를 거부한다.

이러한 유토피아주의가 오늘날의 단선적인 진보의 허상을 만들어 온 것이며
사회적 진보와 과학적 진보가 우리에게 가져온 어두운 현실을 비판하고 있음을 그는 말하고 있다.


결국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인류에게 대안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떠한 미래를 모색하여야 할 것인가?

그는 인긴은 양가성을 가진 존재임을 인정하고 미래에 대한 책임을 인류가 가질 것을 요구한다.
인류가 만들어낸 진보의 그늘에 던져진 윤리적 공백을 이러한 책임을 통해 극복해나가자고 요나스는 주장한다.


20세기를 풍미하던 거대담론들에 비해 왜소하고 그다지 명쾌하지 않은 주장이지만 오히려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차근차근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 더욱 중요함을 그는 말하고 있는 듯 여겨진다.


필자는 "공화정을 넘어서"를 통하여 20세기의 지배적인 정치이념으로 인식되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게 된다.

그는 민주주의는 공화주의와의 상관관계속에 존재함을 밝히며, 관용이나 다양성, 다수결, 개인적 자유가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이념이라면 법치국가와 사회평등, 이성을 기반으로 한 세속주의적 보편성 및 공통선의 추구는 공화주의의 본질임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공화주의는 오늘날의 그야말로 '이윤추구의 자유'만이 남아버린 자유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에 필자는 주목한다.


내가 볼때 고종석씨는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자이긴 하지만 이러한 자유주의가 가진 폐해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방안을 끝없이 모색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 점에 있어 좌파보다 더욱 현실을 변화하는데 관심을 둔 인물이라고 해도 될 듯 해 보였다.


또한 그는 '세속주의적 시민의 역할'을 중시하며, 경제적/계급적 의미의 부르주아가 아닌 정신적/정치적 의미의 시투아앵을 강조하였다.

한편 자유민주주의의 개념 속에서 자유주의가 가진 강자의 논리의 측면, 이윤추구의 자유에 집중된 면과 민주주의가 가진 중우정치와 다수의 횡포의 문제점을 조화할 수 있는, 수호자주의도 무정부주의도 아닌 진정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조화를 이룰 수 있기를 원하였다.
그는 사회주의와 자유지상주의 사이에서 모색할 수 있는 대안으로는 롤스적인 자유평등주의가 가장 적합한 대안이라고 바라보았다.


1년전에 읽었을 때 보다는 그래도 이해가 수월하게 되었다지만 여전히 프래그머티즘 등의 철학사조에 관련한 내용들에 대해서는 아예 공부를 하지 않은 문제로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좀 후회스러운 점이었다.

2000년이 되기 전 작성된 글들이 여전히 가치있게 읽힐 수 있다는 것은 필자가 그만큼 미래를 준비하고 내다보려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를 능동적으로 대처하려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사회주의의 몰락 후 밝은 광명을 향해 나아가리라 생각하던 이들도 있었지만 세상은 더욱 불안하고 냉혹하고 어지럽다.

이러한 혼란스러움은 인간이 가진 본연의 모습이 아닐까. 그는 아직까지는 인간이 가진 이성이라는 것을 믿고 있는 눈치다. 하지만 그러한 이성으로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와 그것이 가리키는 지향점에 도달하는 발걸음들에 대해서는 그는 고개를 젓는다.
그는 인류의 이성이 탄생시킨 밝은면과 함께 어두운 면들을 놓치지 않고 지적한다. 또한 현실 안에서 그것을 극복하거나 혹은 무마시킬 수 있는 방안을 끝없이 모색한다. 이것이 이 저서가 가진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싶다.

현실을 떠나지 않으나 안주가 아닌 끝없는 사색과 변화의 노력이 함께 하는 것이 바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해야 할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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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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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회사 망년회가 있던날,
대학로 판타지움에서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아주 특별한 손님' 이후 올해 들어 두번째로 영화관에서 본 영화라 그런지
무척 감회가 남달랐다;




휴먼 스릴러를 표방하는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아동연쇄살인사건과 그 것의 타겟, 그리고 그것을 쫓는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형사역의 박용우, 사진작가이자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 김상경, 그리고 또다른 주인공 박보배
세명의 연기가 어우러지며 묘한 여운을 주는 영화였다.



스포일러는 거의 없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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