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는 intherye님의 이글루스 블로그- http://intherye.egloos.com/547158



취향은 존중받아야 하는 요즘 시대에서 
찌질하고 유치한 노래가사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 역시도 존중받을 필요가 있을거라는 생각에서
이렇게 간만에 어거지로 포스팅을 해보기로 한다.

먼저 서두에서 '찌질하다'라는 단어의 정의를 내려야겠지만
이 포스팅을 읽는 사람들은 그 의미를 모를 리 없다고 생각하기에 
위의 사진과 아래의 링크를 걸어두고 넘어가련다.


일단 이 포스트에서는 요즘 시대의 흐름인 '쿨함'의 반대위치에다 '찌질함'을 두기로 해보았다.
쿨하고 간지나고 엣지있어야 먹어준다는 요즘의 트렌드에 정반대되는 
그런 여러 행태들을 하나로 뭉뚱그려 '찌질하다'라는 단어속에 묻어본 것인데 불만있으면 뭐 말고;

여튼 이런 찌질함은 인간 본성에 대한 철학적 이해라는 어떤 교양과목명마냥 
인간이기에 보일 수 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정제되지 않은 감정과 행동들을 그대로 내보이는 것에서 
문득 손발의 오그라짐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찌질함의 정체.
일단 많고 많은 대상자들 중 오늘 거론할 사람들을 셋으로 추려보았다.


첫번째는 바로 이사람이다.




1. 윤종신

중고등학교때 참 좋아했던 윤종신횽아. 
개인적으로 이분의 음악적 전성기는 3,4,5집 시절이었다고 생각된다.
2집의 '너의 결혼식'에서 시작하여 '오래전 그날'-'부디'-'일년'으로 이어지는 윤종신표 처절 발라드 크리에
수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아물어가던 상처를 다시 터트려버리던 무시무시한 괴력을 보여준 분이었다.

그의 음악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웰메이드 발라드곡에 더해진
추억과 회상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가사가 함께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는 구조로 보인다.
실제로 윤종신은 국문과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 머 전공과 관련이 있는건지 개인 능력인지는 모르겠으나
추억에 대한 집요할정도의 구체적인 묘사와 끝을 모를 미련의 표현과 더불어 전반적으로는 솔직하고 담담한 서술이
청자를 잠시나마 과거의 회상에 잠기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지금이야 윤종신표 가사쓰기가 일종의 클리셰가 되어버린 상황이지만
당시에는 이런 표현방식이 무척이나 생경했던 것이 사실인데,
'야속한', '속절없는', '하염없는', '부질없는' 등의 애절;한 형용사가 하나씩은 꼭 들어가야할 것만 같던 
뉴웨이브(라고 쓰고 신파라고 읽는다)기법의 8090시절의 가요가사작법과는 달리
찌질한 자신의 감정의 흐름을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가사쓰기방식은
당시 젊은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 아니었나 싶다.

이런 표현방식은 공일오비의 정석원이 대표주자였고 김현철, 이승환 그리고 뒤이은 유희열도 만만치 않았는데,
그러고보면 이는 90년대 발라드 가수들의 어떤 경향성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표현방식을 끝까지 고수;하면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로 확대재생산해낸 인물은 윤종신이 유일하기에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첫손가락에 꼽는 찌질+처절 발라드 가수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야말로 가사계의 진정한 근성가이다? 
(버뜨 처절발라드의 최고봉이랄 수 있는 2집과 3집 타이틀곡은 사실 박주연씨의 작사임)


개인적으로는 윤종신의 가사쓰기 방식은 나름 성숙된 면모의 반증이 아닐까 싶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관련된 수많은 기억들 중 상당수는 스스로 의식 저편에 억누르고 있는 경우가 다수이다.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고 많이 미숙했고 상처받았던 것들이었던 것일수록 다시 되새기고 싶지 않을 것이기에.

친구의 리얼한 표현을 빌려보자면 
'길을 걷다 그때 생각이 문득 스치고 지나가면 갑자기 손발이 오그라들면서 입에선 절로 "아.. 씨발;;" 소리가 나온다'할 정도의
그런 정말 지우고 싶은 기억에 대해서도, 그리고 자신의 감정이 롤러코스터처럼 극에서 극으로 오가는 심리묘사 또한 
그는 큰 가감없이 편안하게 서술할 줄 안다. 이건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으로, 실로 능력자의 그것 되겠다.
사랑과 이별이라는 주제에 관한 일종의 컨셉트앨범이라 생각하는 그의 5집에서 이 것은 너무도 잘 표현되고 있는데,
이러한 표현기법은 간지를 중시하는 대중가요계에서는 쉽사리 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손발이 오글거리는 기억들을 쪽팔림을 감수하면서 진솔하고 담담하게, 
그리고 여전히 변함없는 그때의 감정을 그대로 살려내 가사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은
성숙한 감정의 제련을 거친 이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그는 음악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겪었던 것일수도 있다.
 
한편으론 또한 이런 지속적인 찌질함은 사실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윤종신은 내게 있어 참으로 좋아할만한; 가수 되겠다.
물론 장가간 이후에는 그런 감성이 사라지고 예능끼;만 다분해진 것 같아 조금 안타깝기도 하다.

그런데 어쩔건가. 가사쓰기는 어느정도는 분명 현실의 반영인 것을.. 
항상 그런 과거의 가사만을 기대하는 것 역시 그에게는 좀 가혹한 처사일거라는 생각도 해보면서
여하간 그런 연애에 관한 한 독보적인 가사를 생산하고 있는, 그런 찌질의 감수성으로 블루오션;을 개척한 그의 근성을 높이 사 본다.
종신이형 사랑해요ㅋ;; 그래도 가끔은 예전 1,2집때의 미성이 너무 그립다능;;








2.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이건 조금 다른 의미에서의 찌질인데, '고질적 신파'라는 앨범명처럼 지극히 신파에 충실한 가사들로 채워진 이들의 앨범을 들어보면 알수있다.
키치와 냉소와 풍자와 재치가 뒤섞인 그들의 가사는 조까를로스가 창조해낸 싸구려 3류(쌈마이;) 환타지의 세계와도 같다. 
가만히 보면 조까를로스는 나름 치밀한 가사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들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재치있는 서사를 바탕으로 하여 고색창연한 연애담과 지독한 풍자와 엽기적인 코드들까지 모두 담아
특유의 마이너 음계에 비벼 담아낸 퓨전요리같다고 할까. 얼터너티브 라틴음악이라는 그들의 주장 자체가 무색할 정도로 
그들은 뽕끼가 가득한 음악을 연주하는데, 그것은 뒤틀린 그들의 가사와 퍼포먼스와 함께 상승작용을 일으켜 그들만의 새로운 음악으로 변신한다.

한계는 분명히 보인다. 어어부, 황신혜 밴드가 그랬듯, 이러한 시도는 어쩔 수 없이 단발성으로 그칠 수 밖에 없으리라 보인다.
스스로 깊이를 갖기를 버리고 상투적이고 자극적인 키치적 성향으로 무장한 그의 가사쓰기는 
일단은 신선하고 머리에 깊이 각인되지만 장기적인 면에서는 큰 생명력을 기대하긴 힘들 것 같다.
(이런 면에서 가사작법에서 유사한 면을 갖고 있는 장기하와 얼굴들이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서도 조금은 의문)

뭐, 조까를로스는 이러한 것을 이미 다 예상하고 작심해서 가사를 쓴 듯하고, 그만의 3류 환타지의 완성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해서
나름 거부감 없이 즐기고 받아들일 수 있어서 참으로 즐거울 따름이다. (개인적으론 '미소녀 대리운전'의 내용을 참 좋아한다.)

동영상으로 올린 '수지수지'는 근래의 이별노래 중 가장 찌질하게 감정을 묘사한 곡이 아닐까 싶어 올려보았다.
어설픈 레게 리듬속에 펼쳐지는 가사들을 살펴보라. 옛여친의 예식장에서 건네는 얇디 얇은 봉투와 봉투를 받고 건네주는 차가운 식권과 
화자가 자주가던 당구장과 '도대체 당신은 무슨생각으로 사느냐'는 그녀의 질문, 그 질문에 거친 욕만 내뱉는 무력한 자신,
그리고 '내 모든 것을 버렸기에 그녀는 날 떠났다'는 그야말로 통속의 핵심을 관통하는 구절까지 으아.. 
정말 심금을 울리는 유치함의 향연이 아닌가; 

어차피 현대의 모든 대중음악은 대중의 공감을 먹고 자본의 도움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인디씬은 어떤면에서는 그 극한에 처해있는 상황이
아닐까 싶다. 그는 청자들이 수용할 만한 범위 내에서 자신의 능력을 거의 최대한 발휘하여 키치가 어떤 것인지를 편안하게 맛보게 해준다.

요즘 4시쯤 나오는 라디오프로그램을 들으면 내가 좋아하던 노래들이 마구 나와서 깜짝깜짝 놀란다. 어느새 그렇게 나이를 먹어버렸던가보다.
이렇게 좀 더 세월이 흐르면 교통방송에서 밤10시쯤 하는 '세월따라 노래따라'류의 프로그램에서 그시절의 음악을 들을 수 있겠지.
그때의 젊은 세대들은 내가 그렇게 절절히 공감하고 아름답고 멋진 노래라고 생각한 가요들을 들으며 조낸 구닥다리 신파물같다고 비웃겠지만
용도폐기된 그때의 정서들은 어쩌면 조까를로스가 현재의 자신의 음악을 소비하게 만드는 그런 코드가 아니던가. 

대중가요는 어떤식으로든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이고 그 시대의 평균적인 대중의 감성과 타협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그가 써내려간 유치뽕의 가사들은 어쩌면 우리가 울고 웃었던 대중가요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눈에 보게 하고
한편으론 그것들 안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핵심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어떤 열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여튼 어리굴 써라운드 짱! 형편좀 풀리면 이들 공연을 보러 가고 싶다.

 









3.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패배자 정서는 이미 라디오헤드와 벡이 선점한 영역인줄 알았건만 국내에서는 그가 있었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하 요정;)은 자신의 삶을 통해 루저의 정서와 언뜻언뜻 보이는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그는 이 영역에서는 더이상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최고의 경지에 있다고 생각된다;

동영상은 3집의 '치킨런'인데 가사 정말...;;; 이건 눈물이 날 정도로 처절하다못해 정말로 찌질하기까지 하다.
1집의 '절룩거리네'와 '스끼다시 내인생'에서 보이는 위트있는 자조에서 한걸음 더 나가
이제는 지긋지긋한 세상에 대한 불만과 이젠 식상하기까지한 자기 비하와 더불어 더이상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서의 절망을 노래한다.
그의 가사에서는 후까시라곤 전혀 없고 너무 솔직해서 불편할 정도의 자조가 배어있다.

사람들은 도무지 지난 5년의 세월동안 발전;이라곤 전혀 없는 그를 비난하기도 하지만 
현실에서 승리자의 역사를 걷는 상위 몇 분들을 제외하고 난다면 
요정;의 노래는 우리들이 잊고 싶은, 혹은 그렇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세상의 이야기들을 전혀 가감없이 해주고 있다. 
그건 우리들의 현실에 대한 어두운 자화상에 다름 아니지만 
우리들은 아직도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여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길러'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국민교육헌장의 소절을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 이놈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뭐... 이 요정;의 푸념하고 때쓰고 자조하고 절망하는 노래가 불편하다면 
당신은 그래도 긍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 생각된다;

그 역시 처절한 가사가 밝은 멜로디와 만나 일으키는 부조화가 그의 색깔을 만들어내고 있다.
울수도 없고 웃기에도 어색한 그런 곡들이 그의 음악의 개성이고 트레이드마크라고 해야 할까.
3집에서는 그나마 밝은 분위기의 곡들도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더욱 슬퍼진다; 
얼마후에 나온다는 4집이 기대된다. 요정;은 어떤 모습으로 그만의 색을 보여줄 것인가.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요정;에게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다. 
개인적으론 그런 밝은 가사를 보면 조울증적인 기질이 아닐까 하는 섬뜩함도 들지만; 
그역시도 마지막 남은 희망의 끈은 여전히 놓지 않고 있다. 어쩌면 그래서 그의 음악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다음을 기다리는 것 아닐까. 
비유해보자면 인디계의 판도라의 상자랄까?;; 까놓고 나니 절망과 좌절만이 줄창 흘러나오는데
밑바닥에 있을 희망이라는 하나의 마지막 믿음 때문에 도저히 닫을 수가 없는 존재인듯;
그래서 나는 그의 다음 앨범을 조심스럽게; 기다려본다.







여튼, 졸라 썰을 풀어놓고 보니 
찌질이라는 주제로 풀어내기에는 이들 셋은 한데 묶기엔 공통점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굳이 찾아보자면 일반적인 대중가요에서 찾아보기 힘든 지극히 솔직한 표현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고 
결과적으론 듣는이로 하여금 감정의 정화를 가능케 하는 이들이라는 것 정도?

인간이기에 가질 수 밖에 없는 보잘 것 없고 변변찮고 남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그런 모습들을 대놓고 까발려
공공연하게; 장삿속에 이용해먹는 이들이야말로 이시대의 진정한 대인배가 아닌가 싶다.

나 역시 거짓말 종종하고 남들한테 어쩌면 덜 찌질하게 보일까를 신경쓰는 소인배의 입장에서
그들의 대인배적인 마인드는 존경의 대상이다.
남들 앞에서 솔직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이젠 알기에.

어쩌면.. 내가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가식과 위선속에서 살아가기에
찌질하더라도 솔직한 그들의 모습에 일종의 고해성사를 할 수 있음은 참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들 역시 자신들의 음악을 통해 감정의 정화를 이루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며
나의 찌질한 가사에 대한 예찬은 이쯤에서 접어야겠다. 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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