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삼월이다.
봄이 오려는지 황사때문에 눈깔이 따끔거리고 아픈데 
날씨는 여전히 춥고.. 

맘에 여유가 없는 탓일까 몸이 피곤해서일까..
요즘은 도통 포스팅을 못하겠다.

금토일 사흘동안 무려 이천만원어치를 팔아대자니 몸뚱이가 말이 아니다 시발..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이렇게 바쁜것에 오히려 감사해야겠지 에효효..


어쨌거나 닥치고 포스팅~

당대 레전드들이 모인 추억의 사진; 내일은 늦으리 류의 빅공연 전에 찍은 듯?





1992년 여름...
대한민국 가요계가 발칵 뒤집어졌던,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때가 아니었던가 싶다.

혹시나 해서 검색포털을 뒤져보았다.
92년 3월에는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이, 6월 넥스트 1집이, 8월에는 공일오비 3집이 발매되었다.
93년 4월에는 서태지와 아이들 2집이, 6월에는 듀스 1집이, 그리고 12월에 듀스 2집이 발매되었구나.

역시..


어쩌면 참으로 행복했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감수성 풍부하던 좆중딩시절, 당대 거장들의 탄생과 활약상을 지켜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 지금으로부터 17년전; 당시의 상황을 한번 돌아보러 가자.

이때 내가 중학교 2학년때였다. 그러고 보니 내가 내돈주고 앨범을 첨으로 샀던 것도 이때였다.
이후 군대가기 전까지 용돈의 거진 절반은 레코드 가게에 갖다박았었는데ㅋ

그때 첨 산 음반은 공일오비 2집이었다.
졸라 구린 자켓에다가 한쪽 구석탱이에 '쎄컨드 에피쏘드'라고 영어로 적혀 있었다.
듣고서 존내 개감동했다;





'이젠 안녕', '친구와 연인', 'H에게', '변해간 세월속에서' 등이 수록된 명반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평범하기 이를데 없는 발라드였는데 그리 감동한 이유는
당시에는 그 것이 졸라 신선했었고
또한 한 학벌하는 3인방들이 졸라 대단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씨발... 공부도 잘하는 것들이 노래도 잘만드네...???

특히 조낸 애절을 넘어 처절하기까지한 정석원의 가사와 멜로디,
한창때 모 여드름약 광고까지 탔던 장호일의 되도 않는 후까시가 많이 어필했던 것 같다.
특히 랩이랍시고 들고 나온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상당히 인기 좋았다.

'친구와 연인' 덕에 나는 윤종신 옵빠를 알게 되었다.
지금은 깐족대는 컨셉의 예능인으로 변했다지만 당시에는 졸라 신선한 미소년? 비스무리한 인물였다.
특히 그 간드러지는 미성은 닭살과 함께 매우 대단한 매력으로 다가왔었다.
윤종신은 2집 이후 3집부터 변성기가 왔는지 목소리가 걸걸해져버렸지만 그래도 좋더라.

그러고 보니 당시 정석원, 이승환, 김현철, 윤상, 유영석 등등의 싱어송라이터 무리들이 졸라 큰 인기를 몰았었지.
정석원은 유에스에이로 병역기피성 도피를 했었다던데.. 거참... 아르헨티나로 날랐던 이현도는 안미운데 정석원만 왜이리 미운 것은 어찌된 일일까; 솔직히 말하면 정석원은 공일오비 4집부터 급실망을 해서 공일오비에 대한 미련이 없어지게 한 사람이었다. 제작년쯤 발매된 앨범에서도 그의 귀신처럼 트렌드를 타는 능력과 교묘한 편집;실력에 혀를 내둘렀다.

이승환이라.. 솔직히 이승환을 왜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는 정말 의문이다. 지금까지도.
무엇보다 그 특유의 꺾기 창법만 들으면 닭살이 마구마구 샘솟는다;
하지만 초 울트라 동안의 대명사이던 이승환도 나날이 삭아가는 것 같아 안타깝더라.

김현철은 1집과 2집의 까만 치마를 입고를 아주아주 좋아했는데.. 외모가 비호감인지라 별로;; 아... 이양반은 이소라에게 주는 노래들은 좋은데 자기앨범의 노래는 갈수록 허접해졌다는 기이한 특징이 기억난다;

윤상은 전반적으로 노래가 내 취향이 아니어서.. 좀 심심한 스타일로 느껴졌던 기억이다. 어찌보면 근래 유행하는 시부야계 음악을 이리저리 들여와 이땅에 정착시켰던 일등공신이 아니었나 싶다.

유영석은 무시무시한 얼굴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그의 미성과 70년대 순정만화틱한 곡조가 좋았는데  단점은 곡들이 대부분 비스무레 했다는 것...

또 신승훈이 있었지? 그 횽아는 그냥 싫었다. 지금도 그렇다. 몰라, 묻지마.


또... 개후까의 명인 신해철횽이 있었는데...
중고딩 시절 내가 빠돌이짓 하느라 미쳤었던 양반 되겠다.
요즘 학원광고 하나 찍고 뻘소리 하다가 버로우 타는 중인듯ㅜㅜ

 


이시절 넥스트 1집 앨범은 개인적으로 열손가락안에 꼽는 가요 베스트 앨범 되겠다. 진정한 시작인 2집에 비해 아직은 풋풋하지만 직설적인 가사와 나름 멋진 작곡능력의 신해철의 포스가 발동되기 시작한 앨범 되겠다.
이 도시인은 참 의미가 있는 트랙인데, 이 곡은 바로 넥스트 첫 앨범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가사, 디스토션 먹은 기타와 키보드의 배틀은 그가 추구하려는 실험정신의 일면을 보여준 것인 동시에... 상업적인 면을 의식한 듯 익숙한 멜로디와 상투적인 랩질, 그리고 대중적 홍보 등은 그가 두마리 토끼를 이 앨범에서 잡으려고 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본다. 아님 말구;
그리고 실제로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내용물도 기대 이상으로 알찼고 게다가 당시에는 무척이나 실험적인 앨범이었으니까. 팀명에도 있잖아... 새로운 시도를 하는 팀이라구;
이때 꽃게랑 cf를 찍어 돈좀 만졌다는 얘기가 있던데 잘은 모르겠음;

그때 넥스트 앨범이 발매될 무렵에 내가 읽었던 한 신문의 문화면이 문득 기억나는데.. 내용인즉슨,  '신해철이가 넥스트라는 그룹을 만들었는데, 그 수록곡 중에서 '아버지와 나'라는 곡이 있다. 그 곡이 어떤 곡인가 하니 아버지를 '그'라고 부르면서 낮추어 부르고 비하와 경쟁상대로 생각하는 듯한 표현들을 쓰더라' 라는 내용이었다. 그덕에 '역시 뽕쟁이새퀴' 이러면서 좀 부정적인 생각을 갖기도 했었지.

그래.. 그때는 1992년도였다; 그리고 아마도 그 신문은 이른바 정통보수정론지였겠지;



 



여하튼... 당시 가요톱텐에서 현철아저씨와 신승훈형이 함께 출연해도
전혀 어색할 것이 없던  그런 시절,
1992년 그해 여름, 수련회 버스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던 어떤 노래가 있었다.
그건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였다.

그렇다. 그 해에는 서태쥐와 아이들이라는 괴집단이 출현했다.
우와아아.... 정말 놀랬다.

당시에 혹시 엘에이 보이즌가 하는 애들 기억하는 분 계신가?
대만인가 홍콩 랩댄스 그룹이었었는데, 대표곡이 '야' 였는데... 모름 말구...
걔들이 졸라 인기를 얻고 있었는데...

어쨌거나 어느순간 학생들 사이에서 불어오던 춤바람이 우리의 서태지 덕택에 개폭발을 해버렸다.
이건 정말 레볼루숀, 혁명이었다.

당시 남자 중딩들의 세계에서
마이클 조던, 샤킬오닐, 그리고 강백호로 대표되던 농구와
서태쥐와 듀스로 대표되는 힙합이라는 문화가 지배하게 된 것은 가히 혁명적 전환이었다.

 




정말 대단했다... 태지...
다들 회오리춤추느라 정신이 없고 반바지와 모자가 개날개 돋친듯 팔리고....

아... 한동안 애들이 옷상표 그대로 달고 다니긴 했는데...
다들 이건 패션이 아니라고 느끼고서 일주일 이내에 다 떼버리더라;;


어쨌거나 대단했다... 물론 그 테잎도 샀다.
감동했다.

가창력은 허접이었지만... 걔네는 최초로 비주얼이, 율동이 되던 애들이 아닌가...
랩이란 것이 주는 전율이란 정말로 놀랍고도 자극적이었다.





그리고 중3때 나왔던 듀스..
이들이야말로 당시 남중고딩들의 정신적 지주요, 우상이었다.
이현도의 완성도 높은 음악은 둘째치고서라도
그들의 먹어주는 비주얼과 둘의 등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친 남성의 아우라는
그야말로 폭풍간지라는 단어가 딱이었다.






잠깐 그때의 느낌을 돌아보자.
이어진 1993년의 느낌은 확실히 자유분방함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돌아보면 당시 군바리정권이 청산되면서 조금은 자유로워진 사회적 상황속에서
사회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자유도가 한층 높아질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여담으로 그때 처음으로 '짱'이라는 단어가 탄생했던걸로 안다.

그 표현은 처음에는 '짱'이 아니라 '장'이었다.
'야, 니 헤어스타일 졸라 자~앙이다?' 이런 식으로...
그런데 그 단어에 강세가 붙으면서 '짱'으로 바뀌고...
끝내는 오늘날의 김왕장 우왕국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겠지.

음; 당시 중딩들의 '짱'은 누구였나? 라는 말을 하려고 했던 참이다.
그 것은 앞서도 언급했듯이,
여러 농구스타들과 듀스 그리고 서태지와 아이들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 같은 경우는 듀스의 남성적이고 터프한 이미지에 비해
태지의 여성취향의 외모로 인해 남중딩들에게서는 조금 인기가 떨어지긴 했으나,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과도한 빠들로 인한 키배나 현피 같은 것들은 없던 평화롭던 시기였다.

여튼 그해 여름을 제대로 버닝시켰던 그 앨범, 서태지2집...
그 타이틀 곡 하여가...




이 곡에서 가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니지... 첨에 듣고는 무슨 말인지도 못알아들었으니까...;
이 곡에서의 핵심은 엄청난 사운드의 발전에 있다.

이 곡은 중간중간 들어가는 샘플링과 뒤의 태평소 가락만 제외하면 전형적인 정통 스래쉬메틀넘버다.
랩질 부분을 위해 연주가 차지해야 할 부분을 많이 할애해준 듯 하다.
특히 '난 그냥 이대로~' 부분에서 백으로 깔려주는 태평소 소리는 이 곡의 백미인데,
예전에 이 부분을 첨듣고 울 뻔 했다. 감동해서... 개표절 기타솔로가 참으로 옥의 티였던 곡이다.

어쨌거나 헤비메틀이라는 틀 위에서 테크노와 힙합, 국악을 멋지게 뒤섞은 이 곡은
서태지에게 댄서가 아닌 뮤지션이라는 이름을 주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전하려는 메시지의 대상을 자신의 팬덤, 그리고 청소년들로 잡은 것은 가히 그들의 최고의 성과물이 아니었나 싶다.
결과적으로는 그들이 이 사회 기성세대들로 하여금 청소년들의 존재와 의미를 인정하게 만든 것이다.
일단 태지보이스는 그 것까지 인도해낸 사람으로서의 가치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하다.

앞에서 중딩때 이야기를 그렇게 길게 한건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젊다는 것, 성장한다는 것... 그 아름다운 시기에 우리사회는 그들을 입시라는 틀에서 목을 조르고 있다. 그들, 지옥의 초입에 들어선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숨통을 트여준 태지들과 듀스에게 졸라 감사한다.  


이렇게 듀스와 태지들 2집이 개히트를 치면서 당시 청소년들은 매우 반사회적이고 반인륜적인 패션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당시 어르신들이 가수들을 몹시 꾸짖기 시작했다.
 듀스와 태지의 영향력은 여기에서 있다.

예전엔 학교에서 '얼~~', '우~~', '에이~~' 등의 방청객틱한 탄성은 절대 있지 않았다.
근데 이자들이 등장하고 나서 우린 매우 자연스럽게 그럴 수 있었고
그걸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시대적인 상황도 그만큼 자유로웠다.

우리학생들의 사고방식이 드디어 속박에서 풀려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당시 음악하던 이들이 공헌한 역할이라고 내맘대로 생각해본다.

큰 가방을 등에 메고 늘어진 티와 헐렁한 청바지 뒤로 각종 동네 쓰레기를 다 끌고 다니고;
무스 졸라 발라서 세우고 뻗친 머리... 그땐 그게 바로 잘나간다는 상징이었다.

북한에선 한때 파마를 가지고
까치집으로 만든 머릿속에 미제국주의의 썩어빠진 사고방식이 스며든다고하며
그 것을 통제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하니...
복장불량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하겠다.

그렇게 학생이라는 갖혀진 틀 안에서도 꼴리는 대로 할 수 있게 하는 사고의 자유를, 당시 우린 그들을 통해 배웠던 것 같다. 아님 마시라... 나도 뭔소리 하는지 모르겠다; 


참고로 당시 유행하던 짝퉁 그룹으로는 잼, 잉크, 노이즈 등이 있었던 것 같다.
혹시 쨈의 '이젠 모든걸 다시 시작해' 하는 노래가 일등 먹던 거 기억나시나?
대단했다.

영삼이의 신한국 정신에 걸맞는 노래라고 개칭찬을 받았던것도 기억난다.

씨발;;;;



어쨌거나 지금 돌아보면 그후 2~3년 후 탄생한 개쵸티나 줵키과의 가무립싱크집단이 주는
현란한 안무와 뛰어난 입뻥끗 기술, 세련된 표절 테크닉,
그리고 코묻은 돈을 삥뜯으려는 고단수의 상술은 아직 보이지 않았던 조금은 순수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요즘처럼 소시나 원걸에 하악거리는 덕후들의 호주머니를 체계적으로 뜯어내려는 엔터테인먼트산업이 있던 시절도 아니니.. 어쩌면 돈되는 소위 문화산업;의 시발점은 이들에게서 모티브를 얻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후 포스트 서태지 포스트 듀스를 표방한 매뉴팩쳐링된 그룹들이 출현하기 시작하면서 한국 가요계가 요 모양 요 꼬라지로 몰락하게 되는데는 채 10년의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그냥 쉬는날이라 예전에 조금 써봤던 글들을 대충 수정해서 올려봤다.
날씨는 춥고... 집에서 춘장 볶아서 짜장이나 해놓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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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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