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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영상에 뻑이 가서 오늘  Bully The Hell님과 영화를 보고 왔다.



영화를 보기전 우연한 전화통화에서 야임마님이 말하기를,
이 영화를 찍은 곳이 바로 내 고향인 봉화라는 것과
(내 고향은 춘양면이고 여긴 상운면이니 거진 한시간 정도 거리 되겠다)
동영상에 영화의 모든 것이 담겨있으니 빅기대는 갖지 말라는 것이었다.

여튼 둘이서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
그냥 여러 종잡을 수 없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정리가 잘 안되긴 하는데 대충 요약해보자.






1. 귀농이 꿈이라 부르짖는 당신은 결코 귀농하지 못할 것입니다.


인간미 없는 좆같은 도시생활, 사무실에 갖혀 톱니바퀴처럼 혹사당하는 삶은 이제 그만!
그래, 나도 이제 돈 모이면 훌훌 떠서 시골에서 농사지으면서 살아야지.

비디오 티비도 없고 신문 잡지도 없고 전화 한통 걸려오지 않는 아주 한적한 곳에서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님과 한백년 살고 싶다고 하는 건
조영남이나 남진의 소망만이 아닌 도시생활에 지친 이들의 어떤 로망이기도 할 것이지요.

하지만 이 것은 농촌의 현실을 몰라도 한참을 모르는 말임은 이제 많은 분들은 아실거예요.
아직도 농촌을 상록수에서 나오는 곳 정도로 생각한다면 경기도 오산.

대한민국의 농촌이라는 곳은
아름다운 풍경과 따스한 정이 넘치는 목가적인 곳이 아니고
최악의 환경속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삭막한 곳이랍니다.

젊은이들이 사라져 60대가 동네에서 청년취급을 받고
마을에서 아기 울음소리와 어린아이들 노는 소리는 이미 십수년전부터 들리지 않으며
몇 남지 않은 초등학교에서는 베트남-필리핀 혼혈아들이 왕따를 당하고
고등학교에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 탈선의 길을 걷곤 하지요.

무엇보다 지역경제에서 돈이 생산되고 순환되지 않으니
사람들은 점점 인근 도시로 빠져나가게 되고 농촌경제는 메말라만 가는 겁니다.

이런 농촌에서 자리잡고 살자면 아마 연고가 없는 사람은
처음에 심한 우울증에 시달릴 수도 있을겁니다.
우리들이 원한 것은 '농촌의 이미지'를 원한 것이지 '농촌의 현실'을 원한건 아닐테였으니까요.

그런 분들에게는 워낭소리에 나오는 그런 아름다운 사계절의 농촌풍경을 권해드립니다.
우리들은 이미지를 먹고사는 존재.
우리들 추억속에 있는, 혹은 각종 매체들을 통해 정형화된 농촌에 대한 관념들은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감동할 수 있게 우릴 만들어주지요.

그래요. 이 영화는 그것만으로 찌든 우리들에게 충분한 듯 합니다. 
당신이나 나나 말로만 그렇지 어차피 귀농할 것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그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이미지를 원했던 것이지
그 이상은 어떤 관심도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알게 된다면 무척 피곤하고 불쾌해질지도 몰라요.
저도 그걸 굳이 깨고 싶지 않구요.




2.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동물입니다.


저는 원래 동물을 좋아하지 않아요. (이 포스팅 참조)
그래서 사람과 동물이 함께 나와 서로 삶과 감정을 공유하는 동반자로 나오는 설정의 
영화나 소설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답니다.

주인공 할아버지는 40년간 소에 의지해 불편한 몸을 의지하여 농사일을 해왔습니다.
이제 죽음을 앞둔 소는 비쩍 마르고 걸음도 굼뜨고 눈빛마저 퀭하지요.
그래도 할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위해 소를 죽는 그날까지 써먹습니다.

야임마님은 그것을 보고 일종의 동물학대라고까지 비난하기까지 했는데요,
저는 그건 아닌 듯 합니다. 그건 인간의 본성이니까요.
본디 약자는 사육되고 착취되다가 효용가치가 없어지면 버려지고 마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사람이 불타죽었어도 가십거리로 치부해버리려는 우리네 현실도 분명 그렇지 않은가요?

소는 노인의 삶의 동반자이기에 앞서 삶의 수단이자 도구였습니다.
노인과 소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함께 늙어가는 자로서의 동질감, 자신의 존재의 이유의 확인, 고마움과 미안함 등의 감정은 개인적으로는 부차적인 감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영화 식객에서 성찬이 자신이 키우던 소를 도살장에 보내면서 눈물을 흘리며
'너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을께'  이러면서 발골칼을 드는 개막장 후까시는 없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동물-인간간의 유대감이라는 주제는 무척이나 닭살스럽게 느껴져요.
Mr.Hell형도 포스팅에서 언급했듯, 노인은 소가 죽기 전날까지 골골거리는 그놈의 등짝에
산처럼 나무를 실어다가 집에 쌓아야만 했어요.
그는 소가 아들보다 낫다고 말은 했었지만... 
노인 역시 인간이었으니까요.




3. 노친네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차라리... 이 영화를 이런 주제로 풀어나갔더라면 또다른 매력이 있지 않았을까요.
농촌 노인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는 갈라지고 부르튼 노인의 손가락을 잡는 화면 정도였을까..  몸이 아픈 와중에서도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농사일에서 찾을 수 밖에 없는 고집센 노인에게서 보는 것은 연민이 아닌 일종의 분노와 좌절이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가게가 어느정도 사는 사람들이 많은 동네에 있어요.
그래서인지 주말이면 노인네들이 가족과 함께 와서
7~8만원짜리 송이해삼전복이니 이런걸 시켜놓고 드시곤 해요.
그런 현실에서 봉화송이축제; 조끼를 입고 자바라; 농약모자를 쓰고서
손발이 부르트도록 일하는 노인들의 모습을 직시하려고 하니 가슴 한곳이 먹먹해지더군요.

저들을 그토록 스스로 고생하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른 길을 보지 못하도록, 그 길만을 가도록 만들어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은 왜일까요?


여튼... 어디서 감동을 느껴야 할 지, 혹은 어디서 슬프거나 아파해야 할지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던 영화였습니다.
내 아버지의, 내 친척들의 삶이 누군가에게는 아름답고 슬프고 감동적인 영상이 되겠지만
현실에서는 그 것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을 보는 사람은 쉽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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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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