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람

일기는메모장에 2008. 12. 30. 02:48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쥐새끼에 지나지 않았건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개새끼가 되었다. 
다른 표현은 별로 필요 없다. 그는 그저 개새끼, 나쁜 사람.

***

올 한해를 돌아보며 가장 가슴이 아팠던 것은 불타오른 남대문도, 기름쏟고도or탈세하고도 뻔뻔한 또 하나의 가 족같은 회사도, 거진 반토막이 나버린 나의 무미래 에셋 변액보험도 아니었다.
그건 바로 사람들의 가슴속에 가득 들어찬 패배주의와 차가운 냉소를 보는 것이더라.

딴지일보가 인터넷계를 평정하던 그 시절쯤의 사람들에게는 어떤 의미로서든 변화에 대한 최소한의 확신이 있었고, 각자의 관점에서 보다 나아진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여유로움이 있었다. 지금은 과연 그럴까? 나는 아니라고 확신한다. 사람들은 이제 그런 딴지일보식의 비꼬기와 패러디로는 어떤 카타르시스도 느낄 수 없는 상황까지 와 있다. 

***

얼마전 개나라당 대변인의 멘트가 압권이었다.
“전광석화처럼 착수하고 질풍노도처럼 밀어붙여야 한다”
“속도전에 들어가야 한다”
"전 국토가 거대한 공사장처럼 느껴지게 해야 된다. 망치 소리가 울려퍼져야 한다"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2260252465&code=940100

이 멘트 가만히 보면 조낸 웃긴데, 옛날옛적의 과방 책꽂이 귀퉁이에 쳐박혀 있던 자주적 학생회 문건에서나 발견되는 그런 표현 같아서 절로 비웃음이 실실 나온다는 말이다.
아직도 가물가물 기억나는 구절이 '선전선동에 박차를 가하여.. 학생회실에서는 항상 대자보와 플랑을 만드는 페인트 냄새와 매직냄새로 가득차 있어야 한다' 이런식의 표현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치들의 사고 자체가 아직도 올림픽대교 놓던 시절 이전에 있기에 언어구사 역시 그런 식으로 밖에 불가능하달까.

국민을 총동원해야 할 '자원'으로 보는 시각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군대에서였을까? 기업에서 HR관리를 오래하다보니 그리 된 것일까? 아니면 근래 '나의 투쟁'이라도 읽으셨나?
하지만 군대나 기업에서도 그런 인적자원들의 일탈이나 정신적 피로를 막기 위한 포상이나 복지라는 이름의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갖추고 있는데, 이놈의 정부는 그런거 전혀 없다.
참 담백하고 솔직해서 좋다. 요즘 시대가 쿨함을 빼고서는 논할 수 있는게 없기에 이것도 쿨한 것중 하나로 봐줘야 하나?
그냥 그의 정치행태는 판테라 2집의 이름과 정확히 일치한다.

"Vulgar Display of Power"

그나저나 다임백 형은 왜 먼저 갔다니...

***

실험실 안의 기니피그는 오만가지 약물을 맞고 장렬히 전사한다.
그들은 작고 유순하고 건강하기에 인간에게 그렇게도 만만한 실험동물로 전락해버렸다.

오늘도 어떤 쥐는 우리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여 
꿈의 나라 사랑의 세계 건설을 위해 준비해둔 수많은 실험들을 진행중이다.
역사를 바꾸는 실험, 재벌의 배를 불리는 실험, 약자를 파멸시키는 실험, 환경을 파괴하는 실험 등등..

지킬박사는 자신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고, 그 리스크를 온전히 자신이 껴안고 스스로 파멸을 맞이하지만, 쥐는 그럴 위인도 못된다.

기니피그와 마찬가지로 모든 리스크는 피실험자가 떠안게 되고
실험자는 그냥 '어라.. 뒈졌네? 담에는 다른거 해봐야지 히히' 하며
장난꾸러기처럼 실실 웃고 다른 놀잇감을 찾아 새로운 방식으로 놀면 그만이다.

나이 육십이 넘은 무서운 어린이.
앙팡 테리블.

***

우리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 스스로 그 것을 바로잡을 수는 없을까

올 한해 우리에게 웃음을 앗아가고 그 자리를 냉소와 패배주의로 잔뜩 채워준 쥐에게는
결코 위트로 되돌려줄 것은 없는 듯 보인다.
그 것은 올해 충분히 보아왔고, 대개 그 대가는 참혹했다.

이제 어디까지 달려갈 것인가
갈 데까지 가기 전에 그의 이름을 다시 불러야 할 때가 곧 도래하지 않을까.
내년에 만약 광화문앞을 다시 군중들이 채운다면,
그때는 유모차 부대와 중고생들 대신 아마도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든 성난 실업자와 학생들이 거리를 채우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당신은 절망이란 것이 뭔지를 정말 지치지 않고 알려주려 하는군요.
당신을 원래 싫어했지만 이제는 무섭기까지 해요.
어휴..
당신은 정말 나쁜 사람...



어쨌거나 슬픈 포스팅은 이제 그만. 




새해에는 좋은 일이 슬프고 아픈 일들보다 더 많기를.
모두들 복 많이 받으세요. 꾸벅.

'일기는메모장에' 카테고리의 다른 글

3월 20일  (3) 2009.03.16
벌써 일년  (2) 2009.03.07
2월 17일  (6) 2009.02.17
2월 5일입니다  (2) 2009.02.05
즉흥적인 삶  (8) 2009.01.15
2008년의 나 그리고 블로그  (10) 2008.12.24
취향테스트  (8) 2008.12.10
시내투어한 이야기  (1) 2008.11.18
멀리 간 이야기  (5) 2008.11.12
조금 지치고 있는 것 같다  (9) 2008.11.06
블로그 이미지

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