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원작자인 코맥 맥카시의 로드를 읽었음.

이 참혹한 대재앙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는 작가의 방침인지
왜 이렇게까지 된 건지는 알 도리가 없었고 그 세상은 살아남은 인간이 가장 두려운 존재였던거임.

더이상 인간이라 부를 수도 없을 생존자들의 무리를 피해(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남으로 남으로 힘겨운 삶의 여정을 옮기는(이것 역시 뚜렷한 이유는 없음) 두 부자의 걸음걸이를 지켜보는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야말로 한숨이 조낸 나옴.

결국 인간에 대한 절망속의 한가닥 희망이라는 메세지를 읽을 것인지,
혹은 산자가 죽은자를 부러워하는 세상을 불러온, 인류가 끝내 달려가고야 말 절망에 대한 경고의 메세지를 읽을 것인지는 읽는 이의 판단에 달린 것 같음.

갠적으론 인육을 먹는 사람들(먹는 장면은 안나오지만)에 대한 묘사와 재앙 이후 가족을 버리고 목숨을 끊는 아내에 대한 기억에 대한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던 것 같음.

요런 대재앙 관련 소설 중에서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같은 경우는 작가가 보여준 인간에 대한 믿음과 휴머니즘에 대한 신뢰를 엿볼 수 있었고
스티븐 킹의 미래의 묵시록(근래 무삭제판인 스탠드(The Stand)로 나오는 듯)같은 경우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저 절대적인 존재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성찰이 조금은 있었던 것 같은데,
이 로드라는 소설은 그리 친절하지 않은 작가의 전개방식과 그저 나타나는 암울함 그자체인 설정 덕분에 더욱 더 절망적으로 다가왔음.

바다를 보았을 때 더 큰 절망을 느낀 것은 나 뿐일까.
그 곳 역시 다른 곳과 다름없는 죽음의 공간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면서
언젠가 더 넓고 거치른 세상끝 바다로 갈거라던 마지막 희망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지
그냥 걷기 위한 길을 걸어가기 위한, 힘겨운 세상을 견뎌내기 위한 자신만의 진통제인지는
나도 모르겠음. 그저 우울함.

마지막에서 주인공 남자의 아들이 또다른 생존자에게 인계(?)되어 삶을 이어가는 대목은 이 소설의 백미인 듯 한데, 사실 희망이라기 보다는 슬픔이 가슴에 번져왔음.
자녀가 있는 부모의 입장이라면 부정이라는 자식을 지키려는 사랑의 감정에 대한 소회가 먼저 다가왔을 수도 있겠지만 총각이 뭐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겠나. 뭐 그냥 그랬다고.
혹시 기회되시면 한번 읽어보셈.

지리산 올라가기 전에 차 기다리느라 피씨방와서 대충 적고감. 여기는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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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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