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에 낮술이 1년간 본 한국영화중 최고라고 했었는데 아무래도 정정해야겠다;
이 영화는 지난 1년 반동안 본 한국영화중 최고였다-_-;;


지지난주 월요일에 시네시티에서 친구와 팝콘을 아구아구 집어먹으며 보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가슴이 먹먹하고 터질 것 같은 기분을 주는 영화더라고.







내용은 다른 블로그 찾아보면 다 나오니까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하고..
이 영화는 아시다시피 가정폭력이 어떤 것인지 경험을 해본 사람은 누구나 공감할 영화다.



나 어릴적엔 저녁 9시 이후는 너무 두려운 시간이었다.
그 시간까지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술이 떡이 되어 들어올 것이 분명하기에... 

늦은 밤, 술먹고 들어와 밤새 어머니, 할머니에게 행패를 부리고 집요하게 괴롭히고 모욕하다가
아침이면 아무일 없었다는 듯 안면 싹 바꿔 근엄하게 아침밥 먹고 출근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그걸 매일같이 받아내야 하는 어머니가 너무나도 불쌍하고 바보처럼 여겨졌었고.
그의 행동이 도무지 사람같지 않아 두려웠고, 나아가 그를 죽이고 싶다는 충동까지 느꼈었다.

자신의 울분을 술을 먹고 남에게 풀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더러운 버릇은
지금이야 환갑 진갑 다 지나 많이 수그러들긴 했다지만
여전히 그의 얼굴을 보노라면 지금도 가슴 한켠에선 치유되지 않은 그때의 분노가 치솟는다.
 
이 영화에서 상훈이 '아버지'라는 단어만 들으면 아버지를 찾아가 미친듯이 두들겨 패는데,
나는 그 장면에서 눈물이 쏟아질듯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가 나를 대신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이 영화는 결코 해피엔딩으로 끝나선 안된다고 난 영화내내 계속 바래왔고
감독은 다행히 끝까지 스필버그식 해피엔딩을 꺼내지 않더라.
다만 화해의 가능성만을 제시한 채.

가정폭력은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비빌 언덕이라 말하는
인간의 최하부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가장 비윤리적이고 잔혹한 행위다.

게다가 이 것은 남에게 드러낼 수도 없는 부끄러운 일로 여겨지고
그저 개인이 감내해야 할 짐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기에 더욱 그 심각성은 크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슴 한 곳에 가라앉아 있던 어떤 앙금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영화 내내 울컥울컥 할 정도로 감정의 동요를 느끼게 되었는데
어찌보면 내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이처럼 더러운 현실에 대한 차갑고 정제되지 않은  반영이 아니었나 싶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도 없고 말하고 싶지도 않은 그런 일을
감독은 너무도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건 나의 일이기도, 우리 이웃의 일이기도 하다.
다만 모두 서로에게 눈감고 모른척 하고 있을 뿐..

그게 바로 가족의 사랑이 최고의 가치라는 헐리우드 영화의 교훈적 엔딩이
사람들에겐 항상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였겠지.
(얼마전 보았던 '그랜토리노'에서 현대 미국 가족에 대한 씁쓰레한 묘사가 참 신선하더라)

영화처럼 폭력의 재생산이라는 측면을 배제하고서라도
그 가정의 구성원들은 인간에 대한 혐오와 분노,  증오와 냉소라는 감정에
모두가 피해자가 되고 마는 이러한 현실의 고리를 감독 역시 끊어야 함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과연 어떻게?

먼저 필요한 것은 상처의 치유다.
가슴 곳곳에 멍이 들어버린 수많은 상훈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결국 그 상처는 평생을 가게 될 것이니까.


이 영화를 보며 문득 어릴적에 우리 뒷집 아저씨가 아주머니를 개패듯 패다가
그냥 죽어버리라며 낫을 들고와 손목을 찍던 모습이 생각났다.

더욱 충격은 그들의 자녀 5남매중 그 누구도 그 모습에 반응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미 큰형은 집을 나간 상태였으니까 4자매라고 해야겠지)
내 또래의 그들은 그러한 폭력에 이젠 무감각해져서인지
주된 피해자인 어머니를 옹호하다 자신에게 올 피해가 두려워서였는지
그들은 그 모습을 외면하고 있었다.

가정폭력은 결코 답이 없는 문제다.
영화속 대사처럼 '집에 와서는 김일성처럼 구는' 이들에게
법적인 강경한 조치 빼고는 과연 무슨 해답이 있을까.

어찌되었거나 그 김일성의 자녀들의 가슴에는 깊고 깊은 상처와 분노만이 남아있는데.





P.S)영화중 유일하게 미친듯 웃게 만들었던 씬이 있다면
포장마차에서 상훈이 연희의 별명을 생각하는 장면이었다.
'일년이, 이년이(이연희;;), 삼년이, 사년이, 오년이... 썅년이... 야이 썅년아'

상훈식 언어유희;;에 난 미친듯이 웃었는데 주위의 관객들은 모두 조용해서 조금 부끄러웠다;;
그래서 이 영화는 커플들이 보면 안좋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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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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