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년 탈퇴 프로젝트 3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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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기간동안 한 번 읽어보리라 다짐하고 샀던 민음사판의 '백년의 고독',

닷새의 휴가 중 짬짬이 시간을 내어 다 읽게 되었다.


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일단 족보부터 틈틈이 확인하면서 보는 센스가 필요하다는거..



내용을 짧게 요약해본다면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가 사촌이자 부인인 우르술라와 함께 늪지대에 마꼰도라는 마을을 건설하면서 일어나는 6대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의 흥망성쇠를 그린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소설은 소설 초반 등장하는 집시 멜키아데스의 양피지에 적힌 예언대로 "가문 최초의 인간은 나무에 묶여 있고, 최후의 인간은 개미밥이 되고 만다" 라는 말과 같이 6대째에 이르러 돼지꼬리를 단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가 죽고 마을은 회오리바람에 날리며 멸망의 길로 이르게 된다. 이러한 근원적인 불행의 단초는 근친상간이라는 인류가 가진 배덕의 본능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러한 근친상간은 부엔디아 집안이 가지고 있는 방탕함과 탐닉, 그리고 무정함과 자신으로의 침잠, 혹은 무모한 열정과 방탕함-아우렐리아노와 호세 아르까디오라는 이름이 가진 두가지 성향-들이 가진 각각의 단점(열성인자)들을 확대재생산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보여진다.

결혼전부터 근친혼이 가져오는 '돼지꼬리'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힌 우르술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들 대에서 이미 근친상간과 창녀를 통한 욕망의 분출이 이루어지고 고모와 조카간의 사랑(아마란따-아우렐리아노 호세), 아들의 어머니에 대한 욕망(아르까디오-삘라르 떼르네라) 그리고 부엔디아 가문에 돼지꼬리를 단 아이를 탄생시키게 되는 원인인 고모와 조카간의 관계(아우렐리아노-아마란따 우르술라)에 이르기 까지 숱한 근친상간에 대한 묘사는 라틴아메리카 전반에 당시 횡행했던 역사적 사실의 풍자이기도 하겠지만 인간이 태고적부터 가지고 있던 근원적인 금기이자 한편으로는 인류가 가진 욕망의 본모습을 작가가 부엔디아 집안에 투영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 이유로 이 소설은 어찌보면 마꼰도로 국한되는 내용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조소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성적코드가 많이 드러나 있는 소설이기도 하지만 작가가 뿜어내는 위트와 과장된 표현은 상상을 초월한다. 열 일곱명의 여자를 만나 열 일곱의 아들을 가지고 모두 자손을 잇지 못하고 살해당한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자손들에 대한 설명, 마꼰도를 황폐화시킨 미국인 바나나 농장주들과 결탁한 군대가 들이닥쳐 파업을 하던 마꼰도 주민 삼천명을 총살하는 장면, 그리고 그 후 삼년간 끊임없이 비가 와 집안에 물고기와 도마뱀이 돌아다니는 장면 등은 가히 압권이라 할 수 있다.  

'마술적 사실주의'라 불리우는 마르케스의 이러한 표현양식은 신비롭고 허황되면서도 그 안에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면서 그러한 현실을 조롱하고 비판하고 있기에 더욱 그 힘이 크게 다가온다. 외부와 고립되어있던 콜롬비아 밀림속 마을이 문명화와 근대화라는 거센 바람을 맞게되면서  과거의 신비로운 자연의 섭리와 생명력, 인간 본연의 조화로움이 자리를 잃고 프랑스 창녀로 들어찬 매음굴과 투전판, 자유파와 공화파로 나뉘어 마을을 피바다로 만드는 지리한 내전, 마꼰도 주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데 여념없는 미국인 바나나 농장주들의 등장과 이들의 잔혹한 학살현장들로 채워졌고, 끝내 그들에게 남은건 세월속에서 떠나버린 사람들과 생기를 잃고 폐허가 되어버린 마을의 잔상, 그리고 부엔디아 가문의 종말을 알리는 돼지꼬리를 단 아기의 탄생으로 종결되어버렸다.

문명, 그리고 그것을 안고 찾아든 자본주의라는 불청객이 인류역사를 어떤 식으로 피폐화 시키는지, 그리고 그러한 소용돌이 가운데서 그 모든 것을 지켜본 우르술라처럼 죽음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류가 가진 도덕과 그 보편적인 원칙들을 지켜가고자 했던 이들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라틴아메리카만의 토속성과 서양의 고대신화, 인류가 가진 집단무의식, 그리고 식민지 체제의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이 두루 섞여 읽는 이로 하여금 수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는 소설이 바로 이 '백년동안의 고독'이다. 여기서의 고독은 단순히 '인간은 고독한 존재입니다' 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만들어내는 사회와 제도속에서 결국 인간은 본연의 모습을 잃고 끝없이 금물고기를 만드는 아우렐리아노 대령처럼 자신만의 세계속에서 방황하게 되지만, 결국 그 것은 길고 긴 인류 역사에서 끊임없이 되풀이 될 수 밖에 없는 모두의 숙명인 것으로 작가는 묘사하고 있다.


문체가 상당히 유쾌하고 풍자적이지만 그 내부를 가로지르는 숙명적인 비감은 이 책을 쉽게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큰 이유가 되었다. 게다가 근래 한미FTA로 논란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제3세계의 현실을 유추하게 하는 이 소설은 많은 울림을 가져다 주었다. 끝없는 욕망의 팽창과 인간성 파괴를 가져오는 약탈적 자본주의가 오늘날 '바나나 리퍼블릭'으로 불리우는 중남미의 현실을 만들어 주었다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무엇일지도 한번 다시 되물어볼 필요를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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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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