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리즈물들이 주는 한가지 교훈, 속편들은 오리지날만 못하다. 아.. 터미네이터2 정도는 예외로 두기로 하자; 여튼 이번에 읽은 이 소설도 그런 우리들의 선입견을 까부수지는 못할 것 같다.

전편인 눈먼자들의 도시에서 받은 감동의 여파가 너무 컸던 탓일까, 아니면 너무도 상반된 분위기가 주는 이질감 때문이었을까. 어찌되었거나 전편에서는 모든 이들의 눈이 멀어버린 아비규환의 '무정부상태'에서 한 여인과 그의 동료들이 찾아가는 인간이 가진 순수, 신뢰, 사랑, 공동체의식 등의 아름다운 면모들에서 개감동하며 눈시울을 적실뻔 했던 것과는 달리, 후편에서는 그것과 정반대의 감정, '관료제 국가의 권위주의적 체계'속에서 정치논리로 인해 인간이 가진 권리와 자유를 억압하고 나아가 음해와 모략, 살인까지 이르는 추악한 모습들 속에서 마냥 울적한 기분에 잠기게 한다.

읽으면서 과연 전편과 무슨 관련이 있는거야 라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되다가 후반부로 들어서면서 전편 등장인물들과 접점을 찾게 되었는데..
사실 속편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점이 있다. 다만 연관성을 찾아보자면 전편에서 눈뜬 여인이 말했던 구절, '우리는 애초부터 눈먼 사람들이었다.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다라는 말을 정치권력의 장으로 확대시켜 그걸 현실화 시킨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편에서는 개인이 '실명'했을 경우 집단 속에서의 혼란과 공포를 보았다면, 이번에는 '(권력에)눈이 먼 자'들이 통치하는 국가에서 살아가야 하는 (눈뜬)민중들이 겪는 참담함과 두려움을 보여주려는 듯 했다.

80%의 무효표가 나오는 정치상황도 참 재미있지만, 그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계엄령을 선포하는 정부 역시 참 재미있다. 이 것이 바로 권력을 소유한 자들의 속성인가보다.
우리들은 권력은 상호간의 관계속에서 이루어진다-혹은 이루어져야 한다고 배웠건만, 실제로 권력은 실체이고 소유물과도 같아서 그 것을 소유해야만 하는 제로섬게임과도 같은가 보다. (이건 아~주 옛날에 권력실체론-권력관계론 뭐 이런 식으로 배웠었던 듯;)

아오.. 서두부터 계속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현실과 연관시키고 마는 자신을 억누르려 무지 애먹었다.   
이 책을 올해 읽은 이들 대부분은 한번쯤 올해의 촛불정국과 연관지어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실제로 계엄선포후 수도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대통령궁 앞에서 침묵시위를 하는 대목에서는 오싹함까지 들었다.
소설 속에서는 결국 정권의 유지를 위해 무고한 시민을 희생양으로 삼아 언론을 통해 집중포화를 가하다가 끝내는 그 시민을 살해하고야 마는데, 심한 블랙유머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현실적이고 너무도 가슴이 아파와 견딜 수가 없었다.
올 한해 최대의 유행어가 된 이른바 '배후세력'을 이 소설속 눈 먼 권력자들 역시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출처는 hani.co.kr 입니다



전편에서 성모 마리아처럼 성스러운 존재로 묘사된 '눈뜬 여인'이 여기에서는 백색투표의 선동자이자 반정부 음모의 수괴로 지목되어 살해당하는 대목에서는 우리가 절망속에서 바라는 구원에 대한 작은 소망과 신뢰마저도 짓밟아버리는 작가의 잔혹함마저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우리들이 바라는 성모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기에 그렇게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 느껴졌다.
아아... 지금 글을 쓰면서도 너무 우울하다 휴ㅠㅠ


아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조낸 찝찝하고 불편한 소설이었으며 전편만큼의 포스는 없지만 읽고 싶으면 읽으셔도 좋은 책 되겠음.  
갠적으론 마지막으로 나온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는 왠지 읽고 싶지가 않다; 도시 시리즈는 요정도에서 마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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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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