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자본론;의 핵심을 찌르는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임승수 저, 시대의 창 2008.12.23



잉여


이 책을 사놓고 붙잡고 있던 기간은 거의 넉달 정도?;; 일종의 독후감이라고 생각하고 쓴다.


돌아보면 사회과학부에서 4년간 등록금을 쳐발랐다는 놈이 
자본론은 물론이고 맨큐의 경제학; 한번 안읽고 졸업한 것이 마냥 부끄럽기만 하다.
내게 있어 지금껏 맑스의 이론들이란 그저 뜬구름 같은 조각지식으로만 존재했었기에
이제서야 자본의 메커니즘에 대해 몹시 개략적으로나마 눈을 뜬 것이 참 겸연쩍기도 하고 한편으론 다행스럽기도 하다.

요즘 한동안 잉여질의 극을 달리던 내게 이 책은 또다른 의미의 잉여에 대해 눈을 뜨게 해주었다.
위의 사진에서 보듯, 자본의 이윤창출에 도움이 안되는 인간이 바로 이 사회의 잉여;라 할 수 있겠는데
이렇게 쓰이는 용법으로는 폐인, 백수, 키워, 산업예비군;; 등의 유의어로 조금은 뜻을 풀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여튼; 왜 이렇게 우리 사회에는 잉여;들이 넘칠까.
일하고 싶은데 일자리는 그렇게 없고 그나마 일해보다보면 왜그리 조건이 개좆같을까.
그리고 그렇게 꾸역꾸역 돈을 벌면 난 과연 집은 마련할 수 있고 결혼은 할 수 있을까.
걱정없이 자녀를 낳을 수 있고 그 낳은 자녀를 무사히 키워 남들처럼 교육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그동안 난 마음 편하게 아플 수 있고 쉴 수 있고 일할 수 있고 늙어갈 수 있을까..

얼마전 읽었던 한겨레 21의 기획기사 노동 OTL시리즈를 보며 공감의 경탄과 끝없는 한숨을 함께 내쉬게 된 것도 
아마 그와 같은 고민의 맥락에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돌아보면 나역시도 대학시절 중 1/4정도를 학비와 생활비를 위해 저 라인에서 일하며 노동력의 대가를 받았더랬다. 



개인적으로는 제 6강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욱 착취당한다고?'를 읽으며 '아 씨바'하는 감탄사를 내질렀는데,
'상대적 잉여가치의 창출'이라는 개념을 접하면서 지금 우리 경제현실의 어두운 면을 바로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기술의 발달에 따른 생산력의 증가는 자본가에게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상대적 잉여가치의 창출로 이어지지만,
반대로 생산력의 증가로 생필품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노동자들은 '절대적' 삶의 질은 높아졌으나 
'상대적' 삶의 질은 더욱 하락하는 결과가 주어진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오늘 이 땅에서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으나 쉽게 간과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전율했다.

우리는 예전에 비해 쉽고 저렴하게 다양한 제품들을 구입할 수 있고 그걸로 삶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해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그 원인모를 불안함의 이유를 풀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를 난 이 책에서 찾은 셈이다.


나같이 게으르고 머리 나쁜 놈에게도 각성의 계기를 준 이 책을 살짝 추천해본다.
일단은 나처럼 초반에 몰려드는 수식들에 경기를 일으키면 안읽히니 초딩 산수라 생각하고 접근해야 나을 듯 하다;
다 읽고 나니 필자가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쓰려고 엄청나게 노력한 책이구나 라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일단 읽다보면 고민거리와 의문점들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이 정상일텐데
그 즈음에서 시사잡지를 펴놓고 요즘 돌아가는 상황과 맞추어 본다면
이 나라는 맑스가 분석한 자본의 어두운 속성에 너무도 충실히 복무하고 있음을 어느덧 깨닫게 된다.
어찌보면 가카는 맑스가 우려한 막장 자본주의를 지금 이 곳에서 재현하기 위해 두세기를 건너 나타난 사절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며 떠올랐던 수많은 고민거리와 의문들은 관련한 다른 서적들로 풀어가기로 하며 
오늘은 이 책의 목차를 훑으며 머릿속으로 다시한번 내용들을 생각하며 잠들어야겠다.

어쨌거나 막막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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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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