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는 아니지만 아무런 주제도 없이
닥치는대로 책을 읽으며 하루종일 뒹굴거리고 싶을 때가 있다.

물론 지금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게 아쉽기만 하다.



어찌되었거나 요즘들어 메모를 종종 하는 편이다.
나는 현재 기억력이 엄청나게 감퇴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대학생활 내내 주6일을 술을 푸고 그중 필름이 한두번씩 끊기는 좆막장 생활을 하다가
회사에 들어가서 4시간 동안 술퍼먹고 4시간 자고 출근하는 생활을 3년을 했더니
이젠 머리 자체가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기분이다. 

요즘은 기억하기 위해 적고나서는 적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시간이 지나 그것을 우연히 다시보고서는 아, 그랬구나 하며 손뼉을 치는 경우가 간혹 있을 정도로
내 뇌세포는 막장을 향하고 있는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난 정말 자기관리를 더럽게 못한다. 반성좀 하자. 하아...


노래는 역시 책과 관련된 노래로..ㅋ;;







돌아보면 어릴적에는 책읽기를 참 좋아했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후에 새마을 농촌지도자?;; 뭐 이런 수상한 직함을 달고 있던 막내삼촌 덕분에
난 집 한구석에 놓여있던 새마을문고;의 책들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될 수 있었다.

머.. 그때 마을문고에서 읽은 책들은 농업기술에 대한 책이 절대 다수였으나
어린 나에게 신기하고 놀라운 세계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은 언제나 감동이었기에
나는 읽은 책을 또 읽고 다시 읽었으며, 모르는 것은 국어사전을 펴놓고 찾아보는 열성도 갖고 있었다.

송아지 부랄까는 법이나 레그혼이니 요크셔니 하는 여러 가축들의 품종명이 아직도 기억이 나는 걸 보면
그때는 그래도 나름 똘똘했었던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아..;; 작사작곡자분들은 이 노래를 만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초등학교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참 많은 동화책들을 읽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유산'이라는 무시무시한 현상을 알게 해준 장화홍련이라는 공포스러운 동화였고,

그 잔혹함에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한동안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동화들은 모두 내치고
잔인함과 복수를 다루고 있는 동화들만 내리 읽던 기억도 난다.


집에는 책이 의외로 많았다.
마을문고에서 남아있던 계몽사의 열두권짜리 청소년용 백과사전과
아버지가 후배의 간청으로 월부로 사셨다던 문학전질과
어머니가 처녀시절 사읽으셨다던 월간 현대문학같은 잡지들까지.. 정말 읽고자 하면 한도 끝도 없었다.

어른들의 성행위가 묘사된 장면에서는 알수는 없지만 뭔가 몸 어딘가에서 전율이 오는 듯한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될 것 같은 비밀스러운 감정을 느끼기도 했었고 

강경애의 지하촌이나 전상국의 아베의 가족과 같이
동화책에서는 찾아 볼 수 없던 파멸과 죽음과 몰락으로 이어지는 비참한 결말의 이야기들에
내가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한숨도 몰래 내쉬기도 했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 어머니께서 선물해 주신 70권짜리 과학앨범 시리즈 전질은
지금도 시골에 내려가게 되면 꺼내어 읽곤 하는 내게 고향과도 같은 책이었다.

짜증나고 힘든 일이 있을때 그 중에서 서너권을 골라 정독을 하다보면
어느새 나는 행복한 감정으로 변해있었던 듯 하다.

물론 12년 내내 백일장 등에서 상을 탄 적은 단 한번도 없었지만;
나의 생각을 글로 풀어내보려는 노력은 그때부터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추억의 과학앨범ㅋ




중고교 시절에 들어서면서 오히려 독서는 뜸해졌다.
주말마다 구립도서관에 가긴 했지만 라면 사먹고 자다 오는게 전부였었고
기껏 책이래봐야 스티븐 킹이나 시드니 셀던, 로빈 쿡 등의 상업소설들만 줄창 읽으며 시간을 때우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을 읽게 되었는데 좀 감동이었다.
글에서 느껴지는 간지가 A급 태풍을 연상케 했고 나도 대학가면 소설속 주인공의 저런 포스가 나올까 하는 생각에
갑자기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겠다는 초딩스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간지 쩌는 이문열의 여러 소설들을 미친 듯 읽었고
급기야는 논술에 도움된다는 이문열 삼국지까지도 독파하게 되었다;
그러나 고등학교때 제일 많이 본 것은 독서실에서 아이들과 돌려본
이나중 탁구부나 베르세르크 류의 시리즈물 만화책이었던 것 같다.




출처: dokoissyo.egloos.com/1319659

내인생 최고의 만화, 이나중 탁구부..





그렇게 찌질거리다가 어쨌거나 대학에 왔다.
선배들이 추천해주는 다현사 시리즈를 아무 생각없이 읽었다.
그동안 세상에 속고 살아온 것에 분노하게 되었다.


그래서 과방에 널려있는 붉은 색 책들을 관심있게 보았다.
수용과 거부로 충돌하는 내 마음에 놀라며 혼란을 느끼기 시작했다.

술퍼먹고 동아리 선배네 집에서 자고 일어났을 때였다.
'난 태백산맥을 안읽은 사람은 대학생이 아니라고 생각해'라고 말하는 선배의 말에 화들짝 놀라 태백산맥을 읽기 시작했다.
아 씨바... 이건 역사를 문학으로 승화시킨 한떨기 예술이었다.
난 결국 알바한 돈으로 태백산맥을, 훗날 아리랑과 한강까지 장만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공서적 살 돈으로 술퍼먹고 친구 책을 빌려 제본하는 막장테크를 타기 시작하면서 
독서는 그렇게 나와 너무도 멀어지기 시작했다.


겨울꼬막처럼 읽히는;; 내겐 최고의 대하소설입니다




그렇게 술퍼먹고 놀다가 군대에 갔다.
책이라고는 까치병장이나 핑클도 아는 국군의 주적 따위의 막장만화밖에 못보다가

어느덧 책읽을 짬밥이 되어 책장을 뒤지다 발견한 것이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었다.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이렇게 괴로울 줄이야.
이주만에 간신히 완독했다. 내용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저 읽어냈다는 자신이 너무도 뿌듯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도 읽었다. 
나의 사고의 틀이 작살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국민교육의 도장이라던 군대에서 배울 것은 그닥 없었지만 
그 시기에 접했던 책들만큼은 참 소중했던 것 같다.



레전드 중의 레전드..





그렇게 어영부영 삐대다가 제대하고 복학을 했다.
바깥세상은 인터넷의 시대로 바뀌어 있었다. 이른바 논객들이 키배를 뜨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월장사태와 안티조선의 파도 속에서 활약하던 원조 키워 진중권의 글을 보고 한순간에 그의 빠돌이가 되었다.

그의 책을 미친듯 읽기 시작했고, 웹에서 이른바 논객이라 불리는 이들의 책을 미친듯이 읽기 시작했다.


그러던 도중 어느순간 느꼈다. 난 이들의 생각을 이해하기에는 기본 지식과 사고의 깊이가 너무도 부족하구나.

그러나 나는 사고의 깊이를 갈고 닦는 지적 수련은 전혀 하지 않았고

대신 대균쌤과 토마토의 토익책을 갈고 닦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좋지 않았고 취업의 벽은 높았다고 전해진다.

이문열과 젖소부인에서의 그 통쾌함은 지금도 여전하다.

끔찍해..




어찌어찌하여 운좋게 취업을 했다.
대세는 경제/경영서적 및 자기계발서라길래 
나 역시 흐름에 편승하여 그런 부류의 책들을 사읽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다. 분노가 일었다.
살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상식을 가진 사람이 되기 위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 시점이었던 것 같다.

회사를 그만둘 작정을 한 마지막 해에는 업무비용 일부를 유용하여
다달이 소설과 사회과학서적을 사보는 깡을 부렸다.
회사를 더욱 다니기 싫어졌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요리관련 서적들을 샀다. 사진이 예뻤다.
하지만 그렇게 못 만드는 자신이 미워졌다.

한편으론 예전처럼 소설과 사회과학 서적들을 샀다.
하지만 예전엔 시간이 없어 못읽었다지만 지금은 몸이 피곤해 못읽었다.

예나 지금이나 변명은 하면 할 수록 느는게 맞다;









올해들어 책을 안읽는 자신에 대해 몹시 반성하게 되었다.
사는 것은 줄이고 대신 그동안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을 파기 시작했다.
버거웠다.

아직도 읽을 책이 산처럼 쌓여 있건만 
일반수학의 정석과 성문기본영어처럼 앞의 몇 페이지만 읽고 내팽겨쳤던 책을 다시 꺼내 차근차근 읽어가는 일은 
군대시절 독서의 추억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더라.   



아, 여기가 오늘 이 글을 쓴 결론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난 오늘 다시 일을 저질렀다.
인터x크에서 책 10권 주문-_-;;;

각종 할인권과 포인트로 대충 9만원 정도로 맞추긴 했으나
이것들을 과연 언제 다 읽을 수 있을지는 몹시 의문이다.


실은 최근 모씨의 악마의 유혹에 매우 시달리고 있는 관계로 
차라리 긍정적인 일에 돈을 써버려 만일의 사태를 미연에 방지해야 할 것 같다는
급박한 생각에서 저지른 일 되겠다;


요즘 추워서 운동도 제대로 안하고 있는데 가열차게 독서에 불을 지펴보아야 겠구나.
이제 연말이라 바쁘겠지만 틈틈이 읽으면서 짧게라도 여기 메모장에 감상을 올려야겠다.
한번 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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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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