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일

일기는메모장에 2009. 8. 20. 23:24

#1. 그러니까 그제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별로 관련없는 이야기지만.

그가 평민당 기호3번으로 출마했던 87년, 내가 초등학교 3학년때였다.
당시 면서기를 하시던 우리 아버지께서는 마을모임에 나가시면 항상 사람들에게
기호 1번을 찍을 것을 종용하셨던 기억이 난다.
시절이 시절이고 지역이 지역이었던지라 사람들은 다들 그러마 했었을테지.
아마도 아버지 역시 윗선에서의 암묵적인 지시가 있었기에 그러시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여튼 아버진 당시 20대였던 우리 막내삼촌이 불안했던지 삼촌에게 꼭 1번을 찍어야 함을 역설했고, 
삼촌 역시 그러마라고 했으나 당시 삼촌이 읽던 책은 속지 첫페이지에 김대중 칼라사진이 박힌, 
광주를 비롯, 그분의 지난 민주화운동의 궤적을 그린 상당히 불온한;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지역 말이 나와서 말인데,
당시에는 내 친구-좆초딩들도 '김대중은 빨갱이'라는 말을 아무 거리낌없이 내뱉고 다녔다.
난 '빨갱이'라는 말 자체가 너무도 무서워 쉽게 입밖에도 꺼내지도 못했었는데.

당시 애어른 할 것 없이 모두들 '김대중은 빨갱이' 소리를 하고 다니던 때라
어린 내 생각에는 빨갱이가 대통령후보에 나왔는데도 경찰은 왜 저사람을 체포하지 않지?
왜 다들 진실을 모르고 있는거야? 하면서 안타깝게 여겼던 기억도 난다;
돌아보니 좀 슬프다.

지금은 그 동네, 많이 변했을까?
윗대가리들이 정치적으로 이용하기위해 이용한 지역감정은
결국 무지렁이에 가난뱅이인 우리들만 서로 나뉘어 치고받게 만드는 최상의 결과를 가져왔으니.

97년은 내가 대학에 갓 입학했을때였는데 아쉽게도 만 20세가 아니었던 관계로 투표권이 없었다.
선거당일 밤, 투표결과를 지켜보다가 욕을 하며 티비를 확 꺼버리던 아버지의 뒤에서
난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무언가 변화가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는 5년동안 그 기대를 '크게' 저버리진 않았다.


그랬다.
그는 최초로 북한과의 화해협력의 물꼬를 틔운 장본인이었고
외환위기를 극복해냈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낸 리더였으며
제도권 민주화 세력의 정신적 스승이자
명석하고 논리적이고 열정적인 신념가였다.

한편으론 지역감정의 최대의 피해자였으나, 원하던 원치 않았던 그것의 재생산에 일조한 정치인이었고
보혁갈등의 심화 속에서 이를 해결해내지 못한 것과
정상회담 관련한 커넥션 의혹 및 아들 및 측근들의 비리 연루로 인한 이미지 실추
무엇보다 87년 야권단일화 불발에 대한 비판은 앞으로도 논란거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여러 논란들을 차치하고서라도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대한민국에 대한, 인간에 대한 애정과 선의와 올곧은 신념은
앞으로 이땅에 살아갈 우리에게 오랫동안 큰 빛이 되리라 확신한다.

그 분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한계가 있고
나역시 아는것과 경험한 것이 없기에 이쯤에서 줄이자.
실제로 무지한 나 따위가 감히 평할 수 있는 분이 아니기에.


그렇다. 그 분은 큰 산과도 같은 분이었다.

다시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s)
노무현과 김대중을 술안주 삼아 씹으며 세상이 이모양인 것을 그들 탓으로 치부하시던 아버지,
이제 그들이 모두 떠났으니 이제 무슨 낙으로 술을 드시고 세상을 탓할 것인가 궁금해지는 밤이다.

어쩌면 그런 어르신들은 지역주의 반공주의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할 불행한 세대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평생 믿어온 가치관이 붕괴되어 가는 것을 견뎌낼 수 없는 현실 속에서
평생을 확증편견과 인지부조화 속에 끊임없이 갈등해야 하는 슬픈 인생 아닌가.

그분들에게 이젠 더이상 고민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어야 하는게 우리세대의 몫일텐데..

난 지금 키보드 워리어짓이나 하고 있다.
슬프다. 





#2. 송이우육, 마라우육 시전

야임마님 집이 비어서; 부모님 놀러갔을때 야동보러 친구들이 모이던 옛추억도 되살릴겸;
일끝나고 놀러갔다. 물론 야동은 안봤다;

다만 송이랑 쇠고기 및 각종 야채류를 주방에서 몰래 챙겨서;
송이우육과 마라우육을 만들어 보았다.

마라우육. 물론 내가한거 아니고 부산일보 기사에서 불펌. 문제되면 지울께연


하면 할 수록 중식은 집에서 해먹기 존내 불편하다는 생각을 한다.
일단 화력이 안되니 불맛이 날 리가 없고 익는 상황이 같을 수가 없으며 
중식에 필요한 소스들이 없는 집이 태반이고
재료를 손질하고 데치고 기름에 튀기고 하는 것들이 참 번거롭다.

여튼; 그렇게 훔친 쇠고기와 송이로; 송이우육과 마라우육을 만들었다.
마라우육은 원래 등심아스파라xo소스를 하려고 했던건데 xo장을 깜빡잊고 안퍼와서
급히 고추기름을 내어 장르를 바꿔보았다.

야임마님이 맛있대서 존내 으쓱했다.
재미있다.

나 사실 너한테 말 안한게 있는데

둘다 만들때 미원 넣었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씨발 직업병-_-;

일년반도 안되어 나역시 이미 문성근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근데 아까전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또먹고싶은걸보니
어제니가해준게맛
있긴맛있었나보다
ㅋㅋ



어느 분께서 해준 명언이 있다.

맛없는 음식을 손님에게 내놓느니
미원을 넣더라도 맛있는 음식을 손님에게 내놓는게 바로 요리사다.


궤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노력의 부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맛있다라는 가치는 아직까지 절대적인 것.
맛있대서 다행이다 친구야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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