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일기는메모장에 2009. 10. 9. 01:49
#1. 친구 이야기

공원파라 부르던 친구들 모임이 있다.
고3때부터 군대가기 전까지 동네 공원에서 해질무렵 모여 술먹고 노닥거리던 한량들의 모임인데
다들 초중고딩 시절 한번씩 같은 반이었거나 얼굴들을 보아왔던 작자들, 혹은 그들의 친구들로서
돌아보면 참 오래오래 끈질기게 이어져오는 인연들이다.

구성원들의 모습도 참 다양하다.

모 대기업의 촉망받는 인재이자 이재에 몹시 밝은 모 대리님, 또다른 대기업에서 9살 연하의 직장동료에게 작업하느라 정신없는 모 대리님,
공무원 준비 접고 바리스타 준비로 돌아선 어떤 비정규직 노동자, 십수년간 고난의 세월을 참고 묵묵히 달려온 영화 촬영 퍼스트,
모 기업에서 밤낮없이 일하랴 연애하랴 바쁜 주임님(진급했나?), 무서운 조폭의 생김새로 아이들을 가르친다 말하는 학원강사,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신림동생활을 하나 데모는 자주하는 고시생, 두 딸의 아버지로 또다시 세째를 가졌다는 소식이 들리는 방사선기사님..

이제는 모두 모이는 것은 일년에 한두번 정도.. 앞으로 모두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갖게 되면 그것도 더욱 힘들어지겠지.
대학시절 친구들의 비슷한 출신성분과 비슷한 회사와 비슷한 결혼.. 어느정도 사회에서 일반적이라 인정되는 선에서 살고 있는 모습과는 달리
이 친구들의 모습은 너무도 스펙터클하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어 때론 불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흥미진진하고 즐겁기도 하다.
나 역시 그런 불안함 및 즐거움에 한 몫 거들고 있긴 하다만.

문득 이들이 너무 보고 싶어지는 밤이다.
사람이 보고 싶어지는 데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그냥 그 친구들이 보고 싶다.




#2. 위기

무미건조하던 내 삶에 간만에 위기가 찾아왔다.

크게 건강의 위기와 금전적 위기인데, 둘다 원인은 내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최악의 경우, 지금까지 이어지던 일년반 동안의 평화롭던 삶을 뒤집어 엎을만한 파괴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건강문제는 검사를 자세히 받아봐야 알겠지만 일단 술담배를 지속적으로 참는 선에서 내 자신과 타협을 해야 할 것 같고
금전문제는 대출가능여부 및 이율을 확인하고 전세를 얻거나 혹은 의정부로 들어가는 방향 등 다양하게 고려해야 할 듯 하다.

둘다 시급한 일인지라 한동안 고민을 하다가
차분하게 일처리를 하되 낙담하거나 절망하지는 않기로 했다.
세상 모든 일이 벌어지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들이 누적되어 왔기 때문이며
어차피 거스를 수 없는 일이라면 오히려 지금 시점에서 발생한 것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하기로 했다.

얼마전 친구에게서 빌린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라는 책을 읽다 마음을 굳힌 것인데
어차피 이젠 어른이고 실질적으로 가장인 내게 이 일들은 앞으로 어느 시기에서 한번은 겪어야 할 일들일 것이라 생각하고
담담히 받아들이고 보다 현명하게 대처방안을 찾는 것이 더욱 중요하리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니 마음도 편해지고 머리도 맑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어차피 난 일년 반동안 살아오며 가장 행복한 날들을 보냈지 않는가. 이젠 그 수업료를 낼 시기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수업료가 꽤나 비싸긴 하다;
여튼 잘 헤쳐나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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