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정말 말이 필요없다.
간만에 본 정말 기분나쁜 영화였다;;
못보신 분들은 꼭 한번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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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을 보고온 여제자를 어찌어찌 한입; 하려는 성악과 교수(이병준)는
찌질함의 극한을 보여주는 캐릭터다.

그는 무시무시한 폭력의 현장에서 나약하고 비굴한 인간본성의 한 단면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가진자들의 탐욕과 위선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역할을 너무도 잘 소화해낸 그는
실제로 모대학에서 뮤지컬을 가르치는 교수라고 한다 -_-;)=b
임시번호판을 단 벤츠가 아작나는 고통;을 감내해야했던 그는
극중에서 한석규, 이문식과 버금가는 지존의 연기실력을 보여준다.


여기서 드는 약간의 의문은 극 초반 (교수에게 오디션 합격을 바라는 마음에서) 자동차에 동승한 여제자 역시
어느정도는 성상납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노래방; 수준의 발성과 연기력을 가지고도 오디션에 합격하려고 하려는 마음가짐 자체가 상당히 불순하지 않나.

아마도 그녀는 교수에게 줄말련;짓을 해서 그걸 얻고자 하는
어설프게 교활한 된장캐릭터;로 자리매김했었어야 어울렸겠지만

차예련의 연기력 부족때문인가 시나리오상의 문제 때문일까
그저 폭력의 희생양으로밖에 표현되지 않는, 그 무엇도 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역할로만 표현되는
존재감 없는 캐릭터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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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얼굴은 예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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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달수는 군대폭력에 의해 희생된 캐릭터를 보여준다.
군대에서 구타를 당해 정신이상은 물론 한쪽 귀의 청력까지 잃은 그는
돼지를 잡는 일을 하며 사는 약간 모자란 인물로 나온다.

이 사회가 만들어낸 폭력의 피해자의 전형으로 자리매김하는 역할로서
자신의 트라우마로 인해 미친 듯 폭력을 행사하는 그는
극중의 감초로서 맛깔나게 연기하고 있다.





뭐니뭐니 해도 이 영화에서 스토리나 연기면에서나 가장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은 바로 이문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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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로서 영화속 줄거리의 핵심을 담당하고 있는 그의 무게감은 정말 대단했다.
선량한 농촌총각의 모습에서 한 인간을 인격적으로 모독하고 폭력으로 무너뜨리고
나아가 그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려는 악마적인 캐릭터로 변해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소름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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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역시 어린시절 한석규가 주도한 학교폭력의 희생양이었으며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폭력의 대상을 찾아 다시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피해자이자 가해자로서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역할이었는데
결국 그 폭력의 사슬은 어떤식으로도 결코 해결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시집살이 심하게 한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면 며느리한테 더 심하게 시집살이를 시킨다던 우리네 옛말은
결국 이러한 구조화된 폭력의 순환 고리를 끊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함을 의미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동생의 참혹한 몰골을 목격하고 상황을 파악한 한석규(운재)가 던진
'진짜로 미안하다'라는 말에 그는
'이대로 못끝내겠는데.. 받은 것 돌려주려면 아직 멀었어요'라고 답한다.

이문식(봉연)이 약자였기에 당해왔던 만큼 그는 자신보다 더 약한 자를 찾아
자신이 당한 것 보다 더욱 강한 강도로 복수하는 것을 택했다.
폭력은 이렇게 한 인간의 정신을 육신을 인생을 처참하게 붕괴시켜버렸다.

그는 이미 그 것의 반복 속에서 이미 폭력에 대해 무감각해져 버린 상태..
폭력은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 역시 인간과 사회의 무리에서 탈락시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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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백미는 1시간 40분쯤에 나오는 한석규(운재)의 광기어린 폭력씬이다.
웃으면서 잔혹하게 봉연(이문식)을 구타하는 그의 모습은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살벌한 연기였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가장 불편한 장면 중의 하나였다.


불편하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영화속에서 지금까지의 일방적인 피해자였던 현재(김시후)의 모습에 동정하던 내가
그 폭력의 가해자인 봉연(이문식)이 단순한 폭력의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원인의 시발점인 운재(한석규)가 경찰이라는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자의 입장에서
다시 그 폭력의 정점에 서서 행하는, 보는 이의 예상을 넘어서버린 그 잔혹함의 향연 때문이었다.
한석규는 어찌보면 국가적인 차원에서 행사되는 폭력을 대변하는 캐릭터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서 선악의 구분은 더이상 필요치 않았고
단지 모두의 가슴속에 남은 상처와 고통에 의해
상대를 증오하고 저주하면서 살의를 키워가는 그 과정은
거의 하드고어 수준에 가까운, 섬뜩한 공포를 느낄만한 장면이었다.

봉연은 자신이 이미 설득할 수 없는 존재였고
봉연이 현재에게 행사한 폭력의 근본적 원인이 자신이었음을 깨닫게 된 그는
봉연에게 수갑을 채우며 웃으며 뇌까린다. "흐흐.. 이새끼는 이거 맞아야 깨갱을 하지"

폭력은 또다시 폭력을 부르고, 그 강도는 이제 상식선을 넘어서게 된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복수는 또다시 복수를 낳고 피는 또다시 피를 부른다.

가학의 쾌감에 심취한 듯 연신 웃으며 구타를 자행하는
광기어린 한석규의 연기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요즘 하는 영화마다 개죽을 쓰는 석규횽이 참 안타까워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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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에서 합법적 비합법적으로 자행되는 폭력들에 우리들은 무감각해져 있고
심지어 그러한 폭력을 묵인하고 심지어 조장하는 환경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네 삶은 항상 부조리와 굴종, 억압속에서 허우적댄다.
사실 이러한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내가 폭력의 피해자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미시적인 폭력까지 더한다면 그 것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느와르도 슬래셔도 하드고어 영화도 아닌데도
이렇게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추악하고 부조리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지 않나 싶다.
마무리가 너무 어설펐고 조금더 잔인했으면 하는 바램도 있지만
굳이 별을 주자면 네개는 줄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한가지 의문점..
약먹은 쥐를 먹은 양아치들과 자신의 용각산을 가져간 교수는 왜 안죽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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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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