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년 탈퇴 프로젝트의 일환;

예전에 썼던 글 중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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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낮에 명보극장 근처를 지나는데

50은 족히 넘어보이는 거지 아저씨 하나가

어떤 점포 밖에 점심먹고 내놓은 것으로 보이는 신문지로 덮인 밥오봉을 붙들고

조심스럽게 갈치조림 찌끄러기를 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


문득 비둘기가 생각났다.

자동차에 치여죽는 몇 안되는 날짐승이 되어버린,

인간이 그야말로 좆병신으로 전락시켜버린 불쌍한 생물인 비둘기 말이다.


야산에서 좆나게 푸드덕거리며 날아다니는 산비둘기와는 달리

이 도시의 비둘기들은 인간에 의해 길들여지고 또한 인간에 의해 버림받은

그런 눈물나는 비참함을 온몸 가득히 보여주는 생명체다.


도무지 성한데가 없이 잘려나가버린 발가락과

넋나간 퀭한 눈과 꼬질꼬질한 깃털,

자동차가 달려들어도 귀찮은 날개짓으로 일관하는 무기력함과

그리고 취객의 토사물과 종량제 봉투에 담긴 음식찌꺼기에도 부리질을 해대는

절박한 삶의 모습, 도망칠 수 없는 비참함까지 갖춘 이 도시의 비둘기들은

빌딩숲 사이의 음험한 그늘과도 같은 어두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어찌보면 지금의 내 마음에 대한 투사일지도 모른다.


그 아저씨는 매콤한 양념에 푹 졸여진 갈치조림 안의 무쪼가리를 조심스레 집어먹고 있었다.

많이 짤텐데... 저걸 어떻게 먹고 있을까 라는 궁금증도 잠시,

새까만 손가락으로 무쪼가리와 반찬들을 연신 집어 입으로 가져가는 그의 모습에

그래도 생명을 이어가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느껴진 덕택에

나도 모르게 '아.. 시발..' 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무래도 그의 뒷모습이 비둘기와 닮아보였던 건 내 안쓰러운 상상력 덕분이었던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인간들이란 똥파리들과 다를게 없다고 한 어느 시인의 말처럼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인간들이 그 무엇보다도 잔혹하고 비정한 존재이기 때문이며

그 무시무시한 인간들 사이에서 도태되어버린 이들을 이르는 단어인

이른바 거지라 불리우는 이들은 인간이지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어버린 이들이기에

더욱 슬프게 다가온다.


노동의 가치를 부정하고  현실에 빈대 붙는다며 저들을 비난하는 목소리들은 잠시 접은채로

단지 인간이 스스로의 인간존엄을 부정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안타까움에

난 잠깐 멍해졌던 것 같다.


초가을 날씨는 뜨거웠고

명보극장 앞을 걸어가던 나는 문득 우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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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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