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의 속살

임지현, 삼인, 2001



-임지현 교수는 한양대학교 사학과 교수이고, 당대비평을 통하여 '우리안의 파시즘',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등의 문제작들을 집필하기도 했다.
그의 글을 읽으면 학자로서는 드물게 상당히 스타일리쉬하다는 느낌이 든다. 유려하고 개성있는 문체가 매력적이었다.
이 책에서는 앞서 언급한 저서들에 대한 세간의 비판과 지지에 대한 부연과 함께 자신의 주장들을 다양한 시각과 방식으로 총화하고 있었다.


그는 먼저 신체적으로 직접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군부파시즘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언급하고 그러나 그것이 미시화하여 '은폐된 억압구조로서의 파시즘'으로서 작용하고 있음을 구 파쇼국가와 사회주의 국가들의 예를 통해 통렬이 비판하면서 한국사회 저변에 널리 퍼져있는 미시화된 국가주의와 파쇼적 민족주의, 또한 그것에 기반하고 있는 사회주의운동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그는 파시즘국가와 대결하던 사회주의 국가가 오히려 파쇼적 억압기제를 사용하고 있음에 주목하며 사회주의국가들은 권력의 획득을 위한 기동전의 승리와는 달리 대중을 대상으로 한 진지전에서는 참패하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변혁의 성공을 보증하는 열쇠는 권력의 헤게모니를 민중의 헤게모니로 전화하는 진지전의 승리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지전의 승리는 곧 포괄적인 의미에서 문화적 전선에서의 승리를 의미한다. 문화는 물질적 실재의 단순한 반영이 아니라 실재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규정하는 코드이며, 그것을 통해 다시 물질적 실재 그 자체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힘이다. 그러므로 '진지전'이라는 문화적 전선에서의 승리가 담보되지 않는 권력의 장악은 과도적이고 한시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
이 것은 파시즘이 대중적인 지지를 얻는 민족주의 국가주의적 문화를 접수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벌이는 진지전에서 사회주의운동을 압도하였음을 의미한다.

이는 상당히 날카로운 지적인데, 나 역시도 기계화된 사회구성체론 속에 상부구조와 토대로 사회를 이분화하는 사고를 해왔고, 그것을 통한 사회변혁이 조금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결국 대중을 지배하고 있는 파쇼적 아비투스를 전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국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파시즘은 면면히 우리의 피 속에서 살아흐를 것이라는 현실과 직면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거대한 이념을 통한 사회구조의 변화는 현실의 미시적 측면에서 작용하는 아비투스를 변화시킬 수는 없었던 것이고, 그러한 미시화한 파시즘은 오히려 그러한 이념의 구체화 과정속에서 작동되어왔다는 것은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회주의 국가였던 동구권에서 왜 극우파가 왜 창궐하는가' 하고 그가 묻는 질문은 자못 우리의 현실과도 맞아떨어진다. 박정희의 망령에 여전히 매몰되어 있는 한국사회 역시 그와 다를 바 없다. 국가주도의 동원체제속에서 선전과 교육을 통한 내면화과정을 통해 결국 자율화해나가는 과정은 파시즘이 원한 대중의 자발적 통제와 같은 그 것이었다.

가부장주의나 부계혈통주의가 혈통적 민족관으로 연결되며, 이는 독재권력을 정당화하는 이념적 뒷받침이 되는 한국의 현실을 비판하면서 그는 마지막으로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라는 질문으로 대체할 수 있어야만 진정 근대를 극복하고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상당히 포스트모던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거대담론을 통한 이데올로기적 해결책을 바라보는 근대적 사고로는 진보운동과 변혁에 있어 더이상의 발전은 물론 파시즘에 대한 패배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면서 탈근대적 관점으로 이념을 권력을 문화를 해부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라고 생각된다.

약간의 원론적인 비판을 가하자면, 한국사회는 제도적으로는 독재를 벗어나 민주화과정을 이행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민주화는 여전히 먼 상태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념적인 폭이 지극히 좁고 보수이데올로기가 여전히 지배적인 한국의 현실에서 이러한 탈근대적인 주장은 현실적으로 적용하기에는 오히려 후퇴의 일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현실적인 민주화를 향해 더욱 박차를 가하고 이념적 다양성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지 않은 현재의 상황에서(곧 근대화가 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불란서 68혁명을 논하기에는 이른 감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주장대로 문화적 측면의 민주화, 아비투스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안의 파시즘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운동세력역시 스스로 붕괴될 우려가 클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위로부터의 개혁논의를 비판하는 입장또한 문제가 있으며,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를 총괄하는 총체적 개혁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지적한 파쇼적 문화에 대한 문제점은 분명히 중요한 점이라 본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적인 통로로의 접근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통로라고 보인다. 포스트모던한 문화론이 결국에는 자본주의의 좋은 먹잇감으로 전락해버린 현실의 상황에서 힘을 가지지 못한 문제제기에 대한 우려는 당연한 것이 아닐까...


일단 지금의 세대에 있어 거대담론에 대한 혐오감은 거의 대부분일 것이다. '나는 콩사탕이 싫어요' 라고 당당히 외칠 수 있는 지금, 맑시즘과 같은 거대담론은 뭔가 고루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물론 그들은 그것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거부하면서도 결국에는 미시권력의 힘에 의해 자신도 알지못하는채로 움직인다.
'그게 바로 세상이야' 라고 말한다면.. 난 할말이 없다. 나역시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중요한것은 실천이지만 나역시 이렇게 떠들고만 있다.


이 책을 읽고 그런 우리안의 파시즘에 대해 인식하고 경계할 수 있게 되었다는데 대해 그저 위안을 삼기로 하자. 모순을 실천으로 전화시킬 능력과 용기는 이미 무기력한 내게서는 더이상 찾을 수는 없다.

어차피 책을 읽는 것 역시 지적 딸딸이 행위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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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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