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 이래저래 바쁜 와중에서도 두개의 빅공연을 보았는데,

하나는 지난 달 상암에서 했던 그린플러그드 페스티벌이었고

하나는 며칠전 잠실에서 본 오페라의 유령이었다.





둘다 이래저래 할인을 받고서도 4만원 정도의 비용을 지출한 나름 고가의 공연들이었고
나는 이것들에 대한 투자비용에 걸맞는 가치를 얻었는가에 대해서는 좀 돌아봐야 할 것 같다.

내가 한 달에 벌어들이는 수입은 150만원.
이것저것 떼고 나면 이런 고가의 문화생활은 내겐 사치인데
내가 왜 이런 공연을 이리도 자주 보는가에 대한 고민을 해보면
이건 분명 일종의 허영심이다.
지금 이렇게 사진을 올리고 포스팅을 하는 행위 역시도 그것의 연장선상에 있다.
내가 장근석의 허세를 비웃을 처지가 아닌듯 하다.


일반 대중문화와 달리 덜 통속적이고 조금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문화를 좋아하는 것은 
부르디외의 말대로 문화 자체가 계급을 구별짓고 강화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상위계급에 속하리라 '여겨지는' 문화들을 접하고 누리려 발버둥치는
나와 같은 가련한 수요들은 끝이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자본의 제약이다.

어차피 현대사회에서 문화라 불리는 것들 또한 또다른 상품이고
그런 고가의 문화상품 안에는 대체로
'이 것을 구매하면 당신도 바로 뉴요커!!' 라는 매력적인 암시가 깔려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 가격의 장벽 앞에서도 뉴요커의 환상을 꿈꾸면서 눈물을 머금고 카드질을 한다.

나역시 마찬가지.
그린플러그드는 그민페와 같은 성격의 상반기 인디락 종합선물세트였기에 고민없이 표를 샀고
오페라의 유령은 9월에 막을 내리면 향후 몇년간은 못본다는 말에 고딩 책장에 참고서 꽂듯 내질렀다.

머, 물론 두 공연 다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문제는 나의 이런 문화상품 구매가 계속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

안타깝게도 경제자본의 면에서 난 철저하게 루저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문화자본의 영역에서도 루저로 밀려날 수 밖에 없다. 돈이 없으니 이 허세도 당분간은 부릴 수 없을 것 같다.
당분간은 황새 따라가려 하지말고 뱁새답게 살아야지.

돈없이 즐길 수 있는 것은 p2p에서 받아보는 불법다운로드 영화들과 멜론100곡류를 비롯한 압축된 mp3들인데,
뭐 이걸로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 가끔 근처 극장에 가서 유행하는 영화를 보는 것도 설레는 일이고.

하지만 그것 보다는 조금 더 있어보이는 것을 원하는 것은 내가 속물이라서 그런 걸까 주제를 몰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나 말고 다른 인간들도 다들 그런걸까?

여튼 난 소개팅을 나가서 당당히 뮤지컬을 좋아하고 
이상은의 음악세계에 공감한다며 내 취향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서 나는 소개팅녀에게 '이년아 난 너랑 다르게 이정도씩이나 문화적으로 우월한 남자라능ㅋ' 하며 '속으로' 으쓱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소개팅녀가 '어휴 븅ㅋㅋ 졸래 천민 주제에 허세자제훀ㅋㅋㅋㅋㅋㅋㅋㅋ'이라고 한다면 좆;;)

여튼 슬프게도 이 정도가 바로 내가 도합 10만원 가까이를 투자한 결과물이다.
결국 이런 짓은 자기가 좋아서 해야지 남들 의식하기 위해 하다가는 머잖아 좆tothe망 되겠다
허세의 길은 는 언제나 외로운 듯ㅋ



p.s)
뭐, 이러저러한 것을 다 떠나서
공공영역에서 다양한 문화 교육을 강화하여 저렴한 비용으로도 접할 수 있도록 제작된 여러 문화프로그램들을 통해 
소외계층에게도 향유할 수 있게끔 해주는 노력이 더욱 많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그래서 학교에서의 교육이란 참 중요한 것 같다.
미술관에 가도, 판소리 공연을 보러 가도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보고 들어야 하는지를 모른다면 짜증만 나겠지.
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관심을 기울이게 해줄 수 있다면
이처럼 취향을 통해 그 사람을 재단하고 평가하는 일,
그리고 나처럼 불행하게 허세작렬하느라 지갑에 구멍이 나는 사람들은 줄어들겠지.

여튼 허세부리러 갔던 얘기를 허세부리려 포장하여 포스팅을 하는 내 모습이 싫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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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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