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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주말이었지만 나름대로 주말 분위기를 내보고자

혼자; 맥주를 두어잔 하고 간만에 피씨방에 왔다.


내 메모장은 수많은 메뉴들에 대한 암기사항들이 빽빽하다.

아직까지 개초보라는 증거다.


오늘은 주말이라 그런지 일이 많아 힘들었고

내가 센스가 좋지 못하니 연일 크고 작은 실수에 혼도 많이 나고 있다.

그래도 열흘이상 지나니 초반의 삽질러쉬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것 같긴 하다. ㅎㅎ

그래 첨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이 길에 뛰어든 것 자체가 내 선택이고

나는 결과적으로 '술사'의 길을 걷기로 했으니

주위에 무슨 소리가 들려도 그저 못들은 척 대가리 콱 쳐박고

술사가 되기 전까지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웃으며 견디리라 다짐해본다.


집에 도착한 책은 잘 있을까?

항상 긍정적으로, 배우는 입장에서 노력한다면

노력의 결과는 그리 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난 매일 배운다.

내일도 한번 더 달려보자.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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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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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화백의 '식객'. 간만에 돈주고 사모으고 있는 소중한 만화다.
19권까지 3,7,13,14권이 빠졌으니까 지금가지 15권을 샀구나..ㅎㅎ

위에 올린 사진은 만화에서 크게 감동을 했던 부분이었기도 했지만
작년 가을 개봉했던 동명 영화에서 대박 실망한 부분이기도 했다. 눈물의 비전지탕 좆;
향후 나올 후편은 허영만 화백이 직접 시나리오를 쓴다고 하니 한번 기대를 해봐야겠다.

여튼 육개장... 반주하기 딱 좋은 국 아닌가... 크...
다음에 월급타면 양지머리 사다가 집에서 한번 육개장을 끓여먹어야겠다.
그간 고기를 살 일이 있었어야 말이지 원...

입 짧은 우리집 남자들이 고기를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
한달에 끽해야 한두번 정도만 집에서 고기를 요리해 먹었었다.
실례로 내가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은 건 1년도 더 되었을 것이다.

예전에 초등학교 졸업할 때 까지만 해도 김밥에 들어간 햄의 냄새와 맛이 너무 느끼해서
속이 메슥거려 밥을 제대로 못먹었던 적도 있었으니
지금 곱창이나 개고기나 가리지 않고 잘 먹어대는 내가 참 대견할 뿐이다.


예전 일하던 회사에서는 일하는 아주머니들을 위해 계절마다 대규모로 간식거리가 나왔다.
봄에 계란, 여름에는 수박, 가을에는 고구마, 겨울에는 우족 뭐 이런식이었는데,
기본적으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들에 조금의 흥미를 가지면
충분히 다양하게 변화를 시킬 수 있는 것들이었다.

봄에는 두 점포사람들이 먹을 50인분 정도 분량의 초장을 직접 만들어 골뱅이소면류의 비빔국수를 해먹었었고
여름에는 수박을 이용한 화채를, 가을에는 고구마로 맛탕을,
그리고 지난 겨울에는 우족으로 우족탕을, 그리고 같이 들어왔던 사태로는 육개장을 해먹었었다.

가장 반응이 좋았던 것은 비빔국수였는데,
예전 일식집에서 일했던 기억을 살려 초장을 만들어 하루동안 숙성시키고;
상추,양배추,깻잎,고추,양파 등등의 갖은 야채를 넣어 국수를 비벼 만들었다.

솔직히 비빔국수맛은 양념장의 맛이 절대적이지만
야채가 푸짐하게 들어갈수록 맛있는 건 당연한 것이었으니..
게다가 골뱅이도 썰어넣어 씹는 맛을 더했더니 무척 좋아들 하시더라.


평소에는 퇴근시간을 앞두고 고생한 아주머니들을 위해서
주로 물오징어를 데쳐서 소주를 한잔씩 하곤 했다.

가장 자주 해먹었던 것은 파전이었다.
파와 감자와 밀가루만 있으면 그 어떤 전으로도 변형이 가능했었다.

나도 피곤하고 그분들도 피곤한 하루였지만
이렇게 한잔씩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풀곤 하던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지난 겨울에는 육개장을 만들어 먹었었다.
숙주와 고사리, 토란대와 우거지 등 각종 야채를 데치고
결대로 찢은 사태에 갖은 양념을 해 섞은 다음 고추기름을 넣고 끓여낸 육개장은

내 스스로도 만드는 기분이 좋았고 먹는 그분들도 행복해 했었다.



다른건 잘 모르겠다.
내가 가려고 하는 이 길이 힘들고 어렵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내가 이렇게 그 과정에서 행복해 할 수 있고
누군가가 나의 음식에 지불한 돈만큼의 행복을 얻을 수 있다면
그만큼 멋진 삶이 어디에 있겠는가.

멋지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거다. 누가 뭐라고 해도 당당할 수 있도록.


내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날 수 있도록
내가 만든 음식의 맛을 잊지 못하는 이들이 생겨날 수 있도록
내가 만든 요리에서 지불한 가격 이상의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그렇게 살고 싶다.

아직은 갈길이 멀지만
힘을 내자.
자신을 가지고.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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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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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가슴아픈 밤이다.

노무현을 그동안 개인적으로는 무늬만 진보인 보수주의자라고 욕해왔지만
이명박님하;가 이제 오늘부로 대통령자리를 꿰차게 될 지금에서 돌아보면

앞으로 노무현정도의 '최소한의 상식에 기반한' 대통령이 다시 나오려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할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힘들게 돌아온 길을 너무도 쉽게 되돌아 가려 한다.
눈 앞의 것만을 위해.

좌파 빨갱이 어쩌고 하는 개잡소리는 다 집어치고
정확히 그의 포지셔닝은 '합리적인 보수주의자'가 옳을 것이다.

이 나라가, 우리 국민들이 최소한의 공화주의, 민주주의의 의미를 인식하고 있었더라면
분명 상당한 부분은 그가 가려고 한 길을 이해할 수도 있었겠지만..

중고등학교에서 '암기과목'이라고 불리는
정치와 역사와 윤리가 왜 그렇게 현실에서 중요한건지
깨달았어야 했는데... 우리들은 참 바보같았다.

좌파는 풍찬노숙의 길위에서 숨소리가 잦아들어가고
수구세력은 다시한번 열락의 기쁨에 웃음짓는 이 밤,

될 사람을 찍어야 한다며 그 분에게 표를 던지셨던 많은 분들은
머지 않아 '울면서 후회하네'라고 노래하시던 주현미의 명곡처럼 느끼지 않길 바랄 뿐이고;

그리고 나 역시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겠구나.



아.. 조만간 민노당 탈당계도 내야되는데 ㅅㅂ..

오늘밤은 이래저래 슬픈 밤이다.


막 소금물에 담가놓은, 홈플러스에서 670원주고 산 재첩이
낼 아침까지 해감을 꾸역꾸역 잘 토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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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빠르게 난 남들보다 다르게








Marilyn Manson - Sweet Dr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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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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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의 포스팅.
근데 별로 하고픈 말도 없군화..

날씨도 쌀쌀해지는데
다 때려치고 어디로 떠나고만 싶어열;

이젠 정말 인생 대충 살면 안되는데 후;
자꾸 대충 살고 싶어하는 마음이 매우매우 커지고 있네연

아놔.. 디질래연;
나 어떡해연;



이상도 시궁창, 현실도 시궁창.. 오덕오덕 씹덕씹덕;





Swinging Popsicle - Chocolate Soul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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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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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일기는메모장에 2007. 8. 19. 17:04






대한민국 그 어디에서

어느 누가 회사를 편히 다니고 있을 것이며

자신이 처한 처지에 대해 만족하고 있을 것이며

다가올 미래에 대해 낙관하고 있을까.



그러나 대부분은 그러한 불만족스러운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나은 미래를 만들어내기 위해

바쁜 일과 중에서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준비하고

그것들을 차근차근 실천으로 옮겨가고 있는데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나이는 어느새 서른.

하지만


자신있게 할 줄 아는건 아무것도 없고

머릿속은 아직도 세상에 대한 응석만 가득한

어린애에 불과하네요.


직장인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긴 하지만

난 어디에서 써먹지도 못할 잉여인간

그냥 뒈져버려도 세상은 잘만 돌아가겠죠.




조만간 새로운, 조금은 새로운 길을 찾아 보려는데

일단 그 전에 내가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기량이 있어야 할 것이고

그 전에는 내가 어디로 가야할 지에 관한 방향부터 확실히 해두지 않으면
 
나는  또 한번 먼 길을 되돌아 가야 할텐데...




그래도 앞으론 내 자신에게 조금만 부끄러워 하며 살고 싶어요.

우울한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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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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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미상님의 락덕후



얼마전 종료된 디씨 카연갤의 락덕후를 보고 난 다음 많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내가 중고딩 시절 했던 짓거리랑 어쩜 그리 똑같을 수가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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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찬 바하의 캐간지




어찌보면 참 아련한 추억이다....




중고딩 시절 나는 연주는 좆도 못하는 상황이라 그저 리스너로 머물렀고

그 리스너들 사이에서 쳐지지 않기 위해서는

핫뮤직과, 월드팝스와, GMV와;; 뭐 이런 잡지들을 구독하며 트렌드를 익혀야 했고;


전영혁님을 필두로 하여

조성진, 장현희, 성우진, 성문영, (갠적으론 이원 원츄;) 등등의 희대의 필진들이 작성한

앨범 속지에 적혀진, 마치 무협지를 연상케하는 그 현란한 글들을 닳도록 읽고 외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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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슬과 슬래쉬의 간지폭발;








피씨통신이란게 있긴 했으나 고딩때 사용하는 애들은 드물었기에

오프라인에서 이바구 까는게 전부였던 것 같다.


종종 기타를 들고와 후려보기도 하고;

스윕 아르페지오 피킹이 어쩌니 크로매틱 스케일이 어쩌니 하고

치지도 못하면서 개소리나 지껄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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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프,라스,헷필드,머스테인이 메탈리카에 함께 있던 그시절..





지금도 책상 어딘가를 뒤져보면 수업시간 짬짬이 친구와 돌려쓰던,

'더러운 얼터너티브 정치'로 전 유럽을 도탄에 빠지게 한 너바나 왕국을 쳐부수기 위한;

스래쉬 4대천왕들의 의로운; 활약을 그린 장편 스펙타클 판타지 연작소설 '메탈스톰;;'이

서랍 어딘가에서 썩고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즘 디씨에서 하는 락배틀;을 나도 친구와 했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실시간이 되지 않는 당시 상황상 글로써 그 짓거릴 했었던 것 같다.


자칭 God of Rock 이라 부르던 어떤 놈과 둘이서 누가 짱이냐를 두고 싸우다가;

서로 락에 관련된 문제를 20문제씩 출제하여

많이 맞추는 놈이 본좌로 등극하는; 조낸 유치한 놀이였는데;

당시에는 그 문제 출제하는 과정도 정말 즐거웠던 것 같다.



심지어 이런 문제도 있었다. 기억을 대충 되살려 보자면..

Q: 다음은 뮤지션과 해당 뮤지션들의 패션을 서로 짝지은 것이다.
    다음중 올바르게 짝지어진 것은 무엇인가?


1. 액슬로즈 - 아디다스 추리닝
2. 롭 핼포드-시티100오토바이
3. U.D.O-해병대 군복
4. 크림슨 글로리-하회탈
5. 킹다이아몬드-두건과 청바지





참.. 유치찬란했다; 후;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우리는 그 누구보다 그들을 잘 알고 그들을 사랑하는

우리만의 세상에서 그 누구에게도 알려주고 싶지 않은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그 이름도 찬란한 락매니아, 혹은 메탈돼지; 락덕;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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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형님들... 내게 있어 지금까지도 최고의 영웅들이다.



비록 시티100을 타고 계시진 않지만;

예순의 나이에도 정정하게 연주를 하고 계신 울 주다스 프리스트 할배들은 (스캇 트래비스씬 제외;)

누가 뭐라 하더라도 여전히 나의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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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액슬과 세바스찬이 만났다. 세월이 참 덧없구나..;;



세월은 참 덧없다.

특히 천하의 세바(셰브첸코 아님;)와 액슬이 이렇게 중년의 아저씨가 되어

지난 과거의 아름다운; 기억을 무참하게 짓밟더라도

그래도 난 그들을 미워할 수 없다.



그러고 보면 나에게도 역시 어쩔 수 없는 락덕;의 피가 흐르고 있나보다.


얼마전 다녀온 트라이포트 둘째날,

쟈니로얄, 크래쉬, 테스타먼트로 이어지는

죽음의 3콤보에서 뒈질뻔 하면서도

너무 행복해서 웃음이 끊이지 않던건

바로 그런 이유였던 것 같다.




내가 그 곳에 쏟아부었던 과도한 열정에 대한 기억들이

그리고 그 곳에 남겨두고 온 아쉬움과

그 길지않은 희열에 대한 추억이 작은 미소로 다가오는 밤이다.



9월초 고대에서 하는 레츠락 공연이나 보러갈까.. 고민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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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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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동물  (7) 2006.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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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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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에서 벌어진 납치사건에 즈음하여 참 신선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데,

그 것은 바로 인터넷상에서 볼 수 있는 '한국 개신교'에 대한 무시무시할 정도로 큰 반감이다.


나 역시 이전에 그와 비스무레한 포스팅을 했던 것도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어쨌거나 무척이나 고무적인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 인구의 1/4이 신도라고 주장하는 개신교가

100년 조금 더 된 짧은 역사 속에서 이렇게 부흥하였고

그리고 이렇게 사람들의 원망을 받게되기까지 과연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우리나라 개신교의 양적 질적 발전의 이면에는

한국사회의 전근대적인 잔재들이 종교라는 것과 결부되어

그 내부의 사람들을 억누르고 있었기에 이러한 반작용들이

이렇게 불거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의 우리나라에서 보수와 어울리는 색깔을 가진 종교는 바로 개신교라는 생각이 든다.

보수라기 보다는 반동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듯 싶다.


도시 한 귀퉁이를 차지한 거대한 성전 아래에서는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과연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전근대적인 한국사회의 병폐들을 고스란히 품은채

개혁을 외치는 이들을 이단이라 내치고

그러한 수구적인 사고를 가진 세대들이 여전히 교회권력을 좌지우지하는 풍토에서는

더이상 맑은 믿음을 기대하긴 힘들다.


안타깝게도 교회영업시장에서는 더이상 블루오션이란 없다고 생각된다.

이젠 해외시장으로 나가야 하는 그들의 상상할 수 없이 거대해져버린 규모에 다시한번 놀라게 되면서

돈과 권력에, 그리고 구세대의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 정작 그들이 섬기고 전파해야 할

어떤 성스러운 분의 목소리는 과연 이땅 어디쯤에 울려퍼지고 있을지

과연 그 목소리가 얼어붙은 한 불신자의 가슴 한 켠을 녹여줄 수 있을지

그러한 지금의 영업행태와 기업이념으로 과연 소비자 하나를 고객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지..

많은 의문만 드는 밤이다.


한가지 고마운 것은

그런 거듭된 삽질로 인하여

이제 어떤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 여겨지던

사회속의 종교의 역할과 의무라는 주제들이

이제는 떳떳이 공론장에서 논의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것이 이번 사태로 인해 얻게 된

참으로 다행스러운 소득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종교도 세속과 줄타기를 해야만 하는 것이라면

어차피 사업의 일종일진대

세금 한 푼 없이 월매출 수 억을 올리는 대형 교회들은

앞으로 세금을 붙여 공적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렇게 예수님의 사랑을 제도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활기차고 밝은 미래가 한시라도 빨리

이땅에 도래하길 기원하면서


한편으로는 일부 정신나간 신도들의 만행 때문에 상처받고 힘들어하고 있을

다수의 선량한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과 더불어

더욱 그 믿음 더욱 굳셀 수 있도록 작은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속성상 고일 수 밖에 없는 물이라 할지라도

한번쯤은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타의에 의해서라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새롭게 그들이 거듭날수 있는 계기가 되길

아주 조~금만 기대를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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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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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머리

일기는메모장에 2007. 4. 4. 08:22





봄이로군요.

그런데 이놈의 날씨는 참....

봄이 올 듯 말 듯 안 오는 참 뭣한 날씨네요.




봄 하면 가장 먼저 뭐가 생각나시나요?


짧아진 여성들의 스커트와


분홍빛 꽃잎;들과...



저는 어릴적 봄에 논에서 놀던 기억이 가끔 납니다.



바람은 여전히 겨울처럼 차갑지만 햇살은 졸릴 듯 따스한 날,


그게 제가 기억하는 봄의 느낌이었답니다.



마을을 둘러싼 논 가운데로 난 좁은 소로를 거쳐


한 키가 넘도록 깊은 개천의 방죽을 따라 걸어가다가


옆으로 다가선 철길과 만나 이어진 조그만 언덕을 넘어


저만치서 차들이 지나가는 국도를 향해 나아가면


멀리서 희미하게 학교의 모습이 보이던 그 길,



회색 갈대가 앙상하게 남아 바람에 흔들리긴 해도


굳어있던 땅에 푸른 빛이 조금씩 보이는 걸 느끼기 시작하면


논에 물을 대놓고 땅을 갈아야 하는 계절이 왔음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4월이 되면 이제 개울물의 온도도 조금씩 미지근해지고


어디선가 물땅땅이, 게아재비 같은 물벌레들과


피라미, 모래무지, 송사리떼들이 나타나 돌아다니기 시작하죠.



모내기를 하기 전 물을 대놓고 갈아놓은 논에 발을 들여놓으면


햇살을 받아 데워진 미지근하고 미끄덩거리는 그 느낌이 좋았었지요.


거기서 허리를 굽혀 손으로 송사리떼를 떠보기도 하고


조그만 민물새우떼를 잡아보기도 하며 놀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가끔씩 그렇게 잘 놀다 보면


기분이 영 불안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릇을 깨고 도망나온 것도 아닌데,


할아버지 심부름을 잊은 것도 아닌데,



괜히 등 뒤쪽이 서늘해지면서


몸서리가 쳐질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 때,


저는 꼭 진흙속에 잠겨있던 다리를 들어올려보곤 했습니다.



역시...


그건 거머리였습니다.



햇살을 받아 번들거리는 어두운 청록색의 몸에


어느정도 배가 불렀는지 불룩해진 몸뚱이는


내 장딴지에 붙어 여전히 피를 빨고 있었지요.


그리고 거머리 주위로는 피가 흥건히 흘러내립니다.



거머리에게는 피를 굳지 않게 하는 성분이 있다죠. 


그렇게 게걸스럽게 피를 빨아들일 수 있게 창조해준 신의 은총이랄까요.



장딴지의 검붉은 피를 보면서 저는 조심스럽게 거머리를 잡아 떼어냅니다.



거머리의 입이 나의 다리에서 떨어지자


그는 몸을 둥글게 감아보려 하지만


이젠 배가 한참 불러져 감기질 않네요.



어찌보면 참 괴기스럽게 생긴 생물이 바로 이 거머리입니다.


밍크코트빛의 윤기나는 등짝과


청록색으로 빛나는 배쪽의 줄무늬를 보세요.


생활하면서 흔히 볼 수 없는 환상적인 빛깔 아닌가요?



그리고 당겨도 당겨도 늘어나는 몸뚱이..


그게 참 매력있어요.



그 뱃속에 나의 피가 얼마나 들어있을까 궁금해하면서


나는 그 거머리의 머리와 꼬리를 잡고


양쪽으로 천천히 잡아당겨 봅니다.



한참을 그렇게 늘어나다가


인장강도의 한계에 부딪치면


그만 철썩 하고 뱃속의 검은 피를 흩뿌리면서


그놈의 몸통은 끊어져 버립니다.





거머리에게 피를 한 번이라도 빨려보게 되면


고여있는 물에 오랫동안 발을 담그고 있는 행위가


왠지모를 불안함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거머리에게 피를 내주는 건 아프다거나 하지 않아요.


오히려 모를 때가 더 많지요.


어느순간 발을 보면 피는 흐르는데


거머리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기도 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그 녀석은 프로입니다.



다만 싫은 것은


나의 피를 보아야 한다는 것,


그 괴이한 몸체를 상상해야 한다는 것,


결정적으로 왠지 모를 그 서늘한 공포를 느껴야 했다는 것이


그렇게도 싫었던 것 같아요.









저는 지금 누군가의 피를 빨면서 살아갑니다.


저 역시 누군가에게 저의 피를 빨리고 있겠죠...


그 것은 사실 본인이 지각하지 못한 채 알게 모르게 일어나고 있을겁니다.



돌아보면 내겐 작은 상처와 남아있는 핏자욱 뿐,


그 실체는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처럼 말이지요.



그게 일상이라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살아가야 하겠지만


그 알 수 없는 등 뒤의 서늘함이 느껴지는 순간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불쾌함과 두려움, 분노로 돌아오곤 합니다.



그리고 그 것은 문득 문득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되어


어느날 내 가슴에서 뛰쳐나오곤 합니다.



그래도 그놈은 한번 피를 빨면


몇 달은 조용히 살 수 있답니다.


하지만 사람은 어디 그렇던가요.


평생을 가는 저주가 될 수도 있겠지요.






봄은 오고

마음은 싱숭생숭하여

불쾌한 낙서질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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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촌

일기는메모장에 2007. 3. 23. 07:50

탄광촌을 가 본적이 있었다.


광부로 일하시던 고모부 덕에 나는 일년에 한 두번씩은 강원도 사북이라는 동네로 놀러를 갔었고

한번은 고모부 품에 안긴채 그 갱도안에 들어가본 적도 있었다.


석탄산업 합리화로 인하여 그 곳은 이제 유령도시처럼 변해버렸지만

OO탄좌 사북광업소에서 일하시던 고모부의 사택으로 놀러갔을 때의 그 풍경들은

지금도 어설프게나마 내 뇌리에 남아있다.



멀미가 날 정도로 가파른 산 중턱을 한참을 구불구불 올라가면

강원도의 그 억세고 뾰족한 산허리를 무지막지하게 깎아내려 만든 땅 위에

갱도 안으로 연결되는 레일들과 당장이라도 스러져버릴 듯 한 사택들,

서부개척시대;를 연상케하는 허름한 목조건물들과 더불어

갱구 입구에 산더미처럼 쌓인 석탄들을 볼 수 있던 곳이 바로 그 곳이었다.



그 풍경이라는 것이 어찌나 삭막했던지

당시 어린 초딩의 뇌리 어딘가에도 그 음습한 이미지는 그대로 남겨뒀던 것 같다.


누리끼리한 검은 물들이 흘러가는 개천,

개천의 바위나 조약돌들에는 여지없이 탁한 가래색의 찌꺼기들이

마치 물풀처럼 달라붙어 하늘거리고 있었고

그렇게 물고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죽음의 냇가를

내 또래의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심하게 지나치고 있었다.


산처럼 쌓아올린 석탄과 버럭들,

요란한 종소리와 함께 탄을 가득 싣고 나오던 탄차,

검은색 대지와 검은 집들과 나무를 베어낸 민둥산의 살풍경함,

그리고 검은 얼굴의 광부들과 그들을 기다리는 잿빛 얼굴의 가족들..


우리집은 그 곳에서 불과 한시간 남짓한 거리였지만

조용한 시골촌락과는 너무도 다른,

그렇게 이질적인 생활공간을 느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탄광촌처럼 외부인들이 모이는 곳들은 일반적인 촌락과는 성격이 다르다.

광산의 생명에 따라 촌락의 생명 역시 좌우되기에

각지에서 모여든 다양한 사연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고

급조된 열악한 시설, 흉흉한 민심과 더불어

서로 융화될 수 없는 것들이 삶이라는 이유로 모여 소용돌이치는 그 곳은


그 어린시절에도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이 도시에 대한 상상을

얼핏 미루어 짐작케 했을런지도 모르겠다.





80년대 말쯤이었나..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 이후

우리 고모부 가족도 그 곳을 떠났고

나도 다시는 그 쪽으로는 갈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우연찮게 철암역에서 둘러본

천천히 죽어가는 도시를 지켜보는 내 마음은

조금은 서글프기도 하고

조금은 아프기도 하더라.


그 이유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네이버 포토앨범에서 불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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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일기는메모장에 2007. 2. 8. 21:05
새해들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조금 꼼꼼해졌고
조금 배려란걸 배우고 있고
조금 열의를 쏟고 있고
조금 약아지고 있고
조금 싫은 소리를 할 줄 알게 되고 있고
조금 성실해지고 있고
조금 활기차지고 있다.


참 다르다.

어차피 그만둘 곳이라는 생각으로
막장생활 하던 두어달 전과는 또다른 맛이 느껴진다.


일은 여전히 많고
집안형편은 여전히 안좋고
영업실적도 여전히 별로지만

그때와는 다르다.

내게 던져진 힘겨움이
오히려 도전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살아가는 힘이 생긴다.


솔직하게 말해서 어차피 오래 다닐 생각은 없다.
다만 여기서 최대한 많이 배우고 많이 똑똑해질 예정이며

작년과 다름없이 힘든 올 한해를
보다 큰 일 없이 슬기롭게 해결하며 나아가고 싶다.

현장의 이들에게는 우리를 위해 애쓰는 신실한 인간으로,
책상에 앉은 그들에게는 월급줄만한 믿음직한 인간으로 보여야 하겠지만

올해는 내가 다치지 않는 선에서
양쪽에서 요령껏 최대한 뽑아 먹어볼 예정이다.



그럼 잡담은 이만하고 야근모드로 고고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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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동물

일기는메모장에 2006. 12. 20. 19:40

애완동물이라는 것들을 참으로 싫어하는 제 입장에서


그와 관계된 얘길 한번 해보려 합니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다르고 취향과 견해가 다르겠죠.


애완동물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겠지만


전 그게 쉽게 안되더군요.



저는 개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들이 싫습니다.


특히나 개를 더욱 싫어합니다.



첨보는 사람한테 아는 척 달려드는 그 모습이 싫고


언제 봤다고 다가와 핥고 냄새맡는 행동들이 불쾌합니다.



어찌보면 그건 개를 키우는 사람들의


일부 빗나간 행동양식을 싫어하는 것일수도 있겠습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개를 키우는 집은


문지방을 들어서기도 싫습니다.



집안 가득 느껴지는 역겨운 개비린내와


기분나쁜 개의 터럭들이


내 몸 여기저기에서 스멀거리고 있을 것 같다는 기분
이 듭니다.




게다가 손님이 왔는데도 개를 거실에 풀어놓은 집을 보면


주인이 참 방약무인;하다는 생각에 기분이 불쾌해집니다.



집주인은 손님으로 온 내게


내가 싫어하는 개털을 들이마시게 하고


개비린내를 맡게 할 권리는 없거든요.



저도 왠만하면 참지만


애들과 개가 뒤엉켜 거실을 뛰어다니는 그런 개판;이 될 즈음엔


주인에게 가끔 얘기하곤 합니다.



"제가 개를 많이 꺼리니 개를 좀 어떻게 해주시면 감사하겠다" 라고 하면


보통 주인은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곤 합니다.




그는 제 맘을 알까요? 병적으로 짐승을 싫어하는 걸.




애견가들이 의외로 간과하는 것이


개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겁니다.


인간이면 응당 개를 좋아할 줄 알죠?



안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집에서 식육용 혹은 생계용 이외의 동물을 키우는걸


전 쉽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찌 보면 인간의 지독한 이기심이 만들어낸 불쌍한 생물이


바로 애완동물이라 불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가장 비참한 예가 바로 비둘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인간을 가까이 하는 유순한 성격 탓에


인간이 주는 편의에 길들여져 자신이 가진 야생성을 버리게 되었고


결국 도시 한가운데서 인간에게 버림받은 뒤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쓰레기통을 뒤져야 하는
그 슬픈 현실은


바로 인간들이 저지른 죄악의 결과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묘빠;에게 듣는 얘기들 중 하나는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가


발정나서 길거리를 헤매는 길냥이가 되지 않기 위해


어쩔수 없이 거세를 해준다고 하는 겁니다.


마치 무척이나 그를 사랑하여 그러는 것 처럼.





맞습니다.


인간이 창조해낸 도시라는 지옥에서는


고양이가 1년을 살아남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그런 발상은 제겐 너무 섬뜩합니다.


고양이의 역할이 당신에게 사랑을 파는 싸구려 창녀에 지나지 않는다면


고양이를 거세해서 생명연장의 꿈을 이루어주려는 자신이 옳습니다.



근데 그건 사랑이라고 부르면 안되죠.


전 그건 지독한 하드고어 sm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고양이에게도 고양이답게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만일 묘권이란게 있다면


인간은 묘권을 짓밟는 악의 축 그 자체일겁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고양이를 사랑한다면


품속에 안으려 하지 말고


자연 속에서 고양이의 모습을 보고 만족하는


등산객처럼 살아가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일이라 생각됩니다.




인간이란 존재가 지극히 사악하고 이기적인 존재라 그럴까요.


인간에게서 충족시키지 못하는 그런 감정들을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인간화된 동물'을 통하여


자위하고 대리만족하면서



자신의 말라버린 휴머니티를


인간이 아닌 짐승에게서 찾아야 하는 아이러니의 대상이


바로 애완동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신의 일방적인 즐거움을 위해


(허나 다수의 사람들은 동물과의 상호 교감이라고 하더군요)


인간을 위한 인공적인 공간에


자연을 벗삼아야 할 또다른 생명체를 가둬두고



내가 그의 밥줄을 좌지우지하며


그에게 애정을 쏟으며 살아가는 삶이란


어쩌면 인간에게도 그 대상에게도 비극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좀 개념없고 싸가지 없게 들리셔도 제 생각은 아직도 크게 차이는 없습니다.





---

근무하다가 시간이 남아서 쓰게된 글이다.

난 천성적으로 정이 없는 놈이라 그런지 애완동물들이 싫다.
또한 그 애완동물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부 애견가, 애묘가들의 이중성이 역겹다.

뒤틀린 그들의 사랑이라는 행위들을 자신이 당하게 된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것이 과연 동물에 대한 사랑이란 것인가.
그것은 내가 보기엔 약자에게 자행하는 변태적인 욕망의 표출에 지나지 않는다.

문명속의 인간이란 존재는 어차피 모든 생명체들의 공공의 적일 뿐이다.
진정 동물을 사랑한다면 그린피스나 환경운동연합같은 단체라도 들어가서
도시화를 반대하고 무차별적인 자연파괴에 저항해라.
아니면 나무 한포기라도 더 심고 쓰레기라도 한번 더 주워라.
그러면 내가 "이분께선 진정 동물을 사랑하는 대인배"라고 엎드려 절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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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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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 나에게 어떠한 도움을 주었을까?

나름대로 돌아보면 스물 몇해동안 이런 저런 일들을 해보았지만

내 자신에게 심대한 변화를 준 일들은 없었던 것 같다.

경험은 수용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약이 될수도 독이 될수도,

혹은 스쳐가는 경험 그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일테니까.



예전에... 쓰레기 청소할때 얘긴데...

요즘은 신문 나부랭이에서 연봉 3000;; 받는다는 대단한 일이라 불리기도 한다만

그건 구청소속의 상대적으로 나은 여건에 있는 분들의 이야기이고..

실제로 용역회사의 환경미화 업무는 상당히 고되고 박봉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때는 나름대로 그 일이 살아가며 가장 힘들고 고생스러운 일 중 하나라고 믿었다.


힘든 일은 젊었을 때 해봐야 한다는 치기,

군대 제대한지 얼마 되지 않아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오만이

나로 하여금 그 일을 택하게 했었다.


두 명의 작업원이 저녁 7시에 청소차 뒤에 매달리게 되면

새벽 4시까지 4~5회정도 쓰레기를 비우러 수색집하장으로 가야 한다.

계산해 보면 매일같이 두명이서 20톤 가량의 쓰레기를 비운 셈이다.



룰루랄라 신촌을 쓰레기차 뒤에 매달려 거니는 기분은 상당히 즐거웠다.

짬;이 이빠이 든 100리터들이 쓰레기봉투를 힘차게 차 안에 던져넣던 상쾌함,

달리고 던져넣고 달리고 던져넣기를 반복하던 아현동 언덕배기의 숨가쁜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첨에 일한지 일주일 정도 되었던가..

언덕 꼭대기부터는 차 뒤에 매달려 신촌역 입구까지 가는 코스였는데

기사 아저씨는 내가 타기도 전에 엑셀을 밟고 가버리는 거였다.


난 잠시 허망하게 쓰레기차를 바라보다가 미친듯이 달려서 차를 뒤따라 갔었다.

근데 그와중에 청소용으로 어디에선가 줏어 신었던 워커 한쪽은 밑창이 날아가 버리고;;;

천을 줏어다가 묶은 다음에 연신 '아씨발, 아씨발' 거리며 절뚝절뚝 뛰어가던 그 기억이란...

나중에야 아저씬 웃으며 그땐 내가 '금방 그만둘까봐 시험해 본거' 라고 하시더군...;; 헤헤;;



일하면서는 남들이 생각하는 부끄러움 같은 건 별로 느껴보지 못했다.

내겐 오히려 가게 아주머니들이 음료수를 건네줄때 느끼던 그 보람이 더 강하게 남는다.

새벽에 일이 끝날때면 들러 라면을 얻어먹곤 하던 어느 조개구이집 할머님의

푸근한 얼굴과 따스한 목소리는 지금도 무척 그립다...


가끔씩은 명절때 모모한 점포에 쳐들어가 금전적인 요구;;를 좀 하는 경우도 있긴 했다만..

그게 뭐 사람 사는 세상일이 다 그렇고 그런게 아니던가...-_-


사람들을 상대할때는 너무도 당당했다.

불법주차 해놓은 승용차 주인에게는 졸라게 쿠사리를 주고

차 대려고 우리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에게는

쓰레기 봉투를 내던지며 욕지거리를 하면 대충 다 알아서 피해갔다.


사람들은 '똥이 드러워서 피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으니...;;

그야말로 우릴 막을 자는 그 누구도 없었던 거다-_-



가장 일하는데 곤란한 것들은 이른바 '제품'이라 불리우는

주택가의 작은 공장에서 내놓는 천쪼가리나 구두뒤축, 피혁류 같은 것들이었다.


그것들의 무게는 허리가 휘청할 정도로 상상을 초월했는데,

특히 구두뒤축 같은 경우는 적재과정에서 그 안에 들어있던

뒤축고무를 갈아낸 가루를 들이마시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그때마다 목구멍이 타들어갈듯 따가워 끊임없이 기침을 해대곤 했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비맞은 천쪼가리가 든 100리터짜리 봉투들을 쟁일때는

그 압도적인 무게에 '이대로 죽고싶다-_-'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아..

종종 차의 뒤를 열어 적재함을 고압호스로 청소할때는

짬범벅을 온몸에 뒤집어써야만 했고 (으아... 생각만해도 오싹;;;;)


앞서 말했던 수공업 폐기물들을 차에서 내린 다음

거대한 컨테이너 안에 그것들을 다시 적재하는 일을 하고 나면

온 얼굴은 땀과 실오라기들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아침에 학교에 갈 때 까지 검정색의 가래를 연신 뱉어내곤 했었던 기억도 잊지못한다.


서대문쪽의 모 빌딩의 쓰레기장에서는 구더기-_-가 워낙에 많아

쓰레기를 쓰레기함에서 꺼내고 나면

팔뚝에 허여멀건한 구더기 서너마리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을 보아야만 했다.


글구 낮엔 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였는지라,

다른건 몰라도 손에서 나는 그 냄새만은 어쩔 수가 없더군.

강의시간에 내스스로도 느낄 수 있는 내 손에서 나는 시큼한 쓰레기 냄새..

후후...



일은 힘들었지만 사람들과의 관계는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일하던 사람들과 2주정도 지나며 다들 친해지게 되었고

함께 일하는 작업원인 남도에서 올라온 19살짜리 양아치랑은 정말 친해져서

월급날 둘이서 신세타령하며 미친듯 소주를 들이붓던 기억도 난다.

가끔씩 거리에서 떨어진 지갑을 줍게 되면

기사아저씨와 함께 셋이서 돈을 뿜빠이; 하던 정감 넘치던 기억도 몇 번 있었지.


그래... 다들 좋은 사람들이었다.

서교동쪽을 하시던 아저씨는 일이 끝나면 바로 새벽시장에 가서 야채를 가게마다 날라주는 일을 했다.

안 힘드세요 라는 나의 물음에 아저씨는 자식새끼 생기면 어쩔 수 없다고 대답 하시던 기억.

매번 싱글벙글 웃는 모습이 무척 정감 있던 아저씨였다.

젊은 시절에는 쇠말뚝에다가 오함마질을 연속으로 50번을 해도 끄떡없었다고 자랑;;하던,

파리가 들끓는 사무실에서 연신 소주를 들이키던 반장아저씨의 따뜻함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고시준비하면서 밤에는 쓰레기 청소하던 신촌 모 대학 다니던 어떤 형,

떡치고 노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이던 성격좋던 내 런닝메이트,

월급타면 나이트에서 100만원씩 긁던 무개념의 양아치 형,

나한테 피라미드; 가입시키려고 애쓰던 어떤 개새끼까지...-_-



이제야 다 추억이 되버렸지.

그들을 보며 정말 많이 배웠다.

그리고 치열하게 사는 이들을 보며 많은 부끄러움을 느끼곤 했지.

사실 진짜 쓰레기는 바로 내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일을 낮은 일이라 생각했던 내 사고회로에 대한 부끄러움이 가장 컸다.

그들의 치열한 삶속에 그저 경험의 차원으로 접근한 내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그리고 내 생활방식이란 그야말로 나태와 안일함 그 자체였다는걸

그들과 함께 일했던 기간동안 절실히 느꼈고,

이러한 경험들은 나를 한동안 성실케 했다.



그리고

일을 그만두고 다시 과거의 나로 돌아오는데는 얼마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보같은 새끼...



후후... 난 어쩔 수 없는 놈인가봐.




그래도.. 어쩌다가 신촌기차역을 지나 굴다리쪽을 보게 되면

문득 어떤 반가운 감정이 나를 맞이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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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축제

일기는메모장에 2006. 11. 25. 02:46

그 때 그 동네에서 젤 재밌다던 고교 축제는



아마도 우리학교축제였던 것 같다-_-




거, 성문종합영어반;; 뭐 이런 틀에 박혀진 CA활동 말고


지들끼리 알아서 돌아가는 동아리들이 거의 50여개나 있었던 터라


내 기억속의 고교축제는 항상 활어처럼 살아튄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여름방학때부터 삐질삐질 땀흘리며 준비해오던 축제...


그래서 그 정성만큼의 보고 들을 거리들은 항상 충분했다.






울 학교에서 가장 볼만하다고 손꼽히던 동아리는 연극반이었다.



구타속에서 싹튼 연기실력도 상당한 수준이었지만


트름을 통해 서로 대화;;를 나누는 기술을 익히고 있던


그들은 진정 기인;들이었다.




그들은 축제기간동안 홍보를 위해


놀이공원에서 볼 수 있는 동물인형옷을 입었다.



그들은 오징어 냄새;;가 나는, 때가 덕지덕지 묻은 그 옷을 뒤집어 쓰고서


간만에 학교 안으로 들어온 귀한; 여고생들에게 다가가




"사랑해~♡",  "안녕, 친구~~*^^*" 등의 멘트;를 날리며


여고생들을 꼬-_-옥 껴안으면



그녀들은 낯색이 잘 익은 대추빛;으로 변하며 도망치곤 했다.





그 놀이가 구경하는 이들에게도 어찌나 재미있었던지;;;






그러다보면 학교를 몇바퀴씩 돌며 구보를 실시하는 운동동아리들이 보였다.


유도부, 검도부 등등의 아이들은 시범전까지 도복을 입고 맨발로 열을 맞추어 뛰어다녔다.



많은 여고생들은


그 터프한 근육질의 멋진 아이들에게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렇게 정문에서 이어지는 목을 따라가다 보면


어용써클;인 선도부, 학생회, 학교역사반 등에서 운영하는 패스트푸드점과 안내처 등이 있었고



거기서 볼수있는,


교복입은 여학생들이 모여앉아 즐겁게 수다를 떠는 모습을



나같은 찌질이 고딩들은 볼이 발그레*-_-* 해져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던 것 같다 ToT





학교매점 근처에서는 컴퓨터반, RCY 등등의 동아리들이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매년 RCY는 풍물을 정말 신명나게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제대로 안돌아가는 상모로 하던 헤드뱅잉;은 진정 압권이었다.



한편 그 옆의 컴퓨터반에서는


이로 인해 호객 및 영업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으나,



워낙에 RCY 구성원들 대다수가 매우 껄렁껄렁한 아이들이였던 관계로


매년 같은 장소에서 같은 고충을 겪곤 했다...;;






거길 지나 체육관쪽으로 가다 보면


이공계 동아리의 꽃, 생물반이 자리잡고 있었다.



평상시에도 멀쩡한 쥐들을 샴쌍둥이;로 만드는 재미에 심취해있던 그들은


토끼 해부를... 아니 거의 도살이라 생각될 정도의 칼질로 해내어


만인을 경악케 하곤 했다.




특히 마취시킨 토끼의 배를 갈라 내장을 싸그리 들어내었다가


창자랑 간 등등을 꾸역꾸역; 뱃속으로 집어넣고 꿰매는



그들의 신묘한 솜씨에는


모두 머리를 조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축제후에 그들이 창조해낸 생명체;들을 정리할때는


며칠씩 굶겨놓은 각종 괴물-_-들을 한자리에 모아


서로 먹고 먹히는 진풍경을 보며 즐기곤 했다.



사실 그들은 여학생들이 내지르는


"어머~ 징그러~~;;" 하는 소리에 모종의 쾌감을 얻는 자들이었던 거다-_-





텅 빈 운동장에서 악을 쓰는 각종 그룹들을 뒤로 하고 나면


각종 종교써클들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체육관이 나타난다.




기독교반은 당시 유행하던 백워드매스킹을...


그러니까 서태지의 하여가와 교실이데아를 뒤집어   '피가 모잘라-_-'를


불꺼진 골방에서 들려주면서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를 외치고 있었고;;;




불교반은 학교측과 결탁하여


폐우유곽과 깡통 등을 몇달간 수집;하여


그 것으로 불상과 탑 등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발랄한 아이디어 덕택에


불교반은 평가에서 금상을 받고 지원금까지 받게 되었으나



며칠 후 써클룸에서 단체흡연을 하다가 전원이 구속;;되는 사태로 인해


대규모 정학과 함께 지원금을 반납했다는 후문이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학교 뒤뜰로 접어들면 이공계 써클들이 밀집해 포진해 있었다.



물리반, 화학반, 지학반등의 우수 인력들이 대거 모여 있었으나


지금과 같은 이공계 기피현상;;은 여전했던 것 같다....




물리반은 감전체험을..;;;



화학반은 약품을 잘못 섞어 폭발하는 사태로 인해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악취를 풍기고 있었던 그날 저녁....



노을은 무척 아름다웠다;;;






너무도 멋진 무예에 감탄하게 만드는 테니스장의 검도부와 유도부를


그냥 스쳐지나가면; 도서관쪽의 순수학문; 동아리들과 만나게 된다.




미술반이나 만화반 쪽은 그래도 인기가 좋았지만


문예반이나 신문반, 서예반 등은 매년 호객행위에 목숨을 걸곤 했다..;;




여고생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문예반이었다.


그들에게 잡히면 시와 그림이 있는 그 곳;으로 끌려가 장시간 설명을 들어야 했는데



...그야말로 대순진리회의 포교현장을 보는 듯 했다;;





그렇게 한바퀴를 돌고 나면 정문 근처의 대강당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데,


강당주변에는 참 볼거리가 많았다.




산악부원들은 강당 꼭대기에서 줄을 잡고 떨어지는


그야말로 후방레펠; 등의 진기명기를 보여주어 주위를 경악케 했고,




그 와중에 밴드부 몇 명은 옥상에서


당시 먹어주던 차인표;처럼 하고 나와


전원일기 주제곡을 불면서도 기립박수;를 받고 있었다.





아... 그때쯤 강당앞에서 불타는 열연을 펼치던 모 락밴드는


키보드를 모락모락 태워먹는 바람에;;


수많은 관중들을 뚫고 나온 음악선생에게 싸다구;를 연타당하는


실로 경이로운 광경도 볼 수 있었지...







강당안에서는 음악동아리들의 공연이 있었다.



기억나는건


줄을 끊어먹으면서도 연주를 계속한 바이올린 주자 덕에 (곡은 아마 송 프롬 시크릿가든이었을 듯..)


관객들을 열광으로 몰아넣은 현악부,



지하철 서클;;이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엽기공연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하모니카반,



찬조로 온 여고 합창단;을 보기 위해 보았던 합창부,



그리고 언제나 재미없는 방송반;;;



등등....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해질녘이 되면



학교는 둥그렇게 모여 목청껏 외쳐대는 구호소리와


넘실대는 꽃다발의 물결과


쌍쌍이 흐느적대며 걸어가는 교복커플들로 인해



그렇게도 구질구질한 학교는 잠시나마 젊음의 해방구로 변해있었다.











뒤에 대학축제란걸 경험하고 느낀 그 실망감은


내게 아직도 그때의 축제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나 역시 몇 달을 땀흘려가며, 그리고 맞아가며;


그 이틀이라는 시간을 위해 한해의 절반을 퍼부었던,



고딩때의 그 순수한 열정만은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올해도 할까?


기회가 되면 한 번 가 보고 싶은데...








보고싶다...








교복의 물결이...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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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


예를 들어보자.

*같은 현실을 이래저래 겪게 되면서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이란 몇 개 없다.



1. 이런쒸바 *같네

2. 이 총체적인 부조리를 변혁해낼 방법은 뭘까?

3. 우리 맡은바 소임을 다하면서 힘을 키워야해.

4. 이게 현실이야. 이렇게 사는게 우리네 인생이란거지.

5. 내가 나비인가 나비가 나인가... 인간세상은 덧없는것이니...



-1번은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로서, 한묶음의 감탄사에 속한다.

-2번은 상당히 혁명적인 발상인데, 현실적으로 이루어내기가 쉽지않고, 그 이후가 장밋빛이라는

          보장도 없으므로 일단은 배제한다.

-4번은 사실 가장 호감이 가는 말로서 스트레스 없이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서 4번을 강추한다.

-5번은 한마디로 득햏을 한 상태를 이르는 것으로 현실과는 무관한 신선의 경지를 추구하는

          유형이다. 신비주의자에게 추천한다.



오늘의 문제는 3번 '힘을 키워야 해' 다.


-----------------------------


위의 문제가 만약 초등학교때 도덕문제에 나왔다면 '힘을 키우자' 라는 말은 당연히 정답이었을거라고 생각된다.

성향으로 따지자면 중도우파적인 발상이겠지?

실제로 나는 이 단어에 대해 상당히 호감이 많다.


그런데... 실제로 이 단어가 쓰이는 곳은 상당히 특정한 곳에서란 것이다.

정치적인 사안이 발생할때,

예를 들면 현재처럼 이라크전이 발발하고 반전 및 파병문제가 대두될때

이 말은 마술처럼 사용된다.


'파병은 어쩔수 없는 것 아니냐. 지금의 국제정세를 보아라. 세계는 적도 우방도 없는 냉혹한 정글이다. 우리의 국익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우리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미국에 의해 끌려갈 수 밖에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자리에서 힘을 키우는 것 뿐이다.'


전형적인 (신)현실주의적 시각의 주장뒤에는 항상 꼬리말처럼 이 단어가 따라온다.

나역시 이 주장에 적잖이 동조한다.

이는 세계를 보는 가장 냉철하고 뚜렷한 분석틀이며

현 국제사회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시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힘을 키우자'라는 단어가

해석상에 있어서는 실제론 상당히 보수적인 의미로 해석된다는 점이다.


힘을 어떻게 키우자는 것인가?

자기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힘을 키우는, 국력을 증진시키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방향은 과연 어디인가?


현실주의에서는 방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있다면 그것은 오직 이익이고 힘이며 승리다.

이제 국제사회에 있어서 정의라는 것에 대해 의문이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는 시점에서

유일한 설득력은 힘(군사력)과 이익(경제력)을 앞세운 정복 뿐이다.

그것을 당연시 하면서 그것에 대한 유일한 대응책으로 내세울 수 있는 말은

'힘을 키우자'라는 말 밖에 없다.


오늘 내가 딴지걸고 싶어하는 것은 그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속성에 대해서다.

그러한 현실주의적 시각은 현실의 냉철한 분석에는 매우 뛰어나지만

그러한 현실을 기반으로 그 것을 극복하려는 변화의 시작으로는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이유는 그 단어 안에는 현 체제에 대한 순응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단어는 앞서말한 4번의 대용의 효과로 많이 쓰여지고 있다.

이것은 승자가 열패자에게 주입하는 논리로서 '더러우면 출세하라'식의 말과 진배없다고 본다.

약자, 패배자.. 국제관계에서 제3세계 국가들은 그토록 노력했음에도 출세의 회전의자에 앉기는 커녕 빚더미위에 앉아야하는 현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뼈를 깎는 노력 없이는 결국 그 단어는 결국 현실에의 안주이고 타협에 불과하다.


그 예로 일제시대때 진행되었던 자강운동을 들어보자.

'선실력양성 후독립'을 외쳤던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독립운동하셨던 분들께는 정말 *도 아닌놈이 이따위 글을 쓰는게 정말 죄송스러울 따름이지만

일본에의 독립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이 사실 아니었던가..

다시말하자면 이러한 관점은 정말 치열한 노력과 의지를 가지지 않고서는 실현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방향은 그 것이 거의 유일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시한번 고민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고...



현실주의의 관점에서는 국제사회에서 정의란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정의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을 위한 최소한의 잣대인 것이다.

그것이 있기에 자유와 평등이라는 개념이 설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빠져있는 사상과 이념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결국에 우리는 좌의 방향이든 아니면 우이든 간에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여야만 했고

그나마 가장 수월한 '힘을 키우자'는 논리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단어는 이제 현실도피와 안주와 동일한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

앞으로 모두가 '힘을 키울 수 있는',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



다만...

현실은 계속 변해가지만 그렇게 변하는 현실 속에서도

진실만은 변하지 않을거라는 생각을 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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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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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세

일기는메모장에 2006. 11. 25. 02:26

예전에 집을 나왔을 때였어.


친구집에서 며칠 빌붙어 있다가

너무 미안하다 싶어서 정처없이 발걸음을 옮겼지.


하루는 공원에서 자고 밥은 라면 부셔서 먹고..

그러고 있는데 돈도 떨어지고.. 정말 집생각이 간절하더라..


음... 사흘째였는데 저녁무렵에 비가 부슬부슬 내리더라구.

돈은 다 떨어지고.. 옷에서 냄새는 나고.. 얼굴은 꾀죄죄....;;


정처없이 밤길을 걷는데 갈 곳도 없고.. 너무 피곤하고 배고프고 졸려 죽겠어서

정말 어디에서라도 비라도 긋고 쉬고 싶었어..(사실 집에 너무 들어가고 싶더라;;)



문득 든 생각은 교회에 들어가서 눈 좀 붙이면? 하는 생각이 들더군.

들어가서 지금 짓고 있는 내 잘못을 회개하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근처 교회를 찾아갔어.


문이 잠겨있었어.



여러군데를 다 가보았지만


모두다 문이 잠겨있더군.




나중엔 지쳐서 어느 꽤 큰 교회의 문 앞 계단에 걸터앉았지.


잠시후 수위아저씨가 오더라.

밤늦게 왜 이런데 있냐며 의심스런 눈길로 쫓아내더군.



음...;;;




원래 내가 양아치 신자였지만

내가 교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 건 이때부터야...;;




강남이나 분당 등지에 보면

대리석으로 휘감긴 어마어마한 규모의 교회들,

심지어 교회안에 풀장;;까지 갖추어진 만능 엔터테인먼트;;의 교회들이 수두룩해.



이른바 이놈의 '성전'은 신도들의 피와 땀인 십일조를 비롯한 여타 헌금으로 만드는 건데

그 돈으로는 건물 올리고 목사 사모 차 바꾸고...

나중에 그 교회땅과 건물은 이제 외삼대;; 다녀온 목사 아들래미한테 그대로 넘어가게 되는거지.

증여세 한푼 안내고 말야.



하기야 절도 별로 다를 것 없지.

큰 사찰에서 굴리는 돈은 억대는 우습게 넘는다고 하더라.


정말 종교쟁이.. 이 것 만큼 남는 장사가 없는 것 같아.

어디 가면 교회경영학;; 이라는 학과도 있다고 하던데.. 정말 그럴만도 한 것 같아.




종교집단에게 면세혜택을 주는 이유는

국가가 종교의 자유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미가 큰 것이었겠지.  

게다가 종교단체가 행하는 공익적이고 사회통합적인 측면도 강하고 말이지..



근데 지금의 상황에서는 오히려 종교계가 법망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는거지.

일단 면세인데다가 서비스 업종이라 비용 안들지, 인건비 문제 없지..


게다가 목만 잘 잡고 소문만 잘나면 대박장사하는 거라

수많은 인간들이 이 사업에 뛰어들었거든.



정치권에서도 어찌 이런데다 칼을 댈 수 있을까... 자기 목 날아갈 생각이 아니라면..




공익...?

뭐..;; 집나온 거지새끼;; 재워주는건 절대 공익에 속하는게 아니지만;;;




있는 놈들 중심으로 주말마다 모여 딸;쳐주고 돈버는 서비스 업체가 이 곳이라면

굳이 이렇게 대중종교로 존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장안동이나 북창동만 가도 마음의 평화는 얼마든지 누릴 수 있거든.



이제는 종교단체에서도 세금을 걷어야 할 것 같아.




보다시피 물론 난 지금 교회를 다니지 않아.


가끔은 생각해.

그 화목하고 따스한 분위기, 그리고 은혜로운 그런 영적인 기분들을...

성경을 공부하면서 느끼던 그 분에 대한 끝없는 존경심...

이런 것들은 아직도 가끔 기억난다구.


하지만.. 이미 말씀이 지상에 내려온 순간부터 그 곳에는 향기대신 악취가 풍기기 시작했지.

앞으로 그건 더할거야.



그래..


나처럼 이렇게 믿음에 대해 비뚤어진 생각을 가진 애들은

아마 지금도 여기저기서 생겨나고 있겠지..



후후..

그냥.. 오늘 밤공기가 서늘해서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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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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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시

일기는메모장에 2006. 11. 17. 17:38
시작은 언제나 즐겁다. 설레인다.

당구장에서 초구를 상큼하게 뺄 때 처럼

큼지막한 선물상자의 포장지를 찢어발길 때 처럼



일단은 새롭게 시작해보자.

남들의 블로그처럼 전문성은 없겠지만

최소한 고민하며 사는 흔적은 보이도록 하자는 것이 첫번째 목표이고

내가 즐거워 하는 것들을 남들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두번째 목표다.








어쨌거나..

돌이킬 수 없는 걸음;을 내걸었다.


네이버와는 이제 천천히 안녕을 고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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