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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내가 왠만하면 안 읽으려고 했었는데

전에 소개팅한 국문학과;출신의 모 여성이

근래 읽은 책 중에 가장 맘에 드는 문체라고 하도 강조를 하길래

8000원이라는 거금을 들이고 산 책이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


-_-ㅗ << 이모티콘으로 보자면 이 것과 같다.



전반적인 줄거리는

가슴속에 상처를 안은 미카게라는 젊은 여성의 만남과 성장,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문체는 무척 재치있고 신선하다.

감각적이고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특별한데

전체적으로 젊은 취향의 구미에 딱 맞겠더라.



그냥... 휴...;;;;



모르겠다.

내가 감정이 메말라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혹은 이런류의 글 자체를 싫어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읽어가면서 책을 덮고 싶은 충동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그 걸 참아내며 가볍고 말랑말랑한 문체들과 버거운 싸움을 하는게

너무 힘들었달까.



이 책을 열어보면 두어줄 발췌해서 싸이에 사진들과 함께 올리기에 딱인

그러한 스타일의 글들로 꽉꽉 들어차 있으니

싸이도 꾸미고 자신의 독서취향도 강조하길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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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

위화의 소설로, 특히 유럽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소설이라고 한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제목처럼 허삼관이라는 주인공이 일생에 걸쳐 매혈을 하는 이야기인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이 정말 신선하고 해학적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웃음속에 숨겨진 눈물과 그들의 고단하고 비참한 현실이 더욱 와닿을 수 밖에 없었지만.



가지지 못한 자들이 생존을 위해 치는 발버둥을 그 누가 우습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피를 팔아 돈을 마련하고 돼지간볶음과 황주 두냥을 마시며 자신을 재충전하던 허삼관의 인생은


우리들의 모습과도 무척 닮아있다.



결국 우리들의 인생도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신을 소진시켜가며


그 누군가를 혹은 그 무엇인가를 위해 살아가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그 것이 가족이건 자신을 위해서건, 혹은 그 것이 아닌 또다른 무엇이 되었던 간에


누군가를 배려하고 지켜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피를 빼내어 팔아야만 할 정도의 고통과 상처를 감수해야만 한다.



작은 아들의 병원비를 대기 위해 아들에게로 향해가며 며칠 연속으로 피를 팔다가


결국 쓰러지고 마는 무모할 정도로 열정적인 주인공의 모습에서


눈물이 약간 핑 돌았던 것도 같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살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자신의 육신일진대


그 것마저 팔아 몇 푼 돈으로 바꾸어


그것으로 누군가를 살려내려 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못배우고 못사는 가난한 자의 몸부림인지,


아니면 어떤 의미의 '성인'인지조차 난 가늠하기 힘들었다.



문화대혁명과 대약진운동의 파고 속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창녀라고 손가락질 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의 무자비함 속에서도


해학스럽게 가족이라는 마지막 공동체를 지켜나가는 허삼관의 뒷모습또한


인간으로서 마지막까지 지니고 있는 믿음이랄까.. 그런걸 느끼게 했었고..



나 역시 그와 다를 바 없는 부질없이 스러져갈 미미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내게는 그처럼 무엇을 위해 지켜갈 것이 있었던가


혹은 자신의 피를 태워가면서까지 감싸안아야 할 것이 있었던가


문득 소설의 흐름속에서 울고 웃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더욱더 초라해져가는 자신을 돌아보다


언젠가는 문득 그처럼 돌아보며 웃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언젠가는 내게도 그렇게 헌신하고픈 그 무엇을


이젠 만들어야만 하겠다는 생각을 어설프게나마 해보았던 하루다.









일기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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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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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 Diamond




쌍팔년도 헤비메탈에 관심이 있으셨던 분이라면 한번쯤 들어보셨을 이름, 킹 다이아몬드..

티스토리 블로그 개장을 자축하며; 그의 음악과 발자취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한번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서두에 먼저 밝히자면, 이 카테고리에 올리는 글들은 다음 헤비메틀카페인 주혹쌔(cafe.daum.net/Judasorsabbath)에서 아~주 예전에 제가 올렸던 글들을 조금씩 손을 봐서 올리는 것입니다;;




세월의 무상함 앞에서는 그 역시 당해낼 수가 없었지만

여전히 활동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우리의 귀염둥이 싸타닉 마스코트; 킹 횽께서 걸어오신 길을

이 열악한 자리를 빌어 잠시 살펴보고자 합니다.




킹다이아몬드는 블랙새버스의 뒤를 이어

블랙메틀의 정신을 계승한 인물입니다.


그의 음악은 정통메틀에 기반한 선명하고 강렬한 연주에 더불어

중세적 신비로움과 클래식적인 아름다움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킹의 음악은 북유럽 익스트림 계열에게도

형식적인 면에서는 아닐지라도 그 악마숭상정신;의 측면에서는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생각됩니다.


참고로 저는 성격도 참 긍정적이고..

악마? 무섭어서 별로 안좋아합니다-_-;;



킹 다이아몬드...

예전엔 이름 참 멋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좀 유치뽕이군요;


원래 이름은 Kim Benedix Petersen 이라고 합니다.

걍 친근하게 김형이라고 부르면 좋겠어요.




좌측은 킹, 우측은 안톤 라베이라네요

(안톤 라베이 횽과 함께-_-;)




킹은 1956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릴때부터 신비주의에 관심이 많았고 그러한 체험들도 많이 겪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의 앨범중 가장 괴기스러운 앨범으로 지목받고 있는 3집 'Them'은

그의 실제 경험담에 기반한 (구라)라고 합니다.



어찌되었거나, 축구와 딥퍼플, 블랙새버스, 레드제플린 등에 미쳐있던 메탈키드 킹은

10대의 나이에 73년 Brainstorm 이라는 그룹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 그는 King Diamond라는 이름을 작명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81년 대망의 Mercyful Fate를 결성하기 전까지

그는 몇군데 그룹에 있었는데요,


레인보우를 카피하는 밴드였다고 하는 Black Rose라는 그룹에서

그는 드디어 보컬로 당당히 등장하게 됩니다. 그때가 78년입니다.

이때의 곡들은 몇 해 전 'King Diamond & Black Rose' 라고 해서 발매된 바 있습니다.


이때의 곡 중에서 하나 골라보았습니다.

전혀 지금의 킹을 상상할 수 없는, 오히려 레인보우나 딥퍼플을 연상케 하는 키보드소리가 인상적인 곡입니다.

아, 곡명은 Locked Up In The Snow 되겠습니다.

풋풋하네요;






이어 81년도에 Brat 이라는 그룹에도 잠시 몸을 담게 되는데요,

여기서 그는 머시풀 페이트의 기둥서방격인

기타리스트 행크셔먼을 만나게 됩니다.


주다스 프리스트에 필적할만한 중후하고 멋들어진 리프를 쏟아내던 행크셔먼과

우리의 또라이 킹의 만남은 역사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그들이 멤버를 모아 만들어낸 그룹이 바로 머시풀 페이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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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시풀 페이트.... 실로 길이 남을 이름입니다.


앨리스쿠퍼 혹은 키스에게서 영향을 받은 듯한

킹의 도발적인(?) 자태와

신비주의적이고 반기독교적인 가사,

그리고 중세삘을 가득 안은 강렬한 정통파 헤비메탈의 선율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집중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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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 디자인이 약간 줘질;이지만 요거이 바로 1982년 발매된 머시풀 페이트의 역사적인 EP앨범 되겠습니다.

수록곡으로는

Doomed By The Living Dead
A Corpse Without Soul
Nuns Have No Fun
Devil Eyes


요렇게 네 곡이 실려있었고 매 곡마다의 살벌할 분위기로 인해 주위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지요.


이어 다음해 머시풀 페이트의 대망의 첫 정규앨범이 발매되기에 이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melissa

Melissa (1983)


1. Evil
2. Curse Of The Pharaohs
3. Into The Coven
4. At The Sound Of The Demon Bell
5. Black Funeral
6. Satan's Fall
7. Melissa

Line Up:
King Diamond (vocals)
Hank Sherman, Michael Denner (guitar)
Timi Grabber Hansen (bass)
Kim Ruzz (drums)
  -Recorded at Easy Sound Recording, Copenhagen, Denmark in July 1983






83년 그들은 첫 정규앨범 'Melissa'를 들고나옵니다.

시대적으로 보면 당시에 메탈리카나 슬레이어가 한참 시작했을 때였겠지요.


이때 같은 덴마크 출신 친구인 라스 울리히가 도와줬다고 하는데요,

훗날 그가 머시풀페이트를 재결성할 때도 드럼으로 우정출연하는 등, 거침없는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합니다.


메탈리카 Garage Inc. 앨범에 들어있는 '머시풀 페이트' 라는 롱롱타임 메들리곡을 들어보면

라스와 킹의 끈적한 우애를 한편으로 느껴보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어쨌거나 이 멜리사 앨범은 블랙사바스 이후 피에 갈급해하던 메탈키드들에게

악마가 선지국 들이키듯 열렬한 환호를 얻게 되었고

그의 음악은 점점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묵직한 중저음과 초고음의 팔세토로 무장한 킹다이아몬드의 광기어린 보컬

그리고 전성기의 주다스프리스트를 연상시키는 행크 셔먼과 마이클 데너의 트윈기타는

정통 헤비메탈의 기반 위에서 광기로 출렁이는 그들만의 음악이 뭔지를 느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참에 타이틀곡 Melissa 듣고 갈까요?

 
이건 사실 듣다보면 기분이 많이 껄쩍지근 해집니다.






이어서 머시풀페이트의 2집이자
희대의 개걸작 앨범,

'Don't Break The Oath' 나옵니다.



나오는데; 이건 길어지니 다음번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아까 언급했었던 메탈리카의 '머시풀페이트'를 올리면서 포스팅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한마디로 머시풀 페이트 멜리사 앨범곡들의 메들리라고 보시면 됩니다.

들어보아요.(용량이 커서 음질을 좀 낮췄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7. Mercyful Fate (11:11)
 
(Featuring Satan's fall, Curse of the pharaohs, A corpse
  without a soul, Into the coven and Evil)

  "A corpse without a soul" originally released by Mercyful
  Fate in 1982 on the "Mercyful Fate" EP. All other songs
  originally released by Mercyful Fate in 1983 on the
  "Melissa" album



글엄 담에 또...







그나저나 mp3에 광분하는 메탈리카 곡을 올리려니
이건 뭐 저작권 위반으로 바로 끌려갈 것 같은
아주 불길한 예감이 마구마구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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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

애완동물

일기는메모장에 2006. 12. 20. 19:40

애완동물이라는 것들을 참으로 싫어하는 제 입장에서


그와 관계된 얘길 한번 해보려 합니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다르고 취향과 견해가 다르겠죠.


애완동물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겠지만


전 그게 쉽게 안되더군요.



저는 개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들이 싫습니다.


특히나 개를 더욱 싫어합니다.



첨보는 사람한테 아는 척 달려드는 그 모습이 싫고


언제 봤다고 다가와 핥고 냄새맡는 행동들이 불쾌합니다.



어찌보면 그건 개를 키우는 사람들의


일부 빗나간 행동양식을 싫어하는 것일수도 있겠습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개를 키우는 집은


문지방을 들어서기도 싫습니다.



집안 가득 느껴지는 역겨운 개비린내와


기분나쁜 개의 터럭들이


내 몸 여기저기에서 스멀거리고 있을 것 같다는 기분
이 듭니다.




게다가 손님이 왔는데도 개를 거실에 풀어놓은 집을 보면


주인이 참 방약무인;하다는 생각에 기분이 불쾌해집니다.



집주인은 손님으로 온 내게


내가 싫어하는 개털을 들이마시게 하고


개비린내를 맡게 할 권리는 없거든요.



저도 왠만하면 참지만


애들과 개가 뒤엉켜 거실을 뛰어다니는 그런 개판;이 될 즈음엔


주인에게 가끔 얘기하곤 합니다.



"제가 개를 많이 꺼리니 개를 좀 어떻게 해주시면 감사하겠다" 라고 하면


보통 주인은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곤 합니다.




그는 제 맘을 알까요? 병적으로 짐승을 싫어하는 걸.




애견가들이 의외로 간과하는 것이


개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겁니다.


인간이면 응당 개를 좋아할 줄 알죠?



안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집에서 식육용 혹은 생계용 이외의 동물을 키우는걸


전 쉽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찌 보면 인간의 지독한 이기심이 만들어낸 불쌍한 생물이


바로 애완동물이라 불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가장 비참한 예가 바로 비둘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인간을 가까이 하는 유순한 성격 탓에


인간이 주는 편의에 길들여져 자신이 가진 야생성을 버리게 되었고


결국 도시 한가운데서 인간에게 버림받은 뒤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쓰레기통을 뒤져야 하는
그 슬픈 현실은


바로 인간들이 저지른 죄악의 결과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묘빠;에게 듣는 얘기들 중 하나는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가


발정나서 길거리를 헤매는 길냥이가 되지 않기 위해


어쩔수 없이 거세를 해준다고 하는 겁니다.


마치 무척이나 그를 사랑하여 그러는 것 처럼.





맞습니다.


인간이 창조해낸 도시라는 지옥에서는


고양이가 1년을 살아남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그런 발상은 제겐 너무 섬뜩합니다.


고양이의 역할이 당신에게 사랑을 파는 싸구려 창녀에 지나지 않는다면


고양이를 거세해서 생명연장의 꿈을 이루어주려는 자신이 옳습니다.



근데 그건 사랑이라고 부르면 안되죠.


전 그건 지독한 하드고어 sm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고양이에게도 고양이답게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만일 묘권이란게 있다면


인간은 묘권을 짓밟는 악의 축 그 자체일겁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고양이를 사랑한다면


품속에 안으려 하지 말고


자연 속에서 고양이의 모습을 보고 만족하는


등산객처럼 살아가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일이라 생각됩니다.




인간이란 존재가 지극히 사악하고 이기적인 존재라 그럴까요.


인간에게서 충족시키지 못하는 그런 감정들을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인간화된 동물'을 통하여


자위하고 대리만족하면서



자신의 말라버린 휴머니티를


인간이 아닌 짐승에게서 찾아야 하는 아이러니의 대상이


바로 애완동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신의 일방적인 즐거움을 위해


(허나 다수의 사람들은 동물과의 상호 교감이라고 하더군요)


인간을 위한 인공적인 공간에


자연을 벗삼아야 할 또다른 생명체를 가둬두고



내가 그의 밥줄을 좌지우지하며


그에게 애정을 쏟으며 살아가는 삶이란


어쩌면 인간에게도 그 대상에게도 비극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좀 개념없고 싸가지 없게 들리셔도 제 생각은 아직도 크게 차이는 없습니다.





---

근무하다가 시간이 남아서 쓰게된 글이다.

난 천성적으로 정이 없는 놈이라 그런지 애완동물들이 싫다.
또한 그 애완동물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부 애견가, 애묘가들의 이중성이 역겹다.

뒤틀린 그들의 사랑이라는 행위들을 자신이 당하게 된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것이 과연 동물에 대한 사랑이란 것인가.
그것은 내가 보기엔 약자에게 자행하는 변태적인 욕망의 표출에 지나지 않는다.

문명속의 인간이란 존재는 어차피 모든 생명체들의 공공의 적일 뿐이다.
진정 동물을 사랑한다면 그린피스나 환경운동연합같은 단체라도 들어가서
도시화를 반대하고 무차별적인 자연파괴에 저항해라.
아니면 나무 한포기라도 더 심고 쓰레기라도 한번 더 주워라.
그러면 내가 "이분께선 진정 동물을 사랑하는 대인배"라고 엎드려 절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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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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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썼던 것으로 생각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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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훔치기  
-고종석, 마음산책, 2000



모색은 부분적으로 전망이다.

모색이 일반적 전망과 다른 것은

그 속에 의지나 욕망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서문에서-







한 해 전쯤에 읽었던 코드 훔치기를 빌려 다시 한번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고종석씨의 문체를 무척이나 흠모하는데,
진지하면서도 차분한 분위기가 설득력있고 독자를 끌어들이는 매력이 느껴진다.


다시 읽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 이 책이 21세기에 대한 전망(모색)이기에
그리 밝지는 않아 보이는 내 미래에 대해 살펴보기 위한 것도 있었고

그 때 이해하지 못하던 여러 이야기들을 지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지도 궁금해졌고
무엇보다 그 매력적인 문체를 다시 한번 접해보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다.



필자는 40여가지의 다양한 이슈를 통하여 21세기를 모색하여 본다.
특히 동유럽의 붕괴 이후 자본주의라는 이념이
전지구적으로 유일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돌아보며
그것이 미치고 있는 영향과 그로 인한 변화의 방향들에 대해 차분하게 살펴내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진 부분은 미래를 위해 필요한 지표에 관한 부문이었다.
무엇보다 그가 언급한 한스 요나스의 "책임의 원리" 의 대목은 단연 의미심장하다.

"희망의 원리"에서 블로흐가 유토피아적인 사회주의에 대한 갈망은 인간 본래의 것이라고 갈파한 것에 대해 "책임의 원리"에서는 그러한 유토피아적 세계관 자체를 거부한다.

이러한 유토피아주의가 오늘날의 단선적인 진보의 허상을 만들어 온 것이며
사회적 진보와 과학적 진보가 우리에게 가져온 어두운 현실을 비판하고 있음을 그는 말하고 있다.


결국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인류에게 대안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떠한 미래를 모색하여야 할 것인가?

그는 인긴은 양가성을 가진 존재임을 인정하고 미래에 대한 책임을 인류가 가질 것을 요구한다.
인류가 만들어낸 진보의 그늘에 던져진 윤리적 공백을 이러한 책임을 통해 극복해나가자고 요나스는 주장한다.


20세기를 풍미하던 거대담론들에 비해 왜소하고 그다지 명쾌하지 않은 주장이지만 오히려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차근차근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 더욱 중요함을 그는 말하고 있는 듯 여겨진다.


필자는 "공화정을 넘어서"를 통하여 20세기의 지배적인 정치이념으로 인식되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게 된다.

그는 민주주의는 공화주의와의 상관관계속에 존재함을 밝히며, 관용이나 다양성, 다수결, 개인적 자유가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이념이라면 법치국가와 사회평등, 이성을 기반으로 한 세속주의적 보편성 및 공통선의 추구는 공화주의의 본질임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공화주의는 오늘날의 그야말로 '이윤추구의 자유'만이 남아버린 자유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에 필자는 주목한다.


내가 볼때 고종석씨는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자이긴 하지만 이러한 자유주의가 가진 폐해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방안을 끝없이 모색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 점에 있어 좌파보다 더욱 현실을 변화하는데 관심을 둔 인물이라고 해도 될 듯 해 보였다.


또한 그는 '세속주의적 시민의 역할'을 중시하며, 경제적/계급적 의미의 부르주아가 아닌 정신적/정치적 의미의 시투아앵을 강조하였다.

한편 자유민주주의의 개념 속에서 자유주의가 가진 강자의 논리의 측면, 이윤추구의 자유에 집중된 면과 민주주의가 가진 중우정치와 다수의 횡포의 문제점을 조화할 수 있는, 수호자주의도 무정부주의도 아닌 진정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조화를 이룰 수 있기를 원하였다.
그는 사회주의와 자유지상주의 사이에서 모색할 수 있는 대안으로는 롤스적인 자유평등주의가 가장 적합한 대안이라고 바라보았다.


1년전에 읽었을 때 보다는 그래도 이해가 수월하게 되었다지만 여전히 프래그머티즘 등의 철학사조에 관련한 내용들에 대해서는 아예 공부를 하지 않은 문제로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좀 후회스러운 점이었다.

2000년이 되기 전 작성된 글들이 여전히 가치있게 읽힐 수 있다는 것은 필자가 그만큼 미래를 준비하고 내다보려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를 능동적으로 대처하려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사회주의의 몰락 후 밝은 광명을 향해 나아가리라 생각하던 이들도 있었지만 세상은 더욱 불안하고 냉혹하고 어지럽다.

이러한 혼란스러움은 인간이 가진 본연의 모습이 아닐까. 그는 아직까지는 인간이 가진 이성이라는 것을 믿고 있는 눈치다. 하지만 그러한 이성으로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와 그것이 가리키는 지향점에 도달하는 발걸음들에 대해서는 그는 고개를 젓는다.
그는 인류의 이성이 탄생시킨 밝은면과 함께 어두운 면들을 놓치지 않고 지적한다. 또한 현실 안에서 그것을 극복하거나 혹은 무마시킬 수 있는 방안을 끝없이 모색한다. 이것이 이 저서가 가진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싶다.

현실을 떠나지 않으나 안주가 아닌 끝없는 사색과 변화의 노력이 함께 하는 것이 바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해야 할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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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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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회사 망년회가 있던날,
대학로 판타지움에서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아주 특별한 손님' 이후 올해 들어 두번째로 영화관에서 본 영화라 그런지
무척 감회가 남달랐다;




휴먼 스릴러를 표방하는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아동연쇄살인사건과 그 것의 타겟, 그리고 그것을 쫓는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형사역의 박용우, 사진작가이자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 김상경, 그리고 또다른 주인공 박보배
세명의 연기가 어우러지며 묘한 여운을 주는 영화였다.



스포일러는 거의 없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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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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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고 해서 매콤한 추억의 노래를 포스팅 해봐야겠다.






이 노래는 핑클 2집 'White'에 수록된 Kiss Me? Alright!! 이라는 노래.


이 앨범의 타이틀곡은 '약속해줘-_-d'로 알려진 옥주현의 윙크;가 인상적이던

'영원한 사랑' 이었고 소포모어 징크스를 깨고 공전의 히트를 쳤던 곡이기도 했다.


사실 별로 추억하고 싶지 않은 군시절;에 들었던 곡이라 그런지 더욱 가슴이 아려온다-_-



여전히 성유리와 이진의 목소리는 존재감이 없을 정도로 못부르고

옥주현의 보컬은 상당히 탁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상큼한 겨울 분위기와 맞아떨어져 아주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곡이다.








이 노래의 매력은 중반부의 예쁜 코드진행이다.


Dm-G-CM7 에서 Gm7-C7 으로 갔다가 Fm 로 넘어간뒤 Fm-Bb-EbM7 형식으로 다시 옮겨가는,

개인적으로는 순정만화풍의 코드진행이라고 하고픈 진행인데


당시 그들의 귀엽던 이미지와 잘 매치가 된 곡이라고 생각이 되더라.


다만 후반부에 스캣을 하는 남성보컬은 그야말로 옥주현의 티!!!!

여자보컬로만 쭉 가던가 랩질만 시키던가 하지

왜 넣었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편곡이라 생각된다만,


개인적으로 평가하기에는 당시 쌍벽이었던 SES와 비교하면

SESTwilight Zone 과 필적할만한 명곡의 반열에 드는 멋진 곡이라고 생각된다.




그럼 그들이 지금 얼마나 업그레이드 되었는지 사진 한 장 보고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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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야든동; 울 핑클언냐들 만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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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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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ksy 作 제목은 모름.. 아마도 꽃병을 던지다 정도가 아닐까;




학생운동이라니...



아무래도 써놓고 보면 조낸 재미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무진장 재미없는 '학생운동'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문득 학교다닐적에 같이 지내던 한 선배가 생각났다.


그 선배는 다 좋은데 성격이 급하고 직선적인지라

자기가 싫어하는건 도저히 그냥 넘기지 못했다.


이 선배가 술먹다가 가끔 하던 표현 중 하나가

" 난 예수쟁이와 빨갱이가 싫다-_-" 라는 멘트였다.


이들이 싫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지금 진중권의 표현을 잠깐 빌리자면 "무식하고 촌스러워서" 가

바로 정답이겠지만;


이리저리 치고받다가 항상 그 형의 결론은

"씨발... 적어도 남한테 피해는 주지 말아야 될 것 아냐 !!" 이걸로 끝났고,

나도 여기선 별로 할 말이 없더라;




다시 얘기로 돌아가서...


기본적인 내 입장은 OO님과 별로 다를게 없다.


지금의 학생운동은 분명 시대착오적이다.

그래서 더이상 '민중'들의 지지를 얻지못하고 있다.


다만 OO님과 조금 차이가 있다면

학생운동에 대한 애정이 있고 없음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80년대 사회구성체논쟁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싸워온 좌파내부의 사상논쟁의 이유는


현대 한국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라는

대단히 중요한 물음에서 촉발되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메커니즘이 체화된 오늘날의 우리와는 달리

80년 광주를 겪은, '체'와 '호'의 혁명의 숨결을 느끼고 가슴설레던 그들은


당연히 한국사회를 '식민지 반자본주의론'이라는 틀로 보거나,

혹은 '신식민지 독점 자본주의론'이라는 틀로 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그렇게 그들은 싸웠고

나름대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여기까지가 그들이 공식적으로 박수를 받는 대목이다.





문득 하나의 질문이 떠오르게 된다.



6.29 선언과 함께 제도적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후

한국사회는 그보다 훨씬 민주적으로 변했을까?


붉은악마와 노사모의 물결로 대표된, 시민의 힘을 보여주었다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사회는 그만큼 시민들의 힘이 중심이 된 민주사회로 변했을까?


난 도무지 모르겠다-_-;;




다시 한번 그들이 욕먹기 시작한 시대를 돌아보자.

제도적 민주주의라는 성과를 이룩해낸 학생운동(민중운동 전체의 몫이겠지만)의 방향타는

일단 눈앞의 적이 사라진, 사회주의국가가 붕괴해버린 90년대 들어 어떻게 움직여갔던가.



여기엔 "관성적 투쟁"이라는 관용적 표현이

이렇게 잘 맞을 수는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개인적으로는 운동진영의 주도권을 잡고있는 민족해방계열에 내재된

'주사'라는 변형된 사회주의의 향기가

지금의 운동권의 몰락을 부채질한 하나의 원인이 되지 않았나 짐작해본다.


스탈린이 그랬듯, 모택동이 그랬듯,

변질된 사회주의는 인민대중의 가슴에 상처만을 남기게 된다.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운동권들의 파쇼적 행태는

한국사회가 내재한 고유의 문제점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품고 있는 사상이 가진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당시 한총련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두가지 투쟁노선은

반미자주화투쟁과 반파쇼민주화투쟁이었다.


개인적으론 분명 일리가 있다지만

그 방법론은 여전히 80년대에 머물러 있었고

정서 역시 열사의 정서 그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기저에 흐르는 사상이 60년대라면...




개인적인 생각인데,

2002년 광화문 거리에서 지도부 사람들은

아마도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확신해본다.


...그들은 90년대를 넘어서면서 공룡이 되어 있었다.





다시 돌아가서..

지금 그들의 새로운 적이 무엇인지 그들은 알고 있다.


형체도 불분명한 신자유주의라는 괴물과

이제 공기처럼 스며든 고도로 발달된 자본주의 메커니즘들이다.


이젠 전두환;보다 더욱 무서운 존재를 적으로 두어야 한다.



게다가 저들은 혼자가 아니다.


하이에크와 미제스의 성경을 한쪽에 두고

잭 웰치와 피터 드러커의 복음을 노래하며


국적도 모를 거대자본이라는 긴 창을 들고

그렇게 세계를 지배경영하려 오고 있다.


그건 미제국주의;도 아니고 매판자본;도 아닌

인간본성의 극대화라는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기에

더욱 자연스럽다.


여기에 그 누가 대적할 수 있을까?

나도 당신들도 자본가의 좆을 조낸 빨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지금의 현실에서..

이 와중에 민족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으려나?;




다시 질문해보자.


한국사회는 제도적 민주화 이후 민주적으로 변했을까?

한국사회는 시민들의 힘이 중심이 된 민주사회로 변했을까?



아마 좌파;라고 본인들이 생각한다면,

민주화의 개념이 경제적 발전을 위한 민주화라는 제도적 논의가 아니라

지극히 본질적인 의미의, 그러니까 정치사회적 개념의 민주화, 민주사회라고 본다면


위의 질문에 고개를 젓게 될 것이라고 본다.




나는 여전히 운동권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한국사회의 변혁을 주도한 세력은 학생운동이었고

그들은 여전히 변혁운동의 불씨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화로와도 같은 존재로 남아야 한다.



그렇게 욕을 먹고도 고치지 못하는 그들의 한계는 분명하다.

그들은 여전히 학습되어있지 않고 여전히 방향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

다만 그들 역시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만큼은 공감하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무서운;괴물을 때려잡으려면

그들을 보지 못하는 예전의 안경을 버리고 새로운 안경을 껴야 할 것인데..


이젠 시민운동이 주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지만

여전히 이러한 민중운동역시 가치가 있음은

요즘의 남미;가 증명해 주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과거의 영욕;의 역사를 뒤로 하고

두갈래 길을 선택해야만 할 듯 하다.


시민운동과도 같은 자유주의적 개혁운동이던지,

아니면 국제적 연대를 통한 사회주의적 변혁운동이던지.

(아니면 적군파처럼 진퉁 좌파질을 하던지;)



학생운동은 이 길 위에서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이미 취업학원이 되어버린 대학가에서


과연 어떻게 해야 화롯불의 열기를 그나마 이어갈 수 있을지,


혹은 또다른 대상에게 이 열기를 건네어 줄 것인지.







머.. 난 지금도 자본가의 좆을 빨며, 바디;를 타며

그 화대로 이전보다 훨씬 많은 것을 누리면서 살아가고는 있지만


언젠가는 바디;도 안타고 좆;도 안빨고

덜먹고 덜쓰더라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보며


그냥저냥 누군가 날 도와 대신 해주겠지 하며 눈치만 보는 비참한 3류 창녀의 입장에서

내가 지껄일 수 있는 말은 이정도 뿐일 것 같다.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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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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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인가 94년인가에 나왔던 크래쉬 1집의 수록곡.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던 '92 내일은 늦으리 앨범을 듣고 한없이 찾아해메던 크래쉬 신보.

결국 몇 달 후 레코드가게에서 발견하고 환호성을 지르고 말았다.

아시아나; 풍의 유치뽕한 자켓이 아니라 뭔가 있어보이는 껍데기가 더욱 내 기대를 크게 했다.


집에서 앨범을 틀어보니..

첫곡 Scream 부터 마지막곡 Don't Ramble On 까지 시종일관 빡세게 달려주는 그들은

진정 감동 그자체였다.


체계적으로 잘 짜인 스래쉬 넘버 Dreamer of the Last Dream,

극단성의 향연을 보여준 짧막한 연주곡; Screwed Up,

무엇보다 귓가에 착착 달라붙던 맛깔나는 딮퍼플의 리메이크곡 Smoke on the Water,


그리고 가장 맘에 들던 이 곡, My Worst Enemy가 있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네가 내게 한 것처럼 나도 네게 할 것 같아

너나 나나 외로운데 우리가 갈 길은 멀지 않은 가


크... 가사 씨발...-_-b

음.. 지금 올린 버전은 영문버전으로 그들의 알아먹기 힘든 발음이 난무한다만

우리말버전보다 약간 매끄럽게 들려서(나만의 착각인가-_-) 올려본다.


처음부터 강력하게 조져주는 리프가 졸라게 빡세게 들려오고

똥구녕을 졸라 긴장시키는 느낌이 여실히 드는 곡이 아닐 수 없었다.

무엇보다 번번히 듣는이를 긴장시켰다가 풀어주는 능력이 뛰어나고

윤두병의 번개처럼 왔다 사라지는 기타솔로도 무척이나 맛깔났다.


맛깔나는 리듬파트를 이끄는 정용욱의 투대고 소리도 작살나는데다

또한 안흥찬의 가창력-_- 이야말로 이바닥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야말로 즘생;의 목소리 아닌가.



다시 한번 들어보니 한동안 이 곡에 미칠 수 밖에 없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이들이 나중에 테크노;쪽으로 변절한 이후 한동안 크래쉬의 앨범을 사지 않았지만

오늘 문득 이들의 음악이 그리워졌다.



그리워요~ 그리워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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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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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는 안도 유마. 그림은 아사키 마사시.

며칠전 1,2권만 빌려보다가 참지못하고 근래 발행된 21권까지 바로 읽어버렸다.

무엇보다도 손을 놓지 못하는 재미를 갖춘, 근래들어 가장 재미나게 본 만화였다.

몇가지 부분을 놓고 약간 생각을 해보기로 하자.

#1. 일본이 그리워 하는 캐릭터, 쿠니미츠

강백호스러운 주인공, 무토 쿠니미츠는 상당히 일본적인 캐릭터다.

근성과 패기가 살아있고 매사에 긍정적이며 실천하며 배워가는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무엇보다도 과거의 전통적 가치들에 기반하여 현재를 변화시키려 하는 것이

그가 가진 매력의 본질이자, 작가가 오늘날의 일본의 미래를 그려보는 시각이기도 하다.

메밀국수장인과 폭주족이미지의 병존,

그러면서도 퇴폐적이지 않고 밝고 진취적인 이미지는

주인공을 전후 성장기의 일본의 원동력이었던

일본적인 근성-나는 이 단어 별로 안좋아한다만-을 소유한 인물이자

행동을 통해 매력을 발산하는 대중친화적 카리스마를 소유한 인물로 그를 창조해냈다.

쿠니미츠는 급속한 산업화가 가져온 폐해에 대한 비판, 기성정치의 부패에 대한 분노에 그치는 것이 아닌

사회의 음지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통하여

단순히 환멸의 대상인 정치가 아니라 참여를 통한 진보의 장으로서의 정치를 만들것을

독자들에게 외치고 있다.

아마도 내겐 이 만화를 읽을 세대인 청소년들에게 쿠니미츠와 같은 꿈을 갖길 기대해 보는

작가의 메세지, 그러니까 일본의 기성세대가 가진 메세지가 분명히 느껴져왔다.

버블경제의 거품이 사라진 후 역동성을 잃어가고 현실에 매몰되어가는 일본인들에게

철완 아톰처럼 힘을 줄 수 있는 캐릭터로 쿠니미츠는 자리매김 한다.

그리고 도전하는 젊은이에게는 쿠니미츠 처럼 행운이 항상 함께 할 것이라는 암시또한 그렇다.

어찌보면 소년만화가 가지고 있는 가벼운 교훈성이 극 전반에 걸쳐 얇게 덮혀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텐노헤이카를 외치며 과거로의 귀환을 외치던 우파들의 사고가

만화 전반에 걸쳐 희미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이 만화가 읽는데 있어 약간의 불편함을 주는 요소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캐릭터가 한국에서도 인기를 얻게 되는건,

우리의 사회현실이 일본과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2. 일본정치의 현주소

하루끼 소설에서 가벼운 이야깃거리로나 언급되던 60~70년대의 적군파는

이제 일본에서는 그저 역사의 뒷이야기로 자리잡게 되었다.


일본정치에서는 더이상 이념이라는 것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50여년간의 자민당 1당 체제,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자민당의 통치,

그리고 자민당에 사실상 흡수되어버린 사민당, 그리고 존재의미를 잃은 공산당은

일본에서 이미 이념에 대한 논의는 무의미해졌음을 의미한다.

극 중 등장하는 사이비 종교단체와 연예인들의 정치참여에 대한 플롯들은

일본정치가 이제 이념이나 정책이 중심이 되는 정치가 아닌

이미지의 정치가 주된 행태임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지독한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경제제일주의속에서 드러나버린 빈부격차,

현실을 냉소하는 젊은 세대들, 그러한 과정속에서 또다시 부패해가는 악순환 속에서

어떤 이념이란 것은 쓸모없는 논의에 불과하고 정치는 그저 그들만의 리그에 지나지 않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보여주는 어두운 부분에 대해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극중에서도 이념적인 논의는 결코 등장하지 않는다.

정책을 통한 승부, 그리고 정치적 수사와 테크닉에 대한 시연을 통해

독자들에게 정치현실에 대한 가벼운 맛보기를 보여주고

나름대로는 대중주의와 엘리트주의의 단면을 들여다 보고 있을 뿐이다.

이념적인 논의는 누구를 위한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가에 우선한다고 보는 나로서는

약간은 아쉬운 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점에 있어서는 우리나라의 정치과정이 그들보다는 활성화 되어있다는 것을,

그들보다는 역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정치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점이다.

다만 우리역시 일본이 걷던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불안감은 지울 수 없지만.

#3. 민주주의는 존재하는가

쿠니미츠는 다분히 하층계급 캐릭터의 전형을 보여준다.

다만 절망하지 않는 의지적인 캐릭터라는 것이 그 차이일 뿐.

그가 끝없이 경험하고 사람들의 믿음을 얻어가는 과정은 지극히 대중주의적이다.

그가 직접 경험 속에서 비전을 열어준다는 설정은

일본만화속의 영웅들이 즐겨 쓰는 고전적인 레토릭이라는 생각도 든다.

작가가 지향하는 서사는 이 외모만 양아치이고

내면은 그네들이 원하는 전통적 모범 일본인 캐릭터인 쿠니미츠를 통해

그의 주장을 풀어나가는 방식은 협객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야쿠자 두목과 정원에서 맞짱을 뜨던 장면이었다.

그야말로 사나이의 로망;을 보여주는...)

쿠니미츠가 보여주는 카리스마적인 1인지향의 인물컨셉과 함께

민주성보다는 협객의 의리와 충성에 더욱 의지하는 그의 행태는 다분히 비민주적이다.

이는 그네들이 펼치는 대중지향적 정책과는 별개로 작용하며

어떠한 영웅의 출현을 고대하고 있는 작가의 정치인식이 어렴풋이 느껴져왔다.


번번히 협객의 감성을 논하는 쿠니미츠의 언행을 통하여 보았을때,

결국 쿠니미츠의 정치의 토대가 되는 마인드는 지극히 동양적인 이상향에 머물러 있고,

이는 일본정치의 특징인 파벌주의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눈치챌 수 있다.


앞서 언급했던 우파적 논의에서 느끼는 불쾌감과 함께 가장 궁금하게 생각했던 것은

사카가미 료마라는 민주적 정치가와 후와 순이치라는 카리스마적 정치가 사이의 대조 사이에서

무토 쿠니미츠라는 존재가 내세우는 협의 정서와 그것과 대중과의 조합이 가지는

성공가능성, 그리고 그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라는 것이다.


대중은 협의 모습을 지지한다. 그래서 협의 정서와 주장에 동조할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협은 체계화되기 어렵고 체계화 된다 하더라도 리더 중심의 강력한 위계체계를 형성하게 되어

기존에 타파하고자 하던 세력과 그대로 닮은 모양의 권력집단으로 변모해가게 된다.


민주주의는 모든것을 뒤바꾸어놓을 한 사람의 영웅을 기다리기 보다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늦더라도 그 안에서 모두가 공감하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사카가미 료마라는 인물을 무척 좋아한다.


반면 쿠니미츠가 경험을 통하여 민주주의의 원칙을 이미 체득하고 있다고 설정한 작가는

그를 만화라는 특성을 살려 대중주의적 영웅으로 설정하고 있다.


글쎄... 나는 그가 결국 자신의 왕국은 형성할 지 모르겠지만,

결국 그가 보여주고 꿈꾸던 대중과 함께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그러한 정치의식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라는 것이 단순히 가치의 권위적 분배라는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참여지향적 조정자의 모델로 정치행위를 바라보며 그것을 행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분명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다만, 어떤 영웅적 캐릭터의 도래를 바라는 이야기를 원한다면

이 만화는 흔한 영웅물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영웅물 중의 하나인 듯 하다.


오히려 이 만화는 정치에 무관심한 청소년들에게 정치입문서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것이

이 만화가 주는 과외 소득이라고 해야 할 것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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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의 속살

임지현, 삼인, 2001



-임지현 교수는 한양대학교 사학과 교수이고, 당대비평을 통하여 '우리안의 파시즘',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등의 문제작들을 집필하기도 했다.
그의 글을 읽으면 학자로서는 드물게 상당히 스타일리쉬하다는 느낌이 든다. 유려하고 개성있는 문체가 매력적이었다.
이 책에서는 앞서 언급한 저서들에 대한 세간의 비판과 지지에 대한 부연과 함께 자신의 주장들을 다양한 시각과 방식으로 총화하고 있었다.


그는 먼저 신체적으로 직접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군부파시즘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언급하고 그러나 그것이 미시화하여 '은폐된 억압구조로서의 파시즘'으로서 작용하고 있음을 구 파쇼국가와 사회주의 국가들의 예를 통해 통렬이 비판하면서 한국사회 저변에 널리 퍼져있는 미시화된 국가주의와 파쇼적 민족주의, 또한 그것에 기반하고 있는 사회주의운동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그는 파시즘국가와 대결하던 사회주의 국가가 오히려 파쇼적 억압기제를 사용하고 있음에 주목하며 사회주의국가들은 권력의 획득을 위한 기동전의 승리와는 달리 대중을 대상으로 한 진지전에서는 참패하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변혁의 성공을 보증하는 열쇠는 권력의 헤게모니를 민중의 헤게모니로 전화하는 진지전의 승리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지전의 승리는 곧 포괄적인 의미에서 문화적 전선에서의 승리를 의미한다. 문화는 물질적 실재의 단순한 반영이 아니라 실재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규정하는 코드이며, 그것을 통해 다시 물질적 실재 그 자체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힘이다. 그러므로 '진지전'이라는 문화적 전선에서의 승리가 담보되지 않는 권력의 장악은 과도적이고 한시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
이 것은 파시즘이 대중적인 지지를 얻는 민족주의 국가주의적 문화를 접수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벌이는 진지전에서 사회주의운동을 압도하였음을 의미한다.

이는 상당히 날카로운 지적인데, 나 역시도 기계화된 사회구성체론 속에 상부구조와 토대로 사회를 이분화하는 사고를 해왔고, 그것을 통한 사회변혁이 조금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결국 대중을 지배하고 있는 파쇼적 아비투스를 전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국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파시즘은 면면히 우리의 피 속에서 살아흐를 것이라는 현실과 직면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거대한 이념을 통한 사회구조의 변화는 현실의 미시적 측면에서 작용하는 아비투스를 변화시킬 수는 없었던 것이고, 그러한 미시화한 파시즘은 오히려 그러한 이념의 구체화 과정속에서 작동되어왔다는 것은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회주의 국가였던 동구권에서 왜 극우파가 왜 창궐하는가' 하고 그가 묻는 질문은 자못 우리의 현실과도 맞아떨어진다. 박정희의 망령에 여전히 매몰되어 있는 한국사회 역시 그와 다를 바 없다. 국가주도의 동원체제속에서 선전과 교육을 통한 내면화과정을 통해 결국 자율화해나가는 과정은 파시즘이 원한 대중의 자발적 통제와 같은 그 것이었다.

가부장주의나 부계혈통주의가 혈통적 민족관으로 연결되며, 이는 독재권력을 정당화하는 이념적 뒷받침이 되는 한국의 현실을 비판하면서 그는 마지막으로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라는 질문으로 대체할 수 있어야만 진정 근대를 극복하고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상당히 포스트모던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거대담론을 통한 이데올로기적 해결책을 바라보는 근대적 사고로는 진보운동과 변혁에 있어 더이상의 발전은 물론 파시즘에 대한 패배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면서 탈근대적 관점으로 이념을 권력을 문화를 해부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라고 생각된다.

약간의 원론적인 비판을 가하자면, 한국사회는 제도적으로는 독재를 벗어나 민주화과정을 이행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민주화는 여전히 먼 상태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념적인 폭이 지극히 좁고 보수이데올로기가 여전히 지배적인 한국의 현실에서 이러한 탈근대적인 주장은 현실적으로 적용하기에는 오히려 후퇴의 일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현실적인 민주화를 향해 더욱 박차를 가하고 이념적 다양성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지 않은 현재의 상황에서(곧 근대화가 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불란서 68혁명을 논하기에는 이른 감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주장대로 문화적 측면의 민주화, 아비투스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안의 파시즘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운동세력역시 스스로 붕괴될 우려가 클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위로부터의 개혁논의를 비판하는 입장또한 문제가 있으며,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를 총괄하는 총체적 개혁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지적한 파쇼적 문화에 대한 문제점은 분명히 중요한 점이라 본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적인 통로로의 접근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통로라고 보인다. 포스트모던한 문화론이 결국에는 자본주의의 좋은 먹잇감으로 전락해버린 현실의 상황에서 힘을 가지지 못한 문제제기에 대한 우려는 당연한 것이 아닐까...


일단 지금의 세대에 있어 거대담론에 대한 혐오감은 거의 대부분일 것이다. '나는 콩사탕이 싫어요' 라고 당당히 외칠 수 있는 지금, 맑시즘과 같은 거대담론은 뭔가 고루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물론 그들은 그것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거부하면서도 결국에는 미시권력의 힘에 의해 자신도 알지못하는채로 움직인다.
'그게 바로 세상이야' 라고 말한다면.. 난 할말이 없다. 나역시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중요한것은 실천이지만 나역시 이렇게 떠들고만 있다.


이 책을 읽고 그런 우리안의 파시즘에 대해 인식하고 경계할 수 있게 되었다는데 대해 그저 위안을 삼기로 하자. 모순을 실천으로 전화시킬 능력과 용기는 이미 무기력한 내게서는 더이상 찾을 수는 없다.

어차피 책을 읽는 것 역시 지적 딸딸이 행위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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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
의류 브랜드 중에 바나나 리퍼블릭이라고 있다.

(홈페이지는 http://www.bananarepublic.com)



Gap사에서 출시되어 주로 여성층에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브랜드인데

중고등학교 시절에 아이들 사이에서도 퀵실버;나 마우이; 마냥

바나나 리퍼블릭 티셔츠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던 듯도 하다.



문득 곰곰히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브랜드를 버젓이 입고 다니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바나나 공화국은 뭐하는 공화국일까.

그건 대규모 농장에서 바나나 등의 작물을 통하여 국가를 꾸려나가는,

굳이 농산물이 아니라 국가자체가 강대국의 입맛에 맞게 재단되어버린

중남미 약소국들을 낮추어 통칭하는 말이다.








과거 UF(United Fruits)라는 초국적 거대자본에 철저히 종속되어

국가정체마저 뒤흔들린 과테말라의 어두운 현대사에서 유래된 이 단어는


그저 '그들'이 원하는대로 먹고 살 수 밖에 없는 기형적 경제체제를 가진

그야말로 찌질;한 중남미 소국을 일컬을 때

'그들'은 바나나 공화국이라고 부른다.


돌아보면 지독한 경멸의 의미가 숨어있는 단어인 거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들 국가는

국가의 경제상황이 강대국들에 대해 지극히 종속적이라

그들의 이해에 의해 국가의 정치사회경제가 움직일 수 밖에 없는,


그야말로 한때 한국사회를 규정하는 단어들 중 하나였던

'신 식민지 독점자본주의'의 개념으로 보아도 무방한 상황이었던 거다.


생각해보라. 초국적 기업 샘숭;이 자유시장경제질서를 교란;하는 노무현의 정책이 맘에 안든다고

박근혜를 부추겨 노정권을 무력으로 갈아치워 버렸다면..?


이 것은 국제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을 극명히 보여주는 단어이기도 하다.

바나나 리퍼블릭이 괜찮은 브랜드의 의류의 의미로 받아들여 지느냐,

혹은 조롱과 경멸의 의미로 받아들여 지느냐,

또는 지독한 수치의 단어로 각인되느냐는

그 처해진 입장에 따라 가치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우리 역시 이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역사를 가져왔기에

이러한 3세계의 종속성과 경제적 빈곤을 비웃는 단어에

난 절로 좆치않은 기분이 들었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에게 종속되어

일개 국가의 모든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구조가 그들에게 맞추어 짜여져 온 우리 또한

2만불 시대를 달려가며 스쳐가는 과거의 이야기일수만은 없다.


다만 우리는 경제적 보다는 군사적 종속이 더욱 주된 요인이었고

산업화의 개념보다는 공산권과 대치하는 전초기지의 개념이 컸던 것이 다른 점이랄까.  


여전히 그들의 한마디에 멀쩡한 아들들을 사지로 내보내야만 하는

그것을 국익이라 믿고 있는 우리들 역시

또다른 형태의 바나나 공화국이란걸..








더욱 꼴사나운 것은 사실 우리는 제 3세계 국가이면서도

'우리는 못사는 중남미나 동남아 국가들과는 다르다'라며 그들을 경멸하면서


'그들'에게 붙어 헤헤;;; 거리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그야말로 겉은 노랗고 속은 하얀 바나나 그 자체다.



근래 뉴올리언즈에 불어닥친 태풍으로 인한 엄청난 피해소식을 들으면서

그 와중에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문제가 화두가 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참상을 접하면서

"역시 깜둥이 새끼들은 안돼" 라는 말을 내뱉으며

고개를 내젓는 이들을 간혹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깜둥이'가 들어가는 자리에 '원숭이'를 대입시키면

그들이 생각하는 바로 우리의 모습이라는걸 잠시 망각하고 있는,

혹은 그것이 괴로워 오히려 잊으려 노력하는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서글프다.




무엇보다 이러한 종속에 대한 논란과는 별개로

그러한 브랜드네이밍을 한 의류가 날개돋친 듯 팔려나가는 오늘의 상황은


국가와 이념과 인종을 넘어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자본이란 것이 가진 그 끝을 알 수 없는 힘에 대한 두려움과


그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


그 끝에서 생계를 이어가려 발버둥 치는


혹은 성공이라는 꿈을 꾸며 몸부림치는


우리들 자신이 너무도 초라해 보인다는 것에 가슴이 아파온다.






뉴스란의 리플을 보다 그만 열이 받아서 써봤다;


결론은 "국제사회는 힘없으면 좆밥"이라는

현실주의의 대명제를 들이대면서; 대충 마무리 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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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

경험이 나에게 어떠한 도움을 주었을까?

나름대로 돌아보면 스물 몇해동안 이런 저런 일들을 해보았지만

내 자신에게 심대한 변화를 준 일들은 없었던 것 같다.

경험은 수용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약이 될수도 독이 될수도,

혹은 스쳐가는 경험 그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일테니까.



예전에... 쓰레기 청소할때 얘긴데...

요즘은 신문 나부랭이에서 연봉 3000;; 받는다는 대단한 일이라 불리기도 한다만

그건 구청소속의 상대적으로 나은 여건에 있는 분들의 이야기이고..

실제로 용역회사의 환경미화 업무는 상당히 고되고 박봉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때는 나름대로 그 일이 살아가며 가장 힘들고 고생스러운 일 중 하나라고 믿었다.


힘든 일은 젊었을 때 해봐야 한다는 치기,

군대 제대한지 얼마 되지 않아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오만이

나로 하여금 그 일을 택하게 했었다.


두 명의 작업원이 저녁 7시에 청소차 뒤에 매달리게 되면

새벽 4시까지 4~5회정도 쓰레기를 비우러 수색집하장으로 가야 한다.

계산해 보면 매일같이 두명이서 20톤 가량의 쓰레기를 비운 셈이다.



룰루랄라 신촌을 쓰레기차 뒤에 매달려 거니는 기분은 상당히 즐거웠다.

짬;이 이빠이 든 100리터들이 쓰레기봉투를 힘차게 차 안에 던져넣던 상쾌함,

달리고 던져넣고 달리고 던져넣기를 반복하던 아현동 언덕배기의 숨가쁜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첨에 일한지 일주일 정도 되었던가..

언덕 꼭대기부터는 차 뒤에 매달려 신촌역 입구까지 가는 코스였는데

기사 아저씨는 내가 타기도 전에 엑셀을 밟고 가버리는 거였다.


난 잠시 허망하게 쓰레기차를 바라보다가 미친듯이 달려서 차를 뒤따라 갔었다.

근데 그와중에 청소용으로 어디에선가 줏어 신었던 워커 한쪽은 밑창이 날아가 버리고;;;

천을 줏어다가 묶은 다음에 연신 '아씨발, 아씨발' 거리며 절뚝절뚝 뛰어가던 그 기억이란...

나중에야 아저씬 웃으며 그땐 내가 '금방 그만둘까봐 시험해 본거' 라고 하시더군...;; 헤헤;;



일하면서는 남들이 생각하는 부끄러움 같은 건 별로 느껴보지 못했다.

내겐 오히려 가게 아주머니들이 음료수를 건네줄때 느끼던 그 보람이 더 강하게 남는다.

새벽에 일이 끝날때면 들러 라면을 얻어먹곤 하던 어느 조개구이집 할머님의

푸근한 얼굴과 따스한 목소리는 지금도 무척 그립다...


가끔씩은 명절때 모모한 점포에 쳐들어가 금전적인 요구;;를 좀 하는 경우도 있긴 했다만..

그게 뭐 사람 사는 세상일이 다 그렇고 그런게 아니던가...-_-


사람들을 상대할때는 너무도 당당했다.

불법주차 해놓은 승용차 주인에게는 졸라게 쿠사리를 주고

차 대려고 우리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에게는

쓰레기 봉투를 내던지며 욕지거리를 하면 대충 다 알아서 피해갔다.


사람들은 '똥이 드러워서 피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으니...;;

그야말로 우릴 막을 자는 그 누구도 없었던 거다-_-



가장 일하는데 곤란한 것들은 이른바 '제품'이라 불리우는

주택가의 작은 공장에서 내놓는 천쪼가리나 구두뒤축, 피혁류 같은 것들이었다.


그것들의 무게는 허리가 휘청할 정도로 상상을 초월했는데,

특히 구두뒤축 같은 경우는 적재과정에서 그 안에 들어있던

뒤축고무를 갈아낸 가루를 들이마시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그때마다 목구멍이 타들어갈듯 따가워 끊임없이 기침을 해대곤 했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비맞은 천쪼가리가 든 100리터짜리 봉투들을 쟁일때는

그 압도적인 무게에 '이대로 죽고싶다-_-'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아..

종종 차의 뒤를 열어 적재함을 고압호스로 청소할때는

짬범벅을 온몸에 뒤집어써야만 했고 (으아... 생각만해도 오싹;;;;)


앞서 말했던 수공업 폐기물들을 차에서 내린 다음

거대한 컨테이너 안에 그것들을 다시 적재하는 일을 하고 나면

온 얼굴은 땀과 실오라기들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아침에 학교에 갈 때 까지 검정색의 가래를 연신 뱉어내곤 했었던 기억도 잊지못한다.


서대문쪽의 모 빌딩의 쓰레기장에서는 구더기-_-가 워낙에 많아

쓰레기를 쓰레기함에서 꺼내고 나면

팔뚝에 허여멀건한 구더기 서너마리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을 보아야만 했다.


글구 낮엔 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였는지라,

다른건 몰라도 손에서 나는 그 냄새만은 어쩔 수가 없더군.

강의시간에 내스스로도 느낄 수 있는 내 손에서 나는 시큼한 쓰레기 냄새..

후후...



일은 힘들었지만 사람들과의 관계는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일하던 사람들과 2주정도 지나며 다들 친해지게 되었고

함께 일하는 작업원인 남도에서 올라온 19살짜리 양아치랑은 정말 친해져서

월급날 둘이서 신세타령하며 미친듯 소주를 들이붓던 기억도 난다.

가끔씩 거리에서 떨어진 지갑을 줍게 되면

기사아저씨와 함께 셋이서 돈을 뿜빠이; 하던 정감 넘치던 기억도 몇 번 있었지.


그래... 다들 좋은 사람들이었다.

서교동쪽을 하시던 아저씨는 일이 끝나면 바로 새벽시장에 가서 야채를 가게마다 날라주는 일을 했다.

안 힘드세요 라는 나의 물음에 아저씨는 자식새끼 생기면 어쩔 수 없다고 대답 하시던 기억.

매번 싱글벙글 웃는 모습이 무척 정감 있던 아저씨였다.

젊은 시절에는 쇠말뚝에다가 오함마질을 연속으로 50번을 해도 끄떡없었다고 자랑;;하던,

파리가 들끓는 사무실에서 연신 소주를 들이키던 반장아저씨의 따뜻함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고시준비하면서 밤에는 쓰레기 청소하던 신촌 모 대학 다니던 어떤 형,

떡치고 노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이던 성격좋던 내 런닝메이트,

월급타면 나이트에서 100만원씩 긁던 무개념의 양아치 형,

나한테 피라미드; 가입시키려고 애쓰던 어떤 개새끼까지...-_-



이제야 다 추억이 되버렸지.

그들을 보며 정말 많이 배웠다.

그리고 치열하게 사는 이들을 보며 많은 부끄러움을 느끼곤 했지.

사실 진짜 쓰레기는 바로 내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일을 낮은 일이라 생각했던 내 사고회로에 대한 부끄러움이 가장 컸다.

그들의 치열한 삶속에 그저 경험의 차원으로 접근한 내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그리고 내 생활방식이란 그야말로 나태와 안일함 그 자체였다는걸

그들과 함께 일했던 기간동안 절실히 느꼈고,

이러한 경험들은 나를 한동안 성실케 했다.



그리고

일을 그만두고 다시 과거의 나로 돌아오는데는 얼마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보같은 새끼...



후후... 난 어쩔 수 없는 놈인가봐.




그래도.. 어쩌다가 신촌기차역을 지나 굴다리쪽을 보게 되면

문득 어떤 반가운 감정이 나를 맞이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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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

고교축제

일기는메모장에 2006. 11. 25. 02:46

그 때 그 동네에서 젤 재밌다던 고교 축제는



아마도 우리학교축제였던 것 같다-_-




거, 성문종합영어반;; 뭐 이런 틀에 박혀진 CA활동 말고


지들끼리 알아서 돌아가는 동아리들이 거의 50여개나 있었던 터라


내 기억속의 고교축제는 항상 활어처럼 살아튄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여름방학때부터 삐질삐질 땀흘리며 준비해오던 축제...


그래서 그 정성만큼의 보고 들을 거리들은 항상 충분했다.






울 학교에서 가장 볼만하다고 손꼽히던 동아리는 연극반이었다.



구타속에서 싹튼 연기실력도 상당한 수준이었지만


트름을 통해 서로 대화;;를 나누는 기술을 익히고 있던


그들은 진정 기인;들이었다.




그들은 축제기간동안 홍보를 위해


놀이공원에서 볼 수 있는 동물인형옷을 입었다.



그들은 오징어 냄새;;가 나는, 때가 덕지덕지 묻은 그 옷을 뒤집어 쓰고서


간만에 학교 안으로 들어온 귀한; 여고생들에게 다가가




"사랑해~♡",  "안녕, 친구~~*^^*" 등의 멘트;를 날리며


여고생들을 꼬-_-옥 껴안으면



그녀들은 낯색이 잘 익은 대추빛;으로 변하며 도망치곤 했다.





그 놀이가 구경하는 이들에게도 어찌나 재미있었던지;;;






그러다보면 학교를 몇바퀴씩 돌며 구보를 실시하는 운동동아리들이 보였다.


유도부, 검도부 등등의 아이들은 시범전까지 도복을 입고 맨발로 열을 맞추어 뛰어다녔다.



많은 여고생들은


그 터프한 근육질의 멋진 아이들에게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렇게 정문에서 이어지는 목을 따라가다 보면


어용써클;인 선도부, 학생회, 학교역사반 등에서 운영하는 패스트푸드점과 안내처 등이 있었고



거기서 볼수있는,


교복입은 여학생들이 모여앉아 즐겁게 수다를 떠는 모습을



나같은 찌질이 고딩들은 볼이 발그레*-_-* 해져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던 것 같다 ToT





학교매점 근처에서는 컴퓨터반, RCY 등등의 동아리들이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매년 RCY는 풍물을 정말 신명나게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제대로 안돌아가는 상모로 하던 헤드뱅잉;은 진정 압권이었다.



한편 그 옆의 컴퓨터반에서는


이로 인해 호객 및 영업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으나,



워낙에 RCY 구성원들 대다수가 매우 껄렁껄렁한 아이들이였던 관계로


매년 같은 장소에서 같은 고충을 겪곤 했다...;;






거길 지나 체육관쪽으로 가다 보면


이공계 동아리의 꽃, 생물반이 자리잡고 있었다.



평상시에도 멀쩡한 쥐들을 샴쌍둥이;로 만드는 재미에 심취해있던 그들은


토끼 해부를... 아니 거의 도살이라 생각될 정도의 칼질로 해내어


만인을 경악케 하곤 했다.




특히 마취시킨 토끼의 배를 갈라 내장을 싸그리 들어내었다가


창자랑 간 등등을 꾸역꾸역; 뱃속으로 집어넣고 꿰매는



그들의 신묘한 솜씨에는


모두 머리를 조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축제후에 그들이 창조해낸 생명체;들을 정리할때는


며칠씩 굶겨놓은 각종 괴물-_-들을 한자리에 모아


서로 먹고 먹히는 진풍경을 보며 즐기곤 했다.



사실 그들은 여학생들이 내지르는


"어머~ 징그러~~;;" 하는 소리에 모종의 쾌감을 얻는 자들이었던 거다-_-





텅 빈 운동장에서 악을 쓰는 각종 그룹들을 뒤로 하고 나면


각종 종교써클들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체육관이 나타난다.




기독교반은 당시 유행하던 백워드매스킹을...


그러니까 서태지의 하여가와 교실이데아를 뒤집어   '피가 모잘라-_-'를


불꺼진 골방에서 들려주면서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를 외치고 있었고;;;




불교반은 학교측과 결탁하여


폐우유곽과 깡통 등을 몇달간 수집;하여


그 것으로 불상과 탑 등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발랄한 아이디어 덕택에


불교반은 평가에서 금상을 받고 지원금까지 받게 되었으나



며칠 후 써클룸에서 단체흡연을 하다가 전원이 구속;;되는 사태로 인해


대규모 정학과 함께 지원금을 반납했다는 후문이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학교 뒤뜰로 접어들면 이공계 써클들이 밀집해 포진해 있었다.



물리반, 화학반, 지학반등의 우수 인력들이 대거 모여 있었으나


지금과 같은 이공계 기피현상;;은 여전했던 것 같다....




물리반은 감전체험을..;;;



화학반은 약품을 잘못 섞어 폭발하는 사태로 인해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악취를 풍기고 있었던 그날 저녁....



노을은 무척 아름다웠다;;;






너무도 멋진 무예에 감탄하게 만드는 테니스장의 검도부와 유도부를


그냥 스쳐지나가면; 도서관쪽의 순수학문; 동아리들과 만나게 된다.




미술반이나 만화반 쪽은 그래도 인기가 좋았지만


문예반이나 신문반, 서예반 등은 매년 호객행위에 목숨을 걸곤 했다..;;




여고생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문예반이었다.


그들에게 잡히면 시와 그림이 있는 그 곳;으로 끌려가 장시간 설명을 들어야 했는데



...그야말로 대순진리회의 포교현장을 보는 듯 했다;;





그렇게 한바퀴를 돌고 나면 정문 근처의 대강당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데,


강당주변에는 참 볼거리가 많았다.




산악부원들은 강당 꼭대기에서 줄을 잡고 떨어지는


그야말로 후방레펠; 등의 진기명기를 보여주어 주위를 경악케 했고,




그 와중에 밴드부 몇 명은 옥상에서


당시 먹어주던 차인표;처럼 하고 나와


전원일기 주제곡을 불면서도 기립박수;를 받고 있었다.





아... 그때쯤 강당앞에서 불타는 열연을 펼치던 모 락밴드는


키보드를 모락모락 태워먹는 바람에;;


수많은 관중들을 뚫고 나온 음악선생에게 싸다구;를 연타당하는


실로 경이로운 광경도 볼 수 있었지...







강당안에서는 음악동아리들의 공연이 있었다.



기억나는건


줄을 끊어먹으면서도 연주를 계속한 바이올린 주자 덕에 (곡은 아마 송 프롬 시크릿가든이었을 듯..)


관객들을 열광으로 몰아넣은 현악부,



지하철 서클;;이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엽기공연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하모니카반,



찬조로 온 여고 합창단;을 보기 위해 보았던 합창부,



그리고 언제나 재미없는 방송반;;;



등등....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해질녘이 되면



학교는 둥그렇게 모여 목청껏 외쳐대는 구호소리와


넘실대는 꽃다발의 물결과


쌍쌍이 흐느적대며 걸어가는 교복커플들로 인해



그렇게도 구질구질한 학교는 잠시나마 젊음의 해방구로 변해있었다.











뒤에 대학축제란걸 경험하고 느낀 그 실망감은


내게 아직도 그때의 축제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나 역시 몇 달을 땀흘려가며, 그리고 맞아가며;


그 이틀이라는 시간을 위해 한해의 절반을 퍼부었던,



고딩때의 그 순수한 열정만은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올해도 할까?


기회가 되면 한 번 가 보고 싶은데...








보고싶다...








교복의 물결이...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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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


예를 들어보자.

*같은 현실을 이래저래 겪게 되면서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이란 몇 개 없다.



1. 이런쒸바 *같네

2. 이 총체적인 부조리를 변혁해낼 방법은 뭘까?

3. 우리 맡은바 소임을 다하면서 힘을 키워야해.

4. 이게 현실이야. 이렇게 사는게 우리네 인생이란거지.

5. 내가 나비인가 나비가 나인가... 인간세상은 덧없는것이니...



-1번은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로서, 한묶음의 감탄사에 속한다.

-2번은 상당히 혁명적인 발상인데, 현실적으로 이루어내기가 쉽지않고, 그 이후가 장밋빛이라는

          보장도 없으므로 일단은 배제한다.

-4번은 사실 가장 호감이 가는 말로서 스트레스 없이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서 4번을 강추한다.

-5번은 한마디로 득햏을 한 상태를 이르는 것으로 현실과는 무관한 신선의 경지를 추구하는

          유형이다. 신비주의자에게 추천한다.



오늘의 문제는 3번 '힘을 키워야 해' 다.


-----------------------------


위의 문제가 만약 초등학교때 도덕문제에 나왔다면 '힘을 키우자' 라는 말은 당연히 정답이었을거라고 생각된다.

성향으로 따지자면 중도우파적인 발상이겠지?

실제로 나는 이 단어에 대해 상당히 호감이 많다.


그런데... 실제로 이 단어가 쓰이는 곳은 상당히 특정한 곳에서란 것이다.

정치적인 사안이 발생할때,

예를 들면 현재처럼 이라크전이 발발하고 반전 및 파병문제가 대두될때

이 말은 마술처럼 사용된다.


'파병은 어쩔수 없는 것 아니냐. 지금의 국제정세를 보아라. 세계는 적도 우방도 없는 냉혹한 정글이다. 우리의 국익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우리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미국에 의해 끌려갈 수 밖에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자리에서 힘을 키우는 것 뿐이다.'


전형적인 (신)현실주의적 시각의 주장뒤에는 항상 꼬리말처럼 이 단어가 따라온다.

나역시 이 주장에 적잖이 동조한다.

이는 세계를 보는 가장 냉철하고 뚜렷한 분석틀이며

현 국제사회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시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힘을 키우자'라는 단어가

해석상에 있어서는 실제론 상당히 보수적인 의미로 해석된다는 점이다.


힘을 어떻게 키우자는 것인가?

자기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힘을 키우는, 국력을 증진시키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방향은 과연 어디인가?


현실주의에서는 방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있다면 그것은 오직 이익이고 힘이며 승리다.

이제 국제사회에 있어서 정의라는 것에 대해 의문이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는 시점에서

유일한 설득력은 힘(군사력)과 이익(경제력)을 앞세운 정복 뿐이다.

그것을 당연시 하면서 그것에 대한 유일한 대응책으로 내세울 수 있는 말은

'힘을 키우자'라는 말 밖에 없다.


오늘 내가 딴지걸고 싶어하는 것은 그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속성에 대해서다.

그러한 현실주의적 시각은 현실의 냉철한 분석에는 매우 뛰어나지만

그러한 현실을 기반으로 그 것을 극복하려는 변화의 시작으로는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이유는 그 단어 안에는 현 체제에 대한 순응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단어는 앞서말한 4번의 대용의 효과로 많이 쓰여지고 있다.

이것은 승자가 열패자에게 주입하는 논리로서 '더러우면 출세하라'식의 말과 진배없다고 본다.

약자, 패배자.. 국제관계에서 제3세계 국가들은 그토록 노력했음에도 출세의 회전의자에 앉기는 커녕 빚더미위에 앉아야하는 현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뼈를 깎는 노력 없이는 결국 그 단어는 결국 현실에의 안주이고 타협에 불과하다.


그 예로 일제시대때 진행되었던 자강운동을 들어보자.

'선실력양성 후독립'을 외쳤던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독립운동하셨던 분들께는 정말 *도 아닌놈이 이따위 글을 쓰는게 정말 죄송스러울 따름이지만

일본에의 독립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이 사실 아니었던가..

다시말하자면 이러한 관점은 정말 치열한 노력과 의지를 가지지 않고서는 실현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방향은 그 것이 거의 유일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시한번 고민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고...



현실주의의 관점에서는 국제사회에서 정의란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정의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을 위한 최소한의 잣대인 것이다.

그것이 있기에 자유와 평등이라는 개념이 설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빠져있는 사상과 이념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결국에 우리는 좌의 방향이든 아니면 우이든 간에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여야만 했고

그나마 가장 수월한 '힘을 키우자'는 논리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단어는 이제 현실도피와 안주와 동일한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

앞으로 모두가 '힘을 키울 수 있는',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



다만...

현실은 계속 변해가지만 그렇게 변하는 현실 속에서도

진실만은 변하지 않을거라는 생각을 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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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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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세

일기는메모장에 2006. 11. 25. 02:26

예전에 집을 나왔을 때였어.


친구집에서 며칠 빌붙어 있다가

너무 미안하다 싶어서 정처없이 발걸음을 옮겼지.


하루는 공원에서 자고 밥은 라면 부셔서 먹고..

그러고 있는데 돈도 떨어지고.. 정말 집생각이 간절하더라..


음... 사흘째였는데 저녁무렵에 비가 부슬부슬 내리더라구.

돈은 다 떨어지고.. 옷에서 냄새는 나고.. 얼굴은 꾀죄죄....;;


정처없이 밤길을 걷는데 갈 곳도 없고.. 너무 피곤하고 배고프고 졸려 죽겠어서

정말 어디에서라도 비라도 긋고 쉬고 싶었어..(사실 집에 너무 들어가고 싶더라;;)



문득 든 생각은 교회에 들어가서 눈 좀 붙이면? 하는 생각이 들더군.

들어가서 지금 짓고 있는 내 잘못을 회개하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근처 교회를 찾아갔어.


문이 잠겨있었어.



여러군데를 다 가보았지만


모두다 문이 잠겨있더군.




나중엔 지쳐서 어느 꽤 큰 교회의 문 앞 계단에 걸터앉았지.


잠시후 수위아저씨가 오더라.

밤늦게 왜 이런데 있냐며 의심스런 눈길로 쫓아내더군.



음...;;;




원래 내가 양아치 신자였지만

내가 교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 건 이때부터야...;;




강남이나 분당 등지에 보면

대리석으로 휘감긴 어마어마한 규모의 교회들,

심지어 교회안에 풀장;;까지 갖추어진 만능 엔터테인먼트;;의 교회들이 수두룩해.



이른바 이놈의 '성전'은 신도들의 피와 땀인 십일조를 비롯한 여타 헌금으로 만드는 건데

그 돈으로는 건물 올리고 목사 사모 차 바꾸고...

나중에 그 교회땅과 건물은 이제 외삼대;; 다녀온 목사 아들래미한테 그대로 넘어가게 되는거지.

증여세 한푼 안내고 말야.



하기야 절도 별로 다를 것 없지.

큰 사찰에서 굴리는 돈은 억대는 우습게 넘는다고 하더라.


정말 종교쟁이.. 이 것 만큼 남는 장사가 없는 것 같아.

어디 가면 교회경영학;; 이라는 학과도 있다고 하던데.. 정말 그럴만도 한 것 같아.




종교집단에게 면세혜택을 주는 이유는

국가가 종교의 자유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미가 큰 것이었겠지.  

게다가 종교단체가 행하는 공익적이고 사회통합적인 측면도 강하고 말이지..



근데 지금의 상황에서는 오히려 종교계가 법망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는거지.

일단 면세인데다가 서비스 업종이라 비용 안들지, 인건비 문제 없지..


게다가 목만 잘 잡고 소문만 잘나면 대박장사하는 거라

수많은 인간들이 이 사업에 뛰어들었거든.



정치권에서도 어찌 이런데다 칼을 댈 수 있을까... 자기 목 날아갈 생각이 아니라면..




공익...?

뭐..;; 집나온 거지새끼;; 재워주는건 절대 공익에 속하는게 아니지만;;;




있는 놈들 중심으로 주말마다 모여 딸;쳐주고 돈버는 서비스 업체가 이 곳이라면

굳이 이렇게 대중종교로 존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장안동이나 북창동만 가도 마음의 평화는 얼마든지 누릴 수 있거든.



이제는 종교단체에서도 세금을 걷어야 할 것 같아.




보다시피 물론 난 지금 교회를 다니지 않아.


가끔은 생각해.

그 화목하고 따스한 분위기, 그리고 은혜로운 그런 영적인 기분들을...

성경을 공부하면서 느끼던 그 분에 대한 끝없는 존경심...

이런 것들은 아직도 가끔 기억난다구.


하지만.. 이미 말씀이 지상에 내려온 순간부터 그 곳에는 향기대신 악취가 풍기기 시작했지.

앞으로 그건 더할거야.



그래..


나처럼 이렇게 믿음에 대해 비뚤어진 생각을 가진 애들은

아마 지금도 여기저기서 생겨나고 있겠지..



후후..

그냥.. 오늘 밤공기가 서늘해서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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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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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탈퇴했지만... 싸이에 가면
혈액형에 관련된 성격/연애 관련 글들이
무진장 많더라.

거긴 혈액형과 별점 등등의 이미지파일들로
똘똘뭉쳐진,
그리고 거기에 퍼가요~♡ 가 달리는 살벌함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어디라고 다를까..

뭐... 예전에 딴지일보 기사 로도 나왔었지만

이게 완벽한 개구라라는 건 이미 증명된 사실이기도 하다.


그래도 인간이란 것의 특성상 혈액형이라는
미신에 힘을 빌리고자 할 때가 많이 있다.

대체로 잘 알지 못하는 상대방의 성격을 유추해 보려 할 때 많이 쓰곤 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상대를 어림짐작하고
몇가지 행동을 보고 재단하고

그리고 단정을 짓는다.

"그는 A형이니까... 그는 역시 B형이라니까..." 하면서..


인간을 단순화시켜 분류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모순인가.

그래도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단정짓길 좋아하고 구별하기 좋아하는 이들이니..


나 역시도 그렇다.

맘속에 1번 유형, 2번 유형... 수많은 인간유형들을 정해놓고

만나는 사람마다 그 틀에 쑤셔넣기 바쁘다.


이놈의 혈액형별 분류법은

상대방을 혈액형별 특징에 맞춰 재단해서 그를 취사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상대를 점점 그런 유형화된 범주안에
집어넣으려고 스스로 노력하게 된다는거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짓이냐고..



글쎄.. 그냥 생각나서 하는 얘기고...


내 생각엔 혈액형을 통한 인간분류란건

기본적으로 오감과 육감이 약하고
진정한 인간관계란걸 맺기 정말 어려운

현대사회의 인간이라는 나약한 존재가

재미삼아 믿어보고자 하는 가벼운 미신정도로 생각하고 싶다.



발가락이라도 닮았다고 믿고픈..
우리들은 약해서 두렵고
혼자여서 외로운 사람들이니까 말이지.





아... 사족으로;

내가 남들에게 이런 얘기를 할라치면

ㅋㅋ 임마, 넌 B형이라서 그래^m^



요렇게 받아들이는 인간들도

상당수 있다는 사실이 참 슬프다;


지금 이 옆에 B형의 단점이 나오고 있다.

싸가지 없다
건방지다
질투가 너무 많다
변덕이 심하다
오바한다
게으르다
차별대우한다
속에도 없는 말을 잘한다
도끼병이 많다
말이 많다
잔머리 천재-_-
계산적이다
변태다
고집쟁이다
은근히 여자를 밝힌다
승부욕이 강하다
착각쟁이다
막되먹은 성격이다
공상에 자주 빠진다
한번 사람을 싫어하면 잔인;하게 싫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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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

개시

일기는메모장에 2006. 11. 17. 17:38
시작은 언제나 즐겁다. 설레인다.

당구장에서 초구를 상큼하게 뺄 때 처럼

큼지막한 선물상자의 포장지를 찢어발길 때 처럼



일단은 새롭게 시작해보자.

남들의 블로그처럼 전문성은 없겠지만

최소한 고민하며 사는 흔적은 보이도록 하자는 것이 첫번째 목표이고

내가 즐거워 하는 것들을 남들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두번째 목표다.








어쨌거나..

돌이킬 수 없는 걸음;을 내걸었다.


네이버와는 이제 천천히 안녕을 고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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