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관련된 노래가 잘 생각이 안나서;; 독일 대학생들 합창버전인듯..


 



 
보시다시피 중식조리사 합격
짱깨생활 1년 9개월만에 드뎌 국가공인 짱깨로 거듭나다-_-v

삘 받아서 바로 공단가서 자격증을 교부받았음ㅋ



기분째짐ㅋㅋ
솔직히 실기 두번만에 붙은거긴 한데 이번 실기는 너무 쉬웠다.
해파리 냉채에 야채볶음이라니..ㅋ 여튼 공무원님들께 감사할 뿐.. m(__)m 



그래서 자축의 의미로 동생 먹으라고 아욱된장국하고 생선구이, 마른새우꽈리고추볶음을 해놓고;
사온 숙주나물을 넣고서 속을 만든 만두를 쌌더니 어느덧 세시간하고도 반이 흘렀다;;

근데 동생은 회사 연말회식이라서 폭탄주 마시고 노래방까지 갔다가 알딸딸하게 취한채로 귀가-_-;;
열심히 저녁지어놓았건만 밤늦게 술취해 헤롱대며 들어오는 남편을 보는 아내의 심정이 이런게 아닐까 대충 짐작해본다;


여튼 기분 좋다.
이거 한장 있다고 내 처우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월급이 10원이라도 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정체성, 그간 계속 고민해오던 과연 내가 요리사로서 자질을 갖추고 있을까라는 의문에
조금이나마 스스로 긍정적인 답을 주는 계기가 된 것 같아 기쁘다.
새해에는 내 마음속의 지향점이었던 한식에 대해 한걸음 다가갈 수 있도록 한식조리사에 도전해 보련다.

생긴건 이래도 맛은 좋음;ㅁ;



싸놓은 만두에 막걸리를 한잔 했더니 알딸딸한게 기분좋다.
내일부터는 다시 지옥속으로 투입이다. 그제 760 매출 찍고 쓰러질 것 같았던게 꿈만 같다.
열흘만 참으면 쉬니까; 좀만 더 참자. 
크리스마스는 미칠듯한 칼질과 함께;; 오른손 손목이 쑤신다. 이거.. 관절염인가;; 
그간 잠잠하던 직업병이 재발하는 시기가 또 왔구나... 하아...


굳은살이 가실 날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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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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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작성일 09.12.11/ 최종 수정일 09.12.15)


연말 릴레이 독서 첫빠였던 <프로파간다> 이후 자신있게 잡아 든 이 책..

펼쳐들자마자 입에서 터져나오던 단어는 바로...

 

저.. 저거!!



느낌이 예사롭지 않다;; 
내용은 무척 흥미롭지만 이 방대한 분량앞에 주눅이 든다.
과연 올해 안에는 읽을 수 있을지-_-;

뭐.. 내년;까진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올 만큼의 날들이 남아있으니 
한번 힘내보자.

한큐에 이 책을 완독하는 건 불가능하므로;
이 포스트는 이 책의 각 부들을 완독한 다음 계속 수정하여 업데이트하는 걸로 하련다.


일단은 총 9부의 구성 중 
오늘은 <제 1부 대중의 과학> 에 대해 요약하고 짤막한 감상을 써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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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의 시대(L'Age des foules) /Serge Moscovici



▶군중의 시대(1981), 세르주 모스코비치, 이상률 옮김
   1996. 문예출판사 622p







문득 떠오르는 음악이 이것 밖에 없어서;;



제1부 대중의 과학


제1장 개인과 대중



▷인간은 집단속에서 본래의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비논리적이고 충동적으로 움직이게 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장 되겠다. 사회속에서 예로부터 언급되어온 군중의 특성을 본격적으로 과학화하여 증명하고자 하는 시도를 읽을 수 있다.




제2장 대중의 반란



  
▷2장을 읽으며 이 책은 홉스봄의 '시대'연작 3권과 함께 비교하며 읽으면 재미있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업혁명이후 발생한 근대화의 노도 속에서 탄생한 두가지 사회학의 흐름, 정치경제학과 대중심리학의 끝없는 투쟁이 학문적 흥미를 부추긴다.
지금껏 사회분석의 기본틀이라 생각했던 정치경제학적 분석을 거부하고 심리학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분명 신선하고 충격적이다. 인간은 이성적으로 사유하는 존재라는 명제를 부정하며 등장한 대중심리학, 그 두가지 사조의 충돌과 변용의 길이 궁금해진다. 
 



제3장 대중이 거기에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3장에서는 새로운 시대의 정치학이라는 측면에서 대중심리학을 바라보고 있다. 고전정치학으로 짚어내지 못한 대중의 비이성적인 측면, 그리고 그 사례들을 통해 새로운 대중통제이론으로서의 대중심리학의 위상을 바라볼 수 있다. 대중의 속성을 이렇게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은 기존 분석틀로는 찾을 수 없었던 것이었기에 무척 신선하다. 뭐, 정치행위 자체의 속성을 비합리적인 것으로 보는 이 시각이 현실을 정당화하려는 지배계급의 요구에 부응하는 논리로 느껴져 그리 탐탁치 않긴 하지만..


 





제4장 동양적 전제주의와 서구적 전제주의



▷4장에서는 전제주의로 향할 수 밖에 없는 대중사회의 흐름을 이야기하고 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대중의 지도자는 항상 대중에 의해서 인정된 찬탈자'라는 구절은 우리네 현실과 맞물리며 몹시 인상적이다. 대중의 속성을 분석, 계량화하여 지배계급에게 대중을 통제하고 활용할 수 있는 도구로서 기능하는 것이 대중심리학이라면, 4장에서 말미에 미리 말하고 있듯, 인간의성과 지성을 통해 극복해나갈 수 있는 것 또한 이러한 군중의 심리가 아닌가 싶다. 맑스주의 정치학이 간과한 인간의 비이성적 측면에 대한 학문적 성과가 이 대중심리학이기에, 더욱더 이성과 실천의 문제가 화두가 되는 것이 지금의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아.. 겨우 1장 읽고 이렇게 독후감을 쓰는데도 며칠이 걸렸는지 모르겠다. 내 머리가 썩어가고 있다능ㅠㅠ

일단 간략하게나마 결론을 내보자.
아무래도 이런 주제에서는 촛불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수순이 아닐까 싶다. 어느쪽에서는 거리에 나선 군중의 속성을 단정짓고 폄훼하는데 이러한 이론들을 적절히 논거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고, 집단지성의 시대에서 자발적이고 이성에 기반한 존재로서의 개개인의 총합인 군중을 단순히 군중심리의 측면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오류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개개인의 취향이나 호불호를 떠나 이러한 군중심리학은 인류의 정치사를 조망하는데 있어서 분명히 빛나는 분석틀 중 하나다. 그리고 과거부터 이론적으로 설명해내지 못했던 대중이라는 집합체의 불가사의한 속성을 과학적으로 조망해낼 수 있었다는 것도 큰 성과라고 생각이 된다. 하지만 지배계급의 체제유지에 복무하기 위한 논리라는 태생적 한계는 버릴 수 없는 굴레가 아닐까.
정치경제학이나 대중심리학이나 출발선상의 베이스는 자본주의체제의 공고화와 그 것이 이루어낸 도구화 파편화된 개인의 탄생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면 이 대중심리학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경제학적인 틀을 의도적으로 간과하고 있는 단점 또한 명백하다. 어떤 거대담론에도 휩쓸리고 싶어하지 않는 현대의 냉소적인 개인들 역시 미시적인 권력구조 안에서 순응하고 움직이고 현 체제를 당연시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돌아본다면, 결국 이념의 종말이라 불리는 이 시대에 더욱 필요한 것은 이념의 자리를 차지해버린 자본의 논리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라 본다. 개인의 의지와 실천이라는 요소가 배제된 군중심리를 무비판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결국 그 논리에 굴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앞서 읽었던 프로파간다에서도 언급되었듯, 민주주의 사회의 대중들을 움직이는 것은 선전이며 이러한 대중심리이론에 기초한 수많은 전략과 전술은 오늘날 정치경제문화의 전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 지도자의 위치에서는 이 것이 대중을 도구로 삼기에 적합한 이론이 되겠지만, 그들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에 저항할 수 있는 이론이 될 수 있는 근거 또한 바로 이 대중심리학이 가진 양면성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이러한 책을 읽는 이유도 더욱 명백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대중심리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여러 집단적인 사회현상들을 100% 이해할 수 없다. 이러한 선전선동의 시대에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진실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 또한 이러한 대중심리를 배우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을 거라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아오씨박 힘들어;; 일단은 여기까지. 업뎃은 다음에..;;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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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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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예전엔 하루가 멀다하고 보던 친구들이지만
다들 각자 먹고 사느라 힘든지라
이제는 일년에 한두번 보기도 힘들고 다 모이기도 어렵다.
그래도 만나면 좋은친구인 것은 아직도 여전하니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

어느덧 십이년이 된 동네친구들 모임은 
언제부터인가 설과 추석 당일 저녁에 모이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 되어버렸다.
아마 이 모임의 거두;가 예수쟁이라서.. 그래서일 수도 있으리라-_-+

항상 시골집 제사에 가는 나도 
최근 일이년은 어르신들의 상투적인 덕담들에 몹시도 스트레스를 받게 된 관계로;
제사지내고서는 잽싸게 서울로 도망치듯 떠나.. 결국 그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 작년 12월 31일에 모 레지던스에서 송년 겸 신년모임을 했었는데
처음으로 아주 놀라운 경험을 했다.

두 커플을 비롯한 여덟명 정도가 참석한 모임이었는데,
내가 오바를 해서 총 대여섯가지 요리를 내놓았고
연일 계속된 격무에 몸이 골아버린 인간들은 소주 대신 와인;을 사들고와 설쳐대었는데,

소주와 컵라면으로 첫만남을 시작했던 우리들로서는 이런 변화에 약간의 문화적 충격;을 받았고, 
이는 놀랍게도 '우리도 이젠 조금은 덜 비루하게 놀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게 해주었다.

하지만 음담패설을 비롯한 상호간 거친 대화와 폭력은 여전히 우리들 모임의 정체성이었던지라
처음 그 자리에 참석한 친구의 여친은 당황해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결국 시작은 와인으로 했다가 마무리는 소맥으로 넘어간 걸로 알고 있다?;


여튼... 올해도 마지막날에 그 두번째 송년모임을 가지려 한다.
장소는 영화인;친구의 월세방;;이 될 듯 하고
바리스타 친구와 짱깨인 나는 그날 먹을 요리들을 구상하고 있다.

작년에는 의욕에 넘쳐 오이냉채, 우럭찜, 유린기, 관자볶음, 고추잡채 등등을 했었는데
올해는 좀 손이 덜가면서도 먹을만한 요리들로 함께 준비를 하려 한다.
(솔직히 맛도 그닥 별로였고 혼자 하느라 힘은 오지게 들었었다;;)

연말이라 벌써부터 연말모임들이 많아 몸은 피곤하지만  
가끔씩 어떻게 할까 이래저래 생각을 하다보면 허경영을 세번 외친것 마냥 저절로 웃음이 난다.

먹고살긴 힘든데, 친구들과 그들과의 추억을 생각하면 즐겁고 고마운 마음이 절로 드니
어찌보면 이게 바로 행복이 아닐까 싶다.

피곤한데 슬슬 자야겠다.




하드를 뒤져보니 그때 사진이 몇장 있어 대충 자체 모자이크 처리하고 올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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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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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미친듯 사놓은 책들을 파다가
그냥 대충 읽고 넘어가선 안되겠다 싶어 이제 짤막하게나마 독후감을 올리려 한다.



올 연말 및 연초까지는 한가지 주제로 책들을 읽어보려 하는데..
그 시작은 바로 이 책부터다.



여성의 흡연률을 높이기 위해 찍은 담배피는 간지녀광고입니다;


▶프로파간다, 대중심리를 조종하는 선전 전략
▶에드워드 버네이스 지음, 강미경 옮김, 공존 2009


음악도 추가해보자.
음악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선전선동의 대가; RATM의 Bulls On Parade 되겠음






거두절미하고 말하자. 
이 책에는 대중심리를 조종하는 선전전략에 대해서는 별로 안나와있다;
PR의 원조인 버네이스의 '나의 성공담' 같은 구성으로 되어 있고
대중에 대한 기본적 인식이 오늘날과는 확연히 달라 읽는 와중에 성질이 뻗치는 책 되겠다.

구매전 결코 이 책을 대중심리나 PR에 대한 '학술서적'으로 착각해서는 안될 것이며,
이 책에 관련된 내용들은 굳이 본문을 읽지 않아도 권두에 있는 머릿말만 읽어도 100% 이해할 수 있다.

다만 푸짐한 당시의 사진들(버네이스의 홍보전략의 성공사례들이 다수)이 있어 
읽는 동안의 지루함을 다소나마 피할 수 있었다.


   

윌슨의 반전공약에 동조해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미국국민들이 
1차세계대전에 자발적으로 참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미연방에서 조직한 연방공보위원회의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국민선동 및 호전적 애국주의의 고양 덕분이었다. 
이는 바로 프로파간다(Propaganda), 곧 선전의 위력을 보여준 최초의 사건이었고 이러한 선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이들은 선전을 정치의 영역을 넘어 기업과 시민사회로 널리 퍼져나가게 했고 한편으로는 시민들에게 선전이 가진 음험한 이미지와 더불어 히틀러로 하여금 영감을 얻게 해준 계기가 되기도 했다.


버네이스는 선전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찾아 16세기 교황청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선전이라는 말에 씌워진 부정적인 의미를 지우고 그 가치를 재정립하려 노력한다. 

그는 '대중의 관행과 의견을 의식과 지성을 발휘해 조작하는 것(선전)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요소'라는 천명을 통해 선전의 필요성과 방법론, 그리고 윤리적 규범을 제시하려 한다.

자신의 선전성공사례들을 예시로 삼고 있어 지루하지 않으며, 이를 통해 1920년대 당시 미국사회의 정황을
대략적으로 미루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머.. 사실상 이 책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 사람은 히틀러와 괴벨스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그가 설파한 선전이 가진 강력한 위력은 오늘날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옛날에 포스팅도 한번 하긴 했지만 그가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패니 재직시절 CIA를 통해 과테말라 정부를 전복시킨 일은 선전이 가진 무시무시한 위력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아닐까 싶다.



그는 선전은 목표달성과 질서유지를 위한 최고의 도구라는 것을 확신하며 그 도구를 적절히 사용하기 위한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까지 한다.

수많은 대중적인 관점에서 열거하는 선전에 대한 상세하고도 친근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가 생각한 대중은 몽매하고 쉽게 설득가능한 소비자들에 불과하지 그의 고객은 아니었다고 본다.

PR의 지존인 그의 고객은 그러한 대중들을 조작할 수 있는 최상위 그룹의 보이지 않는 리더들이었고
그는 그러한 그들의 요구에 나름 가치중립적(???)으로 최선을 다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선전과 홍보의 홍수속에서 나름 편리하고 즐겁고 안전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선전들 속에서 무비판적으로 스스로 꼭두각시가 되는 것을 묵인하고 있구나라는 불편함을 지우기 힘들다. 


여튼 구매를 추천하고 싶지는 않지만;
신방과/광고홍보학과 학생들이 선전관련 역사를 훑을 때,
혹은 기업의 PR부서 신입인력들이 업무의 개념을 잡는데 봐둘만한 책일듯 하다.

끗.



▶구절들

추천사/머릿말:

전체주의는 폭력을 휘두르고 민주주의는 선전을 휘두른다 - 에이브럼 노엄 촘스키

선전을 가장 끔찍히 여기는 사람들조차 선전에 쉽게 넘어간다. 버네이스는 그러한 역설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다. 다른 누구보다도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우리를 위해 만든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면 우리 또한 그 역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 마크 크리스핀 밀러, 뉴욕대 미디어학교수, 머릿말


본문:

대중의 관행과 의견을 의식과 지성을 발휘해 조작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사회의 이 보이지 않는 메커니즘을 조작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국가의 권력을 진정으로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정부(invisible government)'를 이룬다.
p.61

우리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통치를 받으며 우리의 생각을 주조하고, 취향을 형성하고,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우리의 민주주의 사회가 어떻게 조직되는지를 고려할때 이는 논리적으로 당연한 결과다. 원활하게 기능하는 사회로서 함께 살아가려면 인간은 이런 식으로 협력해야 한다.
p.61

여론을 조직하고 이끄는 도구가 잘못 사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여론을 조직하고 이끄는 것은 질서정연한 삶에 반드시 필요하다.
p.65

일상의 어느 부분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거대한 권력을 행사하는 독재자들의 지배를 받는다. 
p.99 (패션업계의 유행을 예로 들며)

인간은 대개 스스로 감추고 있는 동기에 영향을 받아 행동한다는 이러한 일반원리는 개인심리뿐만이 아니라 대중심리에도 적용된다. 따라서 유능한 선전가가 되려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당사자들이 제시하는 동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러한 행동 이면에 숨어있는 진짜 동기를 파악해야 한다... 
선전가는 인간의 욕망을 이해해야만 현대사회라는 거대하면서 짜임새가 느슨한 기계를 비로소 조종할 수 있다.
p.123

대중이 광고 방법에 대해 아무리 까다롭고 냉소적으로 나온다 할지라도 결국에는 반응하게 되어있다. 대중은 늘 음식을 필요로 하고, 오락을 갈구하고, 아름다움을 동경하고, 지도자를 따르기 때문이다.
p.261

선전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현명한 사람일수록 선전은 생산적인 목표를 달성하고 무질서를 바로잡는 데 필요한 현대적 도구라는 점을 직시한다.
p.261






※다음 바톤은 버네이스가 이론적으로 영향받은 구스타브 르 봉, (버네이스의 삼촌인) 프로이트 등이 주장했던 군중심리이론에 관련된 서적인 '군중의 시대'를 읽을 예정인데 언제까지 읽고 또 언제 포스팅까지 할진 미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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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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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는 아니지만 아무런 주제도 없이
닥치는대로 책을 읽으며 하루종일 뒹굴거리고 싶을 때가 있다.

물론 지금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게 아쉽기만 하다.



어찌되었거나 요즘들어 메모를 종종 하는 편이다.
나는 현재 기억력이 엄청나게 감퇴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대학생활 내내 주6일을 술을 푸고 그중 필름이 한두번씩 끊기는 좆막장 생활을 하다가
회사에 들어가서 4시간 동안 술퍼먹고 4시간 자고 출근하는 생활을 3년을 했더니
이젠 머리 자체가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기분이다. 

요즘은 기억하기 위해 적고나서는 적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시간이 지나 그것을 우연히 다시보고서는 아, 그랬구나 하며 손뼉을 치는 경우가 간혹 있을 정도로
내 뇌세포는 막장을 향하고 있는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난 정말 자기관리를 더럽게 못한다. 반성좀 하자. 하아...


노래는 역시 책과 관련된 노래로..ㅋ;;







돌아보면 어릴적에는 책읽기를 참 좋아했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후에 새마을 농촌지도자?;; 뭐 이런 수상한 직함을 달고 있던 막내삼촌 덕분에
난 집 한구석에 놓여있던 새마을문고;의 책들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될 수 있었다.

머.. 그때 마을문고에서 읽은 책들은 농업기술에 대한 책이 절대 다수였으나
어린 나에게 신기하고 놀라운 세계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은 언제나 감동이었기에
나는 읽은 책을 또 읽고 다시 읽었으며, 모르는 것은 국어사전을 펴놓고 찾아보는 열성도 갖고 있었다.

송아지 부랄까는 법이나 레그혼이니 요크셔니 하는 여러 가축들의 품종명이 아직도 기억이 나는 걸 보면
그때는 그래도 나름 똘똘했었던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아..;; 작사작곡자분들은 이 노래를 만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초등학교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참 많은 동화책들을 읽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유산'이라는 무시무시한 현상을 알게 해준 장화홍련이라는 공포스러운 동화였고,

그 잔혹함에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한동안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동화들은 모두 내치고
잔인함과 복수를 다루고 있는 동화들만 내리 읽던 기억도 난다.


집에는 책이 의외로 많았다.
마을문고에서 남아있던 계몽사의 열두권짜리 청소년용 백과사전과
아버지가 후배의 간청으로 월부로 사셨다던 문학전질과
어머니가 처녀시절 사읽으셨다던 월간 현대문학같은 잡지들까지.. 정말 읽고자 하면 한도 끝도 없었다.

어른들의 성행위가 묘사된 장면에서는 알수는 없지만 뭔가 몸 어딘가에서 전율이 오는 듯한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될 것 같은 비밀스러운 감정을 느끼기도 했었고 

강경애의 지하촌이나 전상국의 아베의 가족과 같이
동화책에서는 찾아 볼 수 없던 파멸과 죽음과 몰락으로 이어지는 비참한 결말의 이야기들에
내가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한숨도 몰래 내쉬기도 했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 어머니께서 선물해 주신 70권짜리 과학앨범 시리즈 전질은
지금도 시골에 내려가게 되면 꺼내어 읽곤 하는 내게 고향과도 같은 책이었다.

짜증나고 힘든 일이 있을때 그 중에서 서너권을 골라 정독을 하다보면
어느새 나는 행복한 감정으로 변해있었던 듯 하다.

물론 12년 내내 백일장 등에서 상을 탄 적은 단 한번도 없었지만;
나의 생각을 글로 풀어내보려는 노력은 그때부터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추억의 과학앨범ㅋ




중고교 시절에 들어서면서 오히려 독서는 뜸해졌다.
주말마다 구립도서관에 가긴 했지만 라면 사먹고 자다 오는게 전부였었고
기껏 책이래봐야 스티븐 킹이나 시드니 셀던, 로빈 쿡 등의 상업소설들만 줄창 읽으며 시간을 때우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을 읽게 되었는데 좀 감동이었다.
글에서 느껴지는 간지가 A급 태풍을 연상케 했고 나도 대학가면 소설속 주인공의 저런 포스가 나올까 하는 생각에
갑자기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겠다는 초딩스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간지 쩌는 이문열의 여러 소설들을 미친 듯 읽었고
급기야는 논술에 도움된다는 이문열 삼국지까지도 독파하게 되었다;
그러나 고등학교때 제일 많이 본 것은 독서실에서 아이들과 돌려본
이나중 탁구부나 베르세르크 류의 시리즈물 만화책이었던 것 같다.




출처: dokoissyo.egloos.com/1319659

내인생 최고의 만화, 이나중 탁구부..





그렇게 찌질거리다가 어쨌거나 대학에 왔다.
선배들이 추천해주는 다현사 시리즈를 아무 생각없이 읽었다.
그동안 세상에 속고 살아온 것에 분노하게 되었다.


그래서 과방에 널려있는 붉은 색 책들을 관심있게 보았다.
수용과 거부로 충돌하는 내 마음에 놀라며 혼란을 느끼기 시작했다.

술퍼먹고 동아리 선배네 집에서 자고 일어났을 때였다.
'난 태백산맥을 안읽은 사람은 대학생이 아니라고 생각해'라고 말하는 선배의 말에 화들짝 놀라 태백산맥을 읽기 시작했다.
아 씨바... 이건 역사를 문학으로 승화시킨 한떨기 예술이었다.
난 결국 알바한 돈으로 태백산맥을, 훗날 아리랑과 한강까지 장만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공서적 살 돈으로 술퍼먹고 친구 책을 빌려 제본하는 막장테크를 타기 시작하면서 
독서는 그렇게 나와 너무도 멀어지기 시작했다.


겨울꼬막처럼 읽히는;; 내겐 최고의 대하소설입니다




그렇게 술퍼먹고 놀다가 군대에 갔다.
책이라고는 까치병장이나 핑클도 아는 국군의 주적 따위의 막장만화밖에 못보다가

어느덧 책읽을 짬밥이 되어 책장을 뒤지다 발견한 것이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었다.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이렇게 괴로울 줄이야.
이주만에 간신히 완독했다. 내용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저 읽어냈다는 자신이 너무도 뿌듯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도 읽었다. 
나의 사고의 틀이 작살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국민교육의 도장이라던 군대에서 배울 것은 그닥 없었지만 
그 시기에 접했던 책들만큼은 참 소중했던 것 같다.



레전드 중의 레전드..





그렇게 어영부영 삐대다가 제대하고 복학을 했다.
바깥세상은 인터넷의 시대로 바뀌어 있었다. 이른바 논객들이 키배를 뜨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월장사태와 안티조선의 파도 속에서 활약하던 원조 키워 진중권의 글을 보고 한순간에 그의 빠돌이가 되었다.

그의 책을 미친듯 읽기 시작했고, 웹에서 이른바 논객이라 불리는 이들의 책을 미친듯이 읽기 시작했다.


그러던 도중 어느순간 느꼈다. 난 이들의 생각을 이해하기에는 기본 지식과 사고의 깊이가 너무도 부족하구나.

그러나 나는 사고의 깊이를 갈고 닦는 지적 수련은 전혀 하지 않았고

대신 대균쌤과 토마토의 토익책을 갈고 닦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좋지 않았고 취업의 벽은 높았다고 전해진다.

이문열과 젖소부인에서의 그 통쾌함은 지금도 여전하다.

끔찍해..




어찌어찌하여 운좋게 취업을 했다.
대세는 경제/경영서적 및 자기계발서라길래 
나 역시 흐름에 편승하여 그런 부류의 책들을 사읽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다. 분노가 일었다.
살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상식을 가진 사람이 되기 위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 시점이었던 것 같다.

회사를 그만둘 작정을 한 마지막 해에는 업무비용 일부를 유용하여
다달이 소설과 사회과학서적을 사보는 깡을 부렸다.
회사를 더욱 다니기 싫어졌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요리관련 서적들을 샀다. 사진이 예뻤다.
하지만 그렇게 못 만드는 자신이 미워졌다.

한편으론 예전처럼 소설과 사회과학 서적들을 샀다.
하지만 예전엔 시간이 없어 못읽었다지만 지금은 몸이 피곤해 못읽었다.

예나 지금이나 변명은 하면 할 수록 느는게 맞다;









올해들어 책을 안읽는 자신에 대해 몹시 반성하게 되었다.
사는 것은 줄이고 대신 그동안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을 파기 시작했다.
버거웠다.

아직도 읽을 책이 산처럼 쌓여 있건만 
일반수학의 정석과 성문기본영어처럼 앞의 몇 페이지만 읽고 내팽겨쳤던 책을 다시 꺼내 차근차근 읽어가는 일은 
군대시절 독서의 추억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더라.   



아, 여기가 오늘 이 글을 쓴 결론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난 오늘 다시 일을 저질렀다.
인터x크에서 책 10권 주문-_-;;;

각종 할인권과 포인트로 대충 9만원 정도로 맞추긴 했으나
이것들을 과연 언제 다 읽을 수 있을지는 몹시 의문이다.


실은 최근 모씨의 악마의 유혹에 매우 시달리고 있는 관계로 
차라리 긍정적인 일에 돈을 써버려 만일의 사태를 미연에 방지해야 할 것 같다는
급박한 생각에서 저지른 일 되겠다;


요즘 추워서 운동도 제대로 안하고 있는데 가열차게 독서에 불을 지펴보아야 겠구나.
이제 연말이라 바쁘겠지만 틈틈이 읽으면서 짧게라도 여기 메모장에 감상을 올려야겠다.
한번 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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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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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쉬는 날, 마포에서 실기시험을 보고나서 시간이 애매하여 중앙시네마에서 '파주'를 보았다.

인터넷에서 대충 스토리는 보았기에 설마 용1주골이나 모종의 야1설스런 내용을 기대하진 않았고
어느정도 예상한대로 몹시 우울한 영화였다.



지금부터 스포일러 시작.




잘 만든 영화다.


이 영화를 보면서 맨 처음 느낀 점은 '아, 이건 여성감독의 작품이구나' 하는 것이었는데,
남자가 느끼기엔 생소하고 조금은 이질적이기까지 한 섬세한 감정묘사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날더러 이상하다 너 마초아니냐 라고 한다면 머 할 말은 없다만.. 뭐 개인적인 느낌은 그랬다고.

난 이렇게 구체적인 설명이 적고 세밀하게 감정의 흐름과 변화를 읽어내야 하는 영화를 보면
정신적 피로도가 급격하게 올라가버리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나면 몹시나 피곤해지는 경향이 있다.
내가 뭐 영화를 자주 보는 것도 아니기에 다음엔 좀 쉽게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보려고 한다;

그리고.. 영화포스터의 카피 뽑은 양반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야1설 스러운 문구를 썼을까?
그러면 관객이 좀 더 들 것이라 생각했던건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론 제발 좀 안그랬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쨌거나 끝없이 바뀌는 시점과 그리 친절하지 않은 설명속에서
극중 인물들이 보여주는 감정의 흐름을 끊이지 않고 따라가려 하다 보면
어느새 이 영화의 희뿌연 매력속에 빠져버리게 된다.
몹시 우울한 영화지만 다시 보라고 하면 다시 볼 의향도 있는, 여운이 많이 남는 영화 되겠다ㅋ

그럼 이제 세부적으로 들어가보면..



1. 이선균(중식)

그의 끝없는 부채의식에 답답함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공감한다.

무엇보다 예수쟁이+운동권이라는 그의 배경설정에서 근거하듯
한국사회에서 이런 옵션을 내보이고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야말로 착하고 성실하고 거짓없이 살아야 한다.
사회적으로 그런 이들에게 도덕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많고 그가 욕심껏 가질 수 있는 것은 극히 적기 때문에
그가 연기하는 답답하고 무기력하고 죄의식에 짓눌리고 본능을 억눌러야만 하는 모습은
어쩌면 당연한 업보일 수도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 그 역시 수컷의 본능을 억누르지 못한다.
그가 파주로 도망치게 된 이유자체가 애딸린 유부녀에게 욕정을 느끼고 관계를 가졌다는 것에서 비롯되며
그는 그것에 대한 죄를 씻으려 노력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내가 아닌 처제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되고
후반부에서는 그녀에게 처음으로 고백을 하고 그녀와 관계를 가지려 한다.

아씨발.. 이건 남자라는 존재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고등교육을 받고 사회변혁과 어려운 이들을 위한 봉사와 약자들을 위한 헌신을 통해 평생을 바쳐온 그도
결국에는 발정나 눈이 벌개진 개와 다를 바 없었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그의 그러한 일련의 삶들은
그의 진심이라기 보다는 죄의식을 씻어내기 위해 택한 고행이 아니었나 싶다.

중식은 자신의 감정에 한번도 솔직해 본 적이 없었고
그것은 타인들에 대한 봉사와 이타심으로 왜곡되어 드러난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칭송했겠지만
본인 스스로는 자신이 택한 길이야말로 자신을 속이고 왜곡하는 끝없는 갈등의 길이었을 것이다.

그가 유치장에서 언급한 '길잃은 한마리 양'의 비유는 
결과적으로는 타락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 구원자로 은모를 염두에 두고 있던 것이라 생각하면 좀 오바일까?

그는 그 사랑의 감정때문에 그 안개 자욱하고 음침한 그 도시를 떠나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 자신을 구원해 줄 그녀를 기다리며
감옥에서, 그리고 철거현장에서 자신을 괴롭히며 힘든 고행을 하고 있었고
그녀에게 상처가 될 사실을 끝까지 숨기며 그것을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끝내는 자신을 다시 한번 망가뜨리게 하는 부메랑이 되어버렸다.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 묵묵히 자신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향해 일하는 사람
그리고 서툰 단 한번의 표현, '너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어'라는 표현이
다시 한번 그를 파멸로 내몰게 되는 아이러니는 참 슬프다.

그 후... 중식은 이제 다시 어디로 가야 할까?
모든 것은 다 그를 떠났고 그가 마지막까지 사랑하고 지키고자 했던 존재 역시 그를 저버렸다.
혹시 파주라는 도시 자체가 그가 존재해야 할 자리가 아니었던 걸까?
어쩌면 파주라는 그 도시는 그의 모든 것들을 야금야금 깎아먹는 지옥과도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 
하기야.. 도망자에게 안식처란 있을 수 없을 테니, 파주가 아니더라도 그가 있을 수 있는 곳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그저 이방인이었고, 은모를 통해 머무르고 싶어했을 뿐이다.
에효.. 써놓은걸 보니 그냥 한숨만 나온다;




2. 서우

'미쓰홍당무' 이후 그녀를 영화에서 두번째로 보는데 그녀의 연기력에 깜짝 놀랐다. 
무엇보다 중의적이고 다중적이고 복합적인(정확한 단어를 못찾겠어서 그냥 주욱 나열해봤다;)감정연기가 극강이었다.
형부 중식을 차지하고 싶은 욕망과 더불어 언니에 대한 죄의식이,
중식이 자신에게 가진 진실한 감정을 알고싶지만 언니의 죽음의 이유를 직시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그와 함께 있고 싶지만 도피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온갖 복합적인 감정의 덩어리들을
몇 안되는 대사와 그렁거리는 눈동자로 다 표현해내었다는 것이 놀랍다. 연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듯.

그녀 역시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다.
사랑의 감정은 죄의식이 되기도 하고 증오가 되기도 하고 도피로 이어지기도 한다.
알고 있지만 해선 안되고 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가 될 것임을 알기에
그녀는 항상 불안해하고 그 진실에 다가가려 하다가 결국 도망치고 만다.

그녀 역시 중식의 등장으로 인해 파주라는 도시는
더이상 자신이 존재하지만 존재해서는 안될 도시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녀 역시 이 짙은 안개속의 도시를 도망쳐나가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이곳을 잊을 수 있을까.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인간의 감정 역시 그런 뿌옇고 흐릿해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일텐데.




결국 이 영화는 인물의 감정흐름을 봐야 하는 영화인가 보다.
이 지독하게 꼬아놓은 변덕스런 감정의 흐름에 몸을 싣다 보면
순간순간 두 주인공의 마음 속에 들어가버린 듯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심한 우울함에 빠지게 된다;

머물고 있되 머물 수 없는 처지의 사람들은
철거현장에도 수배자의 은신처에도 교회 공부방에도 존재한다.
서로에게 감정이 머물지만 머물러선 안될 사람들 역시 그 곳에서 함께 살아간다.
진실은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지만, 알아서는 안될 진실도 있다.
감정은 솔직한 것이 좋지만 때로는 숨겨야 할 때도 있다.
이런 모순되고 복잡한 얘기들을 더 복잡하게 풀어낸 감독에게 찬사를 보내면서
졸린 관계로 대충 정리하고 자야겠다.

안보신 분들은 한번 보세요. 
특히 좀 우울해지고 싶으신 분께는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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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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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5일

일기는메모장에 2009. 11. 15. 03:51

조선생과 이과장님의 팬돌리기 실황.gif


#1. 자극

이달로 칼판에 올라온지 벌써 일년이 되었다.

엊그제 반찬한지도 일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팬을 왜이리 못돌리냐고 쿠사리를 먹고 나서

이후 매일 저녁 쌀알을 볶아대며 절치부심 심기일전 중이다.


나처럼 의지박약한 인종은 때때로 이런 자극이 필요하다.

돌아보면 돼지고기 쇠고기 발라버리는건 스스로 대견해 할 정도로 많이 늘었지만

아직도 해삼 전복 송이를 뜰 때면 긴장이 절로 되고

꼼꼼하지 못한 성격에 사수에게 항상 업무부담을 안겨주는 것을 돌아보면

이런 일들은 참으로 남들에게나 내 자신에게나 슬픈 일이다.


음식이란건 일단 간만 맞으면 재료가 무엇이든 간에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참으로 답답하게도 아직도 나의 간하는 기준은 내 입맛에 가깝다. 

몇달전 일하는 아줌마가 저녁을 먹던 도중 '역시 경상도 새끼들 음식은 더럽게 맛이 없어'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빡침+쪽팔림에 한동안 싱거운 음식만 생산해냈던 기억이 아직도 여전하다.


난 아직 멀었다. 내 머릿속에는 영업용 맛의 기준이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슬픈 일이지만 이건 계속 맛보고 훈련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을 것 같다.


오늘 저녁 쌀볶기 연습 전에 연습삼아 볶음밥을 해서 일당온 조선족 설겆이 아줌마한테 나눠드렸는데

이양반 왈, 한국와서 이렇게 고향;;의 맛을 느껴본건 처음이라고 말해서 너무 황당+당황스러웠다.



도대체 그 이유가 뭐였을까.

기름을 너무 많이 넣어서였을까?

밥이 눌어버려서였을까?

양파를 볶아넣어서였을까?


모르겠다. 

한국사람들에게는 맛없다고 욕먹고 중국사람들에게는 고향의 맛이라 칭찬받는 이 저주받은 음식솜씨가

끝없는 수련을 통해서 조금씩이나마 나아져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답은 없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연습. 끝없는 연습뿐.




#2. 운동

내일, 아니 오늘은 전국적으로 영하의 날씨로 접어든다던데

나는 예전과 다름없이 운동을 했다.


추워서 귀가 떨어져나갈 것 같았지만

한참을 뛰다 보니 그냥저냥 참을 만 하더라.


급성 십이지장궤양에 걸려 병원신세를 진 이후 한동안 운동을 쉬다가

요 며칠새에 다시 운동을 시작했는데, 역시 운동을 하고 나면 확실히 생기가 넘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쉬는날엔 집에가서 등산용 방한마스크와 장갑을 좀 챙겨와야겠다; 

이번 기회에 다시 몸짱의 길로 ㄱㄱㅆ;;




#3. 노래

지난주 대학교 후배들이 정기공연 준비하는데 먹을 것을 사들고 찾아갔었다.

문득 든 생각은, 난 이제는 이런 무대에 설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첫번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맘맞는 사람들과 화음을 맞추고 싶다라는 마음이 두번째,

그리고 아무 이유없이 갑자기 일렉기타를 사고 싶다는 생각이 세번째였다;


힘든 와중에도 공연준비하느라 좃빠지고 있던 후배님들의 건투를 기원하며

내 20대에 가장 많은 추억들을 생산해냈던 그 곳이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도 여전히 목숨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난 그들에게 큰절을 하고 싶다. 고맙다 얘들아.

여튼... 무미건조한 삶에서 음악이란 것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가슴을 울리고 심장을 뛰게 하는 엄청난 힘을 갖는다.

언젠가는... 나도 함께 그들과 같은 음악을 공유하며 웃고 즐길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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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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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는 intherye님의 이글루스 블로그- http://intherye.egloos.com/547158



취향은 존중받아야 하는 요즘 시대에서 
찌질하고 유치한 노래가사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 역시도 존중받을 필요가 있을거라는 생각에서
이렇게 간만에 어거지로 포스팅을 해보기로 한다.

먼저 서두에서 '찌질하다'라는 단어의 정의를 내려야겠지만
이 포스팅을 읽는 사람들은 그 의미를 모를 리 없다고 생각하기에 
위의 사진과 아래의 링크를 걸어두고 넘어가련다.


일단 이 포스트에서는 요즘 시대의 흐름인 '쿨함'의 반대위치에다 '찌질함'을 두기로 해보았다.
쿨하고 간지나고 엣지있어야 먹어준다는 요즘의 트렌드에 정반대되는 
그런 여러 행태들을 하나로 뭉뚱그려 '찌질하다'라는 단어속에 묻어본 것인데 불만있으면 뭐 말고;

여튼 이런 찌질함은 인간 본성에 대한 철학적 이해라는 어떤 교양과목명마냥 
인간이기에 보일 수 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정제되지 않은 감정과 행동들을 그대로 내보이는 것에서 
문득 손발의 오그라짐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찌질함의 정체.
일단 많고 많은 대상자들 중 오늘 거론할 사람들을 셋으로 추려보았다.


첫번째는 바로 이사람이다.




1. 윤종신

중고등학교때 참 좋아했던 윤종신횽아. 
개인적으로 이분의 음악적 전성기는 3,4,5집 시절이었다고 생각된다.
2집의 '너의 결혼식'에서 시작하여 '오래전 그날'-'부디'-'일년'으로 이어지는 윤종신표 처절 발라드 크리에
수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아물어가던 상처를 다시 터트려버리던 무시무시한 괴력을 보여준 분이었다.

그의 음악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웰메이드 발라드곡에 더해진
추억과 회상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가사가 함께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는 구조로 보인다.
실제로 윤종신은 국문과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 머 전공과 관련이 있는건지 개인 능력인지는 모르겠으나
추억에 대한 집요할정도의 구체적인 묘사와 끝을 모를 미련의 표현과 더불어 전반적으로는 솔직하고 담담한 서술이
청자를 잠시나마 과거의 회상에 잠기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지금이야 윤종신표 가사쓰기가 일종의 클리셰가 되어버린 상황이지만
당시에는 이런 표현방식이 무척이나 생경했던 것이 사실인데,
'야속한', '속절없는', '하염없는', '부질없는' 등의 애절;한 형용사가 하나씩은 꼭 들어가야할 것만 같던 
뉴웨이브(라고 쓰고 신파라고 읽는다)기법의 8090시절의 가요가사작법과는 달리
찌질한 자신의 감정의 흐름을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가사쓰기방식은
당시 젊은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 아니었나 싶다.

이런 표현방식은 공일오비의 정석원이 대표주자였고 김현철, 이승환 그리고 뒤이은 유희열도 만만치 않았는데,
그러고보면 이는 90년대 발라드 가수들의 어떤 경향성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표현방식을 끝까지 고수;하면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로 확대재생산해낸 인물은 윤종신이 유일하기에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첫손가락에 꼽는 찌질+처절 발라드 가수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야말로 가사계의 진정한 근성가이다? 
(버뜨 처절발라드의 최고봉이랄 수 있는 2집과 3집 타이틀곡은 사실 박주연씨의 작사임)


개인적으로는 윤종신의 가사쓰기 방식은 나름 성숙된 면모의 반증이 아닐까 싶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관련된 수많은 기억들 중 상당수는 스스로 의식 저편에 억누르고 있는 경우가 다수이다.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고 많이 미숙했고 상처받았던 것들이었던 것일수록 다시 되새기고 싶지 않을 것이기에.

친구의 리얼한 표현을 빌려보자면 
'길을 걷다 그때 생각이 문득 스치고 지나가면 갑자기 손발이 오그라들면서 입에선 절로 "아.. 씨발;;" 소리가 나온다'할 정도의
그런 정말 지우고 싶은 기억에 대해서도, 그리고 자신의 감정이 롤러코스터처럼 극에서 극으로 오가는 심리묘사 또한 
그는 큰 가감없이 편안하게 서술할 줄 안다. 이건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으로, 실로 능력자의 그것 되겠다.
사랑과 이별이라는 주제에 관한 일종의 컨셉트앨범이라 생각하는 그의 5집에서 이 것은 너무도 잘 표현되고 있는데,
이러한 표현기법은 간지를 중시하는 대중가요계에서는 쉽사리 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손발이 오글거리는 기억들을 쪽팔림을 감수하면서 진솔하고 담담하게, 
그리고 여전히 변함없는 그때의 감정을 그대로 살려내 가사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은
성숙한 감정의 제련을 거친 이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그는 음악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겪었던 것일수도 있다.
 
한편으론 또한 이런 지속적인 찌질함은 사실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윤종신은 내게 있어 참으로 좋아할만한; 가수 되겠다.
물론 장가간 이후에는 그런 감성이 사라지고 예능끼;만 다분해진 것 같아 조금 안타깝기도 하다.

그런데 어쩔건가. 가사쓰기는 어느정도는 분명 현실의 반영인 것을.. 
항상 그런 과거의 가사만을 기대하는 것 역시 그에게는 좀 가혹한 처사일거라는 생각도 해보면서
여하간 그런 연애에 관한 한 독보적인 가사를 생산하고 있는, 그런 찌질의 감수성으로 블루오션;을 개척한 그의 근성을 높이 사 본다.
종신이형 사랑해요ㅋ;; 그래도 가끔은 예전 1,2집때의 미성이 너무 그립다능;;








2.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이건 조금 다른 의미에서의 찌질인데, '고질적 신파'라는 앨범명처럼 지극히 신파에 충실한 가사들로 채워진 이들의 앨범을 들어보면 알수있다.
키치와 냉소와 풍자와 재치가 뒤섞인 그들의 가사는 조까를로스가 창조해낸 싸구려 3류(쌈마이;) 환타지의 세계와도 같다. 
가만히 보면 조까를로스는 나름 치밀한 가사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들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재치있는 서사를 바탕으로 하여 고색창연한 연애담과 지독한 풍자와 엽기적인 코드들까지 모두 담아
특유의 마이너 음계에 비벼 담아낸 퓨전요리같다고 할까. 얼터너티브 라틴음악이라는 그들의 주장 자체가 무색할 정도로 
그들은 뽕끼가 가득한 음악을 연주하는데, 그것은 뒤틀린 그들의 가사와 퍼포먼스와 함께 상승작용을 일으켜 그들만의 새로운 음악으로 변신한다.

한계는 분명히 보인다. 어어부, 황신혜 밴드가 그랬듯, 이러한 시도는 어쩔 수 없이 단발성으로 그칠 수 밖에 없으리라 보인다.
스스로 깊이를 갖기를 버리고 상투적이고 자극적인 키치적 성향으로 무장한 그의 가사쓰기는 
일단은 신선하고 머리에 깊이 각인되지만 장기적인 면에서는 큰 생명력을 기대하긴 힘들 것 같다.
(이런 면에서 가사작법에서 유사한 면을 갖고 있는 장기하와 얼굴들이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서도 조금은 의문)

뭐, 조까를로스는 이러한 것을 이미 다 예상하고 작심해서 가사를 쓴 듯하고, 그만의 3류 환타지의 완성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해서
나름 거부감 없이 즐기고 받아들일 수 있어서 참으로 즐거울 따름이다. (개인적으론 '미소녀 대리운전'의 내용을 참 좋아한다.)

동영상으로 올린 '수지수지'는 근래의 이별노래 중 가장 찌질하게 감정을 묘사한 곡이 아닐까 싶어 올려보았다.
어설픈 레게 리듬속에 펼쳐지는 가사들을 살펴보라. 옛여친의 예식장에서 건네는 얇디 얇은 봉투와 봉투를 받고 건네주는 차가운 식권과 
화자가 자주가던 당구장과 '도대체 당신은 무슨생각으로 사느냐'는 그녀의 질문, 그 질문에 거친 욕만 내뱉는 무력한 자신,
그리고 '내 모든 것을 버렸기에 그녀는 날 떠났다'는 그야말로 통속의 핵심을 관통하는 구절까지 으아.. 
정말 심금을 울리는 유치함의 향연이 아닌가; 

어차피 현대의 모든 대중음악은 대중의 공감을 먹고 자본의 도움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인디씬은 어떤면에서는 그 극한에 처해있는 상황이
아닐까 싶다. 그는 청자들이 수용할 만한 범위 내에서 자신의 능력을 거의 최대한 발휘하여 키치가 어떤 것인지를 편안하게 맛보게 해준다.

요즘 4시쯤 나오는 라디오프로그램을 들으면 내가 좋아하던 노래들이 마구 나와서 깜짝깜짝 놀란다. 어느새 그렇게 나이를 먹어버렸던가보다.
이렇게 좀 더 세월이 흐르면 교통방송에서 밤10시쯤 하는 '세월따라 노래따라'류의 프로그램에서 그시절의 음악을 들을 수 있겠지.
그때의 젊은 세대들은 내가 그렇게 절절히 공감하고 아름답고 멋진 노래라고 생각한 가요들을 들으며 조낸 구닥다리 신파물같다고 비웃겠지만
용도폐기된 그때의 정서들은 어쩌면 조까를로스가 현재의 자신의 음악을 소비하게 만드는 그런 코드가 아니던가. 

대중가요는 어떤식으로든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이고 그 시대의 평균적인 대중의 감성과 타협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그가 써내려간 유치뽕의 가사들은 어쩌면 우리가 울고 웃었던 대중가요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눈에 보게 하고
한편으론 그것들 안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핵심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어떤 열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여튼 어리굴 써라운드 짱! 형편좀 풀리면 이들 공연을 보러 가고 싶다.

 









3.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패배자 정서는 이미 라디오헤드와 벡이 선점한 영역인줄 알았건만 국내에서는 그가 있었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하 요정;)은 자신의 삶을 통해 루저의 정서와 언뜻언뜻 보이는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그는 이 영역에서는 더이상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최고의 경지에 있다고 생각된다;

동영상은 3집의 '치킨런'인데 가사 정말...;;; 이건 눈물이 날 정도로 처절하다못해 정말로 찌질하기까지 하다.
1집의 '절룩거리네'와 '스끼다시 내인생'에서 보이는 위트있는 자조에서 한걸음 더 나가
이제는 지긋지긋한 세상에 대한 불만과 이젠 식상하기까지한 자기 비하와 더불어 더이상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서의 절망을 노래한다.
그의 가사에서는 후까시라곤 전혀 없고 너무 솔직해서 불편할 정도의 자조가 배어있다.

사람들은 도무지 지난 5년의 세월동안 발전;이라곤 전혀 없는 그를 비난하기도 하지만 
현실에서 승리자의 역사를 걷는 상위 몇 분들을 제외하고 난다면 
요정;의 노래는 우리들이 잊고 싶은, 혹은 그렇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세상의 이야기들을 전혀 가감없이 해주고 있다. 
그건 우리들의 현실에 대한 어두운 자화상에 다름 아니지만 
우리들은 아직도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여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길러'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국민교육헌장의 소절을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 이놈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뭐... 이 요정;의 푸념하고 때쓰고 자조하고 절망하는 노래가 불편하다면 
당신은 그래도 긍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 생각된다;

그 역시 처절한 가사가 밝은 멜로디와 만나 일으키는 부조화가 그의 색깔을 만들어내고 있다.
울수도 없고 웃기에도 어색한 그런 곡들이 그의 음악의 개성이고 트레이드마크라고 해야 할까.
3집에서는 그나마 밝은 분위기의 곡들도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더욱 슬퍼진다; 
얼마후에 나온다는 4집이 기대된다. 요정;은 어떤 모습으로 그만의 색을 보여줄 것인가.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요정;에게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다. 
개인적으론 그런 밝은 가사를 보면 조울증적인 기질이 아닐까 하는 섬뜩함도 들지만; 
그역시도 마지막 남은 희망의 끈은 여전히 놓지 않고 있다. 어쩌면 그래서 그의 음악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다음을 기다리는 것 아닐까. 
비유해보자면 인디계의 판도라의 상자랄까?;; 까놓고 나니 절망과 좌절만이 줄창 흘러나오는데
밑바닥에 있을 희망이라는 하나의 마지막 믿음 때문에 도저히 닫을 수가 없는 존재인듯;
그래서 나는 그의 다음 앨범을 조심스럽게; 기다려본다.







여튼, 졸라 썰을 풀어놓고 보니 
찌질이라는 주제로 풀어내기에는 이들 셋은 한데 묶기엔 공통점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굳이 찾아보자면 일반적인 대중가요에서 찾아보기 힘든 지극히 솔직한 표현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고 
결과적으론 듣는이로 하여금 감정의 정화를 가능케 하는 이들이라는 것 정도?

인간이기에 가질 수 밖에 없는 보잘 것 없고 변변찮고 남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그런 모습들을 대놓고 까발려
공공연하게; 장삿속에 이용해먹는 이들이야말로 이시대의 진정한 대인배가 아닌가 싶다.

나 역시 거짓말 종종하고 남들한테 어쩌면 덜 찌질하게 보일까를 신경쓰는 소인배의 입장에서
그들의 대인배적인 마인드는 존경의 대상이다.
남들 앞에서 솔직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이젠 알기에.

어쩌면.. 내가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가식과 위선속에서 살아가기에
찌질하더라도 솔직한 그들의 모습에 일종의 고해성사를 할 수 있음은 참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들 역시 자신들의 음악을 통해 감정의 정화를 이루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며
나의 찌질한 가사에 대한 예찬은 이쯤에서 접어야겠다. 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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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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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자본론;의 핵심을 찌르는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임승수 저, 시대의 창 2008.12.23



잉여


이 책을 사놓고 붙잡고 있던 기간은 거의 넉달 정도?;; 일종의 독후감이라고 생각하고 쓴다.


돌아보면 사회과학부에서 4년간 등록금을 쳐발랐다는 놈이 
자본론은 물론이고 맨큐의 경제학; 한번 안읽고 졸업한 것이 마냥 부끄럽기만 하다.
내게 있어 지금껏 맑스의 이론들이란 그저 뜬구름 같은 조각지식으로만 존재했었기에
이제서야 자본의 메커니즘에 대해 몹시 개략적으로나마 눈을 뜬 것이 참 겸연쩍기도 하고 한편으론 다행스럽기도 하다.

요즘 한동안 잉여질의 극을 달리던 내게 이 책은 또다른 의미의 잉여에 대해 눈을 뜨게 해주었다.
위의 사진에서 보듯, 자본의 이윤창출에 도움이 안되는 인간이 바로 이 사회의 잉여;라 할 수 있겠는데
이렇게 쓰이는 용법으로는 폐인, 백수, 키워, 산업예비군;; 등의 유의어로 조금은 뜻을 풀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여튼; 왜 이렇게 우리 사회에는 잉여;들이 넘칠까.
일하고 싶은데 일자리는 그렇게 없고 그나마 일해보다보면 왜그리 조건이 개좆같을까.
그리고 그렇게 꾸역꾸역 돈을 벌면 난 과연 집은 마련할 수 있고 결혼은 할 수 있을까.
걱정없이 자녀를 낳을 수 있고 그 낳은 자녀를 무사히 키워 남들처럼 교육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그동안 난 마음 편하게 아플 수 있고 쉴 수 있고 일할 수 있고 늙어갈 수 있을까..

얼마전 읽었던 한겨레 21의 기획기사 노동 OTL시리즈를 보며 공감의 경탄과 끝없는 한숨을 함께 내쉬게 된 것도 
아마 그와 같은 고민의 맥락에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돌아보면 나역시도 대학시절 중 1/4정도를 학비와 생활비를 위해 저 라인에서 일하며 노동력의 대가를 받았더랬다. 



개인적으로는 제 6강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욱 착취당한다고?'를 읽으며 '아 씨바'하는 감탄사를 내질렀는데,
'상대적 잉여가치의 창출'이라는 개념을 접하면서 지금 우리 경제현실의 어두운 면을 바로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기술의 발달에 따른 생산력의 증가는 자본가에게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상대적 잉여가치의 창출로 이어지지만,
반대로 생산력의 증가로 생필품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노동자들은 '절대적' 삶의 질은 높아졌으나 
'상대적' 삶의 질은 더욱 하락하는 결과가 주어진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오늘 이 땅에서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으나 쉽게 간과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전율했다.

우리는 예전에 비해 쉽고 저렴하게 다양한 제품들을 구입할 수 있고 그걸로 삶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해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그 원인모를 불안함의 이유를 풀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를 난 이 책에서 찾은 셈이다.


나같이 게으르고 머리 나쁜 놈에게도 각성의 계기를 준 이 책을 살짝 추천해본다.
일단은 나처럼 초반에 몰려드는 수식들에 경기를 일으키면 안읽히니 초딩 산수라 생각하고 접근해야 나을 듯 하다;
다 읽고 나니 필자가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쓰려고 엄청나게 노력한 책이구나 라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일단 읽다보면 고민거리와 의문점들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이 정상일텐데
그 즈음에서 시사잡지를 펴놓고 요즘 돌아가는 상황과 맞추어 본다면
이 나라는 맑스가 분석한 자본의 어두운 속성에 너무도 충실히 복무하고 있음을 어느덧 깨닫게 된다.
어찌보면 가카는 맑스가 우려한 막장 자본주의를 지금 이 곳에서 재현하기 위해 두세기를 건너 나타난 사절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며 떠올랐던 수많은 고민거리와 의문들은 관련한 다른 서적들로 풀어가기로 하며 
오늘은 이 책의 목차를 훑으며 머릿속으로 다시한번 내용들을 생각하며 잠들어야겠다.

어쨌거나 막막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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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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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9일

일기는메모장에 2009. 10. 9. 01:49
#1. 친구 이야기

공원파라 부르던 친구들 모임이 있다.
고3때부터 군대가기 전까지 동네 공원에서 해질무렵 모여 술먹고 노닥거리던 한량들의 모임인데
다들 초중고딩 시절 한번씩 같은 반이었거나 얼굴들을 보아왔던 작자들, 혹은 그들의 친구들로서
돌아보면 참 오래오래 끈질기게 이어져오는 인연들이다.

구성원들의 모습도 참 다양하다.

모 대기업의 촉망받는 인재이자 이재에 몹시 밝은 모 대리님, 또다른 대기업에서 9살 연하의 직장동료에게 작업하느라 정신없는 모 대리님,
공무원 준비 접고 바리스타 준비로 돌아선 어떤 비정규직 노동자, 십수년간 고난의 세월을 참고 묵묵히 달려온 영화 촬영 퍼스트,
모 기업에서 밤낮없이 일하랴 연애하랴 바쁜 주임님(진급했나?), 무서운 조폭의 생김새로 아이들을 가르친다 말하는 학원강사,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신림동생활을 하나 데모는 자주하는 고시생, 두 딸의 아버지로 또다시 세째를 가졌다는 소식이 들리는 방사선기사님..

이제는 모두 모이는 것은 일년에 한두번 정도.. 앞으로 모두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갖게 되면 그것도 더욱 힘들어지겠지.
대학시절 친구들의 비슷한 출신성분과 비슷한 회사와 비슷한 결혼.. 어느정도 사회에서 일반적이라 인정되는 선에서 살고 있는 모습과는 달리
이 친구들의 모습은 너무도 스펙터클하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어 때론 불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흥미진진하고 즐겁기도 하다.
나 역시 그런 불안함 및 즐거움에 한 몫 거들고 있긴 하다만.

문득 이들이 너무 보고 싶어지는 밤이다.
사람이 보고 싶어지는 데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그냥 그 친구들이 보고 싶다.




#2. 위기

무미건조하던 내 삶에 간만에 위기가 찾아왔다.

크게 건강의 위기와 금전적 위기인데, 둘다 원인은 내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최악의 경우, 지금까지 이어지던 일년반 동안의 평화롭던 삶을 뒤집어 엎을만한 파괴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건강문제는 검사를 자세히 받아봐야 알겠지만 일단 술담배를 지속적으로 참는 선에서 내 자신과 타협을 해야 할 것 같고
금전문제는 대출가능여부 및 이율을 확인하고 전세를 얻거나 혹은 의정부로 들어가는 방향 등 다양하게 고려해야 할 듯 하다.

둘다 시급한 일인지라 한동안 고민을 하다가
차분하게 일처리를 하되 낙담하거나 절망하지는 않기로 했다.
세상 모든 일이 벌어지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들이 누적되어 왔기 때문이며
어차피 거스를 수 없는 일이라면 오히려 지금 시점에서 발생한 것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하기로 했다.

얼마전 친구에게서 빌린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라는 책을 읽다 마음을 굳힌 것인데
어차피 이젠 어른이고 실질적으로 가장인 내게 이 일들은 앞으로 어느 시기에서 한번은 겪어야 할 일들일 것이라 생각하고
담담히 받아들이고 보다 현명하게 대처방안을 찾는 것이 더욱 중요하리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니 마음도 편해지고 머리도 맑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어차피 난 일년 반동안 살아오며 가장 행복한 날들을 보냈지 않는가. 이젠 그 수업료를 낼 시기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수업료가 꽤나 비싸긴 하다;
여튼 잘 헤쳐나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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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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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게 팍팍해서 였을까. 어느덧 메탈은 찾아서 듣지 않게 된지 꽤 되었고
운동할때만 미친듯 듣는 수준으로 변해버렸다.

반면 모던락에 대한 끝을 모르던; 혐오는 조금씩 사그라들어
이제는 그닥 애정은 없지만 왠만큼은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서
이제 '인디'라 불리는 음악들이 조금씩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아마도 그 변화의 시점은 07년부터 였던 것 같다.
같이 일하던 여직원의 엠피삼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들에 귀가 번쩍 뜨이면서였지.
그렇다고 마구 찾아가서 듣고 그런 것은 없었는데

한두번의 공연을 보고 앨범을 선물받고 하다보니
이젠 이런 음악들에 대한 관심들이 마구 샘솟는 중이다.

요즘 꽂혀서 듣고 있는 노래들을
9월 25일 현재시점에서 가수 및 그룹으로 딱 열팀만 골라보았다.
순서는 별 의미는 없고 그냥 자주 듣고 생각나는대로임.





1. 오지은 - 날 사랑하는게 아니고, 요즘 가끔씩 머리속에 드는 생각인데 말이야

얼마전 대학 동아리 후배가 강추해서 듣게 되었는데
첨엔 그녀의 걸걸하고 신경질적이면서도 넋나간 듯한.. 그 묘한 목소리에 거부감이 들었었지만
근데 이건 뭐 듣다 보니 이건 포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쉬운 코드안에서 멜로디 만드는 능력도
나름 대단한 것 같고. 홍대의 마녀라는 별명이 달리 붙은 것이 아닐 터,
이런 강렬한 어둠의 포스를 내뿜는 여성보컬은 한영애씨;이후 처음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런 의미에서 '인생론'같은 곡은 요조스따일이라 좀 안어울리는 듯;)
기회되면 공연 가서 '화(華)'를 부르는 그녀를 직접 보고 싶다 하악하악;


날 사랑하는게 아니고



2.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 석봉아, 이발사 대니얼

요즘 노래방에 가면 무조건 부르는 곡이 바로 '석봉아'.. 이들은 노래방마저 정ㅋ벅ㅋ한 밴드 되겠다;
나의 정서와 아주 잘 맞는 음악을 구사하는 이들은 그야말로 키치의 농축덩어리.
그렇다고 조까를로스의 가사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나름 사나이 가슴에 비를 내리게 하는 내용을 통해
청자에게 씁쓸한 웃음과 찡한 아픔마저 선사한다는 것에서 이들의 3류음악의 미덕을 찾을 수 있겠다.
물론 여기서 이들의 가창력을 논하고 싶지는 않다; 가창력이 중요하다면 당장 가게에 가서 쓰리테너 음반을 사들어야겠지. 자, 지금은 민속그루브에 몸을 맡겨 볼 시간!

석봉아



3. 아마도 이자람 밴드 - 슬픈 노래, 우유

붕가붕가 레코드 사장님의 여친;과 절친한 사이라는 동아리 후배덕에 얼떨결에 받은 아마도 이자람밴드의 앨범. 꼴랑 네곡밖에 실려있지 않았지만 다가오는 감동은 꽤 컸다.
'예솔아'로 밖에 기억되지 않던 그녀가 이렇게 변하다니 경천동지요 상전벽해로다.
가사에서 느껴지는 20대 여성 특유의 감수성이 조금은 버겁긴 하지만 그녀에게서 과거 이상은의 포스를 느낄 수 있었다면 나만의 착각일까 아닐까. 여튼 큰 기대주임이 분명함.


슬픈 노래



 
4. 두번째 달 - 얼음연못, 서쪽하늘에(Céu Do Oeste)

에스닉 퓨전이라는 장르를 걸고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각국의 민속악기로 정체불명의 곡들을 연주하고 노래하는 다국적;그룹이다. 어떨때는 켈틱 트와일라잇의 소품집을 듣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떨때는 쿠스코의 음악을 듣는 것 같기도 한 이들의 음악은 결정적으로 듣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는데 그 강점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냥 뉴에이지라는 편한 과거의 틀로 묶어 이들을 재단해버리고 싶다.
지난해 촛불시위때 광화문 거리에서 하던 이들의 분점;격인 바드의 공연을 보며 박수갈채를 보낸 기억도 나고.. 지금 내 컬러링도 이들의 노래인 '봄이다'인데, 정말 질리지 않는 좋은 곡이다.



얼음연못




5. 검정치마 - 좋아해줘, 강아지

존나 세련된 펑크를 하는 애들. 친구가 추천해줘서 듣게 되었는데 솔직히 내 취향은 아닌듯.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발매된 음반이 아닌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하는 송메이킹이며 편곡능력이
'와 씨발 양키간지나는데' 하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는 앨범이다. 내게 국카스텐의 뽕끼가
그리 맞지 않는 것에 비해 이들은 정말 돈주고 사들을만 한 올해의 기대주 되겠음.


강아지



6. 뷰렛-mama, 오늘밤은 잠든 후에도 곁에 있어줘

첨 들은 곡은 '나는 외로움, 너는 그리움'을 리메이크한 곡이었는데
너무도 개성있는 보컬의 매력에 빠져 이들의 앨범을 찾게 되었다.
문혜원씨가 근래 뮤지컬을 뛰더니 2집은 분위기가 변해 말캉거리는게 좀 짜증이 나고 내겐 1집이 진리.
1집엔 머리를 비운 채 내달리고 싶을 때 좋은 곡들이 많다. (실제로 레이시티 주제곡도..ㅋㅋ)
연주 스타일과 리더의 포스는 포스트 자우림이 될 실력과 포스를 갖추었다 생각함.

mama



7. 뷰티풀 데이즈 - Drive, 집시들의 시간

이들 1집은 사실 존재조차 몰랐고 올해초에 발매된 2집을 접하고서야 이들을 알게 되었다.
2집은 Drive, 집시들의 시간 두 곡만으로 모든 진가를 발한다.
(그리고 사실 이 두 곡이 이 앨범의 전부인듯;;)
특히 보컬 오희정의 필살 간지 시내루는 요즘 귀염둥이 보컬들로 범벅이 된 인디씬에서
단연 돋보이는 핵심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뭔가 약간 부족하면서도 뭔가 약간 매력있는 듯 이상야릇한 느낌의 그룹되겠음.


집시들의 시간




8. 술탄 오브 더 디스코 - 요술왕자, 개구리 바질 입자

한때 멜론 챠트 100위내에 드는 기염을 토했던 술탄 오브 더 디스코.
일종의 프로젝트 그룹의 성격이기에 언제 없어질 지 모르지만,
인디계 최초의 립싱크 댄스그룹;이라는 그들의 훌륭한 족적이
앞으로도 제발 망하지 말고 오래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다;
이 앨범의 백미인 요술왕자가 주었던 충격은 내 뇌리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듯;


요술왕자





9. 미스티 블루 - 빗방울 연주, Moderate Breeze

미스티 블루는 메이저쎄븐 음계를 노골적으로 좋아해서 계속 듣다보면 절로 졸음이 오거나
더듬더듬 담배를 찾게 만드는 특성이 있다. 이번 앨범에서도 전작들과 대동소이하지만
그래도 이들을 차별화시키는 것은 일단 정은수 언니의 아리따운 목소리 때문 아닐까.
이번 2/4분기;Ep는 전작1/4분기 Ep처럼 좀 두서없게 곡을 풀어나가지 않아서 맘에 들고, 
기존 미스티 블루의 색을 잘 이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기에 무척 만족스럽다.



 빗방울 연주




10. 장기하와 얼굴들 - 별일없이 산다, 정말 없었는지

설명이 필요없는 작년말 올해 상반기의 지존.
막내삼촌이 즐겨 듣고 부르던 그런 류의 음악들을 다시 듣게되었다는 것만으로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게 된다.
아놔 얘네 들으면 자꾸 누가 같이 얽혀서 생각이 나서 기분이 영 씁쓰레 하다;;;


정말 없었는지




머.. 이정도..

요새 새로 듣는건 김창완밴드와 어른아이 등등인데
괜찮은 인디음악 아는 분 계심 추천해주시면 감사하겠어요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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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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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0일

일기는메모장에 2009. 9. 10. 02:11

1. 존나 씨발 한심


"내 나이 마흔 하나, 김연아가 끌린다.."
뭐 이런류의 리플이 한동안 네이년 뉴스란을 메우던 시절이 있었는데,
찬바람이 불어오니 수험생도 아니건만 왠지 자신에 대해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는 맘이 드네.


내 나이 서른 둘.
직업은 짱깨 시다에 언제쯤 후라이팬 잡을지 아직도 뵈지 않고
모아놓은 돈은 쥐좆이라 집 한채 있는거 당장 전세금 빼줄 돈도 없고
믿는건 오직 그럭저럭 버텨주는 체력과 고장 안나는 몸뚱이 하나뿐인 거라면 

이건 뭐 세상에서 말하는 메이저 인생이 되긴 애시당초 글렀고
실제로 비교대상을 찾자면 안산 도금공장에서 2교대로 일하는 파키스탄 노동자 하룬;;정도 되지않을까?
적어도 그 하룬;씨는 돈벌어 고국으로 돌아가 호강하리라는 희망이라도 있지만
난 뭐하는건지 모르겠네.

아까 퇴근하는데 지배인이 날 보며 말하길
'하윤씨 야밤에 운동 그만하고 잠좀 자요. 아침에 출근할 때 보면 나보다 더 늙어보이는 것 같어'
라고 하는 충격적인 말을 해서(지배인은 마흔셋;) 지금도 가슴이 벌렁벌렁한다.(근데 운동은 하고 왔다-_-;)

머 존나 개좆구라 같지만 아엠에푸 터지던 해쯤에는 미소년-_-; 소리도 가끔 들었었는데;
지금은 씨발 머리털도 숭숭 빠지고 얼굴은 쪼글쪼글해지다보니
문득 거울을 보면 '이게 뭔가요? 아, 이건 사람의 형상이었네'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렇다고 내가 콜라겐 성분이 매우 많다는 돼지껍질을 매일같이 볶아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머, 실제로 매일 먹는다고 돌아올 얼굴은 아니지.


사람들은 나를 보며 꿈을 좇는 삶을 산다고 부러워하기도 하는데
뭐 삶에 찌들다 보면 그리 부러워 할 것은 아니지.
가끔씩은 나도 양복입고 서류가방들고 다니던 그때가 그립기도 해.
결론은 지금 이 생활에 좀 찌들어버렸다는거. 자꾸 목표의식이 사라지려 한다는거 그게 젤 큰 문제인듯.


가만히 돌아보면 내가 이렇게 체력소모로 세월을 축내는 이유는
첫째가 내가 하는 일에서 내 노력에 비해 가시적인 결과물을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뭐라도 해서 보람을 얻자'라는 강박관념이 날 현재의 잉여킹으로 만든 것이고
둘째로는 차인 다음; 여전히 심심하고 공허한 기분을 참을 수 없다는거 정도 될 것 같다.
이건 안바빠서 쳐하는 배부른 소리라고 하진 마셔. 나름 많이 바빴음.

머, 그래도 이렇게 운동하는건 몸이라도 건강해지는 거잖아 라고 위로는 해보는데
근데 나 자꾸 이러면 안될 것 같어.

나 빨리 기술 배우고 돈벌어서 내 가게 차려야지.
그래야 여자도 만날 수 있지.
현재의 파키스탄 노동자 하룬의 소셜 스테이터스로는
내가 원하는 베트남 처자를 만나기에는 택도 없어요.

나이 서른 둘에 아직도 꿈 얘기 하면 졸라 병신같을지 모르겠는데,
난 원래 꿈이라는 게 뭔지 몰랐고 여전히 어디로 가야하는지 잘 몰라.
다만 그렇게 막장테크타던 중 테크트리를 빨리 포기했고 이쪽 테크를 빨리 선택했을 따름.

그래. 손석희 아저씨는 마흔 넘어서 공부 시작했고
내가 존경하는 모 주방장아저씨는 회사 때려치고 마흔 여덟에 식칼을 들었다는데
그런 것에 비하면 난 나름 선택이 빨랐고 선택한 일에 나름 보람을 느끼며 일하고 있어.

다만 앞서 열거한 그런 이유들로 난 내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지 못한다는거지.

원래 내가 집중력이 존나 약하긴 하지만
인생의 길을 달리 가면서 추진력을 한참 올려야 할 이 시기에
그 정력을 탄천변에서, 지리산에서 쓰는 건 좀 낭비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이건 도착이고 주객전도지. 저녁에 뛸 궁리를 하며 낮에 일하는 삶은 비정상 맞는거지?;
그리고 정력도 예전만큼 왕성하지도 않잖어?;


그래 존나 나 병신같고 한심하다는건 아는데
안그러면 자꾸 숨이 막힐 것 같아서 힘들어.
그렇게라도 숨을 틔워줘야 살지.

결론은 당분간은 그 공허함과 초조함을 이기기 위해 계속 이짓거리 할 것 같은데
나름대로 에너지는 아껴가면서 할거라고.






2. 그리고




나를 설레게 하는 또다른 떡밥

지리산 둘레길!

 

http://www.trail.or.kr


내륙의 올레길 버전인듯..
추석주간에 가보고 좋으면 주위사람들에게 추천해줘야지 ㅋㅋ
아.. 모르겠다 모르겠어...

졸리니 자야지.
신종 플루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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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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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마라톤대회에 다녀왔다.
늦잠자서 아침도 못먹고 허겁지겁 가는 바람에 정신 없었지만
어찌되었거나 완주는 했다.

이로써 올해 3/4분기는 7월 설악산 종주, 8월 50/45/60km 행군 그리고 9월 하프마라톤이라는
잉여력이 넘치다 못해 폭발하는 기염을 토하고야 말았다.
태어나서 이렇게 미친듯이 발발거리고 돌아다닌 시기는 올해가 처음인 듯 하다.



일단 인증샷 올린다.


하프는 첫 도전이었지만 내심 2시간대 안을 기대했었는데
막상 해보니 이게 장난이 아니더라.

암사동 선사유적지에서 출발해서 영동대교 하단 즈음의 10km 반환점을 돌면서
문득 '아 씨발... 이젠 온 만큼 가야되는거야?' 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몸이 급속도로 늘어지면서 힘이 빠지더니

15km를 넘어서면서부터는 몸이 전혀 말을 듣지 않는 상황이 발생해서
머리는 '아놔 좀 걸어가자 나 미칠것 같어'라고 말하는데 다리는 아무 생각없이 설렁설렁 뛰고 있는,
더이상 속도를 높일 수도 줄일 수도 없는 고장난 상태로 결승점까지 가게 되었다.
막판에 2시간 풍선을 단 페이스메이커 아재들이 날 스쳐지나갈때의 안타까움은 말로 할 수 없었다.

결국 성적은 2시간 3분 3초라는 저조한 결과가 나왔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전날 동생 반찬해준다고 네시간 정도밖에 못잤고,
아침도 못먹고 뛴 것이 문제였다고 하고 싶은데
우선은 연습량이 부족했던 것-20km 풀로 뛴 연습경험이 단 한번 뿐이었던지라 페이스조절능력과 기초체력안배가 안되어 있었다는 것이 문제점 되겠으며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그간 매주 잠안자고 행군을 해댄 결과 피로가 누적되어 몸 여기저기에 고장신호가 들어왔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 같다.


머... 하고 나니 덧정이 없고 내인생에 다시 하프를 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었지만
좀 지나고 나니 다시 오기가 생기고 다시 하고싶어지고 그러고 있다.
이거 병날까 무섭다.
예전부터 나는 꼴리면; 내몸을 마구 혹사시키는 나쁜 버릇이 있었는데
이번 3/4분기에 한 짓거리들을 보니 그 극한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덜컥 겁이 난다.
이젠 나이도 있는데 그러진 말아야지.
현재 왼쪽 오금, 오른쪽 복숭아뼈, 오른쪽 무릎 바깥쪽 그리고 양쪽 허벅지가 아프다;;

이젠 당분간 좀 쉬면서 앞서 말한바와 같이 내실을 쌓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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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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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4일

일기는메모장에 2009. 9. 5. 00:53

1. 뛰면서 들으면 좋은 노래들


 

마라톤을 앞두고 삭신이 쑤시는 것을 맨소래담으로 달래면서 뛰고 있는데
뛸 때 들으면 힘도 덜 들고 신바람이 나게 만들어 주는 곡들이 있는 것 같아서 한번 골라보았다.
일단 변박이 적어야 하고 질주하는 느낌이 강한 곡이 좋더라.

Silverwing - Arch Enemy
Breaking The Law - Judas Priest
Far Beyond The Sun - Yngwie Malmsteen
The Oath - Mercyful Fate
기분 좋은 날 - 러브홀릭
Don't Stop Me Now - Queen
Gadd A Tee - Trio Toykeat
최진사댁 셋째딸 - 상일여고 합창단

이 중에서 은나래, 불법, 태양저편, 맹세의 경우는 뛰는 템포와 딱딱 맞출 수 있어 단연 최고인 듯 하다.



이참에 한곡 들어보자.
손발이 오그라드는 불후의 뮤비.. 뷁킹 더 로!!






2. 수명이 줄어들고 있다.

7월말 설악산 종주에 이어 세차례 감행했던 지하철 정ㅋ벅ㅋ으로 인해
잉여력의 극한을 보여주고 났더니 어느새 몸이 맛이 가고 있는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중앙선따라 걸을 때 역시나 잠안자고 밤새 스무시간을 걸어버렸더니
한동안 삭신이 쑤시고 나른한 것이 목숨이 마구 깎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더라.
막판에는 무리해서였는지 오금이 저려와 이후 며칠을 고생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엊그제 탄천변에서 하프 연습한다고 14km쯤 뛰다 
오른쪽 무릎 인대쪽이 미친듯이 아파서;;
절뚝절뚝 걸어서 돌아왔는데 이거 이러다 몸 제대로 망가질까 두려움이 슬슬 엄습한다.

여튼 이제 모레 있을 하프마라톤만 완주하면;; 
올여름 등산-행군-마라톤으로 이어진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게된다;
 
이제 내몸좀 그만 괴롭히고 앞으론 좀더 올바른 방향으로 운동을 하련다. 휴;
나는야 잉여킹; 이제는 저의 내실을 쌓는데 집중하겠어요.





3. 반찬하기
 
요즘 저녁반찬 할때 볶음류 반찬을 많이 하고 있는데 역시나 미원을 많이 쓰고 있다.
근래 이리저리 연구를 해보다가 소금:미원비율을 3:1정도로 간을 하는데;
사람들이 요즘들어 반찬이 맛있다며 참 좋아한다;
 
지금와서 드는 생각은 미원이 몸에 안좋아서 나쁜 것이 아니라
사람 입맛을 획일화시키고 맛에 대한 관념을 황폐화시키기 때문에 안좋은 것이 아닐까 싶다.
 
적당히 쓰면 티도 안나고 각 재료간의 상승작용을 일으키지만
어느 선을 넘어서면 그 감칠맛에 의지해야만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여하튼 할 수록 재미있고 어렵다.
특히 간 맞추는 것은 대충은 맞추지만 딱 부러지는 그 맛을 내지 못한다.
간하는 것은 누가 어떻게 가르쳐 줄 수 없는.. 혼자 가야하는 길의 핵심인듯..
꾸준히 연습해서 미각의 기준점을 찾고 조정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겠다.

가장 최근에 알아내고 싶어진 것은 바로 주방장이 끓이는 김치찌개..
시고 달고 꽉 찬 그 맛의 비밀을 찾아내고 싶다.
여튼 할 수록 재밌고 어렵다.
 
 
 

p.s)
말미에 롹심을 키우기 위해 동영상 하나 추가.
81년 퀸 몬트리올 공연 실황인데, 이수 씨너스에서 야임마님과 퀸 락 몬트리올을 보고 나서
'병신같지만 멋있어'의 원조격인 영상이라고 극찬;했던 바로 그 영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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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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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뭐고 객이 뭔진 모르겠는데
여튼 능내역도 다녀왔고 국수역도 다녀왔음.

팔당에서 양수까지 구간은 터널로 들어갈 재간도 없고
차들 쌩쌩 달리는 6번국도의 터널-고가구간도 불가능하기에 결국 구길로 꼬불꼬불 돌아서 갔음.

팔당역-능내역은 예전부터 레일바이크 관광지로 만든다고 설레발이 많이 오갔던걸로 기억하는데
이건 어디까지 진척되었는지 모르겠음. 이대로의 모습도 좋긴 하지만..

최악의 코스는 역시 양수-국수 구간. 너무 지루하고 힘들었음.
용담대교 구간은 역시 승용차로 지나가야 제맛인듯.

도심, 팔당, 운길산, 국수역은 대다수 이용객들이 등산객들이었는데
다음에 기회될때 예봉산-운길산 코스로 등산한번 가보고 싶어졌음.
아.. 그리고 신원역은 왜 건설하는지 좀 의미불명이었음(역간 거리 때문?)

여튼 2년후에 행여나 수도권전철이 원주까지 뚫리게 된다면 다시 도전해보고 싶은 코스임.
다행히 국수역까지인지라 관광까지 하면서도 무사히 당일내에 갈 수 있었던 듯.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서 다른 철갤러분들도 꼭 가봤으면 하는 코스였음.
다만 양정 이후 (덕소-도심구간은 제외하고) 국도변에 보도가 전혀 없으므로 차조심은 필수일듯.
팔당에서 내려 구팔당역사 지나 능내역 거쳐 두물머리 들렸다가 양수에서 돌아오는 코스도 나름 괜찮을 듯.


좋았던점
1. 맑은 날씨. 산과 강과 호수
2. 운길산역에서 먹은 장어구이에 소주

나빴던점
1. 더운 날씨. 수많은 차와 비좁은 국도
2. 소주먹고 퍼질뻔 한 것

끗.





 ----
dc철갤에 올렸던 내용임.


주변 지인들의 반응을 보면 공통적인 것이
'존나 잉여새끼'와 더불어 '나도 한번쯤은 해보고 싶다'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것 같다.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에게 열광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이들이라면
아마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들판을 가로지르고 강과 산을 건너며 끝없이 달려나가는 레일을 보며
그 앞에 펼쳐져 있을 미지의 세상에 가슴설레는 것은 모든 이들이 느끼는 공통적인 마음이 아닐까.

일단은 왼쪽 오금이 여전히 아프니 당분간 요양을 하고
다음에 있을 마라톤 준비를 한 다음
다음번 계획을 차근차근 세워보고 싶다.

후... 군대 이후 60km 넘게 걸어본 것은 처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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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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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0일

일기는메모장에 2009. 8. 20. 23:24

#1. 그러니까 그제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별로 관련없는 이야기지만.

그가 평민당 기호3번으로 출마했던 87년, 내가 초등학교 3학년때였다.
당시 면서기를 하시던 우리 아버지께서는 마을모임에 나가시면 항상 사람들에게
기호 1번을 찍을 것을 종용하셨던 기억이 난다.
시절이 시절이고 지역이 지역이었던지라 사람들은 다들 그러마 했었을테지.
아마도 아버지 역시 윗선에서의 암묵적인 지시가 있었기에 그러시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여튼 아버진 당시 20대였던 우리 막내삼촌이 불안했던지 삼촌에게 꼭 1번을 찍어야 함을 역설했고, 
삼촌 역시 그러마라고 했으나 당시 삼촌이 읽던 책은 속지 첫페이지에 김대중 칼라사진이 박힌, 
광주를 비롯, 그분의 지난 민주화운동의 궤적을 그린 상당히 불온한;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지역 말이 나와서 말인데,
당시에는 내 친구-좆초딩들도 '김대중은 빨갱이'라는 말을 아무 거리낌없이 내뱉고 다녔다.
난 '빨갱이'라는 말 자체가 너무도 무서워 쉽게 입밖에도 꺼내지도 못했었는데.

당시 애어른 할 것 없이 모두들 '김대중은 빨갱이' 소리를 하고 다니던 때라
어린 내 생각에는 빨갱이가 대통령후보에 나왔는데도 경찰은 왜 저사람을 체포하지 않지?
왜 다들 진실을 모르고 있는거야? 하면서 안타깝게 여겼던 기억도 난다;
돌아보니 좀 슬프다.

지금은 그 동네, 많이 변했을까?
윗대가리들이 정치적으로 이용하기위해 이용한 지역감정은
결국 무지렁이에 가난뱅이인 우리들만 서로 나뉘어 치고받게 만드는 최상의 결과를 가져왔으니.

97년은 내가 대학에 갓 입학했을때였는데 아쉽게도 만 20세가 아니었던 관계로 투표권이 없었다.
선거당일 밤, 투표결과를 지켜보다가 욕을 하며 티비를 확 꺼버리던 아버지의 뒤에서
난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무언가 변화가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는 5년동안 그 기대를 '크게' 저버리진 않았다.


그랬다.
그는 최초로 북한과의 화해협력의 물꼬를 틔운 장본인이었고
외환위기를 극복해냈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낸 리더였으며
제도권 민주화 세력의 정신적 스승이자
명석하고 논리적이고 열정적인 신념가였다.

한편으론 지역감정의 최대의 피해자였으나, 원하던 원치 않았던 그것의 재생산에 일조한 정치인이었고
보혁갈등의 심화 속에서 이를 해결해내지 못한 것과
정상회담 관련한 커넥션 의혹 및 아들 및 측근들의 비리 연루로 인한 이미지 실추
무엇보다 87년 야권단일화 불발에 대한 비판은 앞으로도 논란거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여러 논란들을 차치하고서라도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대한민국에 대한, 인간에 대한 애정과 선의와 올곧은 신념은
앞으로 이땅에 살아갈 우리에게 오랫동안 큰 빛이 되리라 확신한다.

그 분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한계가 있고
나역시 아는것과 경험한 것이 없기에 이쯤에서 줄이자.
실제로 무지한 나 따위가 감히 평할 수 있는 분이 아니기에.


그렇다. 그 분은 큰 산과도 같은 분이었다.

다시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s)
노무현과 김대중을 술안주 삼아 씹으며 세상이 이모양인 것을 그들 탓으로 치부하시던 아버지,
이제 그들이 모두 떠났으니 이제 무슨 낙으로 술을 드시고 세상을 탓할 것인가 궁금해지는 밤이다.

어쩌면 그런 어르신들은 지역주의 반공주의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할 불행한 세대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평생 믿어온 가치관이 붕괴되어 가는 것을 견뎌낼 수 없는 현실 속에서
평생을 확증편견과 인지부조화 속에 끊임없이 갈등해야 하는 슬픈 인생 아닌가.

그분들에게 이젠 더이상 고민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어야 하는게 우리세대의 몫일텐데..

난 지금 키보드 워리어짓이나 하고 있다.
슬프다. 





#2. 송이우육, 마라우육 시전

야임마님 집이 비어서; 부모님 놀러갔을때 야동보러 친구들이 모이던 옛추억도 되살릴겸;
일끝나고 놀러갔다. 물론 야동은 안봤다;

다만 송이랑 쇠고기 및 각종 야채류를 주방에서 몰래 챙겨서;
송이우육과 마라우육을 만들어 보았다.

마라우육. 물론 내가한거 아니고 부산일보 기사에서 불펌. 문제되면 지울께연


하면 할 수록 중식은 집에서 해먹기 존내 불편하다는 생각을 한다.
일단 화력이 안되니 불맛이 날 리가 없고 익는 상황이 같을 수가 없으며 
중식에 필요한 소스들이 없는 집이 태반이고
재료를 손질하고 데치고 기름에 튀기고 하는 것들이 참 번거롭다.

여튼; 그렇게 훔친 쇠고기와 송이로; 송이우육과 마라우육을 만들었다.
마라우육은 원래 등심아스파라xo소스를 하려고 했던건데 xo장을 깜빡잊고 안퍼와서
급히 고추기름을 내어 장르를 바꿔보았다.

야임마님이 맛있대서 존내 으쓱했다.
재미있다.

나 사실 너한테 말 안한게 있는데

둘다 만들때 미원 넣었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씨발 직업병-_-;

일년반도 안되어 나역시 이미 문성근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근데 아까전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또먹고싶은걸보니
어제니가해준게맛
있긴맛있었나보다
ㅋㅋ



어느 분께서 해준 명언이 있다.

맛없는 음식을 손님에게 내놓느니
미원을 넣더라도 맛있는 음식을 손님에게 내놓는게 바로 요리사다.


궤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노력의 부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맛있다라는 가치는 아직까지 절대적인 것.
맛있대서 다행이다 친구야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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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

어쨌거나 해버렸다.


온수에서 이수까지

#철산-가디단: 철산교로 돌아가느라 시간이 꽤 든데다 가리봉동 길들이 다 깍두기인데다
                             밤에 인적이 드물어 역찾느라 이 동네를 다 헤짚고 다녔음.
                             역시 첨가는 동네에서 밤길에 지도는 필수ㅜ

#숭실대입구-남성: 역시 길을 못찾고 실제로 노선이 다니는 길로 가다가
                                      언덕 두개(삼호아파트고개, 상도중 뒤편고개)를 넘으면서 체력 좆ㅋ망ㅋ


가리봉 이동네 돌면서 예전 한진택배 물류터미널 야간알바가 생각나서 그 고생생각에 몸서리..
아, 다음에 기회되면 상도가서 만화까페 한번 들렀다가 사리원에 가서 냉면에 만두한번 먹고싶다.


내방에서 먹골까지

#내방-고텀: 내방에서 서래마을까진 잘 찾아갔는데 누적된 피로로 벤치에서 담배피우다 졸아버림;;
                         터미널 지하상가로 내려왔다가 진짜 지하철 타고 집에 갈까 진심으로 고민했음;


정말 무미건조한 노선이다. 볼게 전혀 없는 동네들이니 원..
건대는 나날이 업글이 되어가는 것 같아 놀랍기만 하다. 동네 자체가 바뀌어버린듯 하다. 

태릉입구에서 장암까지


#수락산-도봉산-장암: 아아....ㅅㅂ;;;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도봉산역앞에 꾸며놓은 창포원이라는 공원이 참 괜찮아보이더라.
내년에 창포꽃이 필때쯤 가면 볼만할 듯..




이걸 하면서 다짐했던게 있는데, 그건 술을 끊겠다는 거.
그럼 오늘은 술 끊은지 이틀째.
좋아하지도 않는걸 왜 또 생각하니~♬



추가:
이짓거리 왜 하냐고 물어보면 이건 내 새로운 취미가 될 듯 해서임.
두번째 해보니 네이버 블로그 등에서 볼 수 있는 본격 철덕횽들처럼 좋은 취미가 될 것 같음.
일본에서는 수십년동안 일본의 모든 역과 간이역을 들리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거 나에게는 괜찮은 취미가 될 듯 하다.
등산과 마라톤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뭔가가 있다랄까.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여정
선로를 보면 모락모락 피어나는 어떤 뿌듯한 감정을 느끼고 싶다.
아, 내게 여자가 있다면 물론 당장 이짓거리 안하겠지.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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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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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4일

일기는메모장에 2009. 8. 15. 00:52

#1. 위생검열



지난 월요일, 시청 위생과에서 위생검열을 나왔다.
5일부터 15일 사이에 나온다는 공문이 뜬 이후, 지난 7월말부터 이 것땜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었다.

지난번에 '주의'조치를 받고 다시 나오는 것이라 주방장의 압박은 장비지휘검열 전의, 빡칠대로 빡쳐있는 행보관의 모습에 가히 비유할 만 했고, 그 덕에 나를 비롯한 주방직원들 모두는 매일매일 대청소와 미싱하우스; 및 끊임없는 얼음질 랩질 신공을 반복하며 지옥과도 같은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행여나 영업정지라도 먹으면 목이 날아갈지도 모를 우리 주방장님께서는 한시도 쉬임없이 우리들을 괴롭히셨고 이러한 날들이 반복되자 우리들은 '검열단님들아 제발좀 빨리오삼'하는 마음만 굴뚝같았다.

오후 네시 반쯤, 시청 보건소 직원이 출동한 검열에서 우리들은 손과 도마에서 세균이 위험수준으로 검출되었으나 전반적으로 한결 나아진 위생상태등을 참작하신 자비로운 검열관님께서 '보통'등급으로 판정내리셔서 우리는 지옥과도 같던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당일 아침부터 락스로 서너번을 넘게 소독하고 닦은 도마가 마른 행주질 한방에 세균덩어리로 변하고;
손바닥과 손등을 맞대어 비벼씻고 칫솔로 손톱 및 주름부위를 문질러주는 고생스러움이 없었다면 내 손은 똥덩어리와 맞먹는 세균나라가 된다는 사실을 내 두눈으로 똑똑히 목격하고 나니
이 위생검열이란 것은 검열관들이 맘만 먹으면 가게 영업정지 먹이는 것은 애들 장난도 아님을 느꼈다. 
결론은... 역시 공무원이 최고다?;;;

지난번에 지배인이 원산지 표기가 잘못 기재된 삼겹살을 직원들 반찬용이라고 둘러대다 '아니 무슨 반찬을 20kg씩 시키는 집이 어딨어요?;;'라는 검열관의 말 한방에 개뽀록나고 당당히 주의조치 받은 이후 이어진 고난의 행군은 이제사 종착역을 찾았다. 해피해피ㅜㅜㅜ
머.. 그렇다고 '다시 지저분해졌다'라는 얘긴 절대 아니다. 우리가게 무지 청결함ㅋ 이건 오해입니다;;

주방벽에 붙어있던 식중독 관련 포스터





#2. 요리얘기

1)느억맘?
베트남에 놀러갔던 친구에게 부탁한 베트남표 까나리 액젓인 '느억맘'을 입수했다.
친구 말로는 이거 구하려고 갖은 고생을 다 했다고 생색을 내었는데, 내가 봤을땐 하선정 멸치액젓을 시내 마트에서 안사고 속초까지 찾아가 포구 근처에 있는 구멍가게를 들어가서 비싼돈 내고 산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여튼 정어리 액젓이라고 하는데 냄새는 역시나 개좆;; 집에 있는 어장은 곰팡이가 숭숭 피어 버려야 하던 차에 마침 잘됐다. 다음에 시간날때 월남쌈이나 팟타이 해먹고 포스팅 한번 해봐야겠다. 잇힝~~

2)빠쓰
중식실기연습 차원에서 위미빠쓰-이렇게 읽는게 맞나? 여튼 옥수수 맛탕정도면 맞을듯.. 여기선 뽀미라고 부름-를 해보았다.
내가 아직도 난자완스 반죽을 잘 못하는데.. 전분이나 밀가루를 섞어 치대는 반죽들의 적정 점도를 잡는게 어렵다. 그렇게 으깨고 치대던 오룡해삼(까마귀와 용과 해삼??? 이말의 어원이 정말 궁금함;;)에 넣는 새우반죽의 점도도 아직도 아리까리 하다.
거기에다 잽싼 타이밍 캐치가 요구되는 설탕물 가열과 코팅작업을 하다 보면 여전히 난 아직도 갈길이 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만큼 배우는 재미는 남다르달까. 재미있어요 히히;
 
3)백숙
말복을 앞두고 닭백숙을 했다. 닭을 손질하고 찹쌀 대추 황기 인삼 마늘을 넣고 푹 고아서 직원들에게 퍼줬다. 잘 먹더라. 근데 요리를 한 나는 정작 못먹었다. 그이유는 내가 백숙을 먹으면 속에 불이 나며 메슥메슥거린다는 것 때문인데, 아마도 그 원인은 대추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언젠가부터 대추를 먹으면 속이 느글거리며 열이 솟구치고 메슥거리게 되었는데(전에 가을대추 먹다가 토할뻔 한적도 있었다),
이 얘기를 들은 한 친구분께서는 내게 '너는 희한한 음식은 다 쳐먹으면서 남들 다 먹는 음식은 못먹냐'라는 말씀을 하셨다. 맞는 말이다.

전에 회사다닐때 한 선배가 복날에 날 생각해서 싫다는 나를 굳이 삼계탕집으로 끌고가길래, 그 와중에 그러면 반계탕을 먹겠다는 내게 부득부득 삼계탕을 강권했다가 그대로 남기는 내모습을 보고 자기의 성의를 무시한다며 삐졌던; 여튼 그 선배 달랜다고 다음에 술을 쏴야했던 웃기던 기억이 떠올랐다.

여튼 난 대추도 싫고 백숙도 싫다. 몸이 받아주질 못하는걸 어쩌라고.
난 차라리 깻잎 들깨 듬뿍 얹은 담백한 개장국 한그릇이 더 좋은걸 어쩌누.  

대추도 싫고 끓인 닭도 싫어..






#3. 다시 목표가 생겼다.

휴가 이후 나태한 생활을 지속한 결과 몸무게가 무려 4kg이나 불었는데; 역시나 그 몸무게들은 가장 취약한 부위인 배를 집중공략하여 뱃때기에 기름이 끼는 좆같은 요요현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한동안 58~9를 유지하다가 정기검진가서 63kg이라는 숫자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하기야 한때는 70까지 나갔던 시절도 있었으니 이건 양반?;
여튼 그걸 보고 빡친 나머지 다시 목표를 세웠다. 9월 6일에 강동구청에서 주최하는 선사말아톤대회에 하프를 뛰기로 했다.

그래서 시작을 창대하게 하려 서현역-태평역-정자역-서현역으로 돌아오는 총 16km 거리를 뛰었다.
결론은 지금 오른쪽 무릎 옆쪽이 조낸 욱신거린다ㅅㅂ;;
지난번 애자시절에 닥터께서 하신 명언이 '뛰다 아프면 걷고 걸어도 아프면 쉬어라;'라는 것이었는데,
방구석에서 뒹굴기는 싫어 지금 잉여짓을 종료하는 즉시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의욕이 앞서서 병신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냥 살살 움직이면서 3주동안 연습하면 
그래도 뭔가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그렇다. 내게 연애따위는 뭔놈의 개좆;이냐.
그냥 자신을 계속 괴롭히면서, 그러면서 솟아나는 어둠의 에너지로 살련다.

이제 뛰러 나가야겠다. 딱 한시간만 뛰어야지.
근데 지금 상태로는 곧 걷게 될 것 같다; 집에 가서 무릎아대를 다시 가져와야 하나ㅋ




폰카로 찍은거라 화질도 안좋고 옮기기도 귀찮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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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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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 김에 연속 포스팅.


디씨 철갤에서 벌어지고 있는 n호선 정ㅋ벅ㅋ 놀이에 나도 작은 보탬이 되려
3호선 정ㅋ벅ㅋ에 도전해보았다.
얼마전 설악산을 다녀온터라 걷는 것 하나는 자신이 있던 상황..
머.. 나름 좋은 경험이었다.

왜 했냐고 물으신다면..
병림픽에 참여해서 명예를 얻고픈 일종의 찌질본능 발동이 첫번째 이유요,
어린시절 꿈꾸던 미지의 길을 따라 걷는 '모험'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에 설렌 것이 두번째 이유였다.


어쨌거나 힘은 들었으나 즐거운 잊지못할 추억이었다.
수서-오금 연장구간까지 걸어준 것은 철덕스런 센스였다고 해야하나.

1~8호선, 분당선 중 1호선과 7호선을 남기고 모두 정ㅋ벅ㅋ 되었는데
7호선은 상대적으로 수월하면서도 지루한 코스라 다들 피하는 것 같고
1호선 소요산-신창구간은 어느 본좌께서 2박3일째 걷고 계신걸로 알고 있다;

여름은 길고 잉여들은 많구나.
나 역시 그 잉여의 대열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지금도 갖고 있는 나의 꿈은
영동선 출발지인 영주에서부터 강릉까지 철로를 따라 걷는 것이었는데,
이건 실제로 초딩때부터 꿈꾸던 것이다.
과연 언제쯤 이룰 수 있을까.

스케치북에 지도를 그리고 도시를 만들고 철도를 연결하고 도로를 연결하는
일종의 원시적인 심시티 놀이를 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누군가 꾸던 어떤 꿈을 이런 계기로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
그런 것도 일종의 행복 아닐까 싶다.


대화에서 원당까지 풍경들

지겹던 원당에서 삼송가던 길

지축에서 옥수까지

동호대교를 건너다

압구정에서 수서까지

연장구간 탐방. 수서에서 오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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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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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로코롬 댕겨왔슈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그래도 메모리에서 썩고 있는 사진들이 아까워 올려본다.
아래글은 모 커뮤니티에 올린 글인데 블로그에 맞게 다시 쓰기가 몹시 귀찮아서 그냥 붙여넣기했음.
요새 사수가 휴가중이라 혼자 일하느라 심신이 몹시 피로한고로 양해해주삼.
 
------------------


무사히 잘 다녀와서 후기;올립니다.
이틀동안 설악산 종주하고 내려와 강릉에서 하루를 보내자 라는 계획으로 떠났었는데요,
돌아보니 나름 저렴하고 빡세게 다녀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휴가 전날인 20일,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니 열한시가 넘은 시간;
전날 장봐둔 것을 챙겨서 배낭을 꾸리고 대충 씻고 나니 어느새 새벽 두시가 가까워 오더군요.
정말 등산은 짐꾸리고 정리하는데 시간이 넘 많이 걸려요.
무게를 최대한 줄인다고 줄였는데, 체중계에 올려보니 16~7kg정도.
제 몸무게가 58~9 정도 나가는데 이틀동안 이정도야 버틸 수 있겠지 싶더군요.

시간이 애매해서 컴을 켜고 노닥거리다가 갑자기 좋은 동영상;을 발견하게 되어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격하게 딸;을 한바탕 치고 나니 시계는 세시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내 나이 서른 둘... 하아... 조금 피곤하고; 쓸쓸했습니다;


배낭을 짊어매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백담사행 첫차가 여섯시 십오분에 있는데
참.. 자기도 애매한 시간인지라 일단 택시를 타고 동서울터미널로 갔습니다.
문이 잠겨있더군요;

어디로 갈까 하다가 잠실대교 밑으로 내려갔습니다.
일출이나 한번 볼까 하구요.
캔맥주를 까면서 해뜨기를 기다려 보았는데 더럽게 흐렸던 터라 결국 보지 못하고 터미널로 돌아갔습니다.

잠실대교 아래에서



버스를 타고 미친듯 자다 일어나니 벌써 버스는 인제의 꼬불꼬불한 길을 달리고 있더군요.
용대리에 내려서 밥집을 찾아 두리번거렸습니다.
황태덕장으로 유명한 동네라 대충 눈에 띄는 황태국집에 들어가서 황태찜백반을 시켰는데
서울에서 먹던것과는 달리 황태찜은 덜 자극적이고 들깨와 참기름을 많이 써서인지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었습니다만
황태국은 후추와 조미료가 많은듯 골이 지끈지끈 아픈 그런 맛이었습니다;

어쨌거나 배를 채우고 백담사행 셔틀버스를 타고 20분정도를 달려 백담사로 갔습니다.
도착한 백담사에선 사찰체험을 하는 듯한 중고딩들이 뭔가 종교의식을 마지못해 따라하고 있었는데
모두들 지겨워 죽겠다는 모습으로 몸을 배배 꼬고 있는 모습이 몹시 인상적이었습니다;

여길 건너면 백담사





오전 열시 이십분, 이제 설악산 본격 산행이 시작됩니다.
절간투어를 가는 듯한 아지매들을 뒤로 하고 힘찬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초록빛으로 반짝이는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이어진 등산로를 걸어가다보니
채 한시간이 안되어 영시암이라는 암자가 나타납니다.
여기서 갈림길이 나타나네요. 오세암으로 가는 길과 봉정암으로 가는 길.

저는 봉정암으로 가서 소청중청대청으로 갈 예정이예요. 초행인 이들에게는 이 길이 가장 무난한 코스라고 들었어요.




십여분을 더 가니 간지나는 계곡 사이에 통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오두막이 보입니다.
수렴동 대피소네요. 일단 시간은 안되었지만 밥을 먹어야겠죠.

시간을 줄여보려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꺼내고 코펠에 즉석국을 끓여 점심식사를 합니다.
비슷한 시간대 올라온 등산객들도 취사장에서 밥을 먹고 있네요.
갑자기 누군가 비명소리를 지릅니다. 아이고~ 살모사 새끼가 취사장안에서 돌아다니네요.
밥먹던 등산객들이 놀라서 시끌시끌 난리였습니다.
재밌었던건 취사장근처에서 먹고사는 다람쥐들이 뱀을 툭툭 치면서 시비를 걸더군요. 덩치가 비슷하니까 가능했던걸까요;

머 그렇게 식사를 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계곡물은 내리쬐는 햇살을 받아 연초록빛으로 빛났고요 흐르고 떨어지면서 수없이 많은 폭포와 소를 만들어내네요.
역전다방에 걸린 달력에서나 볼 수 있는 멋진 풍경이여요.
달리 얘기하자면 산행길은 점점 빡세진다는 이야기겠지요?

예쁘죠?




볼 것은 참으로 많은데 몸은 조금씩 힘들어지네요.
어쨌거나 공기는 너무도 맑고 햇살은 가볍고도 따가워 피부가 막 심호흡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매일처럼 랩이 한꺼풀 씌워진듯한 하늘과 공기를 맛보던 제게는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냥 좋더군요.

걷다가 마구 업되는 기분을 참을 수 없어 노무현 버전으로 크게 외쳐보았습니다.
"야~~~ 기분좋다~!!";;;;;


여튼 그럭저럭 템포를 조절해가며 언덕길과 계단길을 오르다가
갑자기 경사가 급해지면서 체력소모를 요하는 깔딱고개가 나타나네요.

이정표를 보니 봉정골 입구라고 써있네요. 1050m정도였던듯
두시간을 내리 걸어온 터라 배가 고파와서
이미 녹아 떡이 되버린 초코바를 입안으로 꾸역꾸역 밀어넣습니다.

올라온 길을 돌아보다

잠깐 뒤를 돌아보니 이렇더라




물을 약간 마시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데.. 아아.. 경사가 예사롭지 않네요. 
도대체 천미터가 넘는 산자락에 절을 지을 생각을 한 사람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과연 이 위에 절이 있기는 할까, 봉정암의 암이 암자암이 아니라 바위암자인가봐 하면서
미친듯 헐떡거리며 바윗길을 기어올랐습니다.

허벅지가 터질 듯한 고통을 억누르며 한참을 오르다 보니 사자바위라는 고개에 당도하게 되었습니다.
이정표를 보니 대청봉까지는 2.5km남았더군요. 백담사에서 벌써 10km를 넘게 온 셈입니다.
나름 양호한 성적이네요. 조금더 힘을 내보자고 자신을 타이르면서 다시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봉정암은 계곡 사이에 건설한 암자인데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보관한 사리탑이 있어
독실한 불교신도들에게는 백담사-오세암-봉정암 코스는 메카; 마냥 한번쯤은 꼭 가봐야 할 곳이라 불린다 하더군요.

해발고도가 무려 1244m.. 어휴 말도 안돼;;
하기사 지리산 중산리 코스로 오르다 보면 법계사라고 1400고지에 있는 절도 있었으니 이건 양반?;;

하늘이 맑아서 참 좋았음


머 종교가 없는 저에게 이곳은 물뜨는 곳 이외의 의미는 없었기에 잠시 물마시고 땀좀 식히다 다시 길을 걸어봅니다.
계속 경사가 장난아니었습니다만 머 아까 봉정암 초입에서 이미 단련된 터라
속도를 줄이고 숨을 고르면서 차근차근 타박타박 걸어봅니다.


아.. 너무 좋아요. 고도가 높아지면서 거치른 암벽과 봉우리들이 미친듯이 나타나면서 눈을 어지럽힙니다.
힘든데 너무 기분이 좋아요. 초록 숲과 하얀 암벽의 조화, 따갑고 맑은 햇발속에 걷는 이 기분
등산을 하는 즐거움중 하나가 바로 이런것이예요.
아니.. 이건 혹시 자신을 괴롭히면서 얻는 쾌감이란걸까요?;;

헉헉대고 오르다보니 어느새 소청대피소에 도달합니다.
아~ 정말 전망이 개작살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가슴이 열리는 그런 기분이라 해야 할까요?
아래 지나왔던 구곡담계곡과 바로 옆 연필 깎아놓은 듯 솟구친 용아능선, 뒤쪽의 공룡능선과 저멀리 보이는 울산바위까지
그야말로 한눈에 들어오네요. 
이건 마치 남산타워에 처음 올라 서울시내를 바라본 초딩의 감동과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사실 설악산을 두어번 오긴 했었는데, 한번은 울산바위로 가는 관광코스;였고
한번은 외설악 천불동으로 대청에 올랐다 돌아가는 코스였던터라 이번 산행만큼은 볼것도 감동도 크지 않았었지요. 오늘이 제대로인듯 하네요 히히.

아, 용아장성능선은 대충 보더라도 바늘처럼 솟구친 암봉들의 연속이라 도저히 탈 수 없게 생겼는데요
실제로 이 코스를 도전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고 추락해서 목숨을 잃은 분들도 숱한 죽음의 릿지코스라 하더군요.
물론 통제구역이고 무서워서 갈 생각도 없었습니다ㄳ;

내일 가야할 공룡능선

구곡담계곡쪽으로

이게 바로 용아능선

앞에는 신선봉과 범봉, 뒤에는 울산바위

날씨가 너무 좋다능.. 하악하악;

사진발 쩌네효 대단한 분이신듯




그렇게 숨을 고르고 다시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아까 오르던 기세로 계속 오르다보면 레이더기지같은 것이 설치된 중청봉을 지나
대망의 대청봉을 함께 바라보게 됩니다.

아아.. 그렇게 중청을 넘어서면 드디어 중청봉과 대청봉 사이에 아담하게 지어진 중청대피소가 눈에 들어옵니다.
목적지에 도착했네요 히히; 
도착시간은 네시 사십분 정도.. 여섯시간 반정도 걸린 듯 합니다.
예상외로 시간이 적게 걸려서 다행입니다.

왼쪽이 대청, 오른쪽이 중청. 산사태흔적이 보인다

이쪽은 화채능선쪽인듯?

오늘의 목적지가 보인닼ㅋㅋ




 
이제 짐을 풀고 밥을 먹으러 취사장으로 갑니다.
산에서는 고단백 고칼로리 음식이 최고인지라 끓는물에 3분짜장;을 데우고 그 물을 거름망에 버렸습니다.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리네요.
하수구 아래에서 물에 젖은 다람쥐가 튀어나옵니다.

탄천변을 달리다보면 이런 플랭카드가 눈에 띕니다.
'오리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_-;;;

등산객들이 다람쥐에게 먹이를 주다보니 얘들은 어느새 먹이를 찾는 일에 귀차니즘에 빠져 
이곳 대피소에 터를 잡고 음식찌꺼기를 먹고 사는 쥐새끼가 되어버린거겠죠.

징그럽다는 기분과 동시에 자연에게 인간은 정말 이명박과도 같은 존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이 강과 산을 살리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걍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안하는게 자연을 위해 도와주는 거예요.
이게 정답인 것 같아요. 저도 다람쥐를 이지경으로 만든 인간인지라 일단 반성.

일몰시간이 되어 대청봉에 슬슬 올라가 낙조를 보려 했지만 서쪽에서 미친듯 넘어오는 검은 구름 탓에
결국 지는 해를 보지 못하고 터덜터덜 내려왔습니다.

 


산에서 해떨어지면 할게 없죠. 자야죠.
자리를 깔고 누웠습니다. 평일이라 등산객들이 얼마 없어 다행입니다.


열두시 반쯤 되었나요. 뭔가 쪼아대는 소리에 잠을 깨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쥐새끼;; 아니 다람쥐 새끼가 
내 밥통 냄새를 맡고 뭔가 먹을게 있나 싶어 열심히 이빨로 갉아대고 있더군요.
아까 취사장에서의 기억이 떠오르며 입에서 절로 욕이 나오더군요.

결국 잠만 깨고 쫓아내지도 못하고 해서 나와서 담배를 한대 피웠습니다.
많이 추웠습니다. 온도계는 영상 14도.. 그순간에는 바람막이가 정말 절실했습니다. 
산위에서의 일들이 대개 이렇지요. 상상하기가 힘든 일들이 참 많이 벌어지니까요.


여기서 한번 접을께요.
그만 읽으실 분들은 여기까지. 안녕히 계세요. 꾸벅.






여튼 희운각에서 언제쯤이나 갈 수 있을까 싶던 마등령까지 네시간 조금 더 걸려 도착했습니다.
전문 산악인이 아니라면 그냥 닥치고 묵묵히 걷는게 산행의 진리인가봐요.
이번 산행에서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눈앞에 보이던 미칠듯한 능선을 직접 타고 왔다고 생각하니 우왕ㅋ굳ㅋ 


이제 마지막 문제가 남았습니다. 하산이지요.
제가 산을 타는 스타일상 하산길에서 급속하게 지친다는게 약점이거든요.
역시나... 급경사를 내려가면서 무릎과 발바닥에 조금씩 과부하가 걸리는 느낌이 듭니다.
왼쪽 넷째발가락쪽이 조금씩 욱신거리네요. 아놔 혹시 물집?

아니겠지 하며 내려오는데 여전히 아프네요. 물집 맞구나.
아이 부끄럽게 왠 물집이 잡혀서..ㅋ
여하간에 어찌할 도리가 없으므로 그냥 살살 가봅니다.
제게는 내려가는게 참 힘듭니다. 시간도 많이 걸리구요. 하아..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금강굴 가는 급경사 돌길이 작살이었어요. 실제로 그 바위에서 클라이밍하던 한 무리들과도 만났어요. 조낸 간지나더군요.

비선대 도착~~




결국 막판에는 천천히 걸어도 발이 아프고 빨리 걸어도 발이 아프더군요. 
하지만 구보로 이동한다면 어떨까?
구!
보!
이!
동!
-_-;;

신흥사를 2km 정도 남겨놓고 구보를 실시했습니다.
정말 발에 오는 고통에는 별반 차이가 없더군요;

결국 소공원을 지나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세시가 조금 안된 시각.. 이렇게 설악산과는 안녕을 고합니다.
하산길은 9시간정도 걸렸군요. 날씨가 좋아 설악의 좆간지를 일출부터 꾸준히 볼 수 있었던 것을 
무척이나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구름이 무럭무럭 자라나던 미칠듯한 구름바다와 내설악의 간지비경을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마구마구 부풀어 올라 85 D컵이 되버리는 듯 했던 1박2일이었어요. 하악하악;
그래요. 머지 않아 또 올 기회가 있겠죠. 고마워요 설악산~~~





넵. 산행얘기는 여기까지구요, 나머지는 밥먹은얘긴데 보시려면 클릭하시면 됩니다.









_M#]

겁이 없는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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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
동영상은 요새 꽂혀서 듣고 있는
뷰티풀데이즈 2집의 동명 타이틀곡 '집시들의 시간'이란 곡.
같은 앨범의 Drive랑 불꽃놀이, Moon 요런 곡들도 귀에 잘 들어오더라.





-------------------





지난 일요일, 친구와 야탑에 있는  모 샤브샤브 뷔페에 갔다.

친구는 이만오천원에 두시간동안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다며 니가 아주 좋아할 곳이라 말했다.




그 회사 홈피에서 퍼온 사진들. 사진은 그럴듯 하다만 물론 현실은 결코 이렇지 않지.




끓어오르는 가쓰오부시 냄새가 솔솔 나는 해물육수에다
갖은 야채와 쇠고기를 넣어 데쳐먹기 시작했다.

뉴질랜드산이라 적힌 대패 쇠고기(아마도 등심?)에서는 쇠고기 특유의 노린내가 좀 나긴 했지만
그래도 얼마만의 쇠고기냐 싶어 각종 소스에 찍어 꾸역꾸역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쇠고기를 둘이서 세접시; 정도 가져다 먹으니 슬슬 배가 차오기 시작했다.

그날의 스페셜은 참조개라길래 그것과 더불어 이것저것 해물을 가져다가
이제는 쇠기름이 둥둥뜨는 혼탁해진; 육수에 던져넣고 맥주를 한병 시켜 마셨다.
배가 불러옴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떡, 초밥, 롤 등등을 몇번이고 가져다 먹었고
친구는 고등학교때의 먹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날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마침내 두시간을 풀로 채운 대단원의 막을 팥빙수로 장엄하게 마무리 짓고 우린 그곳을 떠났다;;





그냥...

먹는 순간동안은 참 행복했었지만

주말에 남자 둘이서 그렇게도 미친듯이 먹고 나오던 길은

조금은 슬픔 비슷한 것이 아릿하게 내 가슴을 후벼팠던 것 같다;




머.. 슬픔이야 어쩔 수 없는거고;

내가 뷔페에 가서 이토록 과식을 하는 이유는 뭘까 하고 잠깐 고민을 해보았다.





어쨌거나 항상 끝나고 나오면 드는 생각은 항상 똑같다.

'꼭 그렇게까지 먹어야만 했을까.'

위장도 엉망인 주제에... 다음에는 적당히 먹어야지..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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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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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는 여기
http://www.bravebrothers.co.kr/
관련기사는 여기
ttp://www.newshankuk.com/news/news_view.asp?articleno=c20080506092853e8170






엊그제 쉬는날 고시충 친구랑 만나기로 했었다.
이미 지난주에 해뜰 때 까지 미친듯 퍼마셨던 터라
만나봐야 또다시 술만 진탕 퍼마실 것 같아서
 
뭐 발전적인 일이 없을까 하고 검색창에서 공연정보를 뒤지다가
이 뮤지컬이 눈에 들어오더라.

코엑스 아티움에서의 굿바이 공연이라 30% 할인이라길래
잽싸게 예매하고 인근에서 근무하는 야임마님과 함께 셋이서 삼성역에서 만났다.




머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좋았다-_-)=b




유튜브에서 하나 따왔다.
이 장면은 지엄한 문중 어르신들이 힙합전사;로 돌변하는 그 곡, '축시 춘배' 되겠음







머.. 줄거리나 출연진 수상내역 등등은 다른데서 찾아봐도 충분하니 생략.
장유정 연출 장소영 음악에 당일 석봉/주봉 역은 이석준/김동욱 캐스팅이었다.
특히 김동욱의 경우는 여성팬들의 비명소리;가 꽤 자주 들려오더라;
의외로 발성도 좋고 연기도 멋지게 하고.. 간지좀 나더라고.



난 지금껏 살아오면서 뮤지컬이란 걸 딱 세 편 보았는데
그날은 우리 창작 뮤지컬이 얼마나 뛰어난 수준인가를 느낄 수 있었던 것 자리였던 것 같다.


먼저 전통 장례의식이나 유림의 문화, 유교적 가치관, 세대간 갈등 이런 조금은 무겁고 진부한 주제를 이렇게 재미있고 감동적인 뮤지컬로 풀어나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인상적이었고
두번째로 작곡가분이 곡을 참 다양하고 센스있게 잘 만드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고
세번째로는 무대구성과 의상등 시각적인 도구들이 참 화려하고 짜임새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동행한 고시생 친구는
실제로 OO정씨 몇대 종손 집안의 장손으로서;;
극중 주봉이와 마찬가지로 서른 한살 고시생의 신분에, 요즘 촛불시위를 비롯하여 데모에 여념이 없는 좌빨;인데다 보수적인 아버지와 여전히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마디로 극중 인물과 싱크로율이 99%였던 놈이었다.
 

그녀석은 1부 보고 나서 밖에 나와 담배 피우며 한숨을 쉬더라.
'아 씨발 왜 이런걸 보자고 했어' 하면서..
-_-;;








머.. 전체적인 내용과 결말은 모르고 갔더라도 어느정도 예상된 길로 가는 내용이긴 했지만
중간중간 나오는 여러 장치들이 그런 진부함을 감동과 흥미로움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론 정수라의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이 곡을 패러디한
형제의 듀엣곡 '난 니가 싫었어.. 난 형이 싫었어' (원곡명은 '난 니가 싫어Ver.1)에서 미칠듯이 웃었고
간지가 좔좔 흐르는 오로라(이주원)씨의 자태와 '로라의 사연'에서 들려주는 음성에 웃음과 더불어 감탄사를 연발할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오로라씨가 어머니 순례역할까지 맡아 했으니 그녀의 공력을 한층 더 느낄 수 있었고
포스는 역시 춘배 역할의 안세호님이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머, 지난번 똥파리 포스팅 할때도 잠깐 언급하긴 했지만
나 역시 아버지를 무척이나 싫어하고 닮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극중 아들들이 외치는 '꼰대', '용서못할 인간', '당신처럼 살고 싶진 않았어' 등의 대사에 자연스럽게 감정이입하게 되었고, 
2부에서 춘배가 순례와 함께 부르는 '순례의 기억' 에서 춘배 파트에서 그가 부르는 노래에서 조금은 연민의 감정과 슬픔 비스무레 한 것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이 곡은 이 뮤지컬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이 담겨있는, 구성측면에서도 최고의 완성도를 보여주는넘버가 아닐까 싶다) 

가사가 아마도 이렇던가...

'세상을 바꾸기엔 난 힘이 없었어... 무거운 종손의 의무는 나혼자서도 충분해...
아들들아... 너희에겐 이런 인생 물려주고 싶지 않구나... 차라리 날 원망하고 발을 끊어라...'

후... 어쨌거나 이제는 그 사람을 이해하려 해 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이 뮤지컬 보고 절로 집에 안부전화를 하게 되었으니
참 내겐 여러모로 긍정적인 역할을 한 듯 하다.


유월, 시청 앞에서 그 고시생 친구의 동생이 내게 해준 말이 생각난다.
'우리 형, 아버지 무지 싫어하잖아요. 근데 요새 보면 둘 다 똑같아요.
형이 아버지보고 욕하던 그런 모습들이 이제 형한테 그대로 있는거 보면
참 미워하면서 닮는다는 말이 딱 맞다니까요. 저한테 하는거 보세요ㅋ;;'
요런 내용이었던 듯...



----------------------------

추가)
이제와서 들으면 모두에게 아주 인상적일 이야기가 하나 있다.

우리 시골가는 길에 36번 국도를 타고 봉화읍을 막 빠져나와 영동선 철교 아래를 빠져나오면
봉화에서 보기 드문; 나름대로 너른 들판과 야트막한 산자락, 그리고 앞의 내성천 지류가 흐르는
이른바 금계포란;의 형세를 자랑하는 명당터가 있는데, 이 곳은 바로
'닭실마을'이라 불리는 이제는 전국적으로도 꽤나 알려진 안동권씨 집성촌이다.
(울 외할머니께서도 닭실 권씨;)

충재 권벌선생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유서깊은 양반 동네로
요즘은 전통방식으로 제작하는 한과로 유명하고
이름값에 걸맞게 중고딩들및 성인들의 문화유산 답사코스가 되어버린 양반 마을 되겠다.


한편 지역주민들 사이에 떠도는 이곳에 얽힌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는데,

과거... 여기서 오뚜기부대 훈련날짜 돌아오듯; 제사를 지내던
시집온지 얼마 안된 종갓집 맏며느리가
어느 제삿날, 떡을 찌다가 그만 급한 맘에 떡시루를 살짝 열어보았다고 한다.
근데 아시다시피 떡은 한번 김이 빠지면 돌이킬 수 없다.

시간은 흐르고, 떡은 그대로 쪄지지 않은 상태인데
방에서는 제사 주관하는 아재 할배들이 '야야, 떡이 안왔니라~ 아직 안됐나?' 하고 보채니

이 며느리, 두렵고 당황스러운 마음에 그만 처마에 목매달고 자살을 했다고 하는
정말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가 있다.
(에필로그로 그 마을에서는 그 이후 제사때 떡을 '직접'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이야기는 이문열 아저씨가 '선택'이라는 좆같은 소설에서 그 내용을 차용한 바 있는데,
봉화와 맞먹는 캐깡촌 영양 출신인 이문열 아저씨가 알 정도였다면
이 이야기는 이 유교문화의 마지막 보루, 스톰윈드;인 경북 북부지역의 전설과도 같은
유교문화 가치의 엄중함, 지엄함에 대한 한 예로 자리하고 있나보다.


참... 한숨이 나오고 좆같은 감정이 들지 않나?


근데 이걸 연세있는 분들은
어떤 향수의 감정으로,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것으로 여기는 분들이 아직도 많으시다.


극중에서 순례의 시어머니가 종갓집 종부가 남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며
치질을 숨기고 치료를 받지 않다가 숨진 것처럼
순례 역시 종갓집 종부의 자존을 지키려 자신의 치매를 자녀들에게까지 알리지 않고
숨을 거둔 것 역시 이 떡시루;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정말 가슴을 치고 통탄을 해야 마땅한 일이다.
그리고 그 유산은 그렇게 흐르고 흘러
어느덧 나에게까지 건너왔다..


그자리에서 같이 공연을 보던 친구들...
너희들도 나도 다 가부장제의 피해자들이잖아.
그러면서도 우리도 천천히 우리 아버지들과 같은 꼰대+마초가 되어가는걸까?
우린 아니었음 좋겠는데..






머 어쨌거나 나름 교훈적인 내용에
재미있고 다양하고 아름다운 음악들에
아기자기하고 흡입력있는 연출이 좋았던 공연이었다.

담에 돈생기면 뮤지컬 다시 한번 봐야겠다.

남자들끼리 봐도 재밌었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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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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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6일

일기는메모장에 2009. 7. 6. 02:04
#1. 사는얘기

피곤하다. 유월 내내 탱자탱자 놀다가 월말부터 지금까지 미친듯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오늘 도대체 몇가지 일들을 했는지.. 한 이틀치 일을 반나절에 몰아서 한 듯한 기분이다.
연말수준의 노동강도로 일했던 지난 사흘간이었다. 아아~~~

요 근래 기분좋았던 일들을 꼽자면..
반찬으로 오징어초무침을 했는데 홀 여직원이 조낸 맛있다고 집에 싸간다길래 속으로 으쓱;했던거랑
요 몇달간 내 손을 원망하게 만들었던 전복 4편내기가 드디어 성공했다는 것 정도겠다.

어쨌거나 볶음밥 돌릴때도 이젠 딸그락거리지도 않고 밥알도 적당히 고슬거리고 때깔도 그럭저럭 나오는 걸 보니 역시 해봐야 실력이 는다는게 정답.
어쨌거나 시행착오는 여전하지만 계속 발전하고 있다.
어제 오리껍질 덜마른 채로 오븐에 구웠다가 십창낸 것이 가장 가슴이 아픈 일이다.
다행히 주방장이 오리는 신경을 안쓰는지라 욕을 먹진 않아서 다행.

근데 머 여전히 어리버리하긴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는 요령이 많이 없는 편이라 남들이 쉽게 하는 일들마저 반복학습으로 깨우쳐야 하는 둔한 놈이다.

예전에 모 형이 술먹고 누군가와 하던 얘기중에
창의력 없고 능력없는 인간들이 보통 존나 성실하다고 하는 말을 들었었는데
졸라 뜨끔하면서도 기분이 좀 나빴던 이유를 이제서야 알 것 같다. 바로 내 얘기거든.

근데 답이 없어. 나같은 애들은 존나 반복학습 안하면
센스있고 창의적인 인간들을 비슷하게 따라가는 것 조차 힘들거든.
창의적인 생각이란건 결코 아무나 아무렇게 할 수 있는게 아니라는걸 난 알거든요. 

여튼.. 오늘 하도 고생을 해서 운동이고 나발이고 다 그만두고
이렇게 컴질중이다. 하루만 더 버티면 쉰다. 하아;;;

이제 얼마후면 중식조리사시험이 있구나. 잘 봐야지.


#2. 휴가계획

휴가를 21일부터 닷새동안 냈다.
계획했던 동네친구들과의 여행은 아마도 어려울 것 같아서
1박 코스로 설악산 종주계획을 잡아서 혼자 갈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그말을 듣더니 갑자기 같이가자고 해서 엊그제 그와 함께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등산자체를 거의 한적이 없는 거구의 소유자인지라 퍼질까 걱정이 크게 되지만
글쎄.. 그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몹시 크다.
내 생각엔 뭔가 일탈;을 해보고 싶은 심산인가 본데..
일단 이번에 목표했던 공룡능선코스는 다음 기회에 도전하기로 하고
그에게 산이 주는 푸근한 행복과 좆같은 좌절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고 싶다.
올여름도 등산이로구나.
그나마 살이 빠져서 오르긴 수월하겠다.


#3. 책읽기

요근래 계속 운동한답시고 매일밤 깝치다보니
주야를 불문하고 책만펴면 자버린다.
이러면 안되는데..
가장 오랜기간 읽고 있는책은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과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성찰
이 두권의 책으로, 두권다 석달은 된 듯 하다.
개론서 성향의 책들의 문제점은 사전지식이 희박할 경우 이해도 측면에서 문제가 생기고
나아가 흥미가 급격히 반감된다는 것들인데.. 둘다 60~70%정도는 봤는데
한동안 손떼고 있었던 터라 다시 처음부터 봐야될 것 같은 기분이다.
이 책들 다 떼고 나면 책거리;;라도 해야 겠다 ㅅㅂ;;
그리고 근래 깝작거린 책들은 갈리아 전쟁기와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고양이 대학살 등등..
아씨발 쓸데없이 책욕심만 많아가지고 다 읽지도 못할거면서 에휴 병신;
일단 휴가전에 차근차근 대기표;를 줄여가야겠다.

그러자면 일단 인터넷을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방향으로 해야겠지?
분명 독서의 적은 인터넷이다.





몰라씨발. 오늘은 피곤해서 죽겠다. 후딱 정리하고 자야겠다.
내일도 그닥 편치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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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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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모모 님들과 얘기하다 자작곡;; 얘기를 하다가 생각이 나서 포스팅을 해보련다;
좀 쪽팔리지만 이젠 십수년;이 지난 추억이니 그냥 편하게 써볼까 한다.

가죽잠바의 영웅, 주다스 프리스트 할배들



97년도 이맘때쯤이었던 것 같다.
난 지금 이 블로그에 자주 오시는 야임마님과 함께 둘이서 롹밴드;를 결성했더란다.

그룹명은 "가죽잠바";;;

스무살때였던 것 같다.
당시 대학에 가서도 여친도 없고 무료하기만 했던 우리 둘은 정말 할 짓이 없어 뒹굴거리다가
그때 우리의 정신적 지주였던 주다스 프리스트, 아이언 메이든 그리고 킹 다이아몬드를 뒤이을
야심찬 롹 프로젝트를 해보고자 하여;

당시 큰맘먹고 샀다가 몇번 쳐보지도 않고 방구석에 쳐박아둔 야임마님의 일렉기타를 이용하여
작사작곡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팀명부터 정했다.
가... 죽... 잠... 바...

씨바 졸라 죽이지 않나?
롹스타들의 패션의 절정은 무엇이던가...
할리 데이비슨, 청바지, 그리고 가죽잠바 아니던가...

여튼; 팀명은 그렇게 정했고
한 일주일만에 처음이자 마지막의 가죽잠바 1집 EP앨범을
수능 듣기평가테잎에 홈레코딩하였다;

당시 레코딩시 난관이 약간 있었다.
야임마님의 일렉기타로 레코딩한 첫번째 버전이 있었는데
모 친구가 갖고가서 듣다가 분실하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고 다시 레코딩을 하게 되었다;

그때 일렉기타가 고장났었나 부러졌었나 해서
우리집에 굴러다니던 클래식기타를 들고와서
어쩔수 없이 어쿠스틱 버전으로 리레코딩을 하게 되었다.

지금 버전은 바로 두번째 버전이며
그 두 테잎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관계로
이젠 남은 것이라곤 이게 전부다.
우리 친구들 사이에선 전설이 되어버린;; 그런 음반 되겠다.





일단 닥치고;;

테잎 분실전 야임마님이 옮겨놓은 귀중한 앨범 속지 내용이 있길래
여기에 이렇게 옮겨 본다.


아오 쪽팔려;

여튼 가사의 파괴력 측면에서는 단연 살인수 감방이 최고인듯 하다;;






이쯤에서 들어보자.
타이틀곡 용/광/로.....






듣기평가테잎을 옮긴거라 음질이 좆구려서 ㅈㅅ;

십이년이 지난 지금도 친구들은 다들 용광로를 추억하며 즐거워한다;;
그만큼 이 곡이 개명곡이란 얘기인건가;; 아니면..;;;


몇가지 부연설명을 하자면...

가사가 상당히 무의미한것 같은데,
이건 바로 주다스 프리스트의 메틀 멜트다운이라는 곡의 가사 일부를 야임마님이 직역한 것인데
머.. 유치하고 어쩌고를 떠나서 이게 바로 락스피릿이라고 생각한다;;

코드는 고딩때 클래식기타로 연습하던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전주 4코드를 따서
그냥 곡 내내 써먹어 보았다;;

안타깝게 원치않은 어쿠스틱 버전이라 아쉽지만.. 머 아쉬운대로 들어보삼; 



마지막으로 나로 인해 이곡을 알게된 대학교 동아리 동기의 평을 한번 보자;;


스크랩 1에 주목;;ㅋ




원래 앨범;;에서 음원이 남아있는 곡은 용광로 뿐이고
02년도인가 파전집에서 라이브공연;을 했던 실황이 짤막하게나마 있어
이거라도 들어볼까 해서 올려본다.


"생일선물은 없어"




이때 동아리 후배 생일날 불러줘서 많은 환호;를 들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손발이 미친듯이 오그라든다.

차마 원곡 가사대로 부를 수 없어서 중간부분을 날려버린 클린버전;으로 불렀다;

이 곡 역시 킹 다이아몬드의 노 프레즌트 포 크리스마스 라는 곡의 오마쥬;;인데
후렴구의 코드진행은 아이언메이든의 더 넘버 오브 더 비스트의 솔로부분의 코드진행을 차용했다.
표절 아님;;





머... 

지금 드는 생각은 
참 그때가 좋았다는 생각.

쪽팔린 것도 모르고
참 재밌게 잘 놀았구나 하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한동안 창작의 고통;으로 고뇌하다가 다들 군대를 갔고;;
제대후 마지막으로 02~03년쯤에 야임마님의 실제상황을 바탕으로  내가 가사를 쓰고 곡을 붙인
"교복 입고와" 라는 신곡을 발표했었는데...;;

야임마님에게 명예훼손 및 프라이버시 침해 등의 피해를 주었던 관계로
그룹 가죽잠바는 이후 공중분해 되었다;;;



이 곡은 음원이 있긴 한데
다시 들어보니 차마 포스팅을 할 수가 없어서
당시 올렸던 가사만 첨부해 본다.
 




어쨌거나 난 여전히 롹을 좋아한다.
손발이 오그라들던 기억들이여 영원하라.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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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

6월 19일

일기는메모장에 2009. 6. 19. 03:10

1. 술을 다시 끊어야겠다.

-----------------------------
행여 이 글을 보실지는 모르겠지만
저로 인해 초면에 무척이나 황당하고 불쾌하셨을 그 분께
진심으로 사과의 글 올립니다.

주정부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전혀 못 믿으시겠지만 저 원래 그런놈 아닌데
돌이킬 수 없겠지만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


내나이 서른 둘... 
정말 오랜만에 길바닥에서 잤다.
아무런 기억도 없다. 참담하다.

술을 다시 끊어야겠다.
머 이젠 같이 술마셔줄 여자도 없잖어ㅋ




2. 한예종 다니는 친구의 말


한예종 영상원에 다니는 한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요즘의 한예종 사태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이 친구가 나름 소상하게 설명을 해주더라.

일차적으로는 한예종의 급성장에 위협을 느끼는 각 대학 연영과 교수들이 일종의 밥그릇이익단체인
문화미래포럼이라는 단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한예종을 압박해 왔고
이명박 정권들어 좌빨 척결이라는 코드가 맞아떨어진 이들이 노무현한테 써먹은 방법 그대로
황지우 총장을 털었던 것이고, 이론수업을 할 필요가 없다는 명분을 들어 이론강의를 모두 폐지하면서
진보성향 인사들을 모두 퇴출시키고 향후에는 한예종을 사실상 분해하여 약화시키는 길로 나아가려는 듯 하다고 했다.

친구는 스스로는 정치적으로 무관심하나, 어찌 예술에 있어서 이론없는 실기가 있을 수 있냐고 통탄을 했고, 한예종의 수업들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많은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말했으며, 이명박은 경제적인 가치로-이를테면 같은 국립인 영화아카데미와 한예종에 예산이 중복되는 것을 '절감'하려 하는 단순한 사고로 현재 한국 문화예술교육의 보고인 한예종을 이렇게 쉽게 짓밟아버릴 수 있는지, 이들이 어찌 이리 잔인하고 무식한지에 대해 탄식을 금치 못했다. 나아가, 중대 연영과 출신이라는 유인촌이 그야말로 개새끼라며 그놈은 아무래도 미친놈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다. (그는 부패한 사립대 연영과 교수들을 겪었다가 한예종에서 너무 깨끗하고 성실한 모습에서 몹시 놀랐다고 했다)

학생들이 학교를 살리기 위해 집단행동은 하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원래 이쪽 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신적으로 하나씩 장애를 갖고 있어서;; 자기 분야에 있어서는 천재적일지는 몰라도 세상돌아가는 것은 바보에 가까울 정도로 전혀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이고 자기 일 하며 생계를 이어가기에도 벅찬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아마 그렇게 되긴 힘들거라고 비관적으로 말했다. 다만 정부가 강경하게 학교를 짓밟게 될 경우, 정신적인 장애를 가진 대다수 학생들이 이를 보고 단체로 폭발하여 피를 부르게 되는 매우 비극적인 사태도 벌어질 수 있을거라고 조용히 말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영화하면서 먹고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 판에 왜 이런 일까지 생겨서 빡돌게 하는지 모르겠다며 가카와 유인촌이는 기본적으로 문화에 대한 인식이 없는 씹쌔끼들이며, 이들이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 영화판을 더욱 개좆같이 만들고 있다며 울분을 토했다.
 
참고로 이친구는 조만간 입봉을 하게 될 것 같다는데, 연영과 다니며 영화판에 뛰어든 근 십년 넘게 생활은 전혀 변함이 없이 궁핍과 찌질의 연속이었으며 앞으로도 별반 도움이 안될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마지막으로 남긴 그의 명언은 '오래 버티는 놈한테 당할 자 없다' 였는데, 지금 생활고 및 격무에 떨어져나간 동기 선배 후배가 너무 많아 자기의 경쟁자 및 적;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다들 힘든가보다.
우리는 미친 세상을 살고 있다.
훗날 역사책에는 2008년과 2009년은 어떤 해였다고 기록이 될까.



3. 고향에 다녀오다

아버지 생신이 이번주인 관계로 올해들어 처음으로 시골에 내려갔다.
산골이라 그런지 새벽에 반팔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추웠다.

그곳은 작년 수해로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된지 일년이 되어가는데
아직도 제방은 한참 작업중이었다.
올해는 아직까지 비가 제대로 오지 않아 다행이지만 걱정이다.
4대강을 살릴 돈으로 이런것 좀 후딱후딱 처리하면 안되려나?

파헤친 강이 보인다. 오른편에 시골집이 보임

간지나는 향기의 밤나무


그곳 산에는 이상하게 옻나무하고 생강나무가 유독 많이 눈에 띄었다.
내가 옻나무에는 알레르기 반응이 없어서 다행이긴 했지만
나중에 여러사람 고생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린 생강나무. 잎을 비벼보면 생강냄새가 남.


옻나무. 이건 차마 못비벼보겠음;



할아버지 산소 주변에는 할미꽃과 노간주나무가 많이 자라 있었고
외할머니 산소 주변에는 인동초와 신나무가 눈에 띄었다.
향기로운 인동과 뽕잎이 없을때 누에에게 대신 먹였다는 신나무는
바로 옆동네이긴 하지만 우리동네에서는 많이 나지 않는 식물들이라 신기신기..

할미꽃. 꽃은 이미 피고 졌겠지.

신나무. 회색염료로 썼다고 하던데..


돌아오는 길에는 시커멓게 열린 오디를 미친듯이 따서
언젠가는 익을 술을 담갔다.

뽕나무와 오디


좀 징그러워보이네


어머니에게 사사받은 요리는 고춧잎 나물, 고사리나물, 취나물 등을 무치는 것을 배웠다.
나는 원래 식물을 좋아하는 따스한 봄햇살같은 남자ㅋ
잊지말았다가 다음에 한번 해먹어야겠다.

다음에 다시 내려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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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

아, 눈물나;;


이 사진들은 10km를 손잡고 걸어다닌 모 진상커플들이 찍은 것임


6월7일 파주 통일동산에 열린 파주런마라톤대회에 다녀왔다.
누군가가 내게 간만에 용주골; 가려는 거냐며 의혹의 눈길을 주었지만 난 무시하고 떠났다;

참가종목은 10km. 첫 마라톤인데 하프뛸 수는 없잖아ㅋ
지난 봄부터 나름 열심히 준비해왔던지라 그리 겁나거나 하진 않았다.

특히 지난주 경기가 있기 며칠 전에는
차마 말로 거론할 수 없는 지옥훈련;;까지 실시했기 때문에
나름 퍼지거나 중도포기하거나 하지는 않을거라는 믿음은 있었다.

참가인원이 7천명이 넘어버려서 코스가 갑자기 변경된 탓도 있었겠지만
초반 코스가 나에게는 상당히 난코스였다.  언덕을 두어개 넘어줘야 하는 길이라서..

어쨌거나 잘 참고 페이스 조절 하면서 달렸더니
염통이 터지기 직전쯤에 무사히 골인을 했고 기록은 48분31초가 나왔더라.
 
로젠택배 티를 입은 분과 인천사랑마라톤 티를 입은 분과
중반이후 사실상 러닝메이트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했는데 이 결과는 다 그분들 덕분이다;
연습할때 최고기록이 54분 정도라 50분대 안으로 들어오리라고는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데
결과에 왠지 으쓱해졌음ㅋ

처음 해본 마라톤이었는데 등산이나 마라톤이나 철저히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두 운동은 유사한 점이 많은 것 같다.
하반기에도 기회될때 수도권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에 참석해보아야 겠다.

아.. 어찌되었든 상반기의 운동결과는 이걸로 만족하고
이제는 유산소운동은 좀 줄이고 근력운동에 집중해야겠다;

덧. 대회가 전반적으로 조잡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좀 시장바닥 분위기랄까;
       4만원이라는 참가비에 주는건 고작 빵/우유와 팔토시와 메달이었는데 좀 부실했던듯.
       아직 오지않은 경품인 츄리닝이 어떨진 모르겠지만 큰 기대는 안한다;
       먹진 않았지만 경기 끝나고 주최측에서 제공한 막걸리와 두부김치는 센스작렬이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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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
친구는 말했다. 올해 여섯번째 상을 치른다고.
때마침 같은 시기에 집중됐던 우리 친구 아버님 세 분의 상을 비롯하여
용산 참사,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그리고 어제 노무현 전대통령까지 무려 여섯분의 빈소에 다녀왔다고...


가슴이 에어진다.
그 무엇이 두려운 것인가
전직 대통령의 분향소가 전경들에게 가로막힌 채
분향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현실에 분통이 터진다.

신문지 위에서 절을 하는 내 자신이 우습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여
긴 한숨만 쉬어댔던 그날 밤이었다.


길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권은 이렇게 더럽게 뿌려댄 만큼 그 응분의 댓가를 치루리라.


노무현은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며 승부사로 불리던 그의 모습 그대로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고 갔다.
그를 죽은 공명으로 만들어 산 명박을 쫓을 것인지,
아니면 처벌을 피해 죽은 비겁한 겁쟁이로 만들 것인지는
이제 살아있는 우리들의 몫일 것이다.

그를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를 존경하고 애도하고 추모한다.

낮은 곳에 서려 했기에 한번도 그의 뜻대로 하지 못했던,
그리고 그런 경멸과 비난을 감내해내며
최소한의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세상 전부와 싸우려 몸부림쳤던
고집센 한 정치인의 모습을
난 결코 잊지 못할 것 같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당신을 추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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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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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6일

일기는메모장에 2009. 5. 16. 04:47

1. 올해들어 상가집에서만 만날 수 있는 고시생 친구를 다시 상가집에서 만나게 되었다. 우리집에서 아침까지 술을 푸면서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는 언제부터인가 배후세력 및 초특급 울트라 빨갱이가 되어있었다. 작년 10월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촛불집회를 나갔었다는 그의 말에 나는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고시폐인인 그의 모습은 비록 개돼지처럼 추레하였으나 그의 내면에 간직한 빛나는 지성과 뜨거운 열정은 촛불이라는 것의 존재와 의미를 이미 상실해버린 나에게 다시 한번 희망과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주었다. 고맙다 그리고 부끄럽구나 친구야.

2 오이채가 급진전하고 있다. 오늘 냉채용으로 썬 8개의 오이채가 나름대로 적절한 두께와 모양으로 썰어져 무척이나 기뻤다. 핵심은 아마도 오른손목 스냅에서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참 둔해서인지는 몰라도 몇달을 안되던 것이 오늘 갑자기 되는 것을 깨달으니 한심하기도 한 한편으로 무척 행복한 기분이 들게 되었다. 냉동송이도 마찬가지. 다음단계는 편이다. 소라편을 뛰어넘어 전복편을 마스터하면 내가 칼판에서 모든 재료를 다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차차.. 당근 모양내어 깎기가 남아있는데.. 일단은 다음주부터 편썰기에 올인해야겠다.

3 얼마전 포스팅에서 테레사 수녀님이라는 단어를 언급했었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내게도 테레사 수녀님이 생기게 되었다. 조금은 당황스러운 계기로 만나게 되어 몇번의 거론할 수 없는 우여곡절을 겪은 후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데..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인생을 새롭게 다시 출발하는 것 같아 설레고 기쁘고 두렵기도 하고 그렇다. 도대체 얼마만에 느껴보는 감정인지 모르겠다.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4 10km 50분대 진입 성공. 금주는 3번의 경우로 인해 이미 깨어졌고, 이제는 수녀님과 주 1회 음주를 하며 편하게 살고 있다. 법은 어기라고 있는 것이다라고 정신승리 하면서 어쨌거나 오는 6월 7일에 있을 마라톤을 대비해 매일처럼 운동중이다. 몸무게가 58kg까지 떨어지다보니 이제는 복근이 막 느껴져서 놀랍기도 하다. 한번 갈때까지 가보자.

5 한식조리사 실기준비는 아직도 미미한 단계. 내주 화요일부터 생활스케줄을 바꾸어 아침형 인간으로 거듭나기로 했다. 그래야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조금더 박차를 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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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
반성합니다.

저, 요즘 완전 매너리즘에 빠져있습니다.



그저 주어진, 해야하는 일만 하고

남는 시간을 아껴 내 것으로 만들려 하는 노력이 사라졌습니다.

어느새 그냥 시간 때우기나 하는 사람이 되버린 거죠.


어려운 칼질을 슬슬 피하려고 하니 전혀 다음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어설픈 후라이팬질이지만 처음엔 그런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에 너무나도 감사하던 것을

이젠 그것도 귀찮아서 안하려 합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느순간 제 자신이 그렇게 병신같이 변해버렸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대충 시간 때우고

대충 받는 만큼만 일하고...

그러면서도 박한 월급을 불평하기나 하는

그런 전형적인 못나가는 말단 직장인의 패턴을

여기에 와서도 어느새 그대로 적용하려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거면 왜 굳이 회사를 관두고 

힘들고 가오 안나는 이 일을 하게 되었을까요.

그건 결국 도피에 불과한 것임을 저는 지금도 애써 잊으려 하고 있는 것인가요.


그리고 그렇게 일에 쏟아야할 열정을

지금처럼 엉뚱한 곳에 쏟아부으며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을까요.



이렇게 가면 조금씩은 늘어가기야 하겠죠.

이삼년 지나면 튀김으로, 혹은 식사장으로 갈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게 대충 일하고 불평하며 지금처럼 일을 하다 보면

난 그냥 그런 아무것도 아닌 수많은 짱개들 중 하나로 늙어갈겁니다.



다시 한번 자신을 추스려 보겠습니다.

아직 올해는 2/3이 남아있네요.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데 노력하겠습니다.

그 성과가 결과적으로는 제 자신의 가치를 상승시키고

제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테니까요.


다시 한번 반성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운동을 시작했듯, 술을 끊었듯,

그렇게 다시 자신을 추스려서 뛰어보겠습니다.

달라진 모습을 스스로에게 확인시켜주겠습니다.


저는 반성합니다.

그리고 계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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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
지난 3월에 낮술이 1년간 본 한국영화중 최고라고 했었는데 아무래도 정정해야겠다;
이 영화는 지난 1년 반동안 본 한국영화중 최고였다-_-;;


지지난주 월요일에 시네시티에서 친구와 팝콘을 아구아구 집어먹으며 보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가슴이 먹먹하고 터질 것 같은 기분을 주는 영화더라고.







내용은 다른 블로그 찾아보면 다 나오니까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하고..
이 영화는 아시다시피 가정폭력이 어떤 것인지 경험을 해본 사람은 누구나 공감할 영화다.



나 어릴적엔 저녁 9시 이후는 너무 두려운 시간이었다.
그 시간까지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술이 떡이 되어 들어올 것이 분명하기에... 

늦은 밤, 술먹고 들어와 밤새 어머니, 할머니에게 행패를 부리고 집요하게 괴롭히고 모욕하다가
아침이면 아무일 없었다는 듯 안면 싹 바꿔 근엄하게 아침밥 먹고 출근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그걸 매일같이 받아내야 하는 어머니가 너무나도 불쌍하고 바보처럼 여겨졌었고.
그의 행동이 도무지 사람같지 않아 두려웠고, 나아가 그를 죽이고 싶다는 충동까지 느꼈었다.

자신의 울분을 술을 먹고 남에게 풀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더러운 버릇은
지금이야 환갑 진갑 다 지나 많이 수그러들긴 했다지만
여전히 그의 얼굴을 보노라면 지금도 가슴 한켠에선 치유되지 않은 그때의 분노가 치솟는다.
 
이 영화에서 상훈이 '아버지'라는 단어만 들으면 아버지를 찾아가 미친듯이 두들겨 패는데,
나는 그 장면에서 눈물이 쏟아질듯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가 나를 대신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이 영화는 결코 해피엔딩으로 끝나선 안된다고 난 영화내내 계속 바래왔고
감독은 다행히 끝까지 스필버그식 해피엔딩을 꺼내지 않더라.
다만 화해의 가능성만을 제시한 채.

가정폭력은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비빌 언덕이라 말하는
인간의 최하부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가장 비윤리적이고 잔혹한 행위다.

게다가 이 것은 남에게 드러낼 수도 없는 부끄러운 일로 여겨지고
그저 개인이 감내해야 할 짐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기에 더욱 그 심각성은 크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슴 한 곳에 가라앉아 있던 어떤 앙금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영화 내내 울컥울컥 할 정도로 감정의 동요를 느끼게 되었는데
어찌보면 내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이처럼 더러운 현실에 대한 차갑고 정제되지 않은  반영이 아니었나 싶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도 없고 말하고 싶지도 않은 그런 일을
감독은 너무도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건 나의 일이기도, 우리 이웃의 일이기도 하다.
다만 모두 서로에게 눈감고 모른척 하고 있을 뿐..

그게 바로 가족의 사랑이 최고의 가치라는 헐리우드 영화의 교훈적 엔딩이
사람들에겐 항상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였겠지.
(얼마전 보았던 '그랜토리노'에서 현대 미국 가족에 대한 씁쓰레한 묘사가 참 신선하더라)

영화처럼 폭력의 재생산이라는 측면을 배제하고서라도
그 가정의 구성원들은 인간에 대한 혐오와 분노,  증오와 냉소라는 감정에
모두가 피해자가 되고 마는 이러한 현실의 고리를 감독 역시 끊어야 함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과연 어떻게?

먼저 필요한 것은 상처의 치유다.
가슴 곳곳에 멍이 들어버린 수많은 상훈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결국 그 상처는 평생을 가게 될 것이니까.


이 영화를 보며 문득 어릴적에 우리 뒷집 아저씨가 아주머니를 개패듯 패다가
그냥 죽어버리라며 낫을 들고와 손목을 찍던 모습이 생각났다.

더욱 충격은 그들의 자녀 5남매중 그 누구도 그 모습에 반응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미 큰형은 집을 나간 상태였으니까 4자매라고 해야겠지)
내 또래의 그들은 그러한 폭력에 이젠 무감각해져서인지
주된 피해자인 어머니를 옹호하다 자신에게 올 피해가 두려워서였는지
그들은 그 모습을 외면하고 있었다.

가정폭력은 결코 답이 없는 문제다.
영화속 대사처럼 '집에 와서는 김일성처럼 구는' 이들에게
법적인 강경한 조치 빼고는 과연 무슨 해답이 있을까.

어찌되었거나 그 김일성의 자녀들의 가슴에는 깊고 깊은 상처와 분노만이 남아있는데.





P.S)영화중 유일하게 미친듯 웃게 만들었던 씬이 있다면
포장마차에서 상훈이 연희의 별명을 생각하는 장면이었다.
'일년이, 이년이(이연희;;), 삼년이, 사년이, 오년이... 썅년이... 야이 썅년아'

상훈식 언어유희;;에 난 미친듯이 웃었는데 주위의 관객들은 모두 조용해서 조금 부끄러웠다;;
그래서 이 영화는 커플들이 보면 안좋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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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씹덕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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